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프로젝트 델타-322화 (322/5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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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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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단 궁여지책이긴 하지만...”

준은 신소재를 포기하고 현재 그가 사용할 수 있는 탄성체 중 가장 강력한 탄소합금을 사용하기로 마음먹었다. 탄소나노튜브의 변형체로서 알려져 있는 합금 중에서는 가장 충격에 강한 물질이었다.

외도와 싸우는 중에는 특히 흉갑부분이 노출되기 쉽기 때문에 다른 파츠의 합금을 사용할까 하는 생각도 했지만 그것도 실패했다. 아예 초초하르듐 소재는 건드릴 수조차 없었기 때문이었다.

흉갑부위도 원형을 손상시키지 않는 범주 하에서의 개조였기 때문에 준이 손댈 수 있는 것은 그정도가 한계였다.

“뭐, 이정도만 해도 현존하는 외도를 상대하기에는 문제가 없겠지.”

설계도를 완성한 준은 제작탭에서 개조를 시작했다.

-로버의 탑승석을 개조합니다. 준비시간 포함 9시간이 소요됩니다. 진행률 0%...

“좀 길긴하지만... 뭐, 어차피 남는게 시간이니.”

수라드 행성에 도착하기까지는 아직 며칠 더 남았다. 그 동안은 준이라고 딱히 할 일이 있는 것은 아니었기에 지금처럼 로버옆에서 시간을 보내는 것이 문제가 되지는 않았다.

털썩.

준은 로버의 손 바닥 위에 드러누웠다. 개조중에는 준이 반드시 옆에 있어야 했다.

[이제 시작인건가. 기분이 이상하군. 그리운 느낌이야.]

“그야. 오리진의 힘으로 제작된 너니까. 그 조각의 일부인 나에게서 비슷한 느낌을 받는게 이상한 건 아니겠지.”

[오리진이 파괴된 것은 느꼈다. 그 것의 흔적이 그대에게 이어진 것이로군.]

“파괴되었다기 보다는 해체지만 뭐, 그런셈이지.”

준은 미묘하게 로버의 말투가 바뀐 것을 느꼈다. 처음 만났을 때처럼 약간은 진중해진 느낌이었다.

“말투가 심심하면 바뀌는데 왜 그런거야?”

“아직 완성된 자아가 아니라서 그래.”

그때 누워있던 준의 옆에서 들려오는 목소리가 있었다. 에피알게나스였다.

“아. 시끄러웠어?”

“우주선 전체에 울릴 정도. 그다지 시끄럽지는 않았어.”

“어느쪽인지 모르겠군. 헌데 그건 무슨소리야? 완성된 자아가 아니라니.”

“사람과 다를바 없다는 거.”

“음. 말하자면 이 녀석도 아직 어리다는 건가?”

순간 준의 머리속에서 중2병이라는 단어가 떠올랐다 사라졌다.

“기계라고는 해도, 자아자체는 인간과 다를바가 없어. 주위환경과 교감하며 서서히 그 그릇을 키워나가는 거지. 그래서 로버는 성장형 로봇이기도 해.”

“성장형? 설마 전투를 거듭하면서 더 강해진다거나 하는 건가?”

“경험이 쌓이면서 탑승자와 자아를 교감하고 그런 과정을 거치면서 점점 더 완성형에 가까운 전투기계가 되는거지. 녀석이 자신의 취향을 고집하는 것은 그런 이유때문이기도 해.”

“어렵군. 나로선 받아들이기도 힘들고.”

본업이 엔지니어인 준으로서는 성장하는 기계라는 개념을 받아들이기 힘들었다. 기계는 최초 설계안대로 정해진 출력을 안정적으로 내는 것이 최선이다. 하지만 경험이 쌓이면서 스스로 진화해 간다는 것은 현재 그의 지식으로는 납득하기 힘든 것이었다.

“델타도 성장형인데.”

“아. 그런가.”

에피알게나스의 말에 준은 단박에 이해가 됐다. 너무 자연스럽게 자신과 하나가 되어있는 상태라 인식하지 못하고 있었지만, 델타도 애초에 기계덩어리였다. 눈에 보이지 않을뿐.

