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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버 출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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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드를 계속 유지하는 것은 경험치의 소모가 극심했다. 준은 짧은 사이 거의 오십 만에 가까운 경험치가 소모된 것을 확인하고는 실드를 해지했다. 기관포 사격으로 부서질 로버도 아니었고, 원자탄도 직격만 아니라면 치명적인 상처를 입지 않는다.
‘도망치는 건가?’
준은 함재기들이 뿔뿔이 흩어지며 자신으로부터 멀어지는 것을 보았다. 적 함대장은 자신의 발목을 잡기를 원하는 것을 보였다. 그렇다면 함재기를 소모해서라도 로버를 붙들고 알바트로스에 대한 폭격을 실시하는 것이 옳았다. 게다가 거리도 제법 가까워진 현 상태에서가 남은 수폭을 쏟아붓기 좋은 상태였다.
‘명령이 제대로 전달되지 않고 있는건가? 어쩌면 로버를 보고 정신이 나간 건지도 모르겠군.’
준의 생각은 얼추 들어맞았다. 함재기 조종사들은 아군병력이 절반이상 파괴된 것을 보고 사기를 잃고 도주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야코브 역시 그 순간 적절한 명령을 내리지 못했다. 준이 없는 지금이 알바트로스를 파괴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였음에도 적절한 대응을 할 수 없었던 이유는, 단순히 로버의 활약에 시선을 빼앗겼기 때문이었다.
믿을 것은 함재기 뿐이라고 여겼던 상황이 반전되자 순간적으로 머리가 굳어버린 것이다.
[추격할까?]
로버가 들뜬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동체를 움직이는 것은 준이었지만, 로버는 마치 자신이 직접 전투를 벌인 듯이 몸이 달아올라 있었다. 생각해보면 딱히 틀린 것도 아니었다. 준은 명령만 내릴 뿐이고 실제로 움직이는 것은 로버였으니.
“아니. 돌아가자. 더 이상 함재기들을 내보내지는 못할거야.”
[아쉬운데. 한 마리만 더 잡고 가면 안될까?]
“나도 어지간하면 그러고 싶은데. 네가 처먹는 경험치가 너무 많아서 안되겠다. 돼지새끼도 아니고 무슨 경험치를 오십만이 넘게 처먹는거야? 전투 시작한지 30분도 안됐다고.”
[나정도의 뛰어난 로봇을 조종하기 위해서 당연히 치러야 할 대가라고 생각한다.]
“됐고. 이제 돌아가자. 아직 전투는 끝나지 않았으니까.”
[아쉽군. 저렇게 많은 적을 두고 돌아가야 하다니.]
“이미 충분히 활약했어.”
준은 함재기들이 시야에서 사라지는 것을 보며 가벼운 한숨을 쉬었다. 절체절명이라고 할 정도는 아니었지만, 어쨌든 위험한 타이밍을 넘길 수 있었다. 그 대가가 경험치 50만이라면 로버의 말대로 싸게 먹힌 것이다.
함교로 돌아온 준은 곧바로 알바트로스의 상태를 확인했다. 알바트로스와 맬러드의 상태를 확인해 보니 알바트로스는 3만 이하로 떨어져 있었지만, 맬러드는 4만대를 유지하고 있었다. 확실히 함선을 운용하는 것은 양주안의 실력이 뛰어나다는 것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쿠웅! 쿵!
함재기와의 전투를 끝내고 나자 적들도 정신을 차린 것인지 다시 포격을 시작했다. 양전자포는 물론이고 수폭과 함께 레이저 빔까지 발사하고 있었다. 다행히 수폭은 직격만 피하면 거의 피해가 없었다. 레이저 빔 같은 경우는 약간의 손상이 있기는 했지만 원폭에 직격당했을 때만큼의 피해는 아니었다.
“적함의 숫자는 아직 40여기가 넘습니다. 함재기가 물러갔다고는 하지만 여전히 상황은 그다지 유리하다고 보기 어렵습니다.”
제임스의 말에 준이 고개를 저었다.
“놈들은 이미 사기가 꺾였다. 이대로 중앙 돌파를 하도록.”
“만에 하나 수폭에 직격당하기라도 하면 큰 피해가 예상됩니다.”
“놈들의 진영안으로 들어가면 괜찮아. 그 상황에서 수폭을 쓰는 건 자살행위지.”
수폭의 폭발 반경은 상당히 넓다. 대기가 없는 우주공간에서 사용하는 것을 전제로 만든 수폭이니 만큼 원자탄과는 달리 그 폭발 반경이 수십킬로미터에 이른다. 지금처럼 적 함대가 오밀조밀하게 모여있는 상황에서 수폭을 터뜨리게 되면 함대 전체가 영향을 받게 되는 것이다.
