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373 ----------------------------------------------
급속 성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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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헉. 헉. 헉.”
카심은 온몸을 피로 물들인 채 자리에 주저앉아 숨을 몰아쉬었다. 정확히 판테라레오 31마리를 잡는데 걸린 시간은 모두 합해 삼십분. 노란색 외도임을 감안하면 엄청나게 빠른 시간에 잡은 것이다. 하지만 그 사이 그는 몇번이고 죽을 고비를 넘겨야 했다. 어둠속에서 몸을 드러낸 판테라레오들은 날렵했고, 조직적이었으며, 강력했다. 하나하나를 따로 만난다고 하더라도 쉽게 상대할 수 없는 녀석들인데 무리를 지어 있는 놈들을 만났으니 사실상 승산은 없는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이쪽에는 준 알스버그가 있었다. 단신으로 새크리파이스의 함대를 무찌른 그라면 무언가 해줄 수 있지 않을까 생각했고, 그는 그 기대를 배신하지 않았다.
처음은 골렘 네마리의 등장이었다. 그들은 몸을 사리지 않고 외도무리속으로 뛰어들었다. 인간이라면 도저 할 수 없는 행동이었다. 몸을 돌보지 않는 그들의 투기에 헌터들도 저마다 무기를 빼어들고는 전투에 돌입했다.
가장 앞에서 골렘들이 탱커를 하고 있으니 헌터들에게 가해지는 압박이 한결 줄어들었다. 그것만으로도 싸울 만 하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아직 끝난 것이 아니었다.
쏴아아아!
‘소나기?’
카심은 지구라트의 한가운데에서 갑작스럽게 엉뚱한 생각을 떠올렸다. 갑자기 머리 뒤에서 시원한 바람과 함께 엄청난 기세의 빗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한 것이다. 그리고 그 것의 정체가 엄청난 수의 대못이라는 것을 안 것은 바로 다음 순간이었다.
카심은 깜작 놀라며 그것을 발사하고 있는 것들의 정체를 확인했다. 허공에 고정되어 맹렬히 마나를 실은 못을 발사하고 있는 백여개의 니들건을 본 그는 자신의 눈을 의심했다.
“뭘 멍청하게 쳐다보고 있어! 나 혼자서 저것들을 전부 상대하라는 말이야!”
준이 버럭 소리를 지르자 카심이 번뜩 고개를 돌려 적 외도의 움직임을 확인했다. 골렘의 선전과 니들건에서 쏟아지는 대못세례에도 불구하고 놈들은 실드로 버텨가며 헌터들을 향해 달려들고 있었다.
그들 중 대부분은 골렘형제들이 어떻게든 어그로를 끌어 자신을 향해 고개를 돌리기 만들었지만 놈들의 수가 많았고, 그 중 십여마리가 골렘의 공격권에서 벗어나 헌터들에게로 달려들었다. 카심도 자신을 향해 발톱을 휘둘러오는 판테라레오를 보며 검을 사선으로 내리그었다.
카아앙!
보통이라면 검과 함께 인간의 육체도 갈기갈기 찢겨져 나갈 정도의 강력한 휘둘러치기 였지만, 카심 역시 초인의 범주에 든 인간. 그의 검은 푸르스름한 마나를 머금고는 판테라레오의 발톱에 오히려 상처를 내었다.
“아주 맹탕은 아니로군.”
준의 목소리가 들리는 듯 했지만 그 내용을 생각할 틈도 없었다. 판테라레오의 휘둘러 치기는 한번으로 끝이 아니었다. 왼발에 이은 오른발 공격. 마치 권투의 훅을 연상케 하는 놈의 강력한 공격에 카심은 상체를 숙이곤, 검을 수평으로 그었다.
그 공격을 훌쩍 뛰어서 피한 판테라레오를 보며 카심은 동시에 앞점프를 하여 놈과의 거리를 좁혔다. 갑작스레 접근한 카심을 보며 당황한 녀석은 황급히 허리를 틀어 카심의 검을 피했지만, 완벽히 피한다는 것은 애시당초 무리였다.
퍼엉!
그그그극!
실드가 터져나가며 녀석이 수미터를 밀려났다. 놈의 발톱이 바닥을 긁으며 수미터짜리 오선지를 그리는 동안 카심은 허벅지에 매달아 놓은 단검 하나를 빠르게 던졌다.
쐐액!
그는 사실 투척술에 능한편은 아니었다. 하지만 근접병기로 싸우면서 항상 아쉬웠던 원거리 타격에 대한 부분을 메우기 위해 계속해서 연습해 왔던 것이다. 기술의 숙련도는 낮아 단 하나의 검을 원하는 곳에 정확히, 힘을 실어 던지는 것만으로도 오랜 시간이 걸렸다.
숙련자들은 순식간에 몇개의 단검을 원하는 곳에 정확하게 시간차를 두고 맞출 수 있다고들 했다. 하지만 그는 상급헌터였다. 비록 단 하나라고 할지라도 그것은 가공할 정도로 빨랐고, 강력했다.
퍼엉!
캐앵!
