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379 ----------------------------------------------
급속 성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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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슨 소리지?”
소리가 들려오는 곳은 머리위. 준과 카심이 고개를 들었다. 그곳에는 노란색 외도 십여마리가 빠른 속도로 두 사람을 향해 하강하고 있었다.
“말이네요.”
카심이 입을 열었다. 빠른 속도로 떨어져 내리는 외도는 불타오르는 갈기를 가진 3미터 크기의 대형 전투마였다. 말이라고는 해도 사람이 탈 수 있는 형태는 아니었다. 이마에는 긴 뿔이 있는데다가 등은 굽어 마치 낙타의 등을 보는 것 같았다. 게다가 불이 붙은 발굽은 허공을 밟으며 달리고 있었다. 무작정 떨어지는 것이 아니라 하늘을 날고 있는 것이다.
“저런거 본적 있어?”
“없습니다.”
데이터베이스에도 물음표가 뜨는 것을 봐서는 한 번도 발견된 적이 없는 녀석 같았다. 녀석들은 노란색의 오라를 뿜어내며 준을 향해 돌격했다.
“흠.”
준은 풍운보를 이용해 가볍게 녀석들의 돌진을 피하고는 몸을 틀며 라이트세이버를 넓게 휘둘렀다.
스릉!
준의 검에 머리가 잘린 외도가 그자리에서 폭발했다.
콰앙!
“큭.”
폭발의 충격에 카심이 몇 미터나 튕겨나갔다. 다행히 계단아래로 떨어지지는 않았지만 자칫 잘못하면 손도 쓰지 못하고 추락할 뻔 했다. 준도 황급히 실드를 일으켜 막았지만 제법 충격을 받은 상태였다.
‘죽을 때 폭발하는 성질이 있는 모양이군. 너무 쉽게 당하길래 혹시나 했더니.’
그나마 미리 대비하고 있었기에 다행이었다. 이제 남은 것은 아홉마리. 녀석들이 폭발형 이라는 것을 알았으니 가능한한 원거리에서 상대를 할 생각이었다. 방어력은 그다지 높지 않은 것 같으니 니들건만으로도 충분히 상대할 수 있었다. 그때 카심이 입을 열었다.
“여덟, 아홉, 열... 뭔가 숫자가 이상한데요?”
“응? 무슨 소리야?”
“방금 하나 죽였으니까 열마리가 아니라 아홉마리여야 되는데...”
그의 말에 준이 황급히 녀석들의 숫자를 헤아렸다. 카심의 말대로 녀석들의 수는 모두 10마리였다. 어느새 죽었던 녀석 하나가 다시 부활한 것이다.
“이런... 이 놈의 지구라트는 죽었다가 살아나는 게 유행인가.”
준은 미간을 찌푸렸다. 죽을때 폭발하는 것만해도 골치아픈데, 죽여도 다시 살아난다니. 그런 녀석을 어떻게 상대하라는 것인지 답답해졌다.
게다가 거미들과 달리 저녀석들은 따로 본체가 있어보이지 않았다. 그러니까 부활특성 자체가 녀석들이 내재하고 있는 능력이라는 뜻이다.
히이이이힝!
도합 열마리의 말이 거대한 지구라트의 심장을 발아래에 두고서 이리저리 어지럽게 날아다녔다. 녀석들의 공격은 단순했다. 그저 머리를 숙이고 달려드는 것이다. 맞을 수도 없고, 그렇다고 피하면 벽에 부딪히며 폭발한다. 그걸 검으로 베어버려도 폭발한다. 그러다 보니 준은 어쩔 수 없이 실드를 펼쳐 녀석들의 돌격을 저지해야 했지만, 녀석들의 돌진이 워낙 강력해 실드가 팍팍 까여나갔다.
“끙. 진짜 골치아픈 놈들이네. 그다지 강한 것 같지는 않은데.”
죽어도 다시 살아난다는 게 문제였다. 방법은 하나밖에 없었다.
“달려.”
“네?”
“달리라고. 여기서 있다가는 길이 먼저 무너지고 말거야.”
“넵!”
그렇지 않아도 ‘폭발마’들이 여기저기 부딪히며 만든 폭발의 흔적때문에 벽이 심각하게 훼손되었다. 그것뿐이라면 괜찮겠지만 두 사람이 밟고 있는 다리에도 들이받는다는 게 문제였다. 벌써 발밑의 길은 금이 가기 시작했고, 몇 번만 더 녀석들이 그곳에 들이받게 되면 다리가 무너지는 것은 기정사실이었다.
관성제어가 있긴 하지만, 죽지도 않는 녀석들을 상대하느라 마나를 소모할 생각은 없었다.
타탓!
준은 풍운보를 이용해 빠르게 내달렸다. 카심도 별다른 경신술은 없었지만 단련된 하체를 이용해 거의 준의 속도에 맞추어 달렸다. 오로지 힘으로 내달리는 것이라 체력의 소모가 심하겠지만 지금은 그런 사정을 봐줄 때가 아니었다.
