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372 ----------------------------------------------
급속 성장
*
*
*
“이봐. 정말 이 인원으로 충분한 거야?”
카심이 준을 향해 입을 열었다. 현재 준을 포함한 상급헌터들의 숫자는 모두 열여섯. 최소 서른명 이상이 오기전까지 지구라트에는 들어가지 않으려고 했던 이들인 만큼 걱정이 되는 모양이었다.
“충분하지 않으면? 정말로 서른명이 모일때까지 기다리려고 했다는 말인가?”
준의 입에서 흘러나오는 말에는 가시가 돋혀 있었다. 란도넬 전역에서 상급헌터를 끌어모으고 있다고는 하지만 일부러 연락을 회피하는 이들도 있었고, 늦장을 부리며 시간이 가기를 기다리는 이들도 있었다. 그걸 생각해보면 숫자를 맞추기 위해서 일주일이 걸릴지 이주일이 걸릴지 모르는 일이었다.
차라리 이곳에 먼저 와 있는 자들은 양심적이라고 할 수 있었다.
“아니. 뭐... 그나저다 대책 같은 건 있어?”
카심은 머리를 긁적이며 말을 돌렸다. “지구라트 깊숙한 곳에 놈의 심장이 있으니 그걸 파괴하면 돼.”
“어디있는 지는 알고?”
“들어가 보면 알겠지.”
“결국 모른다는 이야기로군.”
카심은 고개를 저으며 한숨을 쉬었다. 하지만 일단 나서기로 한만큼 이제와서 돌아가는 것은 무리였다. 게다가 자신을 손하나 움직이지 않고 제압한 준의 실력에도 어느정도 궁금함이 있었다. 막 생각났다는 듯 카심이 입을 열었다.
“그거 말인데. 대체 어떻게 날 움직이지 못하도록 한거지?”
“염동력. 조금 더 힘을 줬으면 풀렸을텐데 네가 지레 겁먹고는 당황하는 바람에 자리에서 일어나지도 못한거지.”
염동력으로 움직일 수 있는 무게가 거의 1톤에 달하는 준은 그 힘 전부를 카심을 내리누르는 데 사용했다. 하지만 염동력은 애초에 사람을 상대로 사용하기 위한 힘이 아니다. 염동력 자체가 마나에 간섭을 받기 쉽기 때문이다.
만약 카심이 몸에 마나를 끌어올려 억지로 저항하려고 했다면 염동력의 사슬에서 금방 빠져나올 수 있었을 것이다.
“끙. 그렇군. 괜히 겁먹은 건가...”
카심이 중얼거리는 소리에 준이 웃음을 흘렸다.
상급헌터로만 이루어진 16인의 결사대가 지구라트의 입구 앞에 도착했다. 입구는 좁았고, 끈적거리는 유기물 덩어리 사이를 비집고 들어가야 했다. 하지만 찐득찐득한 체액이 배어나오는 입구 안으로 먼저 들어가려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보아하니 안에서 바깥으로 나오게끔 만들어진 문인 것 같은데. 억지로 힘으로 들어가려고 하면 못할 것도 없어보이긴 한데...”
준이 입을 열었다. 지구라트의 형태는 무리어미마다 조금씩 달랐는데, 이번 녀석도 입구가 마치 입을 다물 듯이 꽉 닫혀있었다. 카심이 입을 열었다.
“마치 항문 같은데...”
모두가 머릿속으로 생각하고 있었지만 차마 말하지 못하고 있던 것을 카심이 소리내어 말했다. 사람들의 시선이 그에게 꽂혔다.
“왜? 내 말이 틀린건가? 솔직히 냄새도 좀 나는 것 같고.”
그는 킁킁거리며 주변의 냄새를 맡았다. 준이 고개를 끄덕이며 입을 열었다.
“항문이라... 네 말대로 뭔가를 뱉어내는 데 사용되는 통로인 것 같긴 하군.”
“그럼 다른 문을 찾아봐야 하는 걸까?”
“눈에 보이는 입구가 이것밖에 없는데, 다른 곳을 찾는 것 보다는 이쪽이 낫겠지.”
“어떻게 열려고?”
준은 대답대신 대흉근을 불렀다. 쿵, 하고 녀석이 허공에서 나타나자 사람들이 깜짝 놀라며 준을 쳐다보았다.
“소환사였나?”
머리가 희끗희끗한 중년의 검사가 준을 향해 입을 열었다. 굳이 대답할 필요는 없었다. 준은 대흉근을 먼저 좁은 입구로 밀어넣었다.
꿀럭. 꿀럭.
대흉근이 힘으로 좁혀진 문을 잡아늘리자 거세게 저항하던 입구가 천천히 벌어지기 시작했다. 안쪽에서부터 강한 악취가 흘러나왔다.
