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프로젝트 델타-347화 (347/540)

0347 ----------------------------------------------

자양 강장제

*

*

*

펄의 등장은 직원의 이목을 끌었다. 넉살좋게 사람을 사귀는 서은설이나, 차마 쳐다볼 수 없을 정도로 아름다운 에피알게나스가 있었지만 뉴페이스의 등장은 항상 사람들을 설레게 하는 법이다.

“그러니까 말이야. 지금까지 혼자 살아왔다는 거야?”

“아. 응. 그래. 말을 하는 것도 처음이야.”

“아아. 준은 참 이런 애들을 잘도 줏어온다니까.”

막스가 입을 열었다. 플랫폼의 식당은 동시에 주점의 역할을 한다. 그곳을 맡고 있는 주인이 마스터이니 만큼 당연한 일이었다. 그러다보니 직원들은 하루 일과가 끝나면 모두 식당으로 모여들었고 그들은 막스와 펄이 나누는 대화에 귀를 기울이고 있었다.

“어려운 일이 있으면 나에게 부탁해. 뭐든지 도와줄테니까. 필요한게 있으면 사줄게.”

막스는 그렇게 말하며 은근슬쩍 지갑을 열어보여주었다. 그 안에는 현금이 다발로 들어있었다. 준이 한심하다는 듯이 입을 열었다.

“돈자랑도 해본놈이나 하는거지... 쯧.”

“뭐 임마. 니가 해보라며.”

“그렇다고 현금을 그렇게 보여주면 누가 좋다고 하겠냐? 센스라는게 없어요.”

“그런 면에서는 준도 할말이 없을 것 같은데.”

서은설이 칵테일을 한모금 마시고는 입을 열었다. 막스가 킬킬거리면서 손가락질을 했다.

“거봐. 너나 나나 다를게 없다고. 은설이도 말하잖아.”

“그래도 아저씨 보다는 낫죠.”

“아, 아저씨... 언제는 오빠라고 그러더니.”

“그러니까 누가 그렇게 치근덕거리래요? 사람이 잘해주면 선을 지킬줄알아야지.”

서은설은 막스를 향해 혀를 내밀었다.

“내가 뭘. 성희롱을 했냐 뭘했냐?”

“그렇게 쳐다보는 것도 성희롱이거든요.”

“내 눈이 그리로 가는 걸 어쩌란 말이야. 그럴거면 짧은 바지를 입지 말던가.”

“헐. 대박. 들었어? 요즘세상에 아직도 저런 아저씨가 있다니.”

서은설이 기가막히다는 듯 입을 열었다.

탁.

마스터가 막스의 앞에 투명한 액체가 담긴 잔을 내려놓았다.

“이게 뭐요?”

“정신 좀 차리게. 그 나이먹고 어린여자나 밝히고 다니지말고.”

“끄응... 마스터까지 그러기요? 내가 그래도 마스터 1호팬인데.”

막스는 틈날때마다 마스터가 출연한 프로그램을 챙겨보고 있었다.

“별로 안반갑네만.”

“쳇. 내 편은 아무도 없구만. 빨리 동생들이 출소를 해야 내 편이 생길텐데.”

“그러고보니 그 동생들 얼마나 있어야 출소하는거야?”

준이 묻자 막스가 곰곰이 생각하더니 입을 열었다.

“이제 얼마 안남았어. 무스타파가 1년. 마흐무드가 3개월. 그리고 배정현은... 얼마였더라...?”

“내일 입니다.”

제임스가 늦은 저녁식사를 마치고 자리에서 일어나며 입을 열었다. 곧바로 사라지는 것으로 보아선 또 야근인 모양이었다. 준은 이번 싸움이 끝나면 어디서 쓸만한 녀석을 좀 스카웃 해와야 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헉? 그, 그랬나?”

“자기 동생들에게도 관심이 없는거냐?”

준의 말에 막스가 어색한 웃음을 흘리며 입을 열었다.

“그러게. 내가 왜 몰랐지. 비교적 최근에 받아들인 녀석이라 그런가... 어쨌거나 그럼 마중을 나가야 할텐데.”

“연락 안왔어?”

“그러게. 왜 말이 없었지.”

막스는 델타폰을 들었다. 배정현은 아직 펠로우쉽 통신이 안되기 때문에 델타폰을 통하지 않고선 서로 연락이 되지 않았다. 파티는 어느정도 거리가 벗어나면 자동으로 풀려버리기 때문에 알카트뢰즈와 상당히 거리가 있는 이곳에서는 파티채널을 통해 대화를 하는 것도 불가능했다.

“전화도 안받네. 자는건가? 이봐 준. 내 동생들에게 펠로우쉽 통신 권한을 좀 열어줄 수 있어?”

“아. 그쪽도 막혀 있었던 건가? 진작 이야기 하지.”

