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프로젝트 델타-357화 (357/540)

0357 ----------------------------------------------

실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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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시간은 의외로 길다. 특히나 딱히 할일이 없는 곳에서 보내는 시간이라 더 그러했다. 통신조차도 차단되어 델타포럼에 접속하기 어려운 상황에서는 더욱 그러했다. 오프라인으로 가능한 것은 구현화 기능이나 물품제작 정도.

준이 이 던전안에 들어와 있는 동안 바깥의 델타시스템이 정상적으로 돌아가고 있을지도 확실치 않았다. 하지만 지금까지의 경험으로 보면 준이 던전안에 있다고 해서 문제가 된 적은 없었으니 별다른 걱정은 하지 않았다.

준과 카렌은 다시 셔틀을 불러내어 안으로 들어갔다. 카렌이 준을 향해 은근한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준. 12시간 동안 할일도 없는데 말이지.”

“너는 내 취향아니야.”

“엄청 직설적이네.”

“미리 선을 그어두지 않으면 골치아픈 건 내쪽이거든.”

“그런데 어쩌나. 내가 말하려고 했던 게 그런건 아닌데?”

“...아니야?”

“시간이 많으니 그동안 대련이나 좀 하자는 말이었는데. 아무리 내가 남자를 좋아한다고는 하지만 싫어하는 사람을 상대로 억지로 덮치지는 않는다고.”

카렌이 미소를 지으며 입을 열었다. 준도 웃음을 흘렸다.

“처음만났을때는 안그랬던 것 같은데.”

당시에는 준이 반항하지 않으면 거의 강제로 당할 분위기였다. 카렌이 고개를 저었다.

“그냥 전화번호 정도 따려고 했던 것 뿐이야.”

“그렇게 험악한 분위기를 만들어 놓고서?”

“기억이 잘 안나는 모양인데. 분위기가 그렇게 된 건 팀원들 때문이었다고. 물론 문을 닫은 건 나였지만, 번호따는 모습을 남들에게 보이고 싶지 않기도 했고.”

카렌은 약간 얼굴을 붉혔다. 준이 황당하다는 듯 말했다.

“두번 번호따려다간 누구하나 죽어나가도 이상하지 않겠군.”

“어쨌든 그때일은 서로 잊자고. 지난 일에 연연하지 말고 우리는 미래를 향해 나아가야 하잖아.”

“쓸데없이 거창한 소리 하지 말고. 뭐, 그래 대련이나 하자. 가만있자... 그런데 장소가 마땅치 않은걸.”

셔틀 안은 대련을 하기에 마땅치 않았다. 공간도 공간이고 자칫 잘못해서 셔틀에 손상이라도 가면 그게 전부 손해였다.

“아까 거기로 다시 가면 되지 않을까?”

“블랙홀 말이야?”

이 던전의 블랙홀은 안으로 들어간다고 해서 딱히 문제가 되지는 않았다. 실제로 공간도 넓었고, 마음껏 활개를 쳐도 부숴질 물건 같은 것도 없으니 전력을 다해 전투를 벌이기에는 괜찮은 장소였다.

“그것도 나쁘진 않긴 한데...”

준은 뭔가 떠올랐다는 듯 손가락을 튕겼다. 그러자 준과 카렌의 앞에 웜홀 하나가 생성되었다. 카렌이 준을 돌아보며 입을 열었다.

“이건 뭐야?”

“귀속 된 던전 중에 하나야. 혹시나 했는데 여기서도 열리는 군.”

“호오. 신기한데?”

카렌에 웜홀의 안쪽으로 손을 집어넣었다 뺐다 하면서 호기심을 보였다.

던전에서 던전으로 진입한다. 준은 거기에 별다른 위험요소는 없다고 판단했다. 귀속되어 있다고는 하지만 던전과 던전은 서로 병렬적 관계였다. 즉 그러니까 이쪽 던전에서 저쪽 던전으로 옮겨가는 것 이지, 하나의 던전이 하나의 던전에 귀속되는 형태의 수직적인 구조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는 뜻이다.

이 개념은 상당히 중요했는데, 그 이유는 바로 시간 왜곡 때문이었다. 2번 던전은 준의 세계의 비해 4배의 시간 왜곡이 있다. 그렇다면 24배의 시간 왜곡이 있는 던전에서 2번 던전을 들어가게 되면 96배의 시간왜곡이 생기게 된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하지만 병렬적 구조에서는 그런 일이 벌어지지 않는다. 2번 던전에서는 여전히 4배의 왜곡이 있다. 즉, 2번 던전에서 1시간을 보내면 귀속을 진행하고 있는 던전에서는 6시간이 지나간다는 이야기였다.

그 개념을 설명하자 카렌은 대충 이해했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결론은 여기서 2시간만 보내면 밖에서는 12시간이 지난다는 이야기로군. 뭔가 신기하네. 마치 시간을 마음대로 늘였다가 줄였다가 하는 것 같아서.”