판테라레오가 마치 개처럼 앓는 소리를 내며 도로 튕겨나갔다. 실드때문에 치명적인 상처를 줄수는 없지만, 그것만으로도 충분했다. 녀석은 충분히 타격을 받고 있었고, 조금씩이지만 카심에 대해 두려움을 갖기 시작했다.
“큭. 고양이 새끼 주제에.”
카심이 입술을 일그러뜨리며 입을 열었다.
“뒤!”
누군가 카심을 향해 외쳤고, 그가 고개를 돌렸다. 입을 쩍 벌린 판테라레오의 날카로운 이빨이 동공에 가득 들어왔다.
‘엄마야...’
순간적으로 카심은 눈을 질끈 감았다. 이건 피할 수가 없었다.
후웅!
그 찰나의 순간. 삶과 죽음의 경계를 가르며 거대한 투창이 그의 머리를 스치고 지나갔다.
콰지직!
크아아앙!
카심은 덜덜 떨리는 주먹을 꽉 쥐고서는 투창이 날아간 방향으로 고개를 돌렸다. 판테라레오 한마리가 창에 꿰여 벽에 틀어박혀 있었다. 녀석은 고통스럽게 울부짖으며 어떻게든 빠져나오려고 했지만 그럴수록 창에 꿰인 상처가 점점 더 벌어질 뿐이었다.
콰직! 콰직! 콰직!
그렇게 포효를 내지르며 고통스러워 하고 있는 판테라레오의 몸에 연이어 창이 틀어박혔다. 피분수가 녀석의 몸에서 터져 나왔다. 고통에 몸부림 치던 녀석은 마지막으로 머리에 창이 틀어박히며 그대로 목숨을 잃었다.
실드고 뭐고 그냥 통째로 녀석을 찢어발기는 투창의 위력에 카심은 입을 쩍 벌렸다.
‘우와...’
준의 머리위에서는 계속해서 투창이 생성되었다. 총알처럼 튀어나가는 투창은 외도의 실드를 관통하며 그대로 파고들었고, 녀석들은 치명적인 상처를 입으며 튕겨나갔다. 그쯤되면 물러서도 이상할 것이 없는 상황. 하지만 녀석들은 오히려 더 필사적으로 헌터들에게 달려들었다. 헌터들에게 근접하면 투창공격을 당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본능적으로 느낀 것이다. 그렇다보니 헌터들은 오히려 더욱더 치열하게 전투를 치뤄야 했다.
한 마리를 죽이긴 했지만, 아직도 남은 녀석들은 서른마리 이상. 카심은 준의 엄청난 실력에 감탄하면서도 이 전투가 그렇게 쉽게 끝나지는 않을 거라는 생각을 하며 검을 휘둘렀다. 판테라레오의 송곳니가 그의 검에 잘려나갔다.
“후... 엄청나군.”
카심이 주변을 둘러보았다. 바닥에 쓰러져있던 외도들은 어느샌가 모두 사라져 있었다. 준이 무어라 중얼거리자 녀석들의 시체가 분해되어 사라진 것이다. 대체 어떻게 한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결정체마저도 모두 사라졌다. 그 와중에 욕심이 난 것인지, 준을 내내 탐탁치 않게 생각하던 신경질적인 인상의 사내가 입을 열었다.
“결정체는 어떻게 한거지?”
“귀찮아서 한꺼번에 정리했어. 분배를 받고 싶으면 나가서 이야기 하도록 하지.”
“그걸 어떻게 믿을 수 있어? 네가 그냥 먹고 튀어버리면 우리는 건지는 것도 없이 애꿎은 목숨만 건셈인데.”
“롤렉스. 그만해.”
“너도 억울하잖아. 저 녀석이 강한건 알겠는데 우리도 똑같이 고생했다고.”
“나가서 분배 해준다고 했을텐데? 날 못믿는 거냐?”
“흥. 네가 무슨 대단한 사람이라도 된다는 거냐?”
롤렉스라고 불린 사내는 아직도 준의 정체에 대해서 잘 모르는 모양이었다. 누군가 그에게 다가가 낮은 소리로 귓속말을 했고, 그의 두눈이 더이상 커질 수 없을 정도로 커졌다.
“뭐, 뭐라고? 그게 정말이야?”
그는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자신에게 말을 건넨 이에게 물었다. 다시한번 그 사람이 고개를 끄덕이자, 롤렉스가 어색한 모습으로 고개를 돌려 준을 바라보았다. 준이 쓴웃음을 지으며 입을 열었다.
“내가 누군지 알기라도 한 얼굴인데?”
“아, 아닙니다. 전 그쪽이 누군지 전혀 관심이 없습니다.”
롤렉스는 고개를 내저었다. 자신이 아무리 상급헌터라고 할지언정, 준 알스버그에 비할바는 없었다. 그에 대한 소문은 상당히 퍼져있었다. 새크리파이스 출신의 상급헌터들 몇이 이미 준에게 당해 행방불명인 상태였다. 첫번째 무리어미 드랍의 경우에도 그가 해결한 것만 전체의 절반에 가까울 정도였다.
