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프로젝트 델타-371화 (371/540)

0371 ----------------------------------------------

테러리스트

*

*

*

“미안하지만. 혼자서는 힘들겠군.”

결국 브라이트 힐이 내린 결론은 현재 이곳에 모여있는 상급헌터들과 함께 지구라트를 정리하라는 이야기였다. 철저하게 준의 이름을 감추기 위해서였다. 만약 혼자서 지구라트에 들어가게 된다면 그의 정체에 대해서 말이 나오겠지만, 다른 헌터들과 함께 간다면 그저 십수명의 상급헌터들 중 하나일 뿐이다. 부하들의 입단속만 철저히 한다면 준의 신원이 밝혀질 리는 없었다.

그리고 그 사실이 밝혀지게 되면 자신들에게도 문제가 생길 수 있는 만큼 나서서 발설할리는 없었다.

“흠... 저 녀석들과 함께 가라는 건가? 그다지 내키지 않는데.”

준은 숙소에서 힐끔거리며 이쪽을 바라보고 있는 헌터들을 보며 고개를 저었다. 이런 일에 짐덩어리가 따라 붙으면 곤란해지는 것은 이쪽이었다. 게다가 저들은 수가 충분히 모이기 전까지는 절대로 저지선 바깥으로 나가지 않으려고 할 것이다.

“설마 설득도 나보고 하라는 건 아니겠지?”

“내 말은 듣지를 않는 녀석들이라.”

브라이트 힐이 곤란하다는 듯한 웃음을 지었다. 준은 잠시 생각했다.

‘그냥 확 들어가서 해결하고 나올까? 어차피 이 녀석들 사정이야 내가 알바도 아니고...’

애시당초 준이 브라이트 소장의 사정을 봐줄 이유는 없었다. 굳이 상급헌터들을 주렁주렁 매달고 가서 골치만 아플 뿐이었다. 하지만 준은 결국 고개를 끄덕였다.

준이 소장의 부탁을 승낙한 이유는 상급헌터들을 살펴보기 위해서였다. 그들 중 쓸만한 이들이 있으면 몇 명 정도는 델타스피릿에 고용을 할 생각도 있었다. 거기다가 준은 이곳까지 오면서 수많은 중하급 헌터들이 목숨을 버려가며 외도들과 맞서는 모습을 두 눈으로 보았다.

실력이 떨어지는 이들 조차도 사람들을 구하기 위해서 목숨을 거는데, 가질대로 가진 녀석들이 저렇게 밍기적 대고 있는 모습을 보는 것이 아무래도 배알이 꼴려서 두고 볼 수가 없었다.

그들이 저러고 있는 이유를 모르는 바는 아니다. 이미 자기입으로 말했듯이, 상급헌터들은 이 일에 목숨을 걸 필요는 없었다.

하지만 머리로 생각하는 것과, 실제로 숙소 근처에서 노닥거리고 있는 모습을 보는 것과의 차이는 컸다.

‘중급헌터들도 목숨을 버려가면서 싸우는데.’

준은 문득 이스카야로 오겠다며 의지를 불태우던 중급헌터 하나를 떠올렸다. 그들이야 멀리서 이야기 했으니 준이 당연히 듣지못했을 거라고 생각했겠지만 준의 감각은 평범한 인간에 비해서 월등히 뛰어났다. 거기다가 비록 수백미터는 떨어진 곳이었지만, 홀스의 목소리는 준이 충분히 알아들을 수 있을 만큼 컸다.

‘괜찮은 녀석들이었어.’

마지막의 마지막 순간까지 외도를 앞에두고 물러서거나 하지 않았다. 그것이 외도들에게 퇴로를 차단당해서라는 사실까지는 알지 못했지만 어쨌건 간에 준에게 그 중급레이드팀의 이미지는 좋게 남아 있었다.

‘나중에 공채라도 진행해야 할까.’

