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343 ----------------------------------------------
자양 강장제
*
*
*
‘그럼 슬슬 찾아볼까.’
물속은 바깥보다 시야가 좁아질 수밖에 없다. 준은 선 자리에서 천리안을 펼쳤다. 아직 초급에 불과했지만 1킬로미터 거리의 사물을 마치 코앞에 있는 것처럼 볼 수 있는 기술이었다.
기술을 시전하자 다행히 물속에서도 제대로 기능하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다만 바깥에 있을때보다는 시야가 확연히 좁아지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지금 숙련도가 81퍼센트니까... 일단 중급까지 좀 올려볼까?’
천리안의 숙련도는 계속해서 사용하고 있으면 자동적으로 오른다. 준은 느긋하게 걸으면서 주변을 둘러보았다. 관성제어와 천리안을 사용하며 마나는 꾸준히 소모되고 있었지만 마나회복 속도를 올려주는 ‘명상’스킬이 중급에 올라 있었기 때문인지 그리 신경 쓸 정도는 아니었다.
-너무 어두워요.
-아무래도 여기까지 햇빛이 내려오기는 힘드니까. 전등같은 거라도 챙겨올 걸 그랬나...
물의 입자는 대기보다 훨씬 더 오밀조밀하다. 400미터쯤 되면 빛의 파장이 물 분자에 산란되어 점점 어두워지기 마련이었다.
라이트마법을 사용할까 하다가, 준은 생각을 바꿨다.
‘굳이 마나를 사용할 필요는 없겠지.’
준이 물속에서 팔을 펼치자, 그의 손에 라이트세이버가 잡혔다.
화앗!
그러자 어두컴컴한 바닷 속에서 밝은 빛이 뿜어져 나왔다. 캄캄한 어둠속이다 보니 라이트세이버의 빛이 평소보다 두배는 더 밝은 것처럼 느껴졌다.
‘나쁘지 않은걸.’
라이트 마법을 사용하는 것만큼이나 밝았다. 마나를 좀 더 주입하자 더 밝아지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준은 염동력을 이용해서 라이트 세이버를 머리위에 띄우고는 이리저리 움직이며 사방을 비추었다.
-와. 편리하네요.
-그러게. 이런 식으로 쓸 수도 있구나.
무기를 전등 대용으로 사용하다니 본인이 생각해도 기가찼지만, 상당히 편리하다는 것은 사실이었다.
빛이 밝혀지자 인근으로 물고기들이 움직이는 모습이 보였다. 얕은 바다에 비해 그 수는 확연히 적었지만 그래도 충분히 생명체가 살 수 있는 정도의 깊이였다. 심해라고 할 수 있는 수킬로미터의 깊이에서 사는 놈들도 있으니 이정도면 녀석들에게는 얕은바다라고 할 수도 있었다.
‘음?’
준은 멀리서 은은하게 붉은 빛을 뿌리며 접근하는 물고기를 보았다. 멀리서 볼때는 얼추 도미와 비슷하게 생겼는데 녀석이 점점 접근하자 준은 녀석이 평범한 물고기가 아니라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제법 큰데?’
-와아. 크다.
시미가 눈을 동그랗게 뜨며 녀석을 쳐다보았다. 그럴만도 한 것이, 크기가 거의 고래에 육박할 정도였다.
준의 시야에 녀석의 모습이 완전히 나타나자, 통합정보시스템에서 녀석의 이름을 띄워주었다.
시브림
크기 5~10미터의 어류형 외도. 200~500미터 깊이의 바다에서 서식하며 눈에 보이는 것은 뭐든지 먹어치운다. 주요 공격방법은 아가미에서 흘러나오는 독액. 물보라를 이용해 독액을 적에게 흘려보내 마비시킨 후, 날카로운 이빨로 공격한다. 독액은 강화복을 부식시킬 수 있으니 녀석을 만나면 일단 최대한 멀리 떨어져서 상대하기를 권함. 가끔 무리를 지어 나타나는 경우가 있으니 주의요망.
‘고마운 정보군.’
준은 외도대백과의 정보를 보며 일단 뒤로 슬쩍 물러섰다. 어차피 이곳까지 온 이상 녀석을 그냥 살려보낼 생각은 없었다. 외도백과사전에 올라올 정도면 희귀한 녀석은 아니겠지만, 그래도 마스터의 손에 맡기면 그럭저럭 신박한 요리가 나올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실러스토가 생각나는데요.
-아아. 그 건방진 물고기 녀석 말이지?
레이크시티를 건설하기 전 호수의 주인을 자처하던 물고기였다. 결정체만 흡수한 다음 고기는 마스터에게 맡겨서 요리를 해 먹었던 기억이 떠올랐다.
-그거 꽤나 맛있었지.
준은 거의 고기나 다름없던 육질을 떠올리며 자신을 향해 슬금슬금 다가오는 시브림을 향해 시선을 고정했다.
