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345 ----------------------------------------------
자양 강장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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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파렴치한...]
[파렴치하다니... 인간적으로 조개안에 사람이 있을거라고 생각하는 게 이상한거 아닌가.]
[어쨌든 지금이라도 알았으면 그만 돌아가 줘. 여긴 내 집이니까.]
지느러미를 부르르 떨며 화를 내는 그녀를 보며 준은 가만히 생각했다.
‘이 녀석도 외도인 것 같기는 한데... 그냥 두고가기에는 좀 아깝다는 생각이 드는데.
하지만 플랫폼에 이 녀석을 담을만한 수족관이 있으려나?’
어쨌건 간에 놈은 외도였다. 그냥 조용히 이곳에서 살게 내버려 두는 것도 방법이었지만, 이런 진귀한 외도를 놓고 가는 것은 아까운 일이었다. 수중형 외도인 만큼 데리고 있으면 쓸데가 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는 이내 고개를 저었다.
‘골치 아파... 그냥 외도도 아니고 여자애인데다가 인어라니. 아무리 생각해도 귀찮은 일이야.’
하지만 기껏 조개껍질을 열어서 주인까지 때려눕히고 나서 얻어가는게 없다면 그건 그거 나름대로 억울한 일이었다.
물론 집 주인 입장에서야 개소리로 밖에 들리지 않겠지만, 준의 입장에서는 투자한 만큼의 대가를 받아갈 생각이었다.
그리고 그녀를 제외하면 이 곳에서 가져갈 것은 단 하나밖에 없었다. 그는 고개를 들어 대왕조개의 내부를 둘러보았다. 안쪽은 진주색으로 반짝이고 있었고, 내부 공간도 바깥에서 보던 것보다 훨씬 더 넓고 안락했다. 거의 건물 두 채는 들어갈 정도로 보였는데 은근하게 엑조틱 에너지가 느껴지는 것으로 보아선, 조개 자체에 공간확장 기능이 있는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또한 대왕조개는 그 자체로서 상당히 볼거리가 되었다. 알파시티에 가져다 놓으면 랜드마크까지는 아니더라도 도시의 명물 정도는 될 수 있을 것 같았다. 준이 붉은머리 인어를 향해 입을 열었다.
[미안한데 집을 좀 가져가야겠어.]
[그게 무슨 소리야?]
[설득시킬 생각은 없어. 그냥 너를 잡아가는 대신 가져가는 거라고 생각해.]
[안 돼. 이건 내가 태어날때부터 살고 있었던 곳이란 말이야.]
[그건 네 사정이고. 집은 새로 구하면 되잖아. 죽이지 않는 것만으로 고맙게 생각하라고.]
[이익...]
그녀가 머리칼로 자신의 몸을 한바퀴 감더니 준을 향해 길게 겨누었다. 그녀의 머리는 시미보다도 훨씬 길었는데, 처음 자신을 공격했던 순간을 생각해보면 지금 보이는 것보다 더 길어질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머리칼을 공격도구로 사용한다는 건, 자유자재로 길이를 조절할 수 있다는 뜻이기도 하겠지.’
단백질 보충을 꾸준해 해야겠구나, 하는 쓸데없는 생각을 하며 준은 라이트세이버를 겨누었다.
[맞고 나갈래, 그냥 나갈래.]
[아저씨 깡패에요...?]
[아닌데.]
[그러면 대체 왜 그래요? 조용히 잘 살고 있었는데.]
[원래 자연은 약육강식의 세계야. 게다가 넌 인간도 아니잖아. 외도는 인간의 적. 그러니까 내가 네 집을 가져가도 그건 법적으로 문제도 안 돼.]
[그, 그럴수가...]
붉은머리 인어는 나라잃은 표정으로 멍하니 준을 쳐다보았다. 그러거나 말거나 준은 그녀를 집밖으로 몰아내었다.
[하, 하지만 이 집을 가져가지는 못할거야. 엄청나게 무겁...]
그녀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대왕조개가 인벤토리 안으로 사라졌다. 갑자기 사라진 자신의 집을 보던 그녀의 눈동자에 초점이 사라졌다.
[그럼 간다. 미안하긴 한데, 살려두는 것만해도 고맙게 생각해.]
준이 그녀를 살려주는 이유는 그다지 위험해 보이지 않아서였다. 거의 500미터 정도 되는 깊이의 바다속에 들어올 사람도 없고, 이정도 수심에 사는 그녀가 물밖으로 나올 일도 없을거라고 생각했다. 사람에게 해가 되지 않는 녀석인데다가 또 시미처럼 인간을 닮은 녀석을 죽인다는 건 아무래도 껄그러웠다.
-와. 피도 눈물도 없네여.
-살려준 것만으로도 감사해야지.
-그건 그런데... 그래도 불쌍해요. 쟤 울고 있잖아요.
-어차피 물속이라 보이지도 않잖아. 연기하는 건지도 모르지.