펠로우쉽 계약이 현재 정체되어 있는 만큼 빠르게 규모가 커지는 델타스피릿의 빈자리를 채워줄 인원들도 필요했다. 사실 더 급한 것은 행정을 맡아줄 사람이었지만, 전투원들도 필요한 것은 매한가지였다.

이런 저런 생각을 하며 준은 상급헌터들이 머물고 있다는 막사로 향했다. 조립식 건물로 지어진 대형막사는 총 다섯 동이 있었고, 그 안에 세명씩 총 열 다섯명이 머무르고 있었다. 대부분은 레이드 팀 소속이었지만 몇몇은 혼자서 다니는 이들도 있었다. 그들은 솔로잉에 특화된 인물이었다.

솔로잉.

레이드팀에 소속되지 않은 상태로 외도사냥을 하는 것을 솔로잉이라고 했다. 준 역시 알카트뢰즈에서는 거의 솔로잉으로 사냥을 진행했다. 하지만 그런 경우는 비교적 드문편이었는데, 당연하게도 혼자 사냥하는 것 보다 여럿이 힘을 합하는 것이 훨씬 더 효율이 높기 때문이었다.

게다가 돌발상황이 발생했을 때 등을 지켜줄 동료가 있다면 생존율도 그만큼 높아지는 것은 당연했다. 최악의 상황에서는 동료를 미끼로 자신만 살아서 도망칠 수도 있었다. 물론 그런 행위는 신뢰를 깨뜨리는 행위라, 일단 한 번 저지르고 나면 금방 소문이 퍼져서 다른 레이드 팀에 들어가기가 어렵게 되지만 그래도 살아남을 수 있다는 것 자체만으로도 충분히 그럴만한 가치는 있었다. 외도에게 당해 죽는 것보다는 차라리 레이드팀에 들어가지 못하는 것이 나은 것이다.

솔로잉을 하는 이들은 이런식으로 레이드 팀에서 외면을 받아 혼자서 사냥할 수밖에 없는 이들도 상당했다. 준의 경우는 그저 혼자 움직이는 쪽이 효율이 높기 때문에 혼자서 사냥을 한 것이지만, 만약 레이드 팀쪽이 훨씬 더 효율이 좋다면 얼마든지 다른 사람들의 팀에 끼어서 활동을 했을 것이다.

초창기 수라드 행성에서 호랑이 길드와 함께 사냥을 나섰던 것도 그런 이유에서였다. 며칠 지나지 않아 준은 혼자서 사냥하는 것이 훨씬 더 효율이 좋다는 것을 깨달았지만, 그래도 신의를 지켜 마지막까지 함께 사냥을 했다. 아무것도 모르는 자신에게 레이드에 대한 많은 정보를 알려준 것에 대한 보답이었다.

흘깃.

준이 상급헌터들을 향해 다가가자 근처에서 쉬고 있던 헌터들이 준을 쳐다보았다. 처음보는 인물인데다가 상급이라고 하기에는 지나치게 어린 외모 때문에 시선을 끌 수밖에 없었다.

“상급인가?”

머리를 붉게 물들인 사내 하나가 툭 던지듯 입을 열었다. 준이 가볍고 고개를 끄덕였다. 엄밀히 말하면 상급헌터라고 말하기에는 너무 강했지만 현재로서는 그 이상을 지칭하는 말이 없었기 때문에 아니라고 하기에도 애매했다.

“어린나이에 제법이군. 나는 카심이라고 한다. 이곳에 있는 모두가 선배들이니까 예의를 잃지 말라고.”

“별 시덥잖은 소리를 다듣겠군.”

준은 콧방귀를 끼며 입을 열었다. 헌터들 사이에는 예의라는 것이 없다. 애초에 실력으로 말하는 인간들이기 때문이다. 실력이 높으면 그게 예의고 도덕이다. 나이가 한참이나 어린 준이 드와이트 소장에게 하대를 해도 다른 이들이 별달리 반응하지 않는 이유였다. 준 알스버그라는 이름은 백발의 노장마저도 몇 수는 아래로 둘만큼 대단한 실력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었다.