“잘 이용하면 편리하게 사용할 수 있겠지. 어쨌든 여기라면 편하게 대련을 할 수 있으니까.”

준은 주변을 둘러보았다. 공장지대 던전은 일단 넓고 평평한 형태를 지니고 있다. 공장건물이 뒤로 줄지어 늘어서 있었지만 굳이 그 안으로 들어갈 필요는 없었다.

카렌이 입을 열었다.

“그건 알겠는데. 저 사람들은 대체 뭐야?”

카렌이 가리킨 쪽에서는 몇몇 사람들이 이쪽을 쳐다보고 있었다. 준이 어깨를 으쓱하며 입을 열어다.

“새크리파이스의 포로들. 얼마전 전투에서 봤잖아? 그 사람들을 다 죽였을 거라고 생각한거야?”

“그러네. 그런데 저렇게 내버려 두어도 괜찮은거야? 외도화가 진행될 수도 있다면서.”

“그 문제를 해결할 방법은 역시 펠로우쉽 계약을 맺어두는 것인데. 지금 당장은 인원제한이 있어서 힘든 상태지. 그래서 나름대로 여러가지 방법을 쓰고 있어.”

카렌과 그의 팀을 마지막으로 현재 펠로우쉽의 제한인원은 1만명을 가득 채운 상황이었다. 때문에 저들까지 모두 펠로우쉽 계약을 맺을 수는 없었다.

그래서 준은 여러가지 보호장치를 쓰고 있었다. 도른을 이용하는 것도 그중 하나의 방법이었다. 그는 애초에 외도이면서 이성을 유지하고 있는 녀석이었다. 그러다보니 외도화 되는 이들을 기가막히게 찾아내는 능력이 있었다. 자신과 비슷한 기운을 풍기기 시작하는 녀석을 잡아내면 되는 일이라 그리 어렵지는 않다고 했다.

‘그나저나 1번 던전에 있는 사람들은 전부 밖으로 빼내야겠군.’

일반인의 경우 외도화의 진행속도가 다소 느린편이어서 아직까지 문제는 없었다. 그들 중 일부는 헌터로 각성한 이들도 있었다. 하지만 더 이상 시간을 끌면 문제가 생길 수 있었기에 이번 던전을 나가는 대로 전부 풀어줄 생각이었다. 그쪽은 사정상 둘 곳이 없어 그쪽에 넣어둔 것이지 딱히 잘못했다고 보기 어려운 사람들이기 때문이었다.

“그럼 시작할까?”

준은 인벤토리에서 니들리스 스패너를 꺼내들었다. 카렌이 그런 준을 보며 입꼬리를 말아올렸다.

“재미있는 무기네.”

“아아. 손에 많이 익은 거라 사실 이게 제일 편하거든. 라이트세이버를 썼다간 그 무기가 상할 위험도 있잖아.”

준은 그녀가 쥔 단분자 검을 가리키며 말했다. 카렌도 가만히 생각하더니 준을 향해 손을 내밀었다.

“나도 그걸로 줘. 대련에 이런 무기를 쓸 수는 없으니까.”

“그러던지.”

준은 인벤토리에서 니들리스 스패너를 꺼내어 던져주었다. 검에 비해서 훨씬 무겁긴 했지만 그녀의 힘으로 그것을 다루는 데에는 전혀 문제가 없었다.

“의외로 밸런스가 잘 맞네. 여전히 무기로 보이진 않지만.”

“그럼. 시작하지.”

준이 니들리스 스패너를 슬쩍 기울이고는 입을 열었다. 준은 카렌의 움직임을 놓치지 않기 위해 집중했다. 그녀는 키가 큰만큼 보폭도 크다. 게다가 리치도 어마어마하기 때문에 두 사람의 거리가 거의 5미터 이상 벌어져 있지만 단 한두 걸음이면 그 간격을 줄일 수 있었다.

후웅!

준이 눈을 깜빡이는 순간 니들리스 스패너가 준의 관자놀이에 도착해 있었다.

“큭!”

촤라락!

준은 고개를 숙였다. 머리칼이 한 뭉텅이가 잘려나갔다. 날이 전혀 없는 둔기인 니들리스 스패너에 날카로운 검기가 실려있었다. 준이 황급히 뒤로 물러나며 앓는 소리를 했다.

“검기라니. 사람을 죽일 셈이냐?”

“크크. 펠로우쉽 끼리는 서로 못죽인다며. 그럼 또 간다.”

“살살해.”

첫 공격은 어디까지나 상대의 실력을 가늠하기 위한 것일 뿐이었다. 카렌은 생각보다 준의 움직임이 날래다고 생각했다. 그의 전투능력에 대해서는 각종 영상과 그에 대한 소문만으로도 충분히 알 수 있었다. 하지만 역시 몸으로 겪어보는 것이 아니면 확신할 수 없는 일이다.