외도가 힘들어 하든 말든 그건 자신과 상관없는 이야기였다. 하루에도 수십마리씩 때려죽인 외도들과 저 녀석의 차이점은 그저 사람처럼 생겼다는 것 하나뿐. 굳이 그가 동정을 해야할 이유는 없었다.
-그럼 올라가자.
-네에.
시미는 안타까운 듯 고개를 돌려 뒤를 바라보았다.
[거기 서!]
뒤에서 인어의 목소리가 들렸다. 준은 들은체 만체하고는 그대로 이동했다. 관성제어를 통해 몸을 가볍게 하자 그의 엄청난 기세로 떠오르기 시작했다.
[이익... 이 집도둑놈아!]
그리고 그런 준의 뒤를 붉은머리 소녀가 맹렬하게 추격하기 시작했다. 물살을 가르며 상승하는 그녀의 속도는 준의 떠오르는 속도를 돌파할 정도로 엄청나게 빨랐다.
준도 스피드를 올렸다. 괜히 말을 섞어봐야 서로 피곤하기만 할 뿐이다. 하지만 어지간히 속도를 올려도 그녀와의 거리는 벌어지지 않았다.
‘저 녀석 무슨색 외도인거지?’
가끔이지만 외도의 결정도를 알아보기 힘든 경우가 있었다. 보통은 눈동자 색이나, 발현하는 엑조틱 에너지의 색깔로 구분하는데 그녀에게서는 하얀빛만 뿜어져 나오고 있었던 것이다. 추측컨대 조개 안에서 오랫동안 살면서 빛을 뿜어내는 능력을 얻은 모양이었다. 그 빛이 엑조틱에너지의 색을 지워버리고 있는 것이었다.
순식간에 200미터 가량을 상승한 준은 슬쩍 뒤를 돌아보았다. 그녀는 도끼눈을 하고 필사적으로 준을 따라오고 있었다. 보통의 생물체라면 200미터정도롤 급상승하게 되면서 생기는 혈액내의 기포가 산소의 흡수를 막아 잠수병에 걸리겠지만, 저렇게 보여도 외도인지라 그런 것은 별로 신경쓰지 않는 모양이었다.
준이 우뚝 서자, 따라오던 그녀도 급히 속도를 줄였다. 준은 얼굴을 붉힌채 자신을 노려보고 있는 인어를 향해 입을 열었다.
[더 따라오면 진짜 죽여버린다.]
준이 그녀를 향해 으르렁대자 움찔하는 것이 느껴졌다. 대흉근의 팔을 잘라버릴 정도의 능력이 있었지만, 준에게는 당할 수 없다는 것을 경험으로 알고 있었다. 그리고 준의 말은 절대 농담처럼 들리지 않았다.
하지만 준이 다시 상승하자, 그녀도 곧바로 준의 뒤를 따랐다.
‘죽여버릴까.’
하지만 내키지 않았다. 여러 가지 이유가 있지만 가장 큰 이유로는, 역시 사람을 닮았다는 점 때문이었다. 녀석이 준을 공격한 것은 사실이었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방어를 위해서였다.
‘물밖으로 나가면 포기하겠지. 녀석이 하늘을 나는 재주가 있는 건 아닐테니까.’
잠깐이지만 그냥 저녀석을 데리고 갈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어쨌건에 외도라고는 해도 겉모습은 말그대로의 인어였다. 사람들이 상상하는 그대로 충분히 아름답기까지 했다. 커다란 수족관에 넣어 관상용으로만 길러도 제법 나쁘지 않을 것 같다는 생각도 했다.
하지만 어찌보면 그게 더 잔인한 일이다. 그냥 내버려 두고 가는게 그녀를 위해서도 나은 일이었다.
촤악!
그리고 마침내 수면위로 준이 올라섰다. 관성제어의 힘을 통해 그대로 날아오른 준은 셔틀이 있는 방향을 확인했다.
‘생각보다 좀 멀리왔군.’
멀리 약 3킬로미터 지점에 셔틀이 보였다. 준은 허공에 뜬 채로 그대로 셔틀을 향해 날았다.
“거기 서라고 도둑놈아!”
그리고 준은 수면위로 빠르게 헤엄을 치며 자신을 쫓아오는 인어를 발견했다.
“끙...”
준은 어쩔 수 없이 그 자리에 멈추고는 수면으로 내려섰다.
척.
준은 물 위에 발을 딛고 섰다. 그러자 붉은머리 소녀가 물위로 머리를 내밀고는 준과 10여미터 거리를 두고 멈추었다.
“따라오지 말라고 했을텐데.”
“내, 내집을 돌려주면 갈거야.”
“이건 내 전리품이야. 내가 왜 돌려줘야하지?”
“그런 억지가 어디에 있어? 그건 원래 내 집이잖아!”
거의 필사적으로 매달리는 그녀를 보며 준은 좋은 생각이 떠올랐다. 그는 입가에 미소를 지으며 입을 열었다.
“좋아.”
“좋다고?”
“돌려주겠다고.”
“저, 정말이야?”
갑자기 달라진 준의 태도에 그녀가 반색하며 입을 열었다.
