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프로젝트 델타-350화 (350/540)

0350 ----------------------------------------------

실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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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랫폼은 여전히 바빴다. 조만간 새크리파이스의 본 행성으로 출정이 있을 거라는 소문도 있었고, 전쟁으로 인해 밀린 업무들이 산처럼 쌓여있었다. 전투 중 손상당한 기체는 없었지만 손상된 적함을 인계하는 일은 미루기 어려웠다. 수라드에서도 그랬지만, 이스카야 해역에서도 기동불능이 된 적함이 한 기 남아 있었다. 로버에 의해서 반파된 상태로 기동이 정지된 녀석인데 아직 생존자가 남아있는 상태였던 것이다.

준이 알파시티에 있는 동안 제임스의 지휘에 따라 알바트로스를 이끌고 플랫폼을 빠져나온 그들은 적함을 향해 천천히 움직였다. 급한 일은 아니었기에 서두를 필요는 없었다.

“아아. 나도 물놀이 하고 싶은데.”

서은설이 한숨을 푹 내쉬었다. 준이 일할 겸 가족나들이를 하는 동안 자신은 이곳에서 칙칙한 우주공간이나 바라보고 있어야 한다는 사실이 안타까웠다.

“아직도 진전이 없냐?”

막스가 입을 열었다. 서은설이 고개를 저었다.

“요즘 전쟁이다 뭐다해서 너무 바빴잖아요. 그럴 분위기도 아니었고.”

“하긴. 겨우 한숨 돌린 상황이니. 아직도 끝난 것도 아니고.”

다행히 지금까지는 별 피해가 없었다. 그래도 새크리파이스에서 무슨 짓을 할지는 아무도 모른다. 아직 긴장을 놓을 때는 아니었다.

“도착까지는 얼마나 걸립니까?”

제임스가 서은설을 향해 입을 열었다. 그녀가 곧바로 대답했다.

“삼십분이면 될거에요. 그리 먼거리는 아니니까. 헌데 생존자가 있다면 위험하지 않을까요?”

“더 이상 싸울 의지도 없을 겁니다. 게다가 이번일에는 카렌 팀이 우선 진입할겁니다.”

“아아. 그녀 말이죠.”

서은설이 고개를 끄덕였다. 뭐랄까, 서로 대화는 많이 하지 않았지만 무언가 통하는 것이 있는 사람이었다. 동족혐오라는 말도 있지만, 그녀는 그다지 그녀에 대해서 적개심을 느끼지 않았다. 애초에 준이 그녀를 바라보는 눈빛에 아무런 감정이 들어있지 않다는 사실도 알고 있었다.

‘후. 나라고 다르진 않지만...’

서은설은 잠시 자기 혐오에 빠졌다가 고개를 저었다. 이런 정도로 좌절할거라면 애초에 시작하지도 않았을 사랑이었다. 루나를 같은 편으로 끌어들이면 금방 넘어올 거라고 생각한 것과 달리 준은 생각보다 철벽이었다.

그렇다고 자신과 거리를 아주 멀리 두느냐 하면 그런것도 아니었다. 친구라고는 하지만, 분명히 자신을 특별하게 생각하고 있다는 것은 사실이었다. 그런 미묘한 간격이 그녀를 애타게 만들고 있긴 했지만, 서은설은 서두르지 않았다.

‘준은 겁쟁이니까. 너무 과격하게 접근하면 도망간다고.’

나름대로 전략을 재구성하고 있는 서은설을 보며 막스가 혀를 찼다.

“찾아보면 다른 좋은 남자도 많을 텐데.”

“제발 아저씨라고는 말하지 말아줘요.”

“쯧. 아직 어려서 진정한 멋에 대해서 모르는 구나.”

“한 20년 정도 지나면 알지도 모르죠.”

“20년이라. 그 정도야 큰 맘먹고 기다려주지.”

“와아. 집요하셔라.”

서은설과 막스가 킬킬 거리며 농담따먹기를 하는 동안 카렌은 전투준비를 하고 있었다. 이번일이 델타스피릿에 와서 첫 임무인 만큼 인명피해 없이 해결해야했다.

“다들 긴장하고 있어. 대부분은 일반인이겠지만 혹시라도 헌터가 섞여있을 수도 있으니까. 만에하나 상처라도 입으면 각오해.”

“네. 리더.”

“팀장님이라고 불러. 이제는 소속이 바뀌었으니까.”

“네. 팀장님.”

카렌휘하의 헌터들이 동시에 대답했다. 다들 그녀에 의해 목숨 한번쯤은 건져본 사람들이었다. 그녀에 대한 믿음은 절대적이었다.

“적함에 접근 중입니다. 거리는 1킬로미터. 셔틀을 발사할까요?”

서은설의 말에 제임스가 고개를 끄덕였다. 함선끼리 너무 가까이 있다가 부딪히기라도 한다면 괜한 손해를 입을 수 있었다. 일단 셔틀이 먼저 적함을 장악하고 나서 인계선을 연결하는 편이 나았다.

