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369 ----------------------------------------------
테러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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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기기기-
로버의 기세가 어찌나 대단했던지 미친 듯이 준을 향해 달려오던 외도들이 일거에 자리에 멈춰선 것이다. 20미터에 달하는 로버에 비하면 외도들은 어린애 정도로 밖에 보이지 않았다.
[하하하! 어떠냐? 나의 위엄이!]
“허세는. 혼자서는 아무것도 못하면서.”
[헌데 그 아이는 어디있냐?]
“없어. 구경이나 하라고.”
준은 피식 웃으며 골렘들을 불러들였다. 어차피 로버를 끄집어 낸 것은 외도의 시선을 분산시키기 위함이었다. 에피알게나스가 없는 지금 로버를 정상적으로 운용할 수는 없기 때문이었다.
[기껏 나왔건만...]
로버는 잔뜩 실망하는 눈치였다. 하지만 어쨌거나 로버를 불러낸 효과는 충분히 보았다. 녀석을 신경쓰느라 외도들이 우왕좌왕하기 시작한 것이다. 외도라고는 해도 어쨌건 간에 생명체의 본능은 그대로 지니고 있다. 그리고 지능이 떨어질수록 겉으로 보이는 덩치를 보고 판단하기 마련. 외도역시 그 본능을 가지고 있을 거라는 생각이 맞았던지, 골렘들을 앞에두고도 외도들은 로버를 신경쓰는 듯 움직임이 굼떴다.
우오오오!
그 사이 대흉근과 골렘 1,2,3호가 외도들의 사이로 뛰어들었다. 골렘들은 평상시의 움직임을 내지 못하는 외도들 사이를 휘저으며 일방적으로 공격을 하기 시작했다. 노란색 외도에 델타의 보정마저 있는 대흉근들은 외도끼리의 싸움에서는 오히려 압도적인 능력을 보인다.
다른 외도들이 모두 가지고 있는 항력이 없는 대신, 그만큼의 체력을 보유하고 있기 때문이었다. 이는 인간들이 사용하는 화기에 약하다는 단점이 있지만 실드가 무력화 되는 외도들간의 싸움에서는 엄청난 이점이었다. 이 때문에 같은 노란색 외도끼리의 싸움이라고 할지라도 골렘들에게 압도적으로 유리한 싸움이 전개될 수밖에 없었다.
그 사이 준도 전력으로 힘을 전개했다. 이곳에서 시간을 끄는 동안 지구라트는 차츰 그 형태를 완성해 갈 것이다. 둥지는 이미 완성되었을 것이고 그 안의 산란장에서는 외도들이 탄생을 기다리며 에너지를 공급받고 있을 것이다. 게다가 상대는 인간이 아니라 외도였다. 힘을 아낄 필요는 없었다.
촤라라락!
인벤토리에서 정확히 100개의 니들건이 튀어나왔다. 강화된 제품이 아니라 이전에 쓰던 것들이지만 어차피 화력에서는 차이가 없었기 때문에 문제는 없었다. 거기에 준은 D1전차를 꺼내었다. D2전차는 2인승이었기에 부득이 하게 그것을 사용할 수밖에 없었다.
그르르릉!
콰앙!
고폭탄이 근거리에서 터지며 외도들을 휩쓸었다. 정타가 아닌 이상 주황색 이상의 외도들을 한방에 죽일 수는 없었지만 녀석들이 정신을 차리지 못하게 하는데는 충분했다. 거기다 체력이 어지간히 좋은 골렘들은 충격파만으로는 전혀 전투에 영향을 받지 않았다.
준은 골렘들에게 직격만 하지 않는 수준에서 전차를 움직이며 전차포를 갈겨대었다.
기리잉! 철컥!
준이 탑승한 이상 전차포가 모자랄 이유는 없다. 준은 순식간에 십여발의 고폭탄을 모두 소모하고는 제작을 통해 재빨리 약실에 포탄을 채워넣었다.
14마리의 외도를 모두 정리하는 데는 이십 여분이 채 걸리지 않았다. 로버가 못마땅한 말투로 입을 열었다.
[대체 날 불러낸 이유가 뭐지?]
“토템이랄까. 승리의 기원 같은거지.”
[킁. 됐다. 기분이 그다지 좋지는 않군. 나는 싸우기 위해서 태어난 병기다. 구경만 하는 건 참기 힘든 고문이란 말이다.]
“필요할때가 되면 마음껏 싸우게 해줄테니까 너무 신경질 부리지는 말라고.”
[그럴까. 허나 명심해라. 내 안의 전투본능을 억제하기란 너무 어려운 일이라는 걸. 크큭.]
