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프로젝트 델타-327화 (327/5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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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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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그로를 잡아끄는 방어구라. 쓸만한 듯 하면서도 쓸모없을 것도 같고. 애매하군.”

무엇보다도 분홍색, 그것도 핫핑크라는 것이 문제였다. 전신타이즈라고는 하지만 디자인 자체는 나름대로 신경 써서 맨몸에 입어도 이상하지는 않을 정도였다. 하지만 핫핑크다보니 남자들이 입기에는 약간 문제가 있을 것 같았다. 혹시나 해서 개조를 통해서 색깔을 바꾸어 보았는데, 색을 바꾸자 귀신같이 특수능력이 사라졌다. 아무래도 색이 어그로 능력의 중요개념을 차지하고 있기 때문인 듯 했다.

거기다가 티타늄이나 철판으로 만든 방어구에 비해 능력치도 떨어졌다. 준은 고민하다가 이것도 일단 올려보기로 했다. 방어능력이 다소 약하더라도 회피형 탱커도 있으니 그들이 사용하기에 나쁘지 않겠다는 생각이 든 것이다.

그렇게 탱커아머, 딜러아머, 어그로아머까지 모두 델타스토어에 올렸다. 당장 헌터들에게 필요한 것은 그정도로 충분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부디 이게 잘 팔려서 재정에 부담을 줄여주기를 바랄뿐이었다.

ARM기가 설치된 도시에 헌터들이 몰려들기 시작했다. 수십대를 설치했다고는 하지만 모든 도시에 설치할 수는 없는 일이었다. 우선적으로 헌터들이 사냥을 하는 개척도시 위주로 설치했지만 대도시 지역에도 설치해야했다. 기기가 설치되어 있지 않은 지역에서는 대도시로 가는 것이 편리하기 때문이었다.

인구 100만의 어퍼시티.

수라드 행성내에서도 다섯손가락 안에 꼽히는 그곳에도 ARM기가 설치되었다. 헌터들은 델타스피릿 소유의 건물 앞에 줄을 지어 늘어섰다. 하나같이 험악한 얼굴을 한 이들이다 보니 일반인들은 근처에 가까이 가지도 못하고 멀찍이서 돌아서 가야할 정도였다.

개개인이 모두 실력있는 헌터들이다 보니 먼저 들어가려다가 싸움이 나야하는 것이 어찌보면 당연하게 보일 수도 있지만, 의외로 이곳에 줄을 서는 사람들은 다들 질서를 잘 지키고 있는 편이었다.

물론 예외도 있었다.

“저기봐. 브라운 공격대야.”

“장비봤냐? 완전 장난아닌데.”

사람들의 시선을 한곳에 모으며 등장한 열 명의 사람들이 있었다. 브라운 공격대라고 불린 그들은 티타늄제의 갑옷과 단분자 검 등 엄청나게 비싼 장비들을 둘둘 감은 채 사람들의 사이를 파고들었다.

질서정연하게 줄을 서 있던 사람들도 그들이 오자 인상을 찌푸리기는 했지만 군말없이 자리를 비켰다. 그만큼 인근에서 그들의 명성은 대단했다.

그중 리더로 보이는 이는 놀랍게도 여성이었는데, 키가 2미터에 체중이 120킬로그램이나 되는 거구의 여성이었다. 붉은 머리에 주근깨가 아직도 남아있는 그녀는 일단 한번이라도 본다면 도저히 잊을 수 없을 정도로 강렬한 인상을 남겼다.

하지만 사람들이 그녀에게 집중하는 것은 그녀의 큰 키와 덩치가 아니었다.

“야. 진짜 크다. 무슨 젖통이 수박만하냐...”

“쉿. 조용히 해. 그런 소리하다가 모가지라도 날아가면 어떻게 해?”

“카렌이? 설마. 좋아하면 좋아했지 싫어하진 않을걸. 유명하잖아 브라운 공격대의 카렌하면 맘에 드는 남자만 골라서 억지로... 그 뭐 하여튼, 저 나머지 네 명도 카렌이 한 번씩 잡아먹은 놈들이라는 이야기도 있고.”

“그렇긴 해도 조심해서 나쁠 것 없잖아. 카렌은 몰라도 나머지 놈들에게 걸리면 쥐도새도 모르게 죽을 수도 있어.”

브라운 공격대의 리더, 카렌은 수근대는 사람들을 무시하고는 ARM기로 다가갔다. 그곳에는 델타스피릿의 직원으로 보이는 사람이 한 명 대기하고 있었다. 그는 테이블 위에 팔꿈치를 기댄 채 턱을 괴고 대기하고 있다가 카렌이 다가오자 하품을 하며 입을 열었다.

“새치기는 안됩니다. 뒤로 가세요.”

“새치기?”

꿈틀.

뒤에서 성희롱이나 다름없는 발언이 난무한 상황에서도 별 대응을 않던 카렌이 미간을 찌푸리며 입을 연 사내를 돌아보았다. 그는 갓 스물이나 됐을까 한 젊은 청년이었다. 그가 손을 들어 줄을 서고 있는 사람들을 가리키며 입을 열었다.

