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387 ----------------------------------------------
엑조틱 발전기
*
*
*
며칠간, 외도습격의 긴장과 막스의 연설덕분에 프라이어 시티를 제외한 다른 중소도시에서 들불처럼 일어나던 반델타 시위가 조금은 가라앉았다. 당장 외도가 쳐들어 올지도 모르는데 도시 한복판에서 총기를 들고 시위를 하는 녀석들이 있을리 없었다.
다만 다른 문제가 있었는데, 불안감이 증폭된 나머지 일부 시위대들이 강도로 돌변하기 시작한 것이다. 예전에 비해 그 위세가 많이 줄기는 했지만 전국적으로 약 수만명에 달하는 이들이 각 도시에서 무장강도로 돌변한 채 약탈과 방화를 일으키고 있었다. 그러다 보니 초기의 수십만에 달하던 시위대가 수만명 단위로 줄었다. 준은 이제 본격적으로 진압작전을 나서야 할 때라고 파악했다.
“현재 남아있는 군대와 경찰병력을 총동원해서 각 지역의 반란세력들을 모조리 잡아들이도록.”
“네. 외도는 물러가는 겁니까?”
“그래. 눈알 녀석이 일을 참 잘해줬어. 생각보다 충돌도 별로 없었고.”
외도들이 도시 외곽에서 어슬렁거리기는 했지만 본격적으로 유혈사태가 일어나지는 않았다. 그만큼 녀석의 마인트컨트롤이 완벽하다는 이야기였다. 오히려 인간 쪽에서 도시 바깥으로 나오다가 사망사고가 일어나는 경우는 있었지만, 그런 것까지 어떻게 할 수는 없었다. 전체적으로 보면 외도로 인한 사망자는 극히 적었고, 오히려 도시 내의 폭동으로 인한 사망자 수가 더 많았다.
경찰과 군인들이 흔들리지 않도록 재계약하면서 돈을 쥐어줬던 덕분인지, 녀석들은 명령이 떨어지자마자 빠릿하게 움직였다.
그들에게 있어서는 고용주가 달라졌을 뿐, 중요한 것은 돈이 제대로 지급되느냐 하는 것이다.
그렇게 군경이 합동해서 움직이자 순식간에 폭동은 진압되었다. 시위대의 약탈행위가 너무나도 극심했기 때문에 강력한 진압에도 오히려 란도넬 행성의 주민들이 환호할 정도였다. 시위대가 스스로 변질되기를 기다려 여론이 악화될때까지 버티고 나서 한꺼번에 진압하는 방식은 역사 이래 유효하게 사용되던 방법이었다.
다만 그 과정에서 피해가 다소 발생했다. 진압 과정중에서 총격전이 수시로 벌어졌고 그 결과 전국적으로 수천명이 사망하고, 부상자는 그 배에 이르렀다.
게다가 아직 완전히 끝난 것은 아니었다. 헌터들이 중심이 되어 조직된 반란세력이 아직 남아 있었던 것이다.
“상급헌터도 끼어있다고 합니다.”
오카모토의 보고에 준이 가볍게 인상을 썼다.
“전부 떠난 줄 알았더니. 아직도 사태파악을 못한 멍청이들이 있군.”
준 알스버그 단독으로 프라이어 시티에 쳐들어 와서 새크리파이스의 회장을 사로잡은 것은 알만한 사람은 모두 아는 이야기였다. 거짓말 같은 이야기에 처음에는 모두 믿지 않았다. 하지만 델타스피릿이 플랫폼을 장악하고, 별다른 저항없이 4개 함대가 타 행성으로 떠나는 것을 보면서 사람들은 그 이야기를 믿지 않을 수 없었다.
그 외에는 어떤 말로도 지금 상황을 설명할 수 없었던 것이다.
“뭐, 문제 있으면 바로 연락하고.”
“네. 알겠습니다.”
준은 오카모토에게도 펠로우쉽 계약을 걸어둔 상태였다. 언제든지 연락하기에는 이만한 것이 없기 때문이었다. 또한 임시라고는 하지만 비서처럼 굴리고 있는 만큼 그만한 보상을 해주기 위해서이기도 했다.
건물 옥상에 오르는 준의 뒤에 카심이 따라붙었다. 행정업무쪽의 비서가 오카모토라면 카심은 그 외의 일에 대해서 준의 손발이 되어 움직이고 있었다.
상급헌터라는 자존심은 애당초 버린지 오랜였다. 단신으로 란도넬에 들어와 행성을 집어삼키는 인간앞에서 자존심을 세우는 것 만큼 멍청한 짓이 없었다.