“어린애 같은 소리 그만하고. 일단 들어가 있어.”
[젠장. 날 다시 그 어둠속에 집어넣겠다는 말인가?]
“싫으냐?”
[오히려 그 반대다. 난 원래 어둠에서 태어난 존재니까.]
준은 가볍게 인상을 쓰며 녀석을 다시 인벤토리 안으로 넣었다. 녀석과 말을 섞다보면 자신까지 머리가 이상해질 것 같았다.
“로버...”
홀스는 멍한 눈빛으로 20미터짜리 거대로봇을 바라보았다. 로버에 대한 뉴스를 들었을 때 꼭 한번 눈으로 보고 싶다는 생각을 했었다. 새크리파이스의 3개 전대와 엔터프라이즈의 1개 전대를 합한 4개 전대를 단신으로 박살낸 그 전설적인 병기의 모습은 소문만큼이나 압도적인 카리스마를 내뿜고 있었다.
게다가 녀석이 등장하자마자 내지린 포효에 그 무시무시하던 외도들마저 꼼짝 못하고 얼어붙을 정도였다.
그 이후 벌어진 전투에서는 별다른 활약을 하지는 않았지만, 그 병기는 존재 자체만으로도 모두의 시선을 잡아 끌었다. 외도들이 순식간에 쓸려나간 것은 틀림없이 그 병기의 보이지 않는 힘 때문이라고 모두들 생각했다.
“리, 리더. 이제 어떻게 하지?”
홀스를 향해 팀원 중 하나가 입을 열었다. 전투는 이미 마무리 되었다. 바닥에 산처럼 쌓여있던 외도들의 사체는 어느샌가 사라져버렸고, 남은 것은 두 구의 시신과 홀로 남은 준 알스버그 뿐이었다.
골렘들과 로버까지 모두 사라진 지금, 그곳에서 있었던 일들이 모두 꿈처럼 느껴졌다.
“가자. 시신은 수습해야지.”
“하지만 저건 준 알스버그라고. 델타스피릿의. 지금 우리가 나가게 되면 공격받지 않을까?”
“어째서?”
“그야... 그자는 새크리파이스의 적이니까.”
팀 머셔너리의 초창기부터 함께 했던 라이트 메버릿이 입을 열었다. 그는 같은 팀내의 쇼트 메버릿과 형제 관계였다. 형이 쇼트, 동생이 라이트였다.
“그래서? 지금은 우리를 구해준 사람이니 감사 인사도 해야할 것 아니냐.”
“그것도 맞는 말이군.”
쇼트가 입을 열었다. 홀스가 먼저 그를 향해 다가가자, 나머지 살아남은 팀원들도 그의 뒤를 따랐다.
하지만 그들이 준에게 다가가기도 전에 그는 재빨리 셔틀을 타고 순식간에 사라졌다. 뭐라 말할 사이도 없이 벌어진 일이라 홀스는 멍하니 그 모습을 지켜보기만 해야했다.
그는 한참동안 멍하니 그 모습을 보다가 입을 열었다.
“가자.”
“어딜?”
“이스카야로.”
“에엑? 무슨 소리야? 지금 적진으로 가자는 거야?”
“말리지마라. 나는 마음 먹었으니까. 죽이되든 밥이 되든 델타스피릿에 취직한다. 아직 작은 회사라고 하니까 지원자도 별로 없을 지금이 아니면 나중에는 죽어도 안받아 줄거다.”
“흠... 하긴 그쪽은 고양이 손도 빌릴 만큼 바쁘다고들 하니까.”
“하지만 들리는 소문에 의하면 공채 같은 건 없다고 하던데? 무슨 조건 같은게 있다고는 하는데 아무도 아는 사람이 없다고.”
“그런 건 가서 부딪혀 보면 알게 되는거다. 내가 보기에 새크리파이스는 미래가 없어.”
“그래도 100대기업인데 너무 빠른 결정 아닐까?”
팀원 들 중 하나인 레드가 입을 열었다. 본명은 아니고, 머리가 붉은 색이라 편하게 레드라고 부르는 친구였다.
“넌 방금 그걸 보고도 그런 소리가 나오냐? 현재 새크리파이스에 열네마리의 대형 외도를 혼자서 때려잡을 수 있는 사람이 있을까?”
“하지만 그게 전력으로 이어지지는...”
“함대전으로도 새크리파이스를 발랐다만.”
“하긴...”
새크리파이스 쪽에서는 필사적으로 전투결과를 감추려고 하지만 어지간한 정보는 손쉽게 접할 수 있는 현대에 언론통제만으로 감출 수 있는 이야기란 한계가 있었다. 게다가 이번 전과는 델타스피릿 쪽에서 대대적으로 선전을 하고 있었기 때문에 조금이라도 관심이 있다면 모를 수가 없었다.
