0399 ----------------------------------------------
엑조틱 발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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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가... 그럼 얼마나 더 주면 되는거지?”
준은 가만히 머릿속으로 계산을 했다. 최소한 붉은색 결정체 10만개 이상이 필요했다. 그동안 계속해서 결정체는 쌓이고 있었기 때문에 그정도는 어렵지 않게 줄 수 있었다.
‘10만개면 대략 1200억인데.’
절대로 낮은 가격은 아니었다. 하지만 지금의 준이 감당하지 못할 정도도 아니었다. 어차피 결정체는 이럴 때 쓰려고 모아둔 것이다.
그리고 루나의 경호원으로 붙이는 만큼 투자할 가치가 있었다. 란도넬 행성은 수라드나 이스카야와 달리 자신에게 불만을 가진 세력들이 많았다. 개중에는 상급헌터도 있었다. 그러니 그녀의 경호에 만전을 기할 필요가 있었다.
물론 어지간한 상급헌터보다는 루나가 더 강하긴 했다. 어설프게 달려들었다가 그녀의 ‘물질분해’스킬에 얻어맞으면 그대로 자신의 몸을 구성하는 분자가 결합에너지를 잃고 뿔뿔이 흩어지는 모습을 실시간으로 관찰할 수 있게 될 것이다.
“너 결정체 얼마나 먹을 수 있냐?”
-글쎄요. 먹어도 배가 부른 건 아니니까. 주시는대로 흡수 할 수 있을 겁니다.
“그래? 그럼 배터지게 한 번 먹어봐.”
그렇게 말하고는 준은 인벤토리를 열었다.
촤아아악!
-꾸에엑!
검둥이는 갑자기 밀려오는 결정체의 파도에 쓸려서 방한쪽 구석으로 밀려나갔다. 한번에 10만개의 결정체를 풀어버리니 넓은 방안의 절반가까이가 가득 찰 정도였다. 갑자기 일어난 일에 시미와 엘라, 펄도 깜짝 놀라며 뒤돌아보고는 눈을 반짝거렸다.
“진주다!”
“아니야. 저건 결정체야. 이 바보야.”
시미가 펄의 무식을 지적하며 놀려댔다. 엘라가 얼른 달려와서는 준에게 고개를 들며 입을 열었다.
“아빠. 이거 나도 좀 가져가도 돼요?”
“어디다 쓰게?”
“프랜들 만들 때 쓰려고요.”
“검둥이가 먹을 거니까 적당히 가져가. 저 녀석 오늘 진화시킬 생각이거든.”
“네에!”
“너희들도 너무 많이 처먹으면 혼난다.”
“나도 진화할래요.”
“너는 다음에. 이 녀석에게 맡길일이 있어서 그런거야.”
“쳇. 준은 검둥이만 좋아하고.”
시미가 약간 삐친 듯 했다. 준은 가볍게 한숨을 쉬며 인벤토리에서 녹색 결정체 열 개를 건네주었다. 그동안 외도 사냥을 하다보니 모인 것들이었다. 검둥이에게 10만개의 결정체를 주면서 겨우 녹색 결정체 10개라니, 사람차별하는 것 아니냐며 화를 낼법한 상황이기도 했지만 그녀는 그 영롱한 에메랄드 빛의 결정체에 매혹되어서는 눈을 반짝였다.
“시미와 똑같은 색이에요!”
“그거 그냥 먹어라. 아껴봐야 똥된다.”
“똥이라니요... 어쨌든 잘먹겠습니다.”
꿀꺽!
말도없이 한입에 그 결정체들을 집어삼킨 시미가 몸을 부르르 떨더니 눈을 까뒤집으며 야릇한 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읏! 하웃! 핡!”
“가지가지 한다.”
텁!
준은 혼자서 몸을 뒤틀고 있는 시미의 위로 커다란 그릇을 덮었다. 그러자 끙끙대는 소리가 좀 줄어들었다. 그나마 다행인 건 펄과 엘라가 시미가 몸을 뒤트는 소리를 듣지 못했다는 것 정도.
뿌득! 뿌드득!
십만개의 결정체를 어떻게든 먹어치운 검둥이의 몸이 점점 커지기 시작했다. 중형견 크기였던 녀석의 몸은 이제 엘라나 시미의 키에 필적할 정도로 대형견이 되었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외모는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는 점이다. 녹색 외도랍시고 흉측한 얼굴로 변하게 되면 데리고 다니기가 까다로웠기 때문에 나름 중요한 문제였다.
“다 됐습니다.”
“오. 이제 개 형태로도 말을 할 수 있는거냐?”