탓!

단 한걸음. 카렌은 단 한걸음을 움직여서 준을 자신의 간격안으로 밀어넣었다. 수직으로 떨어지는 니들리스 스패너는 마치 벼락이 떨어지듯 어마어마한 에너지를 담고 있었다.

준은 감히 그것을 마주할 엄두를 내지 못했다. 힘이라면 누구에게도 지지 않을 자신이 있는 준이었지만, 무기술에 대한 이해도 자체가 자신과는 차원이 다른 카렌이다. 지금 스패너를 들어 저 공격을 막아내려고 했다가는 순식간에 리타이어 하고 말 것이다.

준은 슬쩍 오른발을 뒤로빼며 몸을 틀었다.

부웅!

하고 준의 코 앞으로 니들리스 스패너가 스치고 지나갔다. 짜릿한 감각이 온몸에 흘렀다. 준은 긴장을 놓치지 않으며 그대로 몸을 틀며 팔을 쭉 뻗었다. 하지만 카렌은 어느새 준의 간격에서 벗어난 상황이었다.

준의 무기가 갈 곳을 잃고 헛되이 허공을 갈랐다.

“하아. 하아.”

준은 바닥에 드러누운 채로 하늘을 보고 있었다. 팔은 부러진채 기묘한 각도로 꺾여 있었고, 갈비뼈는 부러져서 숨을 제대로 쉬는 것도 힘들었다. 준은 염동력을 이용해 상체만 가까스로 세워서는 입을 열었다.

“너는 적당히 라는 걸 모르는 거냐?”

준의 말에 카렌이 인상을 잔뜩 쓰며 입을 열었다. 그녀는 바닥에 엎드린 채 고개만 쳐들고는 입을 열었다.

“남의 척추를 부러뜨려 놓고서는 그게 할말이야?”

“그거야. 니가 너무 무섭게 나오니까 나도 모르게...”

준이 궁색하게 변명했다. 마지막 순간 카렌의 공격에 준의 왼 팔을 때렸다. 그 순간 팔과 함께 갈비뼈가 산산조각이 났고, 준은 그 충격을 버티면서 그대로 그녀의 품으로 뛰어들었다. 그리고 그나마 정상적으로 움직이는 오른팔로 그녀의 허리를 감고는 온힘을 실어 땅바닥에 처박았다.

솔직히 말하면 델타시스템의 고통완화와 체력시스템이 아니었다면 절대로 할 수 없는 행동이었다. 갈비뼈와 팔이 부러진 상태에서 제대로 힘을 실을 수 있었다는 것 자체가 시스템의 능력이었으니까.

“끄응. 방심하지만 않았어도 이렇게 당하진 않았을텐데.”

카렌이 억울하다는 듯 입을 열었다. 준에게 일격을 명중시키는 순간에 끝났다는 확신이 들었다. 그렇기 때문에 다음순간 가슴안쪽으로 파고 들어오는 준의 움직임을 놓친 것이다. 정신을 차리고 난 후는 이미 바닥에 쳐박힌 다음이었다. 얼마나 세게 바닥에 꽂았는지 척추가 부러져 숨이 턱하고 막힐 정도였다.

“애초에 나도 전력을 다한건 아니거든.”

준은 오로지 체술을 이용해서만 싸웠다. 그의 진정한 힘이 체술에 있는 것이 아니라 골렘소환, 염동력, 제작을 이용해 만든 각종 무기와 관성제어 등의 특수 기술에 있다는 걸 생각해보면 사실상 카렌의 완패라고 할 수 있었다.

“그건 나도 알아. 그래도 이런 싸움은 내 전공분야라고. 겨우 동수를 이루었다는 게 내 자존심에 얼마나 상처를 주는 지 몰라?”

“그런건 내 상관할 바 아니고. 그래도 이정도로 대등하게 싸운게 얼마만인지 모르겠군.”

사실 어지간한 상급헌터라고 해도 준에게는 상대가 되지 않았다. 육체적인 능력부터 압도를 하고 들어가기 때문이었다. 거기다가 실전에서는 사용할 수 있는 모든 능력을 끌어다가 쓰니 사람을 상대로 이정도로 치열하게 싸운 적은 거의 없다시피 했다.

“한 판 더 해.”

카렌이 입을 열었다. 아무래도 방심해서 당한게 마음에 들지 않는 모양이었다.

“회복되길 기다리면 귀속이 끝나있을 걸.”

“그러려나.”

카렌은 한숨을 쉬며 몸을 일으켰다. 척추가 나간 상태이기는 하지만 체력은 40퍼센트 가까이 남아 있었다. 그런 상태에서는 전투력의 손실이 있을 지언정 얼마든지 싸울 수 있었다. 펠로우쉽 계약자들의 특징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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