콰앙! 쾅!
히히히힝!
폭발하고, 그 폭발속에서 부활하는 폭발마의 울음소리. 두려울 법도 하지만, 카심역시 노련한 전사였기 때문인지 폭발속에서도 한치의 흔들림없이 준을 따라붙고 있었다. 그렇게 한참을 내려가자, 어둠속에 파묻혀 있던 거대한 심장이 준의 눈에 들어왔다.
“저거로군.”
“하아. 하아. 하아.”
카심은 숨을 몰아쉬며 바닥에 주저앉았다. 거의 몇킬로미터에 달하는 거리를 전력으로, 그것도 폭발의 위험속에서 내달렸으니 아무리 상급헌터라고 할지라도 힘든 것은 어쩔 수 없었다.
“그나저나 놈들이 더이상 접근하지는 않는 것 같군.”
준이 고개를 들어 허공을 바라보자, 20여미터 위쯤에서 더이상 내려오지 못하는 폭발마들의 모습을 볼 수 있었다. 녀석들도 이 아래에 있는 것이 무엇인지 잘 아는 모양이었다. 자칫 잘못해서 자신들이 심장에 들이받게 되면 지구라트에 엄청난 타격을 줄 수도 있었다.
그렇다고 내버려 두면 준이 무슨 짓을 할지 모른다. 그때문인지 녀석들은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한채 허공을 빙빙 돌면서 크게 울부짖기만 했다.
“얼른 여기도 처리하자. 아무래도 저녀석들이 다른 외도를 부르는 것 같아.”
“큭. 대체 저 놈들은 뭡니까? 어떻게 죽어도 다시 살아나는 거죠?”
“이 안에서만 가능할거야. 엑조틱 에너지가 과밀화 된 상태에서는 얼마든지 재생이 가능하니까. 그 과정을 최대한 단축 시킨 거겠지.”
준에게 귀속된 던전에서도 죽은 뒤 하루만 지나면 다시 부활한다. 하물며 이정도 규모의 지구라트라면 얼마든지 더 한 짓도 할 수 있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나중에 여기서 있었던 일을 책으로 써도 될 것 같네요.”
“책보다는 다른 걸로해. 요즘 누가 책을 본다고.”
“하긴 그러네요. 녹화라도 좀 떠둘걸 그랬네요.”
“그건 걱정마.”
준은 손가락을 들어 자신의 머리위를 가리켰다. 그곳에는 작은 액션캠 하나가 허공에 떠 있었다. 워낙 작은 크기가 유심히 살펴보지 않으면 모를 정도였지만, 그래봬도 200시간 연속 녹화가 가능한 고성능 카메라였다. 준이 지구라트에 들어서면서 부터 염동력으로 띄워둔 물건이었다. 니들건과 마찬가지로 통제는 시스템이 하기 때문에 딱히 준이 신경쓸 것은 없었다.
“이미 찍고 계셨군요. 그럼 나중에 편집해서 방송을 할 생각이십니까? 팔면 제법 돈이 나오겠는데요?”
“팔긴 할텐데, 플랫폼은 제한될거야. 델타폰이라고 알아?”
“잘 모르겠습니다.”
“어쨌든 그런게 있어. 나중에 너도 알게 될거야.”
준은 그렇게 말을 하며 거대한 심장이 있는 곳으로 천천히 다가갔다. 마치 고무찰흙을 대충 뭉쳐놓은 듯한 모양의 심장은 약 10미터 정도 크기였다. 거기에서 연결 된 혈관들이 사방으로 뻗어 있었다. 어떤 것은 벽을 뚫고 지나가기도 했고, 어떤 것은 통로벽을 따라서 붙어 있는 것도 있었다.
“끙. 너무 큰데.”
“그렇다고 못 부술건 없지 않습니까.”
“심장이잖아. 저걸 터뜨렸다가 안에서 뭐가나올지 모르니까 그렇지.”
안에서 뿜어나올 혈액에 독이 있을지도 모를일이다. 실드의 힘을 믿었지만, 혹시라도 모른다는 생각에 준은 멀찌감치 떨어졌다. 멀리서 전차를 꺼내어 포격을 할 생각이었던 것이다.
히히히힝!
콰앙!
“젠장.”
준은 황급히 물러서며 폭발마의 폭발 반경에서 빠져나왔다. 미처 움직임이 늦었던 카심이 바닥을 뒹굴며 피를 토했다.
“큭. 젠장. 완전 방심하고 있었네요.”
“나도 전혀 생각안하고 있었어. 거리를 너무 벌리면 공격해올 생각인 듯 한데.”