“풋. 제법 실력에 자신이 있는 모양이군.”

카심이 목을 이리저리 움직이더니 자리에서 일어났다. 어디든 사람이 모이는 곳이면 신경전이 있기 마련이다. 그는 준을 시험해볼 요량으로 자리에서 일어났다.

아니, 일어나려고 했다.

“끄응? 이게 왜이러지?”

카심은 몸을 좀처럼 일으킬 수 없었다. 준이 1톤이나 되는 염동력의 힘으로 그를 눌러버렸기 때문이었다. 카심이 당황하는 사이 그의 곁을 스쳐지나간 준이 헌터들이 모여 노닥거리고 있는 넓은 테이블로 향해 걸어갔다. 그곳에는 대여섯명이 아침부터 술을 마시며 카드판을 벌이고 있었다.

가까이에 와서보니 정말로 한심하기 짝이 없는 모습들이었다.

“이름.”

술을 한 모금 들이마신 날카로운 인상의 사내가 입을 열었다. 준은 대답대신 그 자의 손에 들려있던 술병을 빼앗아 들었다. 그 한 수로, 두 사람 사이의 우열이 가려졌다. 아무리 방심했다고는 할지라도 아무런 저항도 하지 못하고 술병을 빼앗긴 사내는 얼굴을 붉히며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뭐하는 놈이냐?”

“여기 놀러왔냐?”

준이 그를 향해 무서운 눈으로 노려보았다. 준의 시선이 어찌나 강렬했던지 당장이라도 칼부림을 벌일 것처럼 기세를 펼치던 사내가 흠칫하며 뒤로 물러설 정도였다.

그러다가 자신의 추태를 깨닫고는 더 큰 소리로 버럭 소리를 질렀다.

“아직 어려서 상황을 잘 모르는 모양인데...”

“알아. 무서워서 덜덜 떨고 있는 중이지.”

“뭐라고?”

쾅!

준의 도발적인 말에 테이블 주변에 둘러앉아 있던 네명의 헌터들이 탁자를 내리치며 모두 일어섰다. 테이블이 박살나며 카드와 술병들이 어지럽게 흩어졌다. 뒤늦게 카심도 준의 뒤에 섰다. 싸움이 날 듯 하자 본능적으로 퇴로를 막은 것이다.

“쓸만한 녀석들이 있나 하고 둘러보러 왔는데 말이지. 하나같이 쓰레기들 뿐이로군. 적어도 곧 있을 전투를 대비하며 칼이라도 갈고 있을 줄 알았는데 말이야.”

준의 독설은 거침이 없었다. 딱히 화를 내는 것은 아니었다. 다만 한심해서 견딜 수 없었을 뿐이다.

“감히 그런 소리를 하고도 무사할 거라고 생각한 건 아니겠지?”

처음 준과 시비를 붙었던 날카로운 인상의 사내가 검손잡이 위에 손을 올렸다. 여차하면 벨 기세였다. 준이 어깨를 슬쩍 움직였다.

움찔!

그러자 그 사내가 황급히 검을 뽑으며 상체를 방어했다. 하지만 예상했던 공격은 날아오지 않았다. 애초에 준은 빈손이었다. 그저 어깨만 슬쩍 움직였을 뿐인데 지레 겁먹고는 검을 뽑아버린 것이다.

“과연. 이런 곳에서 노닥거릴 만한 실력이군. 원 밀리언이라는 이름이 아깝다.”

준의 도발에 그의 눈빛이 차갑게 가라앉았다. 당장이라도 검을 휘둘러 준을 벨 수도 있었지만, 혹시나 하는 생각이 마지막으로 확인하고 싶은 게 있기 때문이었다.

“어디서 온 녀석이지?”

“그게 중요한가?”

“본사의 인물은 아닌건가?”

