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340 ----------------------------------------------
로버 출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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콰아앙!
준은 가이아급 전함 스트라솔을 베어 내고는 다음 전함을 향해 움직였다. 관성제어를 계속해서 사용하다보니 경험치가 금세 바닥을 보이고 있었다. 전투를 시작할 무렵, 200만에 다다랐던 경험치가 전투가 개시된 지 1시간이 채 지나지 않아 바닥을 드러내었고, 심지어 모자란 상태였다. 일단 급한대로 준은 인벤토리 안에 쌓아둔 결정체까지 끄집어내어 경험치 대신으로 쓰고 있었다.
그만큼이나 경험치 소모가 심한 데는 다른 이유도 있었다. 현재 로버는 손에 ‘라이트 세이버’를 쥐고 있었다. 물질형태의 무기가 아니기는 했지만 그렇다고 해도 20미터나 되는 로버의 손에 맞출 정도로 커질 수 있을까, 하고 생각했던 것도 잠시. 라이트 세이버는 준이 의지를 불러일으키자 마자 마치 준비라도 되었다는 듯이 로버의 손에 딱 맞는 크기로 소환되었다. 물론 그 대신 소모되는 경험치의 양이 거의 두 배로 늘었다.
하지만 경험치를 소모한 만큼, 로버는 확실한 능력을 보여주고 있었다. 순간적으로 거의 로버의 키 이상으로 늘어나는 라이트 세이버는 전함을 단 일격에 파괴시킬 정도의 위력을 보여주었다. 급격한 움직임을 보이는 로버를 조준사격을 통해 맞춘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했다. 게다가 로버의 특성상 근접 공격이 주를 이루다보니, 제대로 공격을 하기가 매우 까다로웠다. 양전자포는 자칫 빗나가기라도 하면 아군이 맞을 위험이 있었고, 수폭을 터뜨렸다가는 인근의 함대 전체가 휘말릴 수도 있었다.
그렇게라도 해서 잡을 수 있다는 보장도 없었다. 로버의 움직임은 수폭의 속도보다도 훨씬 더 빠르게 느껴졌기 때문이었다. 다소 뒤늦게 발견한다고 해도 눈으로 보고 피할 수 있을 정도의 속도로 움직이는 것이다.
“대단하군. 이 녀석 혼자서 거의 함대 하나를 박살내고 있잖아.”
자신이 조종하고 있다고는 하지만, 어쨌건간에 그것은 로버의 힘을 빌린 것이다. 준의 말에 에피알게나스가 입을 열었다.
“필요할 거라고 생각했어.”
“고마워. 네가 아니었다면 이스카야 행성을 제대로 지키지 못했을거야.”
준은 로버를 해체하려고 했던 순간을 떠올렸다. 그때 에피알게나스가 나서지 않았다면 준은 정말로 로버를 해체해서 연구실로 보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녀가 적극적으로 나서 로버를 보호했고, 그 덕에 준은 이녀석을 이용해 적들의 공세를 막아내고 있었다. 유일한 단점이라면 경험치가 엄청나게 소모되고 있다는 것이지만, 자신이 지금까지 이루어 왔던 것들을 잃지 않게 해준다는 점에서 그런 손해는 손해라고 볼 수도 없었다.
[그런 인사라면 나에게 해야하지 않은가?]
“아아. 그래. 네 덕분이다.”
[건성으로 말하는 거냐. 사람 차별을 하다니. 문명인이라고 할 수 없는 녀석이군.]
“일단 사람도 아니지만... 어쨌거나. 놈들도 슬슬 물러서려는 것 같은데.”
새크리파이스 측 함대가 제대로 진영을 짜기도 하기 전에 준이 난입해 6함대를 괴멸시키자, 엔터프라이즈 쪽 함대가 슬슬 뒤로 물러서는 것이 보였다. 거의 땅짚고 헤엄치기 수준의 간단한 점령전을 생각하고 왔다가 자연재해급의 괴멸적인 상황을 직면하자 얼른 도망치려는 것이다. 그렇게 되면 남은 것은 새크리파이스의 5, 7함대 뿐이다. 그리고 그들 역시 엔터프라이즈 함대가 도주하고 나면 극도로 사기가 떨어질 것이 확실했다.
아니, 애초에 사기가 떨어지고 말고의 문제가 아니었다. 아직 준에게는 150만개 정도의 결정체가 남아 있었다. 그것을 전부 수납하기 위해 늘인 인벤토리의 크기만 해도 1000큐브가 넘었다. 그정도의 결정체가 남아있는 이상, 지금의 준이 마음만 먹는다면 도주하는 엔터프라이즈까지도 모조리 라이트 세이버로 베어버릴 수 있었다.
차라리 지금 도망치는 것이 새크리파이스 쪽에서는 나은 선택일 것이다. 그리고 그들에게는 다행히도, 괴멸된 1개 전대를 제외하고 나머지 함대 들이 모두 후퇴하기 시작했다. 준은 굳이 그들을 쫓거나 하지 않았다.
“추격하지 않아도 괜찮아?”
에피알게나스가 입을 열었다. 준이 고개를 저었다.
