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급속 성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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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로는 대악당이라고 했지만 준이라고 사람들 사이의 평판이 나쁘게 도는 것이 반가울리 없다. 하지만 유명해진다는 것은 좋든 싫든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린다는 것이다. 델타포럼에서 조차도 준에 대한 이야기를 하지 못해 입이 근질거리는 인간들이 널려 있었다. 그러니, 평판이 나빠지는 것 정도에 일일이 신경 쓰지 않는 것이 답이었다.
‘일단 이전보다 홍보에 좀 더 신경을 써야겠군.’
그런 쪽 일은 막스에게 맡기면 잘 해주니 딱히 준이 따로 더 신경 쓸 필요는 없었다. 좋은 쪽 명성이든 나쁜쪽 명성이든 준은 자신이 한 일을 여기저기에 알릴 생각이었다. 그 첫 번째는 이 지구라트의 파괴였고, 두 번째는 마약재배지에 대한 폭격이었다.
“이제 곧 도착이다.”
준은 미니맵에 반짝 거리는 장소를 확인하고는 입을 열었다. 통로를 나아가자 넓은 방이 그들을 맞이했다.
“으으...”
카심이 낮은 소리로 신음을 흘렸다.
‘산란장이로군.’
준은 방 안의 모습을 보고 그렇게 확신했다. 안쪽은 수백 개의 알처럼 보이는 것들이 천장에서 늘어진 나뭇가지같은 것에 붙어 매달려 있었다. 각각의 크기는 사람만했고 그 안쪽에는 희미하게 외도의 유충이 보였다. 가만히 있다가 준이 접근하자 부르르 떨면서 황급히 움직였다.
“움직이네요?”
카심이 신기하다는 듯 알을 쿡, 찔렀다. 그러자 그 안에 있던 유충이 더욱 격렬하게 몸을 움직였다. 그래봐야 어디 나갈 구멍도 없다보니 사람크기만한 알 안에서 빠져나가지 못하고 이리저리 부딪히며 움직였다.
“일단 여기를 정리하자.”
알들의 일부는 가죽부대가 찢어지듯 찢어져서 늘어져 있었다. 아마도 이미 부화한 녀석들인 것 같았다. 그리고 유충이 들어있는 알 들 중에서도 막 부화하려고 하는 놈들도 있었다. 그냥 내버려 두었다가는 괜히 쓸데없는 힘을 뺄 수도 있었다.
식스팩을 꺼내든 준은 가차없이 그것들을 불태우기 시작했다.
키이이이--
알에서 터져나온 정체모를 액체가 사방으로 줄줄 흘러내렸다. 검고, 끈적거리는데다가 이상한 벌레같은 것들이 뒤섞여 있는 그 액체는 상상할 수 있는 모든 더러운 것들을 잔뜩 모아서 뒤섞은 것 같은 비주얼이었다.
그 진득한 액체속에서 거대한 유충들이 바둥거리며 기이한 소리를 내질렀다. 아마도 본능적인 외침이겠지만, 지금은 녀석들을 구해 줄 외도가 근처에 없다. 이미 준이 모두 처리한 다음이기 때문이었다.
화르르륵!
“잘 타는구만.”
시커먼 연기가 방안을 가득 채웠다. 두 사람은 준이 펼친 실드 안에서 열기와 연기로부터 차단되어져 있는 상태였다.
산란장의 규모가 규모이다 보니 알들이 전부 불타는 데에는 상당한 시간이 걸렸다. 알 속에 있던 검은 액체는 딱딱하게 굳어서 아스팔트처럼 눌러붙었고, 유충들은 뼈만 남기고 모두 타서 사라졌다.
준은 대기 마법을 사용해 방안의 유독한 공기를 전부 밀어내었다. 연기가 어느정도 빠지자 준은 실드를 거두고는 천천히 방안을 살폈다. 퀘스트 목록은 아직 갱신전이었고, 맵에는 여전히 밝은 빛이 깜빡이고 있었다.
“음. 이쪽인가...?”
준은 맵에서 보이는 빛을 따라 천천하 방을 가로질렀다. 산란장 가운데 알들이 연결되어 있던 중심 기둥이 있었다. 그곳에서부터 나뭇가지처럼 뻗어나온 줄기들 사이에서 알들이 달려 있었던 것이다.
“후. 이건가.”
“이게 뭡니까?”
“나도 몰라. 깨보면 뭔가 나오겠지.”
준은 그렇게 말하고는 라이트세이버를 들어 거대한 기둥을 절반으로 갈랐다.
쩌억!