7미터짜리 골렘이 들어갈 정도로 입구가 늘어나자, 준은 대흉근을 안쪽으로 보내고 그 뒤를 따랐다. 그러자 다른 헌터들도 천천히 준을 따라 들어가기 시작했다. 카심이 코를 막으며 입을 열었다.
“냄새 한번 끔직하군. 시체썩는 냄새인데 이거...?”
“시체라...”
준은 낮은 목소리로 중얼거리며 계속해서 앞으로 나아갔다. 지구라트 자체는 둥지이자 생명체다. 그곳에는 외도를 생산할 수 있는 산란장이 있다. 무언가를 생산하기 위해서는 동시에 무언가 먹는 것이 있다는 뜻이다. 그것이 무엇인지는 풍겨오는 냄새만으로도 충분히 추측 가능했다.
‘인간을 먹이로 삼아 부화전의 외도에게 영양분을 공급하는 것인가?’
마치 개미집 같았다. 일개미인 외도들이 바깥으로 나가 인간을 잡아오고, 그것을 먹이로 삼아 외도를 생산한다.
준이 손짓으로 카심을 불렀다. 평소라면 왜 그런 식으로 사람을 부르냐며 버럭 화를 낼법한 상황이지만, 장소가 장소이니 만큼 카심도 별 대꾸없이 다가왔다.
“무슨 일이야?”
“지구라트 근처에 저지선이 쳐져 있는 걸 봤는데. 그 전에 외도가 바깥으로 나간 적이 있나?”
“정확히 말해 오늘이 4일차이고, 저지선은 2일 차부터 쳐졌으니 그전에는 얼마든지 나갈 수 있었겠지.”
“근처 도시에 피해보고 된 사실이 있나?”
“뭐, 박살이 났지. 죽은 사람만 천명이 넘을걸.”
“그렇군.”
준은 무거운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아마 무리어미가 드랍되고 쏟아져 나온 외도들에 미처 대비할 틈도 없이 당했을 것이다. 그리고 그 곳에서 희생된 인간들의 육체가 지구라트를 만드는 영양분으로 사용되었던 모양이었다.
“그렇다면 그 때 죽은 사람들의 시신이 이곳에 모여있다는 말이야?”
“대부분은 소화가 되었을 거고, 일부분은 아직 남아있겠지.”
“젠장. 공동묘지나 마찬가지잖아.”
카심이 몸을 부르르 떨었다.
[지구라트의 심장] 퀘스트가 생성되었습니다.
무리어미로 부터 생성된 이 지구라트는 기존의 것에 비해 상당히 빠르게 성장한 개체입니다. 급속성장의 비밀을 찾아 지구라트의 내부를 탐색하십시오. 보조퀘스트를 완료하면 추가 경험치가 주어집니다.
목표
지구라트의 심장 0/1
지구라트의 뇌 0/1
지구라트의 자궁 0/1
보조목표
외도처치 0/300
준이 지구라트의 안으로 들어서자 퀘스트 알람이 떴다. 오랜만에 뜬 퀘스트였다. 준의 레벨이 오르며 퀘스트가 좀처럼 생성되지 않았는데, 레벨에 비해 충분한 양의 경험치를 얻을 수 있는 상황이 되어야만 퀘스트가 뜨는 모양이어다.
‘퀘스트 까지 기대하지는 않았는데. 운이 좋군.’
단번에 레벨업을 할 만큼의 경험치를 얻을 수는 없겠지만, 그 동안 소모한 경험치 중 일부는 복구할 수 있을 거 같았다.
대흉근이 앞장서며 입구를 잔뜩 넓혀놓은 통로는 시간이 지날수록 천천히 좁아졌다. 준이 뒤를 돌아보니 자신들이 들어온 입구는 이미 완전히 닫힌 상태였다. 빛이 들어오지 않자, 준은 라이트세이버를 꺼내들었다.
어두워졌던 통로내부가 밝아지자 안쪽의 그로테스크한 광경이 그대로 드러났다. 바닥과 벽, 천장은 촘촘하게 꾸물거리는 작은 촉수들이 가득했다. 가만히 있으면 조금씩 몸을 타고 올라오는 바람에 계속해서 걸어야만 할 정도였다.
“소화기관이군.”
준은 그 촉수들이 수분흡수를 위한 것임을 깨달았다. 즉, 현재 그들은 지구라트의 소화기관을 걷고 있는 것이다. 시체썩는 냄새가 나는 것도 어찌보면 당연한 일이었다. 거의 삼십여분을 그렇게 걷자, 통로 사면에 돋아나 있던 촉수가 사라지고 바닥이 단단해지는 것을 느꼈다.