“저기 줄 서고 있는 사람들 안보여요? 못해도 두시간은 기다려야 여기까지 올 수 있습니다. 맨뒤로 가서 기다리세요.”

준은 귀찮다는 듯 머리를 긁적였다. 수십개의 ARM기를 설치하다보니 직원수가 부족해서 직접 이곳까지 오긴 했는데 하루만 일할 생각이라곤 해도 상당히 피곤한 일이었다. 지금처럼 새치기를 하는 이들이 카렌이 처음이 아니었던 것이다.

그리고 그때마다 준이 적절한 방법을 통해 다시 맨 뒷줄로 돌려보냈다. 물론 말로 해서 듣는 경우는 거의 없었고, 대부분 몇군데 정도 얻어맞은 후에야 겨우 이를 갈며 돌아서는 정도였다.

“나는 새치기를 한 적이 없는데?”

“뻔히 두 눈으로 봤습니다만?”

준이 피식 웃으며 그녀를 쳐다보았다. 카렌의 눈매가 좁아지며 서늘한 기운이 피어올랐지만, 준은 대수롭지 않게 받아넘기며 말을 이었다.

“기다리기 지루하면 이거나 하나 사가시던지.”

준은 옆에 잔뜩 쌓아둔 델타폰 재고를 하나 꺼내어 흔들었다.

“그건 뭐지? 처음보는 군.”

“전화기입니다만.”

“스마트패널이 있는데 왜 그게 필요한거지?”

“그야. 써보면 아실겁니다. 나중에 왜 내가 이걸 안샀지 하고 후회하지마시고 한 번 구경이나 해보시죠.”

휙.

준은 델타폰을 그녀에게 던졌다. 턱, 하고 그걸 받아든 카렌은 델타폰을 조작하더니 다시 준에게 던졌다.

“필요없어.”

“싫으면 됐고요. 얼른 자리나 비켜주시죠.”

“아까도 말했지만 난 새치기를 한 적이 없다니까? 그냥 알아서 사람들이 비켜주는데 어쩌라고.”

“사람을 바보로 아는 건가.”

준은 후, 하고 한숨을 내쉬며 자리에서 일어섰다. 그러자 카렌이 흥미롭다는 표정으로 그를 쳐다보았다.

“카렌. 그냥 물러서자. 괜히 다툼이 일었다가 교환 못하게 되면 우리만 손해야.”

“내가 뭐 잘못한 게 있어? 그냥 사람들이 비켜줘서 여기까지 왔을 뿐이잖아. 그런데 저 귀엽게 생겨먹은 자식이 자꾸 시비를 거는 것 뿐이야.”

“그, 그렇긴 하지만 그래도 여기서 문제를 일으키는 것은 좋지 않아.”

“그래? 나는 좋은데.”

카렌은 동료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허리에 손을 올리며 준을 쳐다보았다. 그녀의 눈빛이 마치 구렁이처럼 번들거리기 시작했다. 끈적하고 불쾌한 감각이 준의 몸을 스쳤다.

“카렌이 저 녀석 찍은 거 같은데?”

“야. 시발 왜 하필이면 델타스피릿 직원이야. 그것도 사람이 이렇게 많은데서.”

“어떻게든 말려봐.”

“내말을 듣겠냐?”

브라운 공격대 사람들이 자기들끼리 웅성대기 시작했다. 무언가 상황이 좋지 않다는 것은 알고 있지만 그렇다고 해도 카렌을 막을 수 있는 사람이 아무도 없는 모양이었다.

“너희들. 뒤에 사람들 좀 치워.”

“아, 알았어.”

카렌이 명령을 내리자 브라운 공격대의 나머지 인원이 사람들을 거칠게 밀치기 시작했다. 사람들 사이에서 욕설이 간간이 터져나왔지만, 상급헌터가 속해있는 브라운 공격대에 용감하게 덤비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그렇게 건물의 문이 닫히고, 아무도 없는 실내에는 준과 브라운 공격대만이 남아 서로 대치를 하고 있었다.

하는 꼴이 우스워 잠깐 내버려 둔다는 것이 이렇게 까지 오자 준은 약간 어이가 없었다. 아무리 안하무인이라도 그렇지 수백명이 줄을 서고 있는 건물의 문을 폐쇄해버릴 줄은 몰랐던 것이다.

“거기 너. 누나 좀 따라와야겠다.”

카렌이 슬쩍 입술을 축이며 입을 열었다. 덩치가 2미터에 이르는 여성이 자신을 내려다 보며 위압적으로 입을 열자 준은 순간적으로 위화감을 느꼈다.

‘이건... 뭔가 뒤바뀐 것 같은데...’

준은 인상을 찡그리며 입을 열었다.

“따라가면 어떻게 되는데?”

“이 누님이 이래봬도 꽤 잘하거든.”