설령 산개를 한다고 해도, 알바트로스 역시 가만히 있는 것은 아니었다. 계속해서 움직이는 알바트로스의 속도를 전자기장 펄스로 인해 전파교란이 계속해서 일어나는 전장에서 제대로 된 유도도 없이 명중시킨다는 것은 불가능에 가까웠다.
준은 펠로우쉽 통신을 통해 양주안에게 돌격을 명령했다. 그 역시 준과 비슷한 생각인 듯 했다.
적의 진형이 넓게 흩어지기 시작했다. 적도 준의 생각을 눈치챈 듯, 반원형으로 크게 자리잡으며 각 함선의 사이를 최소 수십킬로미터 이상으로 벌리기 시작했다. 하지만 대규모 함대다 보니 진형을 잡는데는 시간이 걸리기 마련이었고, 완전히 적들의 진형이 완성되기 전에 준의 알바트로스와 양주안의 맬러드가 적 진형 한가운데로 파고들어가는 데 성공했다.
그리고 사냥이 시작되었다.
알바트로스의 기관포가 불을 뿜었다. 속도가 느린 마더쉽을 제외하면 대부분의 함선들은 방어력이 낮다. 공격을 막아내는 것보다는 차라리 피하고, 그 사이 한 발이라도 더 화력을 투사하는 것이 유리하다는 것이 함대전의 정설이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정설은 이레귤러라고 할 수 있는 알바트로스에게 잡아먹히기 딱 좋은 형태였다. 15인치 기관포가 불을 뿜을때마다 꽁지가 빠져라 도망치는 적 함선의 선체가 터져나가며 파편이 흩날렸다.
콰아앙!
새크리파이스 1전대 구축함인 발바롯싸의 후미에 불이 붙었다. 산소가 없는 함선은 일단 폭발이 일어난다고 해도 불꽃이 잠깐 일 뿐, 지속적으로 불이 붙진 않는다. 하지만 지금처럼 계속해서 불길이 뿜어져 나오는 경우는 단 하나였다.
바로 산소발생장치에 직격한 경우였다.
“제대로 맞았군.”
준이 불을 뿜으며 도주하는 발바롯싸의 모습을 보며 입을 열었다. 우주선은 대단히 예민한 기체다. 우주공간이라는 절망적인 환경에서 인간을 보호하기 위해서 오만가지 차폐벽과 생존에 필요한 기계들일 잔뜩 실어야 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지금, 인간의 생존을 위해 필수적인 요소인 산소발생장치에 불이 붙었다.
저 함선의 미래는 불보듯 뻔했다.
“다음 함선으로 이동한다!”
준이 명령하자 알바트로스가 방향을 틀어 40킬로미터 가량 떨어져 있는 전함을 향해 이동했다. 임펄스 엔진을 가동하는 중에는 양전자포를 사용할 수 없다는 점이 아쉬웠다. 전력만 충분했다면 지금보다는 훨씬 더 빨리 적함들을 파괴할 수 있었을 것이다.
전투는 순조롭게 흘러갔다. 거의 유일한 약점이라고 할 수 있었던 함재기를 물리친 이상, 알바트로스와 맬러드를 위협할 만한 것은 없었다. 간간히 목숨을 걸고 수폭을 발사하는 함선도 있었지만 직격탄은 없었다. 차라리 마음먹고 백여발 정도를 날리면 모를까 간간히 날리는 수폭이 충분히 대비하고 있는 상황에서 맞을 리가 없었다.
하지만 이 상황은 야코브에게도 그리 나쁜 상황은 아니었다. 로버에 당황하기는 했지만 애시당초 그의 목적은 시간끌기와 탄약소모. 이미 전투가 벌어진지는 반나절이 지났고, 그 사이 새크리파이스에서 잃은 함선은 약 20여대 정도였다. 현재 남아있는 함선은 30기가 조금 넘는 정도.
그리고 기어코 알바트로스의 탄약이 모두 소진되었다.
“기관포의 탄환이 모두 소진되었습니다!”
서은설이 외쳤다. 하지만 심각해 보이는 상황임에도 그다지 무거운 분위기는 아니었다. 준이 입을 열었다.
“잠시만 대기하라고 해.”
준은 그렇게 말하고는 제작탭을 열었다. D1전차와 같은 매커니즘으로 포탄을 제작하려는 것이다. 물론 가능하다면 반물질탄이나 수폭도 제작했을 것이다. 하지만 그 두 가지는 기술레벨 자체가 높다. 수폭은 그 자체만으로보면 두어세대 이전의 기술력만 있어도 만들 수 있다. 하지만 대기가 없는 우주공간에서 전자기장 펄스를 일으켜 충격파를 전달하는 기술은 현세대 레벨의 과학력이 들어가지 않으면 만들 수 없다.
때문에 ‘무기제작’ 기술이 없는 준으로서는 반물질 탄과 수폭을 제작할 능력은 없다. 대신 쉽고 싼 기관포탄을 무한정 생산해서 사용하려는 생각인 것이다.