굳이 함대전에서 보인 일당천의 위용을 떠올리지 않더라도, 준 알스버그라는 이름은 새크리파이스의 헌터들에게는 공포이자, 경외의 대상이었다.
“결정체는 나가서 분배하도록 하지. 불만있으면 지금 말해.”
“없습니다. 그럼 계속 하시죠.”
롤렉스의 이마에서 식은 땀이 흘렀다. 소문으로는 델타스피릿의 사장은 성격이 상당히 괴팍하다고 했다. 기분내키는 대로 사람을 죽이고 마음대로 팔아먹기를 반복했다. 그에 의해 죽은 사람만 수천명이 넘었고, 노예로 팔려간 이들도 기백이었다. 만약 여기서 잘못보인다면 자신 역시 그와 같은 신세가 될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쯧. 저렇게 눈치가 없어서야.”
카심이 빈정거리며 입을 열었다. 롤렉스의 눈꼬리가 슬쩍 올라갔지만, 준앞에서 싸움을 일으킬 배짱은 없었다.
두번째로 마주친 외도는 거미형 외도였다. 징그럽게 생긴 긴 다리를 움직이며 벽을 타고 움직이는 놈들은 대체로 1미터 크기로 상당히 작았는데, 문제는 놈들의 숫자였다. 그들이 들어선 넓은 방을 새카맣게 채울 정도로 많았다. 얼추 세어봐도 최소 수백마리는 넘었다.
‘보조퀘스트의 외도 사냥목표가 300마리인데. 이것들만 잡으면 되는건가?’
준은 약간 의아했지만, 녀석들이 몰려드는 것을 보며 일단은 전투를 시작했다. 놈들 개개의 방어력은 붉은 색 외도정도였다. 다만 공격력은 형편없었는데 정타로 공격을 허용하더라도 생채기 정도만 날 정도로 약했다.
쏴아아아!
녀석들 사이로 니들건의 탄자가 비처럼 쏟아부어졌고, 헌터들은 자신을 향해 몰려오는 거미들을 하나하나 정리하며 제자리에 굳게 버티고 있었다. 골렘들도 주먹을 휘두르며 녀석들을 몇마리씩 죽였다.
‘카운트가 되지 않는데?’
준이 이상함을 느낀 것은 거진 백여마리 가까이를 죽이고 난 다음이었다. 보조퀘스트 목록에서 외도처치 카운트가 올라가지 않는 것을 확인 한 것이다.
‘붉은색들은 카운트가 되지 않는건가? 아니... 그럴리가 없는데.’
만약 그런 조건이 있었다면 분명히 그에 대한 설명도 되어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퀘스트 어디에도 그런 언급은 없었다. 그렇다면 카운트가 되지 않는 이유는 다른 곳에 있다고 봐야했다.
‘지금까지 카운트가 되지 않는 경우가 있었나...?’
가만히 생각하던 준은 그런 적이 있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지금은 자세히 기억나지 않지만, 죽었다가 부활하는 녀석들을 상대한 적이 있었다.
샤먼의 도움을 받아 부활하던 녀석들은, 일단 한번 죽이고 나면 몇번을 죽여도 카운트가 올라가지 않았다. 어쩌면 녀석들도 그런 비슷한 매커니즘을 가지고 있는 외도인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디보자...’
준은 니들건의 탄창을 갈고는 다시 발사를 시작했다. 순식간에 수백발의 탄환들이 거미외도들의 등껍질을 부수고 파고들었다. 가만히 보니 죽은 녀석들은 마치 아이스크림처럼 녹더니 바닥으로 스며들어 사라졌다. 그리고 그 빈자리에서 계속해서 새롭게 놈들이 나타났다.
‘자체적으로 부활 능력이 있는 건가?’
최근들어 특수능력을 가진 외도들의 출현이 잦았다. 일반적인 필드에 있는 외도들은 대체로 공격패턴이 단조롭다. 속성이나 공격방식이 저마다 다르다고는 해도, 일단 저쪽의 공격을 피하고 이쪽의 공격을 명중시키면 이긴다는, 아주 당연한 논리로 전투가 이루어진다.
하지만 자폭을 하는 놈들이라던가, 죽이면 몸에 달라붙는 외도라던가 하는 놈들이 발견되었다. 어쩌면 이 녀석들도 그런 특수능력을 달고 있는 놈들인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하핫! 이따위 약한 녀석들은 몇천마리가 와도 소용없다!”
카심이 신나게 검을 휘두르며 거미를 쓸어담았다. 한 번 검을 휘두를 때마다 서너마리씩 나자빠졌다. 붉은색 외도의 방어력을 가진 놈들을 저렇게 손쉽게 베어넘기는 것을 보면 확실히 상급헌터는 상급헌터인 모양이었다.
“다들 힘을 아껴! 아무래도 뭔가 이상하다!”
준의 경고에 신나게 거미를 죽이고 있던 헌터들이 흠칫 하며 뒤로 물러섰다. 그들도 조금씩 이상하다는 것을 느끼던 상황이었다. 지금까지 죽인 녀석들의 수만해도 몇백마리는 넘었는데 놈들의 수는 줄어들기는 커녕 점점 더 늘어나는 것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