준은 그렇게 말하며 아랍형제와 배정현의 펠로우쉽 통신을 가능하도록 설정했다.

“그나저나 왜 그걸 막아놓은거야. 편하기만 한 기능인데.”

“광고메시지를 막을 길이 없잖아. 얼굴도 모르는 녀석이 보내는 메시지 같은거 받고 싶지 않다고.”

현재 펠로우쉽 통신은 다른 일반 계약자들에게는 막혀 있는 상태였다. 파티를 맺어야만 서로 대화를 할 수 있도록 준이 제한해 둔 것이다. 만약 그렇지 않다면 준에게 의미없는 메시지가 계속해서 날아올 수가 있었다. 펠로우쉽이 1만명에 거의 근접한 상황이니 만큼 그런 제한은 반드시 필요했다.

‘델타폰 판매에도 영향이 있고 말이지.’

여러가지 잡다한 기능이 붙어 있기는 하지만 기본적으로 델타폰은 통신기다. 적어도 알카트뢰즈 안에서 만큼은 그러한 통신기능이 델타폰의 주요판매 동력이 되었다. 거기다가 통신비도 저렴하다고는 하지만 경험치로 받고 있으니 모두 준에게는 피가 되고 살이되는 것들이었다.

탁.

마스터가 펄의 앞에 손바닥 만한 접시를 내려놓았다. 그 위에는 먹음직 스러운 치즈케익이 놓여 있었다. 요리만 할 줄 아는게 아니라 제빵쪽도 나름 능력이 있는 모양이었다. 준의 눈빛을 읽은 그가 입을 열었다.

“이건 기술로 만든걸세.”

“제빵기술도 있어요?”

“잠깐 배우니까 익혀지더군. 어차피 파티셰가 될 생각은 없으니 이정도로도 충분하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요리는 고집스럽게 직접 만들면서 빵은 기술을 발현해서 만드는 걸 보면, 아직 본인이 만드는 빵의 솜씨가 자신이 없기 때문인 모양이었다. 어쨌거나 펄은 처음보는 치즈케익의 맛을 한 번 보더니 정신없이 먹기 시작했다. 그 바로 옆에서 시미도 입에 빵조각을 묻혀가며 파먹고 있었다. 그리고 그 뒤로 막스가 다가가 수저를 꺼내들었다. 그 수저가 또 금으로 만든 수저였다.

“어휴... 진짜 기름부자도 아니고...”

준은 금수저를 들고 케익의 맛을 보고 있는 막스를 보며 한숨을 쉬었다.

[*특집*델타스피릿 인기투표!]

뜬금없이 포럼에 이런 글이 올라왔다. 마스터의 요리를 기다리며 다음 전투에 대해서 구상하고 있던 준이 발견한 게시글이었는데, 사람들의 폭발적인 인기를 얻으며 게시판 최상단에 위치하고 있었다.

거기에는 참여자들의 명단과 사진이 게시되어 있었다. 몇몇은 협조를 얻어서 찍은 사진처럼 보였고, 또 몇몇은 도촬이 분명해 보였다. 준은 혀를 끌끌차며 게시글을 닫을까 하다가 일단 들어가 보기로 했다.

그 곳에는 델타스피릿 내의 여성직원들에 각각 번호가 매겨진 채로 인기투표가 이루어지고 있었다. 예상대로 1위는 에피알게나스였다. 그녀의 사진에는 자그마치 1만표가 넘는 표가 몰리고 있었다. 델타폰을 사용하는 모든 사람들을 대상으로 하는 것인 만큼 성격은 그다지 고려요소가 되지 못했다.

아니 오히려 차가우면서도 이지적인 이미지가 덧씌워져 별의별 환상적인 찬사들이 오가고 있었다.

진정한 싸움은 2위부터였다. 그 자리는 루나와 시미, 그리고 서은설이 각축전을 벌이고 있었다. 다들 장점이 있는 만큼 또 단점이 있었다. 루나는 애엄마라는 점. 시미는 선호 계층이 한정적이라는 점. 서은설은 셋중에 외모가 가장 떨어진다는 점이었다. 그렇게 셋이서 각축전을 벌이고 있는 사이 조용히 등장한 다크호스가 있었으니 그건 다름아닌 카렌이었다.

“호호호호호! 역시 사람보는 눈은 어디나 똑같다니까.”

카렌이 식당문을 박차며 들어왔다. 그녀를 호위하듯 따라오는 이들은 모두 그녀의 팀원들이었다. 직원들간의 위화감 조성을 막기 위해서 브라운 공격대라는 이름은 없애고 그냥 카렌 팀으로 부르고 있었다.

그렇다고는 해도 아직 얼굴들이 낯설어 잘 섞이지는 못하고 있었다. 온지 얼마 되지 않았으니 당연하다면 당연한 일이었다.

