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프로젝트 델타-376화 (376/540)

0376 ----------------------------------------------

급속 성장

*

*

*

“헌터들이 널 별로 마음에 안들어 하는 것 같아.”

“그정도는 나도 알고 있어.”

“그정도가 아니야.”

카심의 말에 준이 눈을 가늘게 떴다. 그가 말하고자 하는 것이 무슨 뜻인지 알기 때문이었다.

“그러지 않길 바랬는데. 내가 그렇게 우습게 보이나보지?”

“난 아니라고. 오해하지마.”

“아니니까 말해주려고 온 거겠지. 운이 좋다고 생각해.”

“운이 좋다니?”

“나에 대한 소문 못 들었어?”

“그야... 피도 눈물도 없는 놈이라는 이야기 정도는... 포로들은 노예로 팔아버리고, 부상자들은 전부 우주공간으로 내보내서 다 죽인다던데.”

“끙. 그 정도까지는 아닌데... 어쨌든 마냥 틀린 소리는 아니니야.”

“정말이야? 노예로 팔아버린다는 게 진짜였어?”

“상급헌터 정도 되면 노예로 팔긴 좀 그렇고, 결정체 생산기지에 보내거든. 말을 들을 녀석들도 아니니까.”

실제로 노예로 판 이들은 대부분 함선에서 사로잡힌 포로들이었다. 새크리파이스에서 포로협상을 하려들지 않기 때문에 내린 결정이었다. 던전에 넣어두었다가 헌터로 만들어서 행성 엘라에 보내는 방법도 있었지만 단기간에 너무 많은 포로들이 잡히다보니 어쩔 수 없는 결정이었다.

“그나저나 일단 저 어미벌레부터 처리해야 할텐데.”

“내가 도울게.”

“그럼 좀 부탁하지. 로봇들과 함께 거미들만 좀 정리해줘.”

준은 카심에게 어미벌레의 공격패턴과 작은거미들의 거미줄 공격 같은 특수기술들을 알려주었다. 상급헌터라고 해도 순간적으로 거미줄을 뒤집어 쓰게 되면 쉽사리 벗어나지는 못할 것이다.

기기기기-

대충 녀석을 상대할 방법을 알려주고 나자 거미들이 다시 몰려오기 시작했다. 그새 전력을 회복하고 외도생산을 시작한 모양이었다.

준은 카심과 함께 다시 통로 안쪽으로 들어섰다. 검게 밀려오는 거미의 파도속에 거대한 어미벌레가 처음처럼 타르찌꺼기 같은 등껍질 안쪽의 용광로에서 거미를 뿜어내고 있었다.

“뭐 저런 녀석이 다 있어?”

“최소 파란색 외도일거야. 넌 여기서 거미들만 상대하고 있어. 내가 녀석에게 달라붙으면 공격이 나에게 집중될테니까, 최대한 놈들의 숫자를 줄여주지 않으면 곤란해지거든.”

“혼자서?”

“아니. 이 녀석들과 같이.”

준은 그렇게 말하며 제로시리즈들을 꺼내었다. 부식된 녀석들을 제외하고 총 3기의 제로들이 카심의 앞에 서서 전투준비를 시작했다.

“로봇?”

“이녀석들하고 함께 최대한 거미들을 처리해.”

준은 그렇게 말하고는 거미들의 한가운데를 향해 라이트 세이버를 휘둘렀다.

30여분간의 사투 끝에 어미벌레를 해치우고 난 준은 녀석의 몸속에서 파란색 결정체를 꺼내들었다. 영롱한 빛을 뿜어내는 푸른빛의 결정체를 준은 별다른 감흥없이 살펴보았다.

어렵게 잡은 만큼 10만이 넘는 경험치를 품고 있는 물건이지만, 가만히 앉아 있어도 하루에 몇십만 씩 경험치를 벌어들이는 준에게는 그다지 큰 감흥이 느껴지지는 않았다.

“와. 정말 파란색 결정체네? 나 잠깐만 봐도 될까?”

“처음 봐?”

“실제로 보는 건 처음이지. 파란색 외도를 구경하는 것도 쉬운 건 아니라고.”

“상급헌터라면서. 파란색 외도가 아주 없는 것도 아니고, 일단 한번 나타나면 소집되지 않아?”

“나는 상급에 든지 얼마 안되서 말이야. 게다가 이 근방에서는 구경하기 힘들잖아. 어느정도 개발된 행성에서 파란색 등급의 외도는 잘 나타나지 않으니까.”

“하긴 그것도 그렇지.”

지금까지 웜홀을 통해 자연발생 된 외도는 노란색 외도정도가 한계로 알려져 있었다. 종종 나타나는 초록색이나 파란색 외도들은 자기들끼리 잡아먹은 끝에 탄생된 진화형 외도인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어느정도 개발이 완료된, 즉, 외도가 많지 않은 행성에서는 그렇게 진화를 할만큼의 외도를 잡아먹기가 어려웠다.