그가 말한 본사란 당연히 새크리파이스를 말함이었다. 그들도 위에서 하루빨리 이 사태를 해결하기를 바란다는 것 정도는 알고 있었다. 이렇게 술을 마시며 시간을 죽이는 것이 옳은 일이 아니라는 것 정도는 알고 있었다.

그 때문에 혹시라도 본사에서 나온 인물이 자신들을 감찰하려고 하는 것인가 확인을 해본 것이다.

준은 그 속내를 읽고는 피식 웃음을 흘렸다.

“맞다면?”

“그렇다면 굳이 시비를 걸지 말고 대화로 해결할 수 있지 않겠나? 지금 상황은 굳이 내가 말하지 않아도 알 수 있을텐데.”

“저지선에서 술판을 벌이고 노는 꼴을 계속 보라는 건가?”

“저지선을 지키고 있는 것만으로도 우리는 할 일을 충분히 하고 있다.”

“멍청한 녀석이군. 지구라트의 존재 때문에 몬스터 웨이브가 일어나고 있다는 걸 모르는 건가?”

“그건 우리와 상관없는 일이다. 우리는 맡은 일을 할 뿐이니까.”

“말이 안통하는 군. 다들 그렇게 생각하는 건가?”

준이 다른 사람들을 둘러보았다. 방금 전까지 술을 마시고 있던 녀석들이지만 눈빛에 취기는 느껴지지 않았다. 언제든지 전투태세로 돌입할 수 있다는 것은 상급헌터인 이상 당연한 일이었다. 하지만 그것 뿐이었다. 저런 정신상태로는 더 이상의 발전을 기대할 수는 없었다. 그저 가진 것을 누리고자 하는 마음뿐이니 준이 데려갈 만한 녀석들은 아니었다.

“한 시간 후에, 지구라트로 돌입한다. 그때까지 만반의 준비를 마치도록.”

“뭐라고? 그렇게 갑자기.”

“아무리 본사에서 나왔다고 해도 그런 명령은 들을 수 없다.”

“가만 저 녀석 진짜 본사에서 나온놈 맞아?”

헌터들이 하나같이 불만을 터뜨리며 입을 열었다. 정체를 의심하는 자도 있었다. 준은 굳이 대답을 하는 대신, 라이트 세이버를 들어 휘둘렀다.

순간적인 움직임인데다가, 준의 손에 무기가 없다고 생각했던 때문인지 반응하는 자는 아무도 없었다.

스릉!

뎅그렁.

그리고 검을 뽑아들고 있던 사내의 얼굴이 새하얗게 변했다. 들고 있던 검이 반토막이 나버린 것이다. 공격을 보지 못한 것은 아니나 반응할 틈이 없었고, 심지어는 검끼리 부딪히는 충격조차 느껴지지 않았다.

즉, 일대일로 상대해서는 절대로 이길 수 없다는 뜻이었다. 그렇지 않아도 기세에서 밀리고 있던 헌터들은 준의 압도적인 실력을 보고는 기가 단숨에 꺾였다.

‘운이 좋은건가. 제대로 먹혔군.’

애초에 준은 그들을 설득할 생각이 없었다. 자존심이 하늘을 찌르는 그들을 하나하나 대화로 설득하여 지구라트로 끌고가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다. 그럴바에야 차라리 압도적인 힘으로 그들을 눌러서 억지로 끌고갈 생각이었다.

나중에야 굳이 준의 말을 듣지 않아도 되었을 거라는 생각을 할지도 모르지만, 사람이란 일단 한번 휘말리게 되면 거기에서 헤어나오기 쉽지 않은 법이다. 게다가 새크리파이스의 감찰단에서 나왔다는 착각마저 하고 있으니 일이 생각보다 잘 풀리는 셈이었다.

게다가 만약 이런 방식이 통하지 않는다고 해도 상관없었다. 만약 그들이 끝까지 준을 따라나서지 않으면 혼자라도 들어갈 셈이었다. 준을 막으려고 해봐야 막을 수 있는 사람은 없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