“착륙장 1격벽 오픈합니다.”

디스플레이를 통해 카렌이 탄 셔틀이 서서히 열리는 문을 통해 움직이는 것이 보였다. 곧 2격벽, 즉 우주공간과 맞닿은 외부격벽이 열리며 셔틀이 빠져나갔다. 조종사가 셔틀의 조종에 익숙하지 않아 잠시 흔들거렸지만 곧 중심을 잡고 앞으로 나가기 시작했다.

“저쪽에서의 회신은 없었습니까?”

접근하기 전, 알바트로스에서 적함 ‘카스미’에 통신요청을 했다. 하지만 통신기가 고장난 것인지 그 뒤로도 회신은 없었다.

“네. 생명반응은 있는 것으로 봐서 통신기의 고장이거나, 아니면 다른 이유일 듯 합니다.”

“다른 이유라면, 역시 기습이라도 하려는 건가?”

“그럴수도 있습니다.”

서은설도 제임스의 의견에 고개를 끄덕였다. 어차피 손상을 입은 함선이다. 생명유지장치로 인해 잠시는 버틸 수 있지만 그것도 일주일이 넘어가면 더 이상 버틸 수 없을 것이다. 그런 상황에서 구조를 위한 통신을 보냈는데도 답이 없다는 이야기는, 통신기기가 고장났거나, 혹은 죽을 각오를 하고 있다는 이야기였다.

서은설은 부디 전자이기를 바랐다. 아무리 적이라고는 해도 이런 막막한 우주공간에서 산소의 부족으로 죽어간다는 것은 끔찍한 일이었다.

전원 강화복을 입은 상태로 셔틀이 선체에 내려앉았고, 그들은 돔형태의 차폐용 틀을 선체에 박았다. 선체를 뜯어냈을 때 산소가 빠져나가는 것을 막기 위해서였다.

위이잉-

하는 소리와 함께 특수제작된 산소절단기를 이용해, 선체의 겉면을 뜯어내었다.

[작업 완료 했습니다.]

[좋아. 내가 먼저 들어가지.]

덩치가 큰 카렌이 먼저 안으로 들어갔다. 혹시나 모를 사태를 대비해 그녀는 조심스럽게 움직였다. 아무리 상급헌터라고 해도 총격을 제대로 당하면 위험에 빠질 수 있었다. 강화복 자체가 어느정도 방탄복 역할을 하기는 하지만 충격량까지 흡수해주지는 못하기 때문이다.

통로로 내려선 카렌은 주변을 탐색하고는 손을 흔들어 이상없다는 신호를 보냈다. 그러자 그녀를 따라 팀원들이 내려왔다.

수색은 3인 1조로 나뉘어서 하기로 했다. 카렌을 포함해 상급헌터가 세 명으로 그들이 각 조의 리더가 되어 움직였다. 나머지 두 명은 그 자리에서 대기했다. 혹시나 위험한 상황이 생길 경우를 대비해 퇴로를 확보해 두려는 것이었다.

[아무도 없는 것 같습니다.]

카렌을 따라나선 팀원 중 한명이 입을 열었다. 전함 카스미의 크기는 약 200미터. 크기가 크기인 만큼 운용인원도 200명이 넘었다. 하지만 지금까지 단 한명의 모습도 찾아보지 못했다. 어쩌면 이미 모두 죽은 것인지도 몰랐다.

하지만 카렌의 생각은 달랐다.

[아니. 죽었다면 시체라도 보여야해. 이렇게 까지 아무도 안보인다는 건 어딘가에 숨어있을 확률이 높아.]

승무원들이 탈출했을 가능성은 낮았다. 워프엔진이 없는 탈출선으로 갈 수 있는 거리라고 해봐야 얼마 되지도 않는다. 최소 10년은 날아야 항성계를 빠져나갈 수 있을 것이다. 근처에 거주가능행성이 없다는 것을 생각해보면 이 곳에서 나간다는 것은 자살행위나 마찬가지였다.

[2조, 3조. 특이한 점 없나?]

[2조. 없습니다.]

[3조. 없습니다.]

[계속 수색하도록 해.]

카렌은 그렇게 무전을 하고는 빠르게 함교를 향해 움직였다. 적들이 숨어있다면 함교에 있을 확률이 높았다.

그렇게 카렌이 속한 조가 함교에 도착했다.

[잠겨있습니다. 어떻게 할까요?]

[어떻게 하긴. 부숴야지.]

카렌은 그렇게 말하고는 3단으로 접을 수 있는 단분자 검을 꺼내들었다. 이 무기의 가격만 50억이 넘는다. 하지만 그만큼 확실한 위력을 가지고 있는 물건이었다.

서걱!

그녀가 검을 휘두르자, 함교의 문이 깔끔하게 잘려나갔다. 사람하나가 들어갈 수 있는 크기의 구멍이 생기고, 그녀가 안쪽으로 몸을 들이밀었다.