마치 나무가 잘려나가듯, 기둥이 수직으로 갈라졌다. 그리고 그 안에서 어두운 빛을 발하는 검은색의 씨앗이 있었다. 그것은 주변의 빛을 모두 흡수하는 것처럼 보였는데, 얼핏보면 마치 바닥에 구멍이 나있는 것으로 착각할 정도로 짙은 검은 색이었다. 아무리 라이트세이버를 가져다 대어도 빛을 반사하기는커녕 주변의 색에 비교되어 더욱 검게 보일 뿐이었다.
“이게 뭔가요?”
“글쎄.”
준은 손톱만한 크기의 작은 검정색 씨앗을 집어들었다. 그러자 기다렸다는 듯이 시스템 메시지가 울려퍼졌다.
-성장의 조각을 획득하셨습니다. 퀘스트 목록이 갱신됩니다.
‘성장의 조각?’
준은 얼른 퀘스트목록을 열었다. 그러자 메인 퀘스트의 목표중 하나가 달성된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지구라트의 심장] 퀘스트가 생성되었습니다.
무리어미로 부터 생성된 이 지구라트는 기존의 것에 비해 상당히 빠르게 성장한 개체입니다. 급속성장의 비밀을 찾아 지구라트의 내부를 탐색하십시오. 보조퀘스트를 완료하면 추가 경험치가 주어집니다.
목표
지구라트의 심장 0/1
지구라트의 뇌 0/1
지구라트의 자궁 1/1
보조목표
외도처치 200/300
‘각 방에서 이 조각을 얻으면 된다는 이야기로군. 이게 뭔지는 모르겠지만 일단 퀘템이니 잘 챙겨둬야겠어.’
성장의 조각이라는 이름으로만 보아선 이 지구라트의 비정상적인 크기와 성장속도에 연관이 있는 듯 했다. 세개의 조각을 하나로 합치면 무언가 효과가 있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200층 짜리 새크리파이스 본사건물은 전 사무실에서 불이 켜진채 직원들이 정신없이 움직이고 있었다. 전국에서 몰려오는 피해보고와, 그에 대한 대책문제 때문에 벌써 며칠동안 철야를 하고 있는 중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피해건을 제대로 컨트롤 한다는 것은 불가능했다.
궁여지책으로 헌터들을 모아 각 지역으로 배치하기는 했지만 언발에 오줌누기 식의 땜질 처방일 뿐이었다. 근본적으로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 이상, 이 혼란은 가라앉을 수가 없을 것이다.
새크리파이스의 재난대책본부장 오카모토는 퀭한 얼굴로 보고를 받고 있었다. 그렇지 않아도 최근 함대를 재건하기 위해서 막대한 금액의 예산이 빠져나간터러 재난청에는 배정된 예산이 거의 없었다. 그런 상황에서 갑자기 맞닥뜨린 무리어미 드랍으로 인해 피해는 걷잡을 수 없이 불어나고 있었고, 위에서는 어떻게든 한정된 예산으로 해결하라는 압박을 넣고 있는 상황이었다.
본부장이라고는 하지만, 평소에는 그다지 할일도 없고 예산배정의 우선순위도 낮은 곳이라 거의 주목받지 못하던 부서였고 그만큼 그는 별다른 권한도 없었다.
그런 상황에서 갑자기 책임있는 일을 떠맡게 되니 그로서는 이 자리를 피해서 어디론가 도망이라도 치고 싶은 상황이었다.
“빌어먹을! 돈이라도 좀 제대로 주고 일을 시키란 말이야! 헌터들을 끌어모으는 것도 다 돈이라고. 쓸만한 상급헌터들이 겨우 1억에 목숨을 거는 일을 떠맡을 것 같아?”
쾅!
답답한 마음에 회의실 책상을 내리친 그는 깊은 한숨을 쉬었다. 뒤이어 계속해서 올라오는 보고들은 암울한 것들 뿐이었다. 예산부족으로 인해 중급헌터들을 대량으로 모집했다. 하지만 그들은 외도들이 발호하는 일명 ‘몬스터 웨이브’에 일방적으로 쓸려나가기만 할 뿐이었다. 그렇게 막아내지 못한 지역은 헌터들과 함께 곧장 무너져 내렸다.
벌써 지금까지 사망한 사람들만 해도 10만명이 넘는 것으로 추산되었다. 2차 외도의 습격 가장 극심한 인명피해를 봤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대체 그 괴물들은 뭐지? 정말 서드 인베이젼이라도 일어나려고 하는 건가?’
1,2차 외도의 습격 시 인류가 입었던 피해는 공식적으로 추산하길 10억. 당시 인류의 인구가 지금에 비해 훨씬 적었다는 것을 생각해보면 같은 규모의 피해가 발생할 시 최소한 수십억 이상의 인구가 절멸할 정도의 피해가 일어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니... 너무 성급해. 아직 그정도의 문제는 아니야. 무리어미는 이미 한차례 막아낸 적도 있고.’