‘이렇게 순진할 수가...’
준은 표정관리를 하며 손가락을 하나 세웠다.
“단 조건이 있어.”
“뭔데? 내가 들어줄 수 있는거라면 들어줄게.”
“디모나이트라고 알아?”
“디모나이트? 몰라. 그게 뭐야?”
준은 델타폰을 인벤토리에서 델타폰을 꺼내들고는 그녀를 향해 천천히 다가갔다. 인어소녀가 움찔 놀라며 뒤로 물러섰지만 준이 델타폰에 디모나이트의 사진을 띄우고는 천천히 다가가자 그녀도 준이 해치려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깨닫고는 자리에 멈추었다.
“이 사진 보이지? 이게 디모나이트야.”
“아. 나 얘들 알아. 돌돌이 조개잖아.”
“돌돌이라니... 어쨌든 이거 한 마리만 잡아오면 집을 돌려줄게.”
“정말이야?”
“그래. 약속할게.”
“알았어. 그럼 잠깐만 기다려. 내가 잡아올테니까 그때까지 다른데로 가면 안돼?”
“알았다니까.”
“정말이야. 여기서 기다려야 돼. 나 금방 올테니까.”
“알았다고. 빨리 가기나 해.”
준의 대답에도 그녀는 몇 번이나 더 확답을 받고는 물속으로 들어갔다. 그 사이 준은 시미가 들어있던 물통을 비우고는 그녀를 어깨위에 올렸다.
“진짜 집 돌려줄거에요?”
“약속했잖아.”
“그럴 리가... 준이 그럴 리가 없는데...”
시미가 고개를 갸웃거리며 중얼거렸다.
“내가 뭐 어떻다고.”
“그야 준은 나쁜사람이니까?”
“뭐 임마?”
준은 시미를 잡아서는 그녀의 볼을 잡아당겼다.
“으아아... 얼굴커져욧.”
“안그래도 커. 예전부터 생각했던 건데. 너 몸에 비해서 머리가 너무 크지 않아?”
“귀여우니까 괜찮아요.”
흥, 하고 고개를 팩 돌리는 시미를 보며 준이 기가차다는 듯 웃음을 흘렸다.
“자기 입으로 그런 말을 하고도 안부끄럽냐?”
“거짓말쟁이보단 낫죠.”
“나참. 거짓말 아니라니까. 진짜 돌려줄거라고.”
“무슨 꿍꿍이가 있는거죠?”
“노코멘트. 어쨌든 약속은 지킬 생각이야.”
“흐음... 아무래도 수상해요.”
시미가 눈을 가늘게 뜨며 준을 쳐다보았다. 준은 애써 시선을 돌리며 붉은머리 인어소녀가 나타나기를 기다렸다.
파도가 출렁이자 준의 몸도 따라서 움직였다. 현재 준은 바다위에 대자로 누워서 하늘을 바라보고 있었다. 시미는 준의 가슴위에서 마찬가지 자세로 누워 있었다. 시미가 누운 채로 입을 열었다.
“바다라는 게 생각보다 넓네요.”
“그야. 넌 작은 호수만 봤으니까.”
그녀가 살던 오아시스는 제법 큰 규모라고는 해도 지름이 100미터 정도밖에는 되지 않았다. 이런 대양과 비교할 수조차 없는 크기였다.
“물고기도 많이 살고... 이런 곳에 살면 친구도 많을까요?”
“친구가 갖고 싶어? 은설이가 있잖아.”
“으으... 그 언니는 너무 무서워요. 자꾸 동생취급하고.”
시미가 고개를 도리도리 저었다. 확실히 그녀와 함께 있는 시미의 모습은 그냥 말안듣는 막내동생 느낌일 뿐 친구라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검둥이는?”
“걔는 너무 게을러요.”
“엘라랑 놀아주면 되잖아.”
“걔는 너무 잠이 많아요.”
“아직 애잖아.”
그녀가 빠르게 성장하고 지적능력도 뛰어나다고는 해도 아직 태어난지 첫돌도 안된 아이일 뿐이다. 그리고 그 나이대의 아이들처럼 엘라도 잠이 많았다. 밤에 자는 것은 기본이고, 낮에도 종종 잠에 빠졌다. 모두 합하면 거의 하루에 열네시간 이상을 잠들어 있을 것이다.
“그래서 말인데요.”
“뭐?”
“쟤랑 놀면 안돼요?”
시미가 가리킨 방향에서 무언가 물살을 가르며 오고 있었다. 천리안을 통해 보니 다름아닌 디모나이트였다. 사정을 모르는 사람이 보면 대형 앵무조개가 스스로 헤엄을 치면서 오는 것처럼 보일 것 같았다.
“도착했군. 끄응.”
준이 기지개를 펴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시미가 준의 어깨위로 올라가고 이윽고 물살을 가르며 디모나이트 한 마리가 준의 앞에서 멈추었다. 그리고 곧 수면아래에서 인어소녀의 붉은 머리칼이 비죽 솟아올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