검둥이의 기본형은 개였다. 거기서 전투형으로 사이즈를 키울 수 있고, 메타모포시스를 이용한 뿔달린 괴수형태로 변화가 가능했다. 준이 최초에 검둥이를 만났을 때 녀석이 변화했던 바로 그 형태를 말함이었다. 거기에 인간형으로의 변신할 수 있으니 녀석의 형태는 총 네가지라고 할 수 있었다.
그중에서 유일하게 말을 하지 못했던 형태가 바로 기본형이었는데 이제는 기본형으로도 말을 할 수 있게 된 것이다.
“됩니다. 덩치가 커져서 그런 모양입니다. 형님.”
“뭐, 어쨌든 축하해. 그게 축하할일인지는 모르겠지만.”
준은 녀석의 프로필을 살펴보았다.
사용자 : 검둥이
결정도 : 21866
클래스 : 개
속성 : 암, 독, 바람
체력 : 217540/217540
메타모포시스 : 거대화하여 강력한 육체를 얻습니다.
중독 물어뜯기 : 적을 물어뜯어 지속적인 피해를 입힙니다. 피격당한 상대는 낮은 확률로 독에 감염될 수 있습니다.
질병 할퀴기 : 강력한 발톱으로 적의 몸을 산산조각 냅니다. 피격당한 상대는 낮은 확률로 질병에 감염될 수 있습니다.
광견병 : 본능을 깨워 야수로서의 힘을 발휘합니다. 시전시간동안 피아식별을 할 수 없습니다.
바람달리기 : 바람을 딛고 달릴 수 있습니다. 비행능력이 추가됩니다.
이번에도 정예 초록색 외도가 되었다. 결정도는 2만을 돌파했고 동시에 체력도 20만을 넘었다. 비록 정예임에도 골렘들에 비해 체력이 낮긴 했지만 종족특성상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그리고 기존에 없던 속성과 함께 기술이 하나더 생성되었다. ‘바람달리기’라는 기술이었다. 설명만 놓고 봐서는 하늘을 날 수 있는 능력이 부여 된 모양이었다. 확실히 초록색 정예외도로 진화시킨 보람이 있었다. 그렇지 않아도 민첩을 주무기로 사용하는 검둥이가 하늘까지 날 수 있게 되면 녀석을 막을 수 있는 이들은 거의 없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기술이 하나 더 생겼군.”
“저도 이제 막 확인했습니다. 이거 날 수 있다는 소리인거죠?”
“기술에서 된다고 했으니까 되지 않을까? 옥상에 올라가서 한번 시험해보고 오는 건 어때?”
“그럼 다녀오겠습니다.”
검둥이가 고개를 숙이고는 방을 빠져나갔다. 그리고 잠시후.
“저거 검둥이아냐?”
엘라가 창밖을 가리켰다. 그곳에는 허공을 날고 있는 검둥이의 모습이 보였다. 마치 땅에서 달리는 듯한 자연스러운 모습이었다.
“오. 잘 날아다니네.”
“나도... 나도 날거에요.”
“너는 안 돼.”
“나도 되는데요?”
“응...?”
준은 허공에서 날파리처럼 날아다니는 시미를 보고 잠시 고개를 갸웃했다.
“너 진화했냐?”
“아니요. 그냥 날아야겠다고 생각하니까 날개가 나왔어요.”
초록색 결정체라고는 하지만 전부 먹어봤자 10만이 조금 넘는 경험치였다. 파란색 외도로 성장하기 위해서 천만에 가까운 경험치가 필요하다는 걸 생각해보면 아직 진화를 할 때는 아니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녀석의 등에는 분명히 투명한 날개 네 장이 달려있었다.
“아. 맞다. 너 요정...”
“엄마가 선물로 준 건 가봐요.”
“지금까지 몰랐던 거냐?”
“아마도요?”
“자기 능력 정도는 알고 있어라...”
준은 이리저리 날아다니는 시미를 보며 한숨을 쉬었다. 그 옆에서 엘라도 마찬가지로 둥둥 떠다니고 있었다. 딱 한 사람. 펄만이 손가락을 빨면서 그 두사람을 부럽다는 듯 바라보고 있었다.
“아저씨...”
“나 아저씨 아니거든?”
“아저씨 맞는데요. 엘라 아빠니까.”
“끙. 뭐, 그래서. 왜.”
“나도 날고 싶어요.”
“바다생물 주제에 왜 하늘을 날고 싶어하는 거냐?”
“친구따라 강남간다잖아요.”
“대체 그런 속담은 어디서 들은거냐?”
준은 한숨을 쉬면서 인벤토리에서 제트팩을 하나 꺼내주었다. 엔지니어링 스킬이 최상급으로 오르면서 시험삼아 만들었던 기계들 중 하나로, 말이 제트팩이지 반중력 엔진을 탑재한 물건으로 결정체를 기반으로 동작하는 물건이었다.