통로도 대흉근도 더 이상 길을 억지로 만들지 않아도 될 정도로 넓어졌다. 준은 대흉근을 인벤토리에 넣고는 입을 열었다.
“다들 여기서부터는 조심해. 외도가 있을지도 모르니까.”
준의 말에 모두들 고개를 끄덕였다. 그의 행동에는 거침이 없었고, 행동하나하나가 마치 이곳에 대해서 잘 알고 있는 것 같았다. 하나같이 자존심이 강한 상급헌터들이었지만, 이런 낯선 환경에서는 준을 믿을 수밖에 없었다.
카심이 슬금슬금 다가와 준에게 속삭였다.
“저기... 그런데 하나 물어볼게 있는데.”
“뭐?”
“준 알스버그 맞지?”
“음? 어떻게 알았지?”
“골렘. 네가 소환술을 쓴다는 건 어느정도 유명하니까. 너정도로 강한데다가, 골렘을 자유자재로 부리고 대공포에도 부서지지 않는 셔틀을 가지고 있다면 내가 아는 범위내에서는 단 한사람 밖에 없거든.”
“그렇군.”
“하나 궁금한건 대체 왜 여기에 있냐는 건데.”
“그런 건 알거 없고. 그럼 다른 이들도 알고 있는 건가?”
“대충 눈치는 깠을걸? 나보다 먼저 안 사람도 있을거야.”
“어쩐지 말을 잘 듣더라니.”
준은 피식 웃음을 흘렸다. 상급헌터들 치고는 어린애들처럼 고분고분하다 싶었더니 정체가 일찌감치 탄로 난 모양이었다.
상급헌터 정도 되면 정보력도 남다르다. 특히 준의 얼굴사진은 고급정보로 취급되어 몇몇 이들에게만 알려져 있었다. 준 본인이 사진을 찍는 것을 싫어하기 때문에 실제로 돌아다니는 사진은 거의 아주 예전의 사진들이었다. 즉, 준이 델타를 얻기 전. 함선 스팅스의 엔지니어로 있을 시절의 사진들이었다. 아주 예전이라고 해봐야 3년 정도 된 사진이니 만큼 지금과 크게 다르지는 않아 사진만으로 준의 얼굴을 알아보기란 어렵지 않았다.
크르르.
어둠속에서 짐승의 울음소리가 들려왔다. 일행은 모두 긴장하며 걸음을 멈추었다. 지나온 길과 달리 바닥도 단단해지고 통로도 넓었다. 이쯤되면 이제 소화기관이라기 보다는 외도들이 실제로 거주하는 공간이라고 보아도 무방했다.
화악.
준이 라이트세이버의 빛을 끌어올리자 어둠이 걷혀지며 멀리서 이쪽을 노려보고 있던 외도의 존재가 드러났다.
“사자다.”
판테라레오.
표범을 닮은 판테라와 달리 사자를 닮은 녀석이다. 농담삼아 사바나 사자라고 부르기도 하는데, 보통 건조한 기후에 주로 많이 분포하는 녀석이었다. 특이점이라면 결정도에 따라 눈동자 색이 변한다는 점이다. 그리고 녀석의 눈동자는 노란색으로 빛나고 있었다.
“시작부터 노란색이군.”
준은 슬쩍 사람들을 둘러보았다. 어둠속을 걷고 있을때에는 긴장하던 이들이 오히려 외도가 나타나자 더 편안해 보였다. 그들에게 있어 낯선환경은 두려움이 될 수 있어도 외도는 그렇지 않은 것이다.
“다들 긴장해야 할거야.”
“노란색 외도 정도는 나 혼자서도 잡을 수 있어.”
“물론 그렇겠지.”
준은 그렇게 말하며 라이트세이버의 빛을 더욱 끌어올렸다. 그러자 판테라레오의 뒤쪽에, 수십마리의 똑같이 생긴 외도가 있었다.
“헉?”
카심을 비롯해 헌터들이 격하게 숨을 들이켰다. 노란색 외도 수십마리를 눈앞에서 본 것은 처음이었다.
“긴장하라고. 저정도 숫자면 제법 만만치 않을테니까.”
“저, 저걸 잡아야 한다고?”
“이제 시작일 뿐인데.”
준이 인벤토리를 열어 대흉근과 골렘 1,2,3호를 꺼내었다. 아무렇지 않은 표정으로 말은 했지만, 내심 준도 놀라고 있었다. 혹시나 더 있나 싶어서 빛을 더 끌어올렸던 거고, 그 뒤에 수십마리가 더 있을거라는 생각은 그 역시 하지 못한 것이다.
하지만 퀘스트의 목표치는 300마리였다. 이제 겨우 시작이라는 뜻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