“뭐, 사진빨은 잘 받더만.”

그녀는 키가 크다뿐이지 전체적으로 밸런스는 좋은 편이었다. 때문에 단독사진으로 보면 그녀의 거대함에서 오는 위압감이 상대적으로 줄어들었다. 하지만 실제로 눈앞에서보면 미인이고 뭐고 크다는 생각밖에 들지 않는다는 것이 문제였다.

“사진빨이라니. 실물은 더 죽여준다고.”

카렌이 준의 옆에 털썩 앉더니 입을 열었다.

“뭐, 정말 죽을 것 같긴 하지.”

“우리 사장님, 비꼬는 재주가 있네.”

“기분나쁘다면 사과하지.”

“아니. 뭐 장난인데 그런걸로 사과까지. 어쨌거나 마스터? 마스터라고 부르면 되나요?”

“얼마든지.”

마스터가 컵을 닦으며 대답했다. 카렌이 씨익 웃으며 입을 열었다.

“술 한잔 주세요 진한걸로. 쟤네들한테도 가져다 주고.”

그녀는 식당 한쪽에 자리잡은 팀원들을 가리켰다. 막스가 고개를 끄덕였다. 정신없이 서빙을 하는 것은 플랫폼에 살고 있던 노인들이었다. 젊은 사람들이 술을 마시는데 노인을 부려먹는 것 같은 기분이 들긴 하지만. 별다른 기술이 없는 이들에게는 이런 직장이 있는 것이 오히려 더 나은 일이었다.

정직원은 아닌 계약직이기는 하지만 오래일하면 펠로우쉽에 넣어주고 정직원 승격을 약속했더니 많은 나이에도 불구하고 열성적으로 일을 하고 있었다.

처음에는 준의 옆에 붙어 있던 카렌은 술이 들어가기 시작하자 자리를 옮기면서 직원들 사이에 끼어들어 이야기를 나누기 시작했다. 남자를 밝히기는 하지만 성격자체는 괜찮은 것 같았다. 서은설이 여우처럼 사람들을 자기편으로 만든다면, 카렌은 화통한 성격으로 사람들 사이에 끼어들었다. 리더쉽도 있고 성격도 모나지 않아 크게 걱정할 것은 없어보였다.

준은 혼자서 조용히 맥주를 홀짝이고 있었다. 사람들 사이에 어울리는 재주는 없는 준이라 적극적으로 끼어들기보다는 혼자서 술을 마시는 편이 편했다.

-많이 늦어?

루나에게서 메시지가 도착했다.

-아직. 마스터와의 볼일이 안끝나서.

-엘라는 잠들었어. 나도 좀 자둘게.

-그래. 고마워.

루나와의 통신을 마치고 준은 바 테이블에 몸을 기댔다.

‘그러고보니 어느새 사람들이 이렇게 많아졌네...’

현재 델타스피릿의 정직원은 60여명에 달했다. 펠로우쉽 계약을 맺지 않은 양주안 휘하의 직원들은 현재로서는 임시계약직이라고 할 수 있었다. 좀더 오랜기간 근무하고 신뢰를 쌓으면 그들도 언젠가는 정직원의 기회가 주어질 것이다.

물론 그전에 펠로우쉽의 TO를 늘리기 위해서라도 20레벨은 찍어둬야 했다.

‘시끌벅적한 것도, 나쁘진 않아.’

새크리파이스에 있을때는 늘 혼자였다. 혼자서 밥을 먹고 혼자서 생각했다. 가끔이지만 자신과 말을 섞어주는 사람도 있었다. 그때는 그것만으로도 살만하다고 여겼다. 하지만 이렇게 많은 사람들 가운데 있다보니, 그때의 기억이 악몽처럼 여겨졌다.

그리고 자신에게 그런 경험을 안겨준 새크리파이스에 대한 분노가 다시금 치밀어 올랐다.

‘그러고보니. 마리엘은 뭐하고 있으려나.’

현재 2번 던전에서 살고 있는 녀석은 준에게 몇번 죽임을 당하고 나서 고분고분해진 상태였다. 준에게서 벗어날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달은 모양인지 그토록 자신만만하던 태도도 모두 사라져 있었다.

그런 그를 보니 복수심도 많이 사그러든 상태였다. 예전에는 알카트뢰즈에서 나가기만 하면 죽여버리겠다고 몇번이나 다짐했다. 하지만 지금은 그를 죽이는 것이 그다지 내키지 않았다.

‘애초에 별다른 위협도 되지 않고.’

가치없는 목숨을 빼앗는 것 만큼, 의미없는 일이 없었다. 차라리 적당한 가격에 그를 팔아넘기는 것이 낫다는 생각이 들었다. 새크리파이스 쪽에 연줄이 있는 듯 했으니 상당한 몸값을 받을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되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