물론 발사관을 통해 함재기가 사용하는 원자탄 정도는 충분히 만들 수 있다. 하지만 같은 값이면 그냥 기관포탄을 쓰는 것이 훨씬 더 저렴하게 먹힌다. 어차피 전파교란으로 인해 유도가 제대로 되지 않는 것을 생각해보면 그냥 기관포탄을 쓰는게 나았다. 원자탄 자체는 직격이 되지 않는 이상 별다른 화력을 보이지 못하기 때문이었다.
물론 정 상황이 좋아지지 않으면 밥을 통해서 수폭을 조달받을 수는 있었다. 하지만 현재 남아있는 것들은 아껴두었다가 이스카야 행성에 쳐들어 온 녀석들을 상대로 써야했다.
-15인치 기관포탄을 제작합니다. 얼마나 만드시겠습니까.
-꽉 채워줘.
-13870의 경험치가 필요합니다. 실행하시겠습니까?
준은 실행 탭을 눌렀다. 그러자 굳이 준이 배달하러 갈 필요도 없이 비어있던 탄약창에 포탄이 쌓이기 시작했다.
“포탄이 모두 채워졌습니다.”
“좋아. 공격개시!”
준의 명령이 빠르게 하달되었고, 이제 좀 쉴 수 있나 하며 땀을 식히던 병사들이 기겁하며 다시 조준간을 잡았다.
구웅! 궁!
포탄이 다시 발사되며 함교가 은은하게 떨렸다. 준은 어리둥절해 하고 있을 적 함대장을 생각하며 웃음을 흘렸다. 적은 시간과 보급을 무기로 준을 압박하고 있었다. 그리고 준에게 그 작전은 전혀 먹혀들지 않았다.
“대체 어떻게 된거냐!”
야코브가 쓰고 있던 모자를 내팽개치며 큰 소리로 외쳤다. 전투가 시작된 지 6시간이 지났다. 전력의 절반을 소모하면서까지 녀석의 발목을 잡고 탄약소모를 유도했다. 헌데 아직도 적 함정들은 계속해서 포탄을 쏘아대고 있었다.
지금까지 쏘아댄 포탄을 계산하니 최소한 1천발 이상을 소모했다. 기관총도 아니고 15인치 포의 탄약을 저렇게 작은 함선에 천발 이상이나 넣고 다닐 리가 없다.
“미리 많이 싣고 온 것이 틀림없습니다. 애초에 장기전을 생각했다면 천발을 넘게 싣고 왔다고 해도 이상한 건 아닙니다.”
브라운이 입을 열었다. 야코브는 브라운의 말이 그럴 듯 하다 여기고는 입을 열었다. 어차피 여기까지 온 이상 후퇴는 무리였다. 10기는 완전 파괴, 12기는 반파되어 현재 기동성을 잃고 표류중이었다. 어떻게든 이 전투를 이겨내지 못하면 저들은 모두 포로가 되거나 우주미아가 되어 죽게 될 것이다.
승리가 있어야 자신도 살 수 있다. 야코브는 결심을 했다.
“솔다드 2함대로 하여금 적 함선에 근접하도록 명령을 내리게.”
“네? 해적함대를요? 그들이 과연 말을 듣겠습니까?”
솔다드 함대는 30기의 함선을 이끌고 온 해적단의 이름이었다. 놈들은 새크리파이스의 함대보다는 비교적 많은 함선이 남아있었다. 이유는 비교적 근접전을 상정하고 만든 해적선보다 새크리파이스의 함선들이 방어력이 떨어지기 때문이었다. 준도 해적선보다는 정규군인 새크리파이스의 함대를 우선적으로 잡았다.
“현재 전력이 가장 많이 보존되어 있는 함대다. 놈들도 양심이 있다면 명령을 거부하지 못하겠지. 만약 말을 듣지 않는다면 후에 반드시 책임을 묻겠다고 전해!”
아무리 해적이라고는 해도, 어쨌건 간에 새크리파이스 산하의 조직이다. 그리고 현재는 야코브의 명령을 따라야 하는 처지. 지금 꼴리는대로 명령을 거부했다가는 이번 전투의 패배에 대한 책임을 솔다드 함대에 전부 뒤집어 씌울 수 있었다. 어느쪽이 되었든 야코브는 손해볼게 없었다.
“아, 알겠습니다. 헌데 단순히 접근명령만을 내립니까?”
“최대한 가까이 붙어서 근접전을 하라고 해.”
야코브는 해적들을 일부러 위험한 상황에 내몬다음에 수폭을 터뜨리게 할 생각이었다. 원자탄에 흔들렸던 알바트로스와 맬러드를 생각해보면, 수폭이 반드시 유효타를 먹일 수 있을거라는 생각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