“어차피 쫓아가서 박살내봐야 괜한 희생만 늘 뿐 내가 얻는 게 없어. 게다가 그 동안 소모될 경험치를 생각하면 차라리 놈들이 도망쳐주는 게 나에게는 이득이지. 이렇게 까지 당하고 나면 다시 쳐들어 올 생각도 못할 거고.”
[물렁한 놈이로군.]
“시끄러워. 로봇에게 충고받을 생각없어.”
준이 혀를 차며 입을 열었다.
“준!”
알바트로스에서 내리는 준을 향해 루나가 다가왔다. 준은 손을 흔들며 그녀를 향해 달려갔다.
“많이 기다렸지? 미안 늦어서. 일이 많아졌거든.”
반대쪽 웜홀을 적 함대의 앞에 소환해 곧바로 전투에 돌입했기 때문에 돌아와서 얼굴을 보는 것은 지금이 처음이었다.
“괜찮아요. 몸은 좀 어때요?”
“이상없어. 생각보다 로버가 성능이 좋았거든. 루나는 별일 없었어?”
“네. 그냥 매일 바빴어요.”
두 사람이 지금처럼 오랜기간 떨어져 있는 것이 처음은 아니었다. 하지만 루나의 태도가 평소와는 확실히 달랐다. 준은 머뭇거리는 그녀를 보며 입을 열었다.
“뭐 할 말이라도 있어?”
“그게... 한 번 안아봐도 돼요?”
“뭐, 뭘 그런 걸 물어보고 그래. 이제와서.”
준이 멋쩍어하면서 그녀를 슬며시 안았다. 그러자 루나가 조심스럽게 그의 품에 파고들었다. 자신의 가슴에 얼굴을 묻고 있던 루나를 향해 준이 입을 열었다.
“많이 걱정했나봐? 평소에는 안하던 짓도 하고.”
끄덕. 끄덕.
그녀는 준의 가슴에 얼굴을 묻은 채 고개를 끄덕였다. 간지러우면서도 기분좋은 느낌이 들었다. 준은 그녀의 이마에 입을 맞추고는 부드럽게 입을 열었다.
“너무 걱정할 필요 없다고 했잖아. 다칠 일도 없다고. 루나는 나를 못믿은거야?”
준이 슬쩍 미소 지으며 루나의 뺨을 꼬집었다. 그녀의 뺨에서 눈물이 주륵, 흘러내렸다.
“아, 아팠어?”
준은 화들짝 놀라며 그녀의 뺨에서 손을 떼었다.
“많이 걱정하셨습니다. 형님. 솔직히 제가 보기에도 질릴 정도로 적이 많기도 했고.”
지금까지 그녀와 함께 있던 검둥이가 머리를 긁적이며 입을 열었다. 준이 멀리 가있는 동안, 검둥이가 루나의 곁을 지키고 있었다. 혹시라도 있을지 모를 위협 때문이었다.
“그랬나... 너무 내 생각만 한 것 같네. 좀 더 믿음을 줬어야 하는 건데 말이지.”
“그러니까요. 그 로봇도 처음 보는 거라고요. 미리 설명이라도 해주셨으면 이렇게 까지 가슴 졸일 일도 없었잖습니까?”
“그래. 네 말이 맞다.”
준은 검둥이의 정확한 지적에 할말이 없었다. 그는 눈물을 뚝뚝 흘리며 준의 등을 꽉 쥐고 있는 루나를 보며 입을 열었다.
“무서웠어?”
“조금요... 혹시라도 당하는 게 아닐까 해서.”
“이렇게 살아 돌아 왔으니까, 이제 그만 울어.”
준은 인벤토리에서 손수건을 꺼내어 그녀의 눈물을 닦아주었다. 루나가 붉어진 눈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이야. 진기한 광경이군. 루나가 우는 걸 볼 줄이야.”
막스가 킬킬대면서 입을 열었다. 루나가 빨개진 얼굴로 고개를 숙이고는 얼른 도망쳤다.
“크크. 나이가 몇 살인데 아직도 저렇게 부끄러움이 많은건지.”
“그만 놀려. 걱정됐다잖아.”
“배가 아파서 그래 이 자식아. 누구는 가만히 있어도 여자가 달라붙는데 나는 대체...”
후, 하고 막스가 깊은 한숨을 쉬었다.
“소개라도 좀 받고 그러던지.”
“내 나이에? 너 내가 몇 살인줄은 아냐?”
“갑자기 왜 이렇게 현실적이 되셨대? 언제는 20대보다도 체력이 좋다고 하시더니.”
“말이 그렇지 임마. 머리도 벗겨지고 있는데 어떤 여자가 날 좋다고 하겠냐?”
“돈은 좀 있잖아? 나가서 돈 자랑이라도 좀 하던지. 혹시 모르잖아. 너의 경제력에 반해서 쫓아다니는 여자가 있을 수도 있지.”
준의 말에 막스가 미간을 구겼다.
“나보고 돈 좋아하는 여자를 만나라 그거냐?”
“돈 좋아하는 게 어때서. 나도 돈을 얼마나 좋아하는데.”