타앙!

[큿!]

그때 함교 안쪽에서 총 소리가 들려왔다. 카렌이 황급히 뒤로 몸을 뺐지만 탄환이 어깨에 틀어박히는 것을 피할 수는 없었다.

[괜찮으십니까?]

[괜찮아. 강화복에는 문제없어.]

[그걸 물어본게 아닙니다.]

[체력이 좀 까지긴 했는데 아직 많이 남았으니 걱정하지마. 그나저나 안에 사람이 있다는 건 확실한 것 같군.]

일단 카렌은 검을 휘둘러 문의 넓이를 더 넓혔다. 그녀가 작업을 하는 동안 더 이상 총소리는 나지 않았다. 탄환이 부족하거나, 아니면 들어 올 때까지 기다려서 확실히 명중을 시키려고 한다거나, 혹은 둘 다인지도 몰랐다.

[한꺼번에 돌입한다.]

3, 2, 1.

카렌이 손가락을 접어 신호를 보냈고, 그녀가 주먹을 꽉 쥐는 순간 세명의 조원이 한꺼번에 함교의 안으로 뛰어들었다.

탕! 탕! 탕!

[다들 산개!]

카렌이 자신의 복부를 스치는 총알의 묵직함을 느끼며 큰 소리로 외쳤다. 생각보다 총성이 많지 않았다. 카렌은 슬쩍 고개를 내밀어 총소리가 들린 쪽을 바라보았다. 사람의 흔적이 보였다. 카렌은 강화복의 내구도와 자신의 체력을 믿고 그대로 달렸다.

쿵쿵쿵!

거의 120킬로그램에 가까운 카렌의 몸이 바닥을 박차면서 뛰자, 함교 전체가 울렸다. 동시에 다른 두 조원도 움직였다.

[적은 소수다. 일단 돌입해서 제압해.]

[알겠습니다.]

[네.]

카렌은 자신의 시야를 가로막는 콘솔을 밟고 그대로 뛰어올랐다. 함교의 기기들 사이, 사람하나가 들어갈 만한 작은 공간에서 몸을 움츠리고 있는 백발의 사내 한명과 눈이 마주쳤다. 그가 흠칫하며 권총을 들어 카렌을 향해 발사했다.

타앙! 탕!

티팅!

강화복에서 가장 튼튼한 부분인 헬멧에 맞고 튕겨나간 권총이 다시금 함교의 천장에 튕기고는 바닥을 굴렀다. 그 사이 카렌은 자신을 향해 총을 쏜 사내에게 접근해 컬을 들이밀었다.

“허억!”

[총 버려.]

달그락.

카렌이 마이크를 통해 입을 열자 백발 사내가 덜덜 떨면서 총을 내려놓았다.

[한 명 발견. 제압했습니다.]

[이쪽에도 하나 있습니다. 제압 완료 했습니다.]

함교에는 총 세명이 숨어 있었다. 운이 좋게도 별 다른 피해는 없었다. 카렌은 그들을 한곳에 모아 결박하고는 입을 열었다.

[이름.]

“카, 카스미의 함장 블랙 스미스요.”

백발의 사내가 입을 열었다. 나이로 봐서 함장이거나 혹은 베테랑 엔지니어 정도쯤 될거라고 생각했는데 적당히 맞춘 것 같았다.

[거참 이름 한번 요란하군. 그나저나 나머지 사람들은 어디에 있지?]

“어, 없습니다...”

[뭐라고?]

카렌이 눈썹을 꿈틀거렸다.

“전부... 전부 죽었습니다.”

함장인 블랙 스미스의 표정은 공포에 질려있었다. 자신의 목에 들이밀어진 검때문은 아니었다. 그보다 더욱 두려운 무언가가 있는 것 같았다.

[어떻게? 함선 내부는 생명유지장치가 건재한 상태인 것 같은데.]

강화복을 입고 있긴 했지만, 굳이 헬멧을 벗더라도 상관없을 정도로 함선내부에는 신선한 산소가 공급되고 있었다.

“괴물이 있습니다. 제발 살려주십시오.”

블랙이 카렌의 다리를 잡고 매달렸다. 진심으로 그는 그 괴물이라는 것을 두려워 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 괴물의 정체에 대해서는 다들 잘 모르는 상태였다. 알 수 있는 것이라고는 인간이 아닌 무언가가 승무원들을 잡아먹었다는 것. 그리고 피한방을 살한점 남지 않을 정도로 깨끗이 먹어치운다는 점이었다.

[괴물이라... 외도가 함선내에 있는 지도 모르겠군.]

[어떻게 들어왔을까요?]

[글쎄. 우리에게 그건 별로 중요하지 않아. 괴물을 처리하고, 혹시 더 있을지 모를 생존자를 찾는다.]

카렌은 나머지 2조와 3조에게 상황을 전달했다. 혹시나 외도의 존재가 발견되면 곧바로 연락이 올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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