“오옷! 뜬다!”
펄이 신기하다는 듯 주위를 둘러보았다. 아직 조작이 익숙하지 않기 때문인지 엘라나 시미처럼 자유자재로 날지는 못했지만, 그럭저럭 그녀석들을 따라다닐 정도는 되었다.
프라이어 빌딩 최상층에 사는 것은 좋은 만큼 답답한 면도 있다. 그것을 생각해서 일부러 방의 크기를 넓히고 그 안에 대형수조와 흙을 채워넣었다. 거기다가 녀석들이 모두 하늘을 날 수 있게 되면서 마음대로 밖을 돌아다닐 수 있게 되었으니 적어도 도심이라고 해서 답답해 할 일은 없을 것 같았다.
그렇게 가족을 모두 란도넬 행성으로 이주시키고 난 준은 아프리카 제국으로 떠날 준비를 했다. 당장 델타 엔진을 팔기 위해서 판로를 개척해야 했던 것이다.
헌데 급히 장원삼 과장이 준을 찾아왔다.
“무슨 일이야?”
“회사에서 공식적으로 답변이 내려왔습니다.”
“이야기 해봐.”
“델타 엔진을 전량 매입하겠다는 결정입니다.”
“통상금지는.”
“매입시기에 맞추어 풀어주겠다고 합니다. 투자개념이 아닌 만큼 그 조치가 해결되어야 저희도 정상적으로 구입할 수 있으니까요.”
“흠. 제법 밀리는 모양이지?”
“자세한 사정은 모릅니다.”
장원삼 과장이 반쯤 협박을 했던 데에는 분명 본사차원의 지시가 있었을 거라고 확신할 수 있다. 그런 상황에서 갑자기 태도가 바뀐 이유는 간단했다. 전황이 좋지 않은 것이다. 파티마 제국의 어마어마한 물량을 EX필드가 달린 전함 몇 대로 상대하려고 했던 것이 문제였다. 준 혼자서 대 함대를 상대로 승리한 것을 보고 자신들도 그것이 가능하다고 생각한 모양이었다.
하지만 준과 그들은 다르다. 준은 소모된 무장을 재보급할 수 있는 능력이 있었고, 그에 더해 스스로 실드를 펼쳐 적들의 공격을 막아낼 수 있었다. 게다가 로버의 존재가 있고 없고는 전투력에서부터 엄청난 차이를 만들어 낸다.
그런 여러 가지 변수들을 생각하지 않고 무턱대고 돈으로 지른 물건이니 만큼 그들이 기대하던 만큼의 결과를 내지 못하는 것은 어찌보면 당연한 일이었다. 그렇다고 갤럭시에서 항의를 할 수도 없는 것이, 준이 내어준 물건은 분명히 그들이 원했던 물건이기 때문이었다.
“통상금지만 해결되면 나로서는 거부할 이유가 없지. 대금은?”
“현금과, 부동산, 그리고 채권을 섞어서 지불하려고 합니다.”
“전부 현금으로.”
“현재 전쟁중이라 현금보유랑이 중요합니다. 그 정도 사정은 아시지 않습니까?”
“됐고. 가격은 시중에 판매하는 금액으로 하고, 대량구입이니 10퍼센트 할인. 대신 대금은 무조건 현찰박치기야. 채권이니 부동산이니 하는 거 가지고 있어봐야 나에게는 별 의미가 없거든.”
연합의 채권은 채권이라는 이름이 무색하게 가치가 오르락내리락한다. 자칫 잘못하면 휴지조각이 될 수도 있는 것이다. 거기다가 부동산은 가지고 있어봐야 팔리지도 않는다. 새로 개척하면 생기는 땅이 어마어마하게 많은데 굳이 부동산을 가지고 있을 이유는 없는 것이다.
“후. 알겠습니다.”
결국 장원삼 과장이 고개를 숙였다. 준을 상대로는 협상이 잘 먹혀들지 않는다는 것은 이미 경험으로 알고 있었다. 서로 원하는 가격을 말하고 조금씩 그 차이를 좁혀나가는 방식은, 적어도 준에게는 통하지 않았다.
애초에 칼자루를 쥐고 있는 쪽이 준이기 때문이었고, 장원삼도 그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가능한한 그 차이를 좁혀보려고 애는 쓰지만 번번이 실패하는 것도 그런 이유때문이었다.
“좋아. 그럼 이쪽에서 생산되는 대로 천천히 보내지. 아다시피 우리 쪽에 화물선이 없어서 다른 업체를 고용해야 되거든.”
“우리 쪽에서 화물선을 보내도록 하겠습니다.”
“운송비는 빼줄게. 대신 경호비용은 안돼.”
“...눈치가 빠르시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