준은 녀석에게 결정체를 넘겨주었다. 잠깐 구경만 하겠다는 것 까지 못하게 할 필요는 없었다. 그는 황홀한 얼굴로 결정체를 이리저리 쳐다보다가 준에게 다시 돌려주었다. 못내 아쉬운 얼굴이었다.

준이 입을 열었다.

“갖고 싶어?”

“아니라고 하면 거짓말이지. 하지만 어차피 환급해야 하는 물건이니까. 현금이상의 가치는 없다는 걸 알고 있어.”

“자, 가져.”

준은 결정체를 도로 카심에게 넘겨주었다.

“무슨 뜻이지?”

“놈들이 날 습격할지도 모른다는 사실을 알려줬잖아? 그것만으로도 그걸 받을 이유는 충분해. 어떻게 보면 넌 새크리파이스를 배신한 거니까.”

“거기까지 생각한 건 아닌데. 다만 난 무모한 짓을 말리고 싶었을 뿐이야. 널 이길 수 없다는 생각이 들었거든.”

“상급헌터 열다섯이면 한 번 붙어볼만하다고 생각할 법도 한데?”

“지구라트에 들어오는 것도 무서워 쩔쩔매던 녀석들이? 웃기지 말라고 해. 게다가 내가 보기엔 넌 애초부터 혼자서 들어올 생각인 것 같았어. 그렇다면 결과는 나오지. 열다섯 정도로는 널 이길 수 없어.”

“다른 녀석들 보다 낫네. 델타스피릿에서 일해볼 생각있어?”

“뭐?”

갑작스러운 준의 제안에 카심이 깜짝 놀라며 반문했다.

“놀랄 것 까지야. 애초에 녀석들과 뜻을 같이 하지 않은 시점에서, 더 이상 이곳에 있기는 힘들 것 같아 보이는데.”

“거기까지는 생각 안해봤는데.”

“그러면 그때가서 생각해봐. 나중에 도망쳐 오면 받아는 줄게.”

준은 그렇게 말하며 통로를 되짚어 가기 시작했다. 기분 같아서는 뒤에 남겨진 놈들을 전부 버리고 앞으로 가고 싶었지만, 그곳에 있을 골렘들을 회수해야했다.

“골렘들은 문제없군.”

인벤토리에 골렘들을 넣고나자, 롤렉스가 준을 향해 다가왔다. 거미들을 상대하느라 꽤나 지친 모습이었다. 온몸에 상처가 가득했고 처음에 비해 여유가 많이 사라진 모습이었다. 계속해서 밀려오는 거미들을 준 없이 상대하기가 쉽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나마도 준이 어미벌레와 전투를 하면서 더 이상 웨이브가 밀려오지 않았기에 그정도에서 그친 것이다.

“녀석을 해치운 겁니까?”

롤렉스가 입을 열었다. 그의 손에는 여전히 검이 들려있었지만 준은 별다른 내색을 않은 채 고개를 끄덕였다.

“몇명이 보이지 않는 것 같은데?”

“전투중에 도망쳤습니다.”

“꼴사납군.”

준의 말에 롤렉스가 동의한다는 듯 격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습니다. 상급헌터라는 녀석들이 겨우 이정도 외도무리에게 겁을 먹어서는...”

“아니. 그게 아니라.”

준은 그렇게 말하고 고개를 들었다. 10미터 가량 되는 통로 천장에 도망쳤다고 했던 헌터들이 붙어 있었다.

“작전이 너무 허술해서.”

“치잇! 공격해!”

롤렉스는 그렇게 말하며 준을 향해 검을 휘둘렀다. 그야말로 전광석화. 준을 자신의 간격안에 두고 있던 그의 검격은 준이 미리 대비하고 있어도 피할 수 없을 정도로 빨랐다. 그리고 준 역시 상급헌터와의 순수검술대결에서는 자신이 유리할 것이 없다는 사실을 카렌과의 대련을 통해 잘 알고 있었다.

팟.

준의 몸이 순간적으로 사라졌다.

“환상?”

미러이미지. 시전자의 모습과 똑같은 형상을 만들어 내는 마법으로, 자세히 보면 약간 티가 나는 편이지만 이렇게 어두운 곳에서는 상급헌터인 롤렉스 마저도 속여 넘길 수 있을 정도는 되었다. 수시로 펠로우쉽들의 기술을 체크하며 쓸만한 것을 찾던 준이 얼마전 발견하고 익혀둔 기술이었다.

롤렉스가 깜짝 놀라며 두리번거렸다. 준이 있을 만한 위치를 찾는 것이다.

“어디냐?”

“찾지 않아도 나갈거야.”

뚜벅. 뚜벅.