“그게 그런 소리가 아니잖아 임마.”
막스가 기운빠진다는 듯 고개를 저었다. 준이 피식 웃으며 입을 열었다.
“다들 자신만의 장점으로 승부하는 거잖아. 다른 사람들에게 젊음과 매력적인 외모가 있다면 너한테는 돈이 있으니 그걸로 어필하는 게 왜 잘못이라는지 모르겠는데.”
“세상에는 돈이 전부가 아니야.”
“솔직히 말해서 어리고 예쁜 여자 만나고 싶지?”
“아니라면 거짓말이지.”
“네 나이에 어린 여자 밝히는 건 괜찮고, 돈 많은 남자 좋아하는 건 안되는 거냐?”
“이런 씨발새끼가...”
덥썩!
막스가 얼굴을 붉히며 준의 멱살을 틀어쥐었다. 준이 가만히 막스를 쳐다보자 그가 버럭 소리를 질렀다.
“어째서 그걸 이제와서 말해주는 거냐! 지금까지 괜한 고민했잖아!”
“그걸 지금까지 생각못했다는 게 이상하다고 생각하는데.”
준은 고개를 저으며 한숨을 쉬었다.
“나 말리지마라. 지금부터 카사노바의 길을 걸을테니까.”
“인간으로서 최소한의 존엄만 지킨다면 태클은 안 걸게.”
“크흐흐흐. 동생들 오기 전에 잔뜩 무용담을 만들어 놓아야겠군.”
막스는 착륙장이 떠나가라 큰 소리로 웃음을 터뜨렸다. 그가 사라지자 한 거대한 여성이 가슴을 흔들면서 나타났다. 수라드 행성에서 덜컥 영입한 브라운 공격대의 리더인 카렌이었다. 워낙 눈에 띄는 외모다 보니 그녀를 향해 시선이 모이는 것을 느낄 수가 있었다.
“저 인간은 왜 저렇게 쳐웃는 거야?”
“뭐야. 벌써 친해진거야?”
“아아. 자꾸 가슴을 훔쳐보길래 몇 대 쥐어박았지.”
“노인 학대야. 적당히 해.”
“그건 그거고. 여기가 너희 본진인거지?”
“그런 셈이지. 아직 개척행성이라 사람이 많지는 않지만.”
“그럼 일이 없을 때는 계속 여기에 있는거야?”
“아아.”
준이 고개를 끄덕이자 카렌이 입을 열었다.
“외도는 있어?”
“충분해. 평생 잡아도 다 못잡을 정도로.”
“센 놈들은?”
“그건 좀 더 탐색해 봐야지. 빨간색은 많고, 주황색도 간간이 보였으니까 심심하지는 않을거야. 그 이상은 좀 더 탐색을 해봐야 알겠지만.”
“굶어죽을 걱정은 없겠네.”
“델타 스피릿에 들어온 이상 굶어죽게 하지는 않을 생각이다만.”
“내가 얼마나 많이 먹는지 몰라서그래.”
“하긴. 그 몸을 유지하려면 많이 먹어야 하긴 하겠지. 혹시 몸에 변화같은 건 없어?”
고개를 든채로 말을 하는게 생각보다 어렵다는 것을 느끼며 준은 목을 만졌다.
“그건 왜 묻는 거지? 혹시 내 육체에 관심이 있다거나...”
“아니야.”
“쳇. 단호하네.”
“아까 봤겠지만 여자친구가 있거든. 딸도 있다고.”
“요즘 세상에 그런게 무슨 상관이람.”
“그리고 너 같은 애도 하나 있어. 저기 뒤에. 눈에 불을 켜고 이쪽을 노려보고 있을 걸.”
준이 멀리 짐을 내리고 있는 사람들 가운데 있는 서은설을 가리켰다. 그녀는 카렌이 접근할 때부터 이미 이쪽을 유심히 지켜보고 있었다.
“아. 정말이네. 저애 얌전해 보이던데. 그런 사이였던거야?”
“아니. 그냥 친구야.”
“아닌 것 같지만. 어쨌든 경쟁자가 많다는 거네. 그런 이야기는 듣지 못했는데.”
“대체 토르에게 무슨 소리를 들은거냐?”
“그야. 내가 좋아하는 스타일의 남자가 있다고. 능력도 있고, 돈도 많다고 하던데.”
“안듣는게 나을 뻔 했군.”
준은 한숨을 푹 쉬었다. 어떻게 보면 토르도 호의적인 감정에서 한 말일 것이다. 카렌은 어쨌거나 상급헌터고, 그녀가 합류함으로서 델타스피릿의 전력이 크게 늘었다는 사실은 인정해야했다. 게다가 거의 공짜나 다름없는 수준으로 영입했으니, 토르의 말은 비록 준을 곤란하게 했을 지언정 이득을 주기 위함이라고 할 수 있었다.
============================ 작품 후기 ============================
어제도 못올렸고... 오늘도 한편입니다 ㅠㅠ 주말에 급히 어딜 갔다와야 하는 일이 생겨서요. 다음편은 될 수 있으면 새벽에 올릴 수 있도록 해보겠습니다.
죄송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