머리위에는 호시탐탐 준을 노리는 말들이 있었다. 하지만 거리가 너무 가까운 것은 좋지 않다. 준은 하는 수 없이 저 녀석들을 먼저 해치우기로 했다.
“어떻게 하시려는 겁니까?”
“아아. 방법이 없는 건 아니야. 넌 여기서 대기하고 있어.”
준은 그렇게 말하고는 천천히 거리를 벌렸다. 심장과 약 30미터 거리까지 멀어졌을때, 폭발마들이 준을 향해 빠른 속도로 쇄도했다.
“이정도인가.”
콰앙! 쾅! 쾅!
한 번에 세 마리의 말들이 땅에 내려꽂히며 폭발했다. 미리 대비하고 있던 준은 폭발 반경에서 약간 떨어진 곳에서 옷을 털며 몸을 일으켰다. 세마리가 한꺼번에 터지면서 준이 예상한 것보다 훨씬 더 강력한 충격파가 그를 덮친 것이다.
하지만 준의 표정에는 미소가 걸려있었다.
“대충 알겠군.”
준은 그렇게 말하며 다시 천천히 심장과의 거리를 벌렸다. 그리고 그 거리가 30미터 즈음 되는 순간, 다시한번 폭발마들이 준을 향해 내리꽂혔다. 준은 기다렸다는 듯이 녀석들을 향해 두팔을 벌리며 큰소리로 외쳤다.
“던전개방!”
우웅!
그러자 순식간에 준의 앞에서 공간이 일렁이더니 던전의 입구가 생성되었다. 엄청난 속도로 쇄도하던 폭발마들이 순간적으로 방향을 틀었다. 약간의 방향 전환이었지만, 던전의 입구에서 멀어지기에는 충분한 거리였다.
준이 기껏 공들여 생각한 작전이 물거품이 된다 싶은 순간. 던전의 안에서 무언가 번들거리는 것이 툭 튀어나왔다.
히이이이힝!
쩌어업!
황급히 방향을 틀었던 폭발마 중 하나가 그 번들거리고 커다란 젤리에게 덥썩 잡아먹혔다. 그러자 녀석의 형체가 슬라임의 몸속에서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헉? 그게 뭡니까?”
“내가 그런걸 일일이 설명해야하냐?”
“그건 아닙니다만...”
“나중에 델타스피릿에 들어오면 알려주지.”
“그, 그건 좀...”
아무리 카심이라고 해도 델타스피릿에 들어간다는 것은 주저되는 일이다. 일단 자신이 나고 자란 곳이 란도넬 행성이기도 했고, 평생을 새크리파이스의 질서하에서 살았다. 이제와서 다른 규칙을 가진 기업분위기 아래에서 일할 수 있을지 자신도 없었다.
‘어, 어쩌지. 말하는 걸 들어보니까. 날 상당히 마음에 들어하고 있는 것 같은데...’
반은 맞고 반은 틀린 생각이었다. 준이 카심을 마음에 들어하는 것은 사실이었다. 첫인상은 안좋았지만, 어쨌거나 자신에게 헌터들의 습격을 알려주기도 했고, 힘의 격차를 인정한 시점에서는 무례한 짓도 하지 않았다.
하지만 그렇다고 그렇게 까지 마음에 들어하는 것은 아니었다. 녀석은 자신보다 약한 자에 대해서 대체로 무시하는 태도를 보인다. 그런 성격이라면 어느 조직에서든 분란을 일으키기 딱 좋았다. 그가 솔로잉을 하는 헌터인 이유도 그 성격적인 결함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델타스피릿은 막스의 ‘법’에 의해서 강하게 규제되고 있는 곳이다. 그게 싫어 나갈 수는 있어도, 회사안에서 쓸데없이 분란을 일으키기는 어려울 것이다.
무엇보다 상급헌터는 어느 기업이라고 해도 반드시 필요한 인재였다. 성격이 지랄맞기로는 카렌도 만만치 않으니 카심을 통제할 수 있을 거라는 생각도 들었다.
그렇게 혼자서 고심에 고심을 하고 있는 카심을 내버려 두고서 준은 자신의 곁에서 꿀렁거리며 돌아다니고 있는 ‘슬라임’을 살펴보았다. 녀석이 한번에 집어 삼킬 수 있는 외도의 양은 한정되어 있다. 아무리 웜홀 자체가 외도화 된 녀석이라고 해도, 어쨌건 간에 외도는 외도. 일정 이상의 엑조틱 에너지를 강제로 집어삼키게 되면 배탈이 나게된다. 자칫 잘못하면 녀석의 몸이 갈기갈기 찢어지며 폭발할지도 모를 일이었다.
‘노란색 외도라면 대여섯마리까지는 괜찮아.’
그리고 그거면 충분했다. 녀석들을 전부 집어 삼킬 필요는 없다. 중요한 것은, 이쪽에서 얼마든지 반격할 방법이 있다는 사실. 그거면 충분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