“제가 모시겠습니다.”
“셔틀 운전 할 줄 아냐?”
“날아다니는 건 어지간하면 전부 몰줄 압니다. 셔틀은 그중에서도 쉬운 편이니까요.”
준은 조종간을 카심에게 맡겼다. 두 사람을 태운 셔틀은 빠른 속도로 목적지를 향해 날아갔다.
란도넬 행성에는 10만 이상의 인구가 사는 도시가 대략 마흔개 가량 있었다. 그 중에서도 유독 헌터들이 많이 있는 곳이 있었다. 유독 인간들의 거주구역에서 뾰족하게 튀어나온 부분에 위치하는, 외도사냥의 전초기지이자 소비도시인 ‘사라올’ 이었다.
“그러니까. 원래 헌터들이 많은 곳이라는 거지?”
“네. 종종 노란색 이상 외도들도 발견이 되어서 중상급 정도의 헌터들이 많다고 들었습니다. 상급헌터도 종종 나타나고요.”
개척도시라고 하기엔 지나치게 컸지만, 근본적으로 도시의 기능 자체는 수라드 행성의 세일럼과 다를 바 없었다. 참고로 세일럼은 준이 호랑이 길드와 처음으로 만났던 도시이자, 준이 처음으로 외도를 사냥했던 곳이었다.
“헌터라면 가장 현실 인식이 빠를 텐데. 왜 굳이 조직화 하면서 까지 반기를 드는거지?”
준의 의문은 타당했다. 연합정부나, 혹은 실권을 쥐고 있는 기업이의 덕이 아니면 도저히 먹고 살 수 없는 일반인과 달리 헌터는 스스로의 능력에 기대어 살아간다. 때문에 일반인 들 보다도 훨씬 더 태세전환이 빠르고, 돈만 준다고 하면 누구라도 상관없다는 태도를 취한다. 애초에 정부기관이 헌터를 그다지 탐탁치 않게 생각하기 때문에 애국심 조차도 희미한 이들이 많았다.
그런데 유독 이곳의 헌터들이 델타스피릿에 반기를 들고는 농성을 하고 있는 것이다.
“그럴만도 한 것이. 이 지역은 주요 소비도시입니다. 즉, 유흥의 성지라고나 할까요.”
“마약과 인신매매를 금한 것 때문인건가?”
“그럴겁니다. 거기다가 지하격투기장 까지 있는데, 그것까지 금지되어버렸으니 자극에 있숙해진 헌터들로서는 도저히 받아들이기 힘들었을 겁니다.”
“일반인들도 참는데 헌터라는 것들이.”
“헌터이기에 더욱 인내심이 부족한 거죠. 그들은 인간을 초월한 자들입니다. 그렇기에 일반인들을 하등한 존재로 인식을 하지요. 그렇게 오만함을 한껏 키운 이들이 하루아침에 지도자 자리에 앉은 사람의 말을 들으려 하지 않을 겁니다.”
“하긴 굳이 멀리가서 찾을 것도 없었지.”
준은 의미심장한 얼굴로 카심을 쳐다보았다. 그가 식은 땀을 흘리며 어색한 웃음을 흘렸다. 준과의 첫만남이 생각난 것이다. 무턱대고 그에게 시비를 걸었다가 자리에서 일어나지도 못하고 낭패를 겪었다. 물론 직접적으로 부딪힌 것은 그때가 처음이자 마지막이었다. 그 다음은 놀라운 혜안을 발휘해 준에게 붙었고, 그덕에 그는 준의 최측근에서 이렇게 대화를 나눌 수 있게 되었다.
갤럭시 인더스트리와 파티마 제국의 첫 번째 전투는 파티마 제국의 승리로 돌아갔다. 양측 모두 합해서 10개 함대가 벌인 회전이었는데, 아직 준이 넘긴 전함을 실전투입하지 않은 상태에서 벌어진 전투라 수가 훨씬 많은 파티마제국이 압승을 거두었다.
그 한번의 전투를 통해 갤럭시는 일단 물러설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연방에서 조직한 함대는 여전히 건재했고, 곧이어 준의 전함이 실전투입되면 전투의 양상은 달라지리라 기대하고 있었다.
승리의 대가로 스파일리 행성을 손에 넣은 파티마 제국은 빠르게 거점을 마련하고 갤럭시 측을 압박했다.