무리어미라는 명칭을 처음 사용한 것은 다름아닌 델타스피릿에서였다. 최초에는 ‘대규모수송형외도’정도로 불렀던 것이 델타스피릿에서 정식으로 무리어미라는 용어를 사용하면서 고착된 것이다.
“응?”
보고서를 뒤적거리던 그는 문득 눈에 띄는 서류를 발견했다. 몬스터 웨이브가 성공적으로 해결되었다는 보고서였다.
서류를 뒤지는 그의 손이 바빠졌다. 산더미처럼 쌓인 보고서들 중에서, 몬스터웨이브를 막는데 성공한 지역의 서류를 분류했다. 그렇게 분류를 하다보니 특이한 점이 눈에 띄었다. 외도들을 상대한 중급헌터들의 대부분이 사망했던 것이다.
‘뭔가 이상한데.’
외도들을 처리했다는 것은 물론 좋은 일이다. 때문에 일부러 그 자료들을 골라서 찾아낸 것이다. 몬스터 웨이브를 막아낼 방법을 찾기 위해서였다. 하지만 그 자리에 외도를 막으러 갔던 헌터들은 대부분 사망했다. 물론 어쩌다가 외도를 잡으면서 전멸하는 경우가 있을 수는 있다. 하지만 외도가 완전히 사라진 지역들 중의 대부분이 그런 상태라면 뭔가 이상하다고 밖에 생각할 수밖에 없었다.
‘뭐지... 이건 좀 더 알아봐야겠군.’
팟.
그는 회의실 책상에 지도를 띄웠다. 그리고 몬스터 웨이브가 처리된 지역에 표시를 했다. 그러자, 뚜렷한 형태로 일직선의 선이 그어졌다.
“이건...”
붉은선으로 그어진 선. 그것은 지구라트가 있는 곳까지 연결되어 있었다.
준이 도착한 두번째 목표는 지구라트의 심장지역이었다. 끝없이 내려가는 통로가 어느순간 넓어지더니, 강렬한 지진같은 떨림이 느껴지기 시작했다. 동일 간격으로 빠르게 맥동하는 그것은 틀림없는 심장의 박동소리였다.
“슬슬 도착해가는 것 같은데.”
“땅이 울릴 정도라니. 엄청난데요.”
준도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게 계속해서 내려가던 준은 통로의 끝부분에 도착했다. 지도를 보아도 거의 도착했다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통로의 끝에서 은은하게 빛이 흘러나오고 있었다. 다른 곳과 달리 비교적 좁은 통로였기 때문에 내내 답답했던 카심이 조금 빠른 걸음으로 나아갔다.
“제가 먼저 가서 뭐가 있나 확인하겠습니다.”
그렇게 말하고 앞으로 나선 카심이 통로 끝에서 돌연 모습을 감추었다.
“응?”
준이 황급히 뛰어서 통로의 끝에 가보니 그곳은 절벽지대였다. 그리고 카심은 그 절벽아래 중간 지점에서 벽에 검을 박은 채 대롱대롱 매달려 있었다.
“하하... 약간 급했나 봅니다.”
카심은 어색하게 웃으며 그렇게 말하더니 그대로 반동을 주어 벽을 박차고는 절벽위로 올라섰다. 어디서도 연습해 본적이 없는 동작일텐데도 그의 움직임은 깔끔했다.
“아무래도 저길로 내려가야 할 것 같습니다.”
카심이 가리킨 곳에는 난간도 없는 좁은 계단이 있었다. 폭이 약 1미터 정도밖에 되지 않는 나선형의 계단이 아래로 죽 이어져 있었고, 난간도 없어 약간만 방심하면 아래로 굴러떨어질 것 처럼 위태해 보이는 길이었다.
쿵! 쿵! 쿵! 쿵!
그리고 한참 아래에서, 맥동하는 심장소리가 들려왔다. 준이 천리안을 일으켜 시야를 넓혔지만 아래쪽은 장막이라도 드리운 듯 제대로 보이지 않았다.
‘일단 가는 수밖에는 없겠군.’
순간 관성제어를 이용해 곧바로 내려갈까 했지만, 뭐가 있을지도 모르는 상황에서 무턱대고 뛰어는 것은 좋은 생각이 아닌 것 같아 카심과 함께 천천히 계단을 타고 내려갔다.
“지하에 이런 넓은 공동이 있을 거라고는 생각지 못했습니다.”
“나도 그래. 다른 곳은 이렇게 까지 크지 않았는데 말이지.”
심장이 존재하는 공동은 반경 100미터 크기의 시커먼 구멍이었다. 그 주위를 따라 나선형의 계단이 있었고 두 사람은 그 길을 따라 천천히 내려가고 있었다.
히히히힝!
그때 어디선가 말 울음소리가 들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