‘덩치가 크니 니들건으로는 잡기 힘들겠군. 애초에 바닷속이라 힘들려나.’
애초에 니들건은 배터리로 동작하는 기계였다. 물속에서 제대로 작동될리 없었다.
‘원거리 마법은... 그것도 힘들겠군.’
준이 사용하는 마법들 중 상당수가 화염계열 이다. 전격계열을 썼다가는 자신에게도 피해가 올테고, 유일하게 사용할 수 있는 물속성 마법은 아쿠아 볼이나 워터스피어 같은 마법인데 놈의 덩치를 생각하면 그다지 큰 타격을 주기는 힘들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결국 근접전이 답인가... 강화복이 부식되면 마나소모가 커질텐데.’
현재 준이 바닷속에서 버티는 것은 강화복의 도움을 얻어서였다. 아무리 그라고 해도 맨몸으로 41기압의 강력한 수압속에서는 관성제어의 힘을 빌릴 수밖에 없고 그렇게 되면 마나소모량이 더욱 커지게 된다. 결국 그만큼 바닷속에서의 활동시간이 줄어들게 되는 것이다.
‘강화복이야 몇 개 더 있으니, 던전에 들어가서 갈아입으면 되려나.’
웜홀을 물속에서 연다고 해서 던전안으로 물이 쏟아져 들어가거나 하는 건 아니다. 우주공간에서도 문제없이 입구를 열었으니 물속이라고 해도 마찬가지 일 것이다.
준은 물속을 떠다니던 라이트 세이버를 손에 쥐었다. 마나를 끌어올리자 빛이 더욱 밝아지며 시브림의 모습이 확연히 드러났다.
근처를 둘러보니 단독행동을 하는 놈인 것은 확실해 보였다.
부르르-
갑자기 빛이 밝아지자 시브림이 준을 향해 빠른 속도로 헤엄쳐왔다. 준은 녀석의 아가미가 꿀럭대며 녹색 액체를 뿜어내는 것을 보았다.
‘저게 독액이로군.’
준은 녀석의 움직임을 유심히 살폈다. 거의 10미터 거리까지 접근한 녀석이 갑자기 입을 쩍 벌리며 물보라를 뿜어냈다. 물보라는 녹색 체액을 머금고 있었는데, 저기에 닿으면 강화복이라도 해도 버틸 수 없었다.
타탓-
준은 빠르게 바닥을 밟으며 풍운보를 시전했다. 바깥에서 만큼 빠른 것은 아니었지만 관성제어를 이용해 이동하는 것보다는 마나의 소모가 적었다.
콰르르-
물보라가 아슬아슬하게 준의 곁을 스치고 지나갔다. 어깨에 독액이 살짝 스쳤지만 심각한 손상을 입은 정도는 아니었다. 물속이다보니 직격만 피하면 금세 흩어져 큰 피해는 막을 수 있었다.
시브림은 자신의 물보라 공격이 빗나가자 눈에 띄게 당황하는 모습을 보였다.
‘지금까지는 그 정도 공격만으로도 충분히 먹이를 잡을 수 있었겠지만...’
탓. 탓.
준이 가볍게 땅을 두 번 딛자, 순식간에 시브림의 아가미 바로 밑까지 도달할 수 있었다. 준의 빠른 몸놀림에 당황한 녀석이 몸을 크게 뒤틀며 지느러미를 쫙 펼쳤다. 그 순간 수중파가 일어나며 준을 쳤지만, 딱히 엑조틱 에너지가 담겨있는 공격은 아니었기 때문에 데미지는 없었다.
준은 아래로 늘어뜨렸던 라이트세이버를 그대로 위로 올려쳤다.
화악!
서걱!
눈부신 빛과 함께 순식간에 길이가 3미터 이상으로 늘어난 라이트세이버의 빛나는 칼날이 시브림의 머리와 몸통을 분리시켰다.
부우우-
그러자 녀석의 몸속에 있던 독주머니가 확 터지며 순식간에 준을 덮쳤다.
‘윽. 잘못건드렸다. 저러면 못 먹을텐데...’
준은 빠르게 실드를 펼치며 뒤로 물러섰다. 다행히 독액은 실드에 막혀 준의 강화복을 건드리지 못했고, 머리와 몸통이 예쁘게 분리된 녀석은 붉은 피와 녹색 독액을 주변으로 흩뜨렸다.
‘자동분류.’
준은 녀석을 잡아먹을 생각을 포기하고 자동분류를 시전했다. 죽어가던 녀석의 신체가 빠르게 양자화 되면서 준에게 흡수되었고, 결정체 포함 총 14의 경험치가 추가되었다.
-잡아먹으려는거 아니었어요?
-독이 퍼졌잖아. 저런 거 먹었다가는 배탈나. 좀 아쉽지만 어쩔 수 없지.