“아무리 생각해도 그건 여자가 할 대사는 아닌 것 같은데.”

“요즘 세상에 남녀 따지는 거 촌스럽다고 생각하지 않아?”

“뭐, 그렇긴 하지만... 어쨌거나 그 이전에 나는 그쪽이 별로라서.”

겉모습으로만 보면 카렌은 충분히 매력적인 여성이었다. 외모도 출중하고 체중이 많이 나가는 것은 키가 큰데다가 신체의 대부분이 근육으로 이루어져있기 때문일 뿐, 건장하다는 느낌은 있어도 전혀 뚱뚱하지는 않았다. 오히려 단련된 몸은 육감적이기 까지 할 정도였다.

다만 너무 크다는 것 하나가 위화감을 느끼게 만들었다. 보통의 남성들이라면 본능적인 거부감이 들기 마련이었다.

하지만 그것도 처음 뿐. 그녀와 한 번이라도 잠자리를 하고 나면 대부분의 남성들은 그녀에게 빠져서 헤어나오질 못했다. 그만큼 그녀의 기술은 탁월했다. 카렌의 진정한 실력은 검술이 아니라 밤일에 있다는 말까지 있을 정도였으니, 은근히 그녀를 노리는 이들도 있을 정도였다.

물론 준이라고 호기심이 없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궁금하다고 해서 세상 모든 일을 경험해 볼 필요는 없었다.

“흐응. 후회할 텐데? 이래봬도 나 정말 괜찮은 여자라고.”

“미안하지만 훨씬 더 괜찮은 여자가 내 옆에 있거든.”

“그래요! 시미가 여기 시퍼렇게 눈을 뜨고 있는데!”

그때 준의 앞주머니에서 시미가 고개를 불쑥 내밀며 소리쳤다. 브라운 공격대의 시선이 시미에게 향했고 준은 이마에 손을 짚었다.

카렌이 흐응, 하고 가볍게 웃음소리를 흘리며 입을 열었다.

“취미 한 번 요상하네.”

“끙... 뭐 어쨌거나 나는 당하는 취미는 없으니까. 조용히 물러가. 그럼 이번 한번은 봐주지.”

“흐음... 자신감이 대단하네? 대체 뭘 믿고 그러실까.”

카렌은 준에게 호기심을 느꼈다. 적어도 그녀가 보기엔 준은 별 것 없었다. 물론 몸 자체는 상당기간 단련한 듯 탄탄했지만 그녀에 비하면 그다지 대단한 것도 아니었다. 거기다가 무기도 가지고 있지 않았다.

“됐고. 오늘은 밖에 손님이 많으니까 조용히 넘어가주는 거야. 다음부터 다시 이런 소란을 일으키면 그때는 정말 참지 않을테니까.”

“나 아직 간다고 안했는데?”

카렌이 준을 향해 슬금슬금 다가왔다. 2미터의 거구가 요염한 포즈로 걸어오는 모습은 뭐랄까 다소 현실감이 없게 느껴질 정도였다.

준은 한숨을 쉬며 인벤토리를 열어 니들리스 스패너를 꺼냈다. 말로해서는 당최 들어먹지 않으니 어쩔 수 없이 힘을 써야했다. 만약 그녀가 칼을 뽑거나 했으면 사태가 심각해졌겠지만 적어도 거기까지는 가지 않았기에 적당히 두들겨 팬 후 내쫓을 생각이었다.

“어? 잠깐?”

카렌이 멈칫하며 눈을 크게 떴다. 준이 피식 웃으며 입을 열었다.

“왜 아공간 처음보는 건가?”

“사람을 바보로 아는 거야? 주문도 없이 아공간을 불러낸다고?”

“어쨌거나 이게 뭐든 너에게는 상관없는 일이겠지.”

“난 상관있는데. 그렇지 않아도 만나고 싶었거든.”

“뭐?”

“정식으로 인사할게. 나는 브라운 공격대의 리더 카렌 브룸슈타트야. 참고로 토르의 친구.”

“자, 잠깐.”

준은 잠시 머리를 짚으며 혼란스러운 상황을 정리하려 애썼다. 그러니까 지금 그녀는 자신이 인벤토리를 여는 것을 보고서 자신의 정체를 파악했다. 그 이야기는 그녀가 토르와 가까운 사이고, 토르가 준에 대해서 이야기 해주었다는 뜻이었다.

“날 아는 건가?”

“델타스피릿의 사장님 아니야?”

“생긴것과는 달리 눈치하나는 빠르네.”

“겉모습으로 사람을 판단하는 습관은 안좋은 거랍니다.”

“그래서. 방금까지 강제로 덮치려던 사람이 델타 스피릿의 주인이라는 사실을 알게되니 어때?”

“완전 좋지. 나 팬이었거든.”

“무슨... 하아. 됐다. 얼른 가라.”

준은 고개를 저으며 입을 열었다. 그러자 카렌이 뒤를 돌아보며 입을 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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