준은 최대한 빨리 지구라트로 향했다. 아니 향하려고 했다. 하지만 가는 길목마다 이전과 같은 상황이 계속해서 벌어지고 있었다. 당장 자신의 코앞에서 사람들이 죽어가고 있는 상황에서 무시하고 지구라트로 달리기란 어려운 일이었다.
하는 수 없이 준은 아예 어그로생성기 몇 대를 꺼내어서 셔틀에다가 실은채로 저공비행을 감행했다. 그렇게 가다가 외도가 어느정도 쌓이면 내려서 처리하는 식으로 전투를 반복했다. 그만큼 지구라트까지 가는 시간은 늦어질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거의 하루를 날아 지구라트가 눈에 보이는 거리까지 도착했다. 도착이 늦은 만큼 지체할 시간은 없었다. 준은 그대로 지구라트의 위까지 날아 돌입하려는 생각이었다.
하지만 그런 준을 가로막는 이들이 있었다.
[여기는 새크리파이스 정규 4연대. 이 안으로는 미확인 비행체의 접근이 불허된다. 신분을 밝히도록.]
“젠장. 갑자기 검문인가.”
상황을 보아하니 지구라트 주변에 육군병력들이 진을 치고 있었다. 어차피 화력으로는 외도에게 상대가 되지 않는다는 사실은 알고 있지만 화력을 퍼부음으로서 놈들이 바깥으로 빠져나가는 것 정도는 어떻게든 저지할 수 있었다.
그렇게 시간을 끌면서 지구라트를 처리할 수 있는 상급레이드 팀들을 모으고 있는 모양이었다.
‘판단 자체는 나쁘지 않은데... 다른 지역에서 일방적으로 밀리는 이유가 이것때문이었나.’
새크리파이스는 최우선 목표로 지구라트의 점령을 우선으로 잡은 모양이었다. 준은 그 결정도 나름 일리가 있다고 생각했다. 일단 외도들이 준동하는 것은 지구라트가 조종하는 것이 어느정도 확실하다고 판단되는 상황이니 원인을 먼저 제거하는 것이 가장 중요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그 때문에 외도를 상대해야할 상급레이드 팀들이 씨가 말랐다는 것이 문제였다. 노란색 외도들을 중급레이드 팀에게 맡기다 보니, 속수무책으로 밀리면서 군사력이 닿지 못하는 지역은 순식간에 썰려나가고 있었다. 준이 이곳까지 오면서 거의 대부분의 레이드 팀들이 외도들을 당하지 못하고 죽어나갔다.
그렇게 중급헌터들과 중소규모 도시들을 희생하면서까지 상급레이드 팀들을 끌어모았다며, 지금쯤은 무엇이 되었던 결론이 나있어야 했다. 하지만 지구라트는 거의 완성되어 있었고, 군인들은 저지선을 펼친 채 대기하고 있었다. 상급헌터들은 어디에 있는지 코빼기도 보이지 않는 상황이었다.
‘어떻게 하지?’
무시하고 들어가는 방법도 있었다. 어차피 녀석들이 무슨 짓을 하든 준을 막을 방법은 없다. 셔틀을 격추하려고 해도 EX필드 때문에 불가능하다. 그렇다고 홀로 돌입한 준을 끄집어 내기 위해서 지구라트 안으로 뛰어들 용기를 가진 이들도 없어보였다.
하지만 한 가지 마음에 걸리는 일이 있었다. 연대규모의 병력이 있다면 반드시라고 해도 좋을 정도로 전술핵무기가 존재할 것이다. 기존의 EX필드가 핵폭발 급의 타격을 완전히 막을 수 없다는 것이 밝혀진 지금 무턱대고 혼자 들어갔다가 핵폭발이라도 일어났다가는 준이 위험해 질 수 있었다.
[반복한다. 신원을 밝히지 않으면 격추하겠다.]
잠시 고민하던 준은 입을 열었다. 핵무기만 아니라면 준은 딱히 걱정할 것이 없었다. 상황을 지켜보는 것도 나쁘진 않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기체넘버 N103054-SDS. 델타스피릿 소속의 스파이어 셔틀이다.]
[델타스피릿? 잘못말한 것 아닌가?]
[다시한번 말한다. 기체넘버 N103054-SDS. 델타스피릿 소속의 스파이어 셔틀이다.]
[자, 잠시 현재 위치에서 대기 바란다.]
갑자기 나타난 델타스피릿의 셔틀에 놀란 듯 통신장교가 말을 더듬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