준은 통로 반대편의 어둠속에서 모습을 드러내었다. 결국 천장에 붙어 있던 이들은 기습할 기회를 놓치고는 모두 바닥에 내려섰다. 총 14명의 헌터들이 준을 향해 병장기를 쥐고는 당장이라도 달려들 자세를 취하고 있었다.

“서로 말이 많을 필요는 없겠지?”

“자신감이 대단하군! 네가 아무리 강하다고 한들 이 정도의 상급헌터들을 상대로 이길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는 거냐!”

롤렉스가 큰 소리로 외쳤다. 하지만 마음속 어딘가에서 불안감이 스멀스멀 피어올랐다. 저토록 자신감을 보이는 데에는 분명히 그럴만한 이유가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니. 허세일 뿐이다.’

그는 그렇게 자신을 다잡았다.

‘음. 어떻게 요리할까...’

라이트세이버를 들고 녀석들의 한복판에 뛰어드는 것은 자살행위다. 상급헌터의 힘을 우습게 보면 안된다. 무기술은 준과 비교할 수도 없이 뛰어나고, 그것들에 마나를 싣는 기술도 압도적으로 훌륭하다.

스탯과 마나량, 그리고 아이템에 의존하는 준 보다는 기술적으로 훨씬 더 높은 경지에 있는 것이다. 그런 녀석들을 상대로 외도를 상대하듯 쓸어버릴 수는 없었다. 하지만 준은 자신이 지지않을 것이라는 사실을 알았다.

아니, 반대로 말해 저들이 자신을 이길 방법이 없었다.

쐐액!

티잉!

헌터들 중 누군가 던진 투창이 준의 앞에서 튕겨나갔다. 마나를 잔뜩 머금은 공격이었지만, 준이 전개한 실드를 꿰뚫을 정도는 아니었던 것이다. 물론 그만큼 준의 마나도 소모되었다.

‘일격에 100이나 빠지는 구나. 역시 상급헌터라 그런지 위력이 상당하군.’

겨우 마나 100이라고 할지는 모르겠지만, 준이 사용하는 실드의 효율은 상당히 뛰어난 편이다. 심지어 함대전을 할때에 근거리 폭발로부터 알바트로스를 지키는 방식으로도 사용할 정도니 그 방어력에 대해서는 굳이 입아프게 이야기 할 것도 없었다.

이런 공격을 100번 받으면 실드가 뚫린다. 1대1이라면 그럴 일이 없겠지만, 지금은 다수를 상대해야했으니 그럴 가능성이 아주 없다고 생각할 수 없었다.

준은 결정을 내렸다. 굳이 어렵게 싸울 필요는 없었다.

촤라라락!

인벤토리에서 니들건이 쏟아져 나왔다. 그것만으로도 소수대 다수의 싸움이 다수대 다수의 싸움으로 만들 수 있었다.

“흥. 그 정도로는 우리를 막을 수 없다.”

“그래? 어디 한번 해봐.”

준이 니들건의 방아쇠를 당겼다.

쏴아아아!

상급헌터는 상급헌터였다. 녀석들은 쏟아지는 니들건의 탄자들을 튕겨내며 준을 향해 쇄도했다. 그 기세가 어찌나 대단했던지 이런 상황을 예상했던 준도 깜짝 놀랄 정도였다.

“하앗!”

투웅!

가장먼저 도착한 롤렉스가 준을 향해 검을 휘둘렀다. 실드에 막혀 튕겨나갔지만, 그 일격에 소모된 마나가 200에 가까웠다. 중급헌터들이 하루종일 두들겨야 낼 수 있는 위력을 순간적으로 만들어 내는 것을 보며 준은 새삼 그들의 힘이 얼마나 대단한 것인지 확인할 수 있었다.

“좋은 노예가 생기겠군.”

“큭. 그런 말은 우리를 쓰러뜨리고 나서 이야기 해라.”

“아아. 그럴 생각이야.”

준은 그렇게 말하고는 인벤토리에서 시커먼 막대기 같은 것을 꺼내들었다. 그 물건을 보며 롤렉스가 깜짝 놀라며 외쳤다.

“그, 그건 총이잖냐?”

“그런데?”

준이 꺼내 든 것은 총기제작 전문 업체인 콜레트럴 사의 대표작 ASPA-11이었다. 알카트뢰즈 반란 사건 때 사용한 물건으로 초당 10발을 발사 할 수 있는 대인살상병기였다.

“헌터는 총기를 사용하면...”

“알아. 그런데 뭐?”

준이 안전장치를 풀고 방아쇠에 손을 올리곤 대수롭지 않은 표정으로 방아쇠를 당겼다.

타타탕!

롤렉스는 삼점사로 갈긴 총탄을 바닥을 구르며 간신히 피해내었다. 준은 약간 감탄하듯 입을 열었다.

“대단한데? 총알을 피하다니. 아무리 상급헌터라지만 이건 솔직히 칭찬해 줄 수밖에 없겠어.”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