식용 외도들은 대체로 독을 가지고 있지 않았다. 하지만 저렇게 독주머니를 따로 차고 있는 녀석들은 그 부위만 제거하면 먹을 수가 있었다. 체액 전체가 산성액으로 되어있는 전갈외도 카라취 같은 녀석은 랍스터 같이 생겼지만 먹을 수 없는 쪽에 속했다.
그렇게 시브림을 잡고서 준은 디모나이트를 찾기 위해 계속해서 이동했다. 앵무조개 같이 생겼다고는 하지만 안쪽 내용물은 오징어처럼 생겨서 물속에서 빠르게 이동이 가능한 녀석이었다. 때문에 조개라고 바닥에 붙어 있을 거라는 보장은 없었다.
준은 천리안을 켠 채로 계속해서 사방을 둘러보았다.
-준. 저기 또 뭐가 있어요.
-응?
천리안의 단점이라면 원거리를 보다보니 가까운 곳에 있는 것을 제대로 볼 수 없다는 점이다. 준은 시미의 말에 황급히 천리안을 거두고 그녀가 가리키는 방향으로 시선을 돌렸다.
반쯤 갈라진 바위틈에서 무언가가 무섭게 끓어오르고 있었다.
-유황인가...?
-저기 뭐가 막 움직여요.
준은 약간 뒤로 물러나며 유황천속에서 어지럽게 움직이는 생물체들을 보았다. 새우처럼 생겼지만 크기가 2미터에 달하는 거대 새우 무리였다.
-일반외도군.
-저건 안잡아요?
-저런 건 이렇게 해도 돼.
준이 손을 휘젓자, 거의 30미터 거리에 있던 새우들이 준에게 끌려오기 시작했다.
푸드득.
갑자기 자신을 끌어당기는 강력한 힘에 저항하기 위해서 몸부림을 치는 새우를 보며 준은 꽤나 먹음직스럽다는 생각이 들었다.
턱.
준의 손으로 끌려들어온 새우는 곧바로 인벤토리로 향했다. 일반외도 정도는 전투를 할 필요도 없었다. 중급 염동력의 힘에도 저항을 하지 못하고 끌려오기 때문이었다. 그렇게 약 이십여마리의 새우를 인벤토리에 넣은 준은 새우들이 놀라 달아난 유황천을 향해 조심스럽게 다가갔다. 외부 온도가 90도까지 올라갔지만 강화복은 최대 1000도까지 버틸 수 있기 때문에 별 문제는 없었다.
-으아아... 뜨거워요.
-아차. 미안.
준은 어깨에 있던 시미가 몸을 비틀며 투덜거리자 전자기장 제어를 통해서 열전달을 차단했다.
-왜 이리로 오는거에요?
-아. 혹시 위험한가 좀 보려고. 위에 애들있잖아. 이거 터지면 순식간에 휩쓸릴걸.
유황이 뿜어져 나온다는 이야기는 바위틈 아래에서 용암이 끓고 있다는 이야기였다. 지금까지 멀쩡하던 것이 지금 터질리는 없겠지만 만약이라는 게 있는 법이었다.
유황천에 머리를 들이밀고 안쪽을 살폈다. 지질학에 대한 전문지식은 없었지만, 준은 어렴풋이 큰 문제는 없다는 느낌을 받았다. 그는 미래예지와 통찰력, 그 두 가지 기술로 잘 모르는 사건에 대해서도 최소한의 정보를 얻을 수 있었다.
-어때요?
-괜찮을 것 같아. 언젠가는 터지겠지만 지금은 아니야.
준은 고개를 끄덕이며 유황지대를 벗어났다.
“후... 대체 어디있는거야?”
준은 한숨을 쉬었다. 거의 한시간 여를 돌아다녔음에도 디모나이트는 눈에 띄지 않았다. 대신 대형문어인 옥토퍼페스와, 가오리의 변형체인 알레아, 불가사리처럼 생긴 스타쉬피시를 몇 마리씩 챙겼다. 전부 요리가 가능한 녀석들로 바다에 들어오기 전에 미리 확인한 놈들이었다.
-그래도 먹을 건 많이 챙겼잖아요.
-그러게. 무슨 마트도 아니고.
한시간 정도에 열 마리가 넘는 식재료를 챙겼으니 확실히 바다는 먹을 게 널려있긴 했다. 그것도 먹을 수 있는 외도만 챙겼으니 이정도지, 실제 어류까지 모두 잡아들였으면 지금쯤 준의 인벤토리에는 정어리 수백만마리가 들어가 있을 것이다.
은퇴하면 어부나 하면서 살아야겠다, 같은 쓸데없는 생각을 하며 주변을 둘러보고 있던 준은 문득 발밑이 허전하다는 것을 느꼈다.
“어엇?”
쑤욱.
그의 몸이 갑자기 밑으로 떨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