아예 이번 기회에 두 번다시 석유 사업권에 눈독을 들이지 못하도록 몰아칠 생각인 듯 했다. 그렇게 갤럭시 측이 소유하고 있는 행성을 향해 진군하는 파티마 제국의 함선은 모두 합해 약 200대 가량. 파티마 제국 전체 함대에 비하면 적은 수지만, 절대적인 규모로 본다면 갤럭시와 연방 모두를 압도하는 물량이었다.
파티마 제국의 수도가 있는 행성 카이로. 그곳의 칼리프인 알 알리는 만족스러운 미소로 보고를 받아들고 있었다.
초전의 승리에 도취한 그는 큰 소리로 웃음을 터뜨렸다.
“하하하. 이교도 놈들 꼴 좋군.”
그렇지 않아도 사사건건 시비를 걸어대는 통에 언젠가 한 번 손을 봐줘야지 하고 생각하고 있었다. 연합이든 연방이든 둘 다 그에게는 골칫거리였다. 지금의 어마무시한 이슬람 제국을 세우는데는 알라의 물방울이라 일컫는 석유의 존재가 절대적이었다. 헌데 그 자원에 자꾸만 눈독을 들이는 두 집단이 거슬릴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는 성전을 선포하고는 파죽지세로 진격하기를 명령했다. 이번 기회에 그들에게 본때를 보여줄 생각이었다.
“두번다시 알라의 선물을 넘보지 못하도록 확실하게 혼쭐을 내주거라!”
“명 받들겠사옵니다. 그리고 한가지 추가로 보고할 것이 있사옵니다.”
“무엇이냐?”
“델타스피릿이라는 기업에서 새로운 개량 엔진의 판매를 요청해왔습니다.”
“델타스피릿? 그곳은 어디인가?”
“연합의 작은 기술 기업입니다. 다만 최근에 새크리파이스라는 기업과 전쟁을 통해 승리했다는 정보가 있습니다.”
“새크리파이스라면 나름 유명한 곳인데... 흐음. 그래 개량 엔진이라는 것이 무엇이지?”
“테스트 결과 기존 워프드라이브의 효율을 두배이상 끌어올린 물건이옵니다. 기존의 함선에 적용했을 때 이동속도와 작전거리 모두 비약적인 상승을 기대할 수 있사옵니다.”
“그래? 확실 한 것인가? 혹시 거짓말로 속이려 드는 것은 아니겠지?”
“아직 실전배치를 하지않은 물건이라 확실한 것은 데이터가 더 쌓여야 알 수 있긴 합니다만, 지금으로서는 신뢰할 만한 이유가 충분합니다.”
“헌데 연합의 기업인데 왜 우리에게 엔진을 팔려고 하는거지?”
“새크리파이스와의 분쟁 과정 중에 수출입 금지를 당한 모양입니다.”
수출입이란 기본적으로 타국간에 이루어지는 거래를 말함이다. 하지만 연합은 특성상 각 기업이 하나의 국가나 다름없는 시스템을 가지고 있고, 각 지역이 행성으로 분리되어 있기에 수출입이라는 단어를 사용하고 있었다.
“거기다가 사실 델타스피릿은 우리 제국 소속이기도 합니다.”
“그래? 양다리를 걸쳤다는 말인가?”
“네. 연합의 조세를 회피하기 위함으로 생각됩니다.”
“그렇군.”
파티마제국은 국영기업이 아닌 경우에는 조세에 대한 편의를 상당히 많이 봐주는 편이었다. 기술기업의 숫자가 워낙 적기 때문이었다. 델타스피릿도 일종의 기술기업으로 등록이 되어 있었고, 그를 통해서 상당수의 수입에 대한 조세편의가 이루어지고 있었다.
“군부에서는 이 건을 하루빨리 받아들이길 원합니다. 빠르게 진행된다면 현재 벌어지고 있는 전쟁에 투입할 수 있을 거란 기대도 있는 모양입니다.”
“군부의 의견이 그렇다면 받아들여야겠지. 하루빨리 진행하도록.”
칼리프인 알 알리는 두말없이 결재를 승인했다. 그 건에 들어가는 액수가 얼마인지는 관심도 없다는 듯한 말투였다. 애초에 그런 일은 모두 아랫사람들이 알아서 할 일이다. 계산해 보아서 이득이 될 것같으면 받아들이고, 지나치게 과한 금액이라면 적당한 선에서 자를 것이다.
물론 파티마 제국 입장에서의 ‘적당히’라는 건 다른 국가와는 차원이 달랐다. 같은 무기라고 할지라도 몇배의 가격을 주고 사들이고 있는데, 이런 신기술이라면 본래 가치의 열배, 백배라도 얼마든지 구입할 의사가 있기 때문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