“기계 자체가 생명처럼 진화해간다라. AI가 딥러닝을 이용해 지식을 쌓는 다는 것 정도는 알고 있었지만, 신체자체를 강화한다는 건 확실히 신기해.”

“생명체 역시 고도로 복잡한 기계니까.”

“하지만 생명은 진화하지.”

“진화도 우연한 결과가 쌓여 일어나는 일일 뿐이야. 특별하다고 생각할 이유는 없어.”

“뭐, 내 상식으로는 아직 어렵지만. 너는 직접 그것들을 보아왔을테니 뭐라 할말은 없군.”

준은 그렇게 말하며 거대한 로버의 동체를 둘러보았다. 녀석은 잠자듯이 누워 있었다. 에피알게나스가 오는 걸 보면 말이라도 걸지 않을까 했는데 개조작업은 녀석에게도 부담이 되는 모양이었다.

준은 멀뚱히 서서 자신을 바라보고 있는 에피알게나스를 보며 다시 입을 열었다.

“좀 앉을래? 나는 어차피 여기서 9시간은 이러고 있어야 하는데.”

끄덕.

에피알게나스는 로버의 손바닥 위에 엉덩이를 걸쳤다.

“생활은 어때?”

“괜찮아. 친절하고.”

“불편한 건 없고?”

“없어.”

“그래.”

그 말을 끝으로 두 사람 사이에 침묵이 맴돌았다. 준도 딱히 그녀에게 뭐라고 말을 붙이려고 애쓰지 않았다. 그녀와 대화를 하는 것에는 인내심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알고 있는 때문이었다.

준은 가만히 눈을 감고 델타포럼에 접속했다.

그녀가 이곳까지 온데는 이유가 있을 것이고, 말하고 싶은 것이 있으면 먼저 말을 할 것이다. 그때까지 느긋하게 기다릴 생각이었다.

델타포럼은 계속해서 늘어나는 사용자 때문에 늘 시끌벅적했다. 이번에는 새롭게 엘라행성에 뿌려놓은 델타폰 때문인지 그쪽 사용자의 이야기가 한창 화제였다. 대부분은 새로운 행성에 도착한 이들이 그쪽 외도의 사진이나 자신들의 생활을 찍어 올리는 것 들이었다.

이슈가 되는 것은 다름아닌 그곳이 알카트뢰즈와 비슷하게 운용된다는 점이었다.

-주인장이 감옥행성을 만들었다고? 배운게 도둑질이라 그건가?

-역시 나쁜 짓은 쉽게 배운다더니... 주인장 인성 수준.

-야. 그런데 저기 환경이 너무 좋은데? 알카트뢰즈랑 비교할 건 아닌 듯.

-그러게 집도 무상제공에 전기도 들어가는 건가?

-기후도 좋다는데.

-ㅋㅋㅋㅋ얔ㅋㅋㅋㅋㅋㅋㅋㅋ시밬ㅋㅋ저기 온수도 나온댘ㅋㅋ여긴 물도 안나오는뎈ㅋㅋ

-시발. 무슨 호화별장을 만들어놨구만.

-우리쪽에도 만들어주고 가던가. 개부럽네. 여기는 에어컨도 없어서 더워 뒤지겠는데. 저긴 온수가 나온다고?

-그래도 10년이래. 나같으면 자살한다.

-지랄한다. 니가 밖에 나가면 저기보다 잘 살 수 있을 것 같냐?

-그래도 여자도 못만나는데.

-지랄한다. 니가 밖에 나가면 여자를 만날 수 있을 것 같냐?

-일침보소.

-존나잔인한새끼...

-여자타령 좀 그만해라. 어째 니들은 발전이 없냐. 나처럼 구현화에 힘을 쏟으라고. 신세계다.

-금수저새끼 꺼져. 구현화 한번하는데 경험치 얼마나 들어가는지 아냐?

-아직도 구현화도 제대로 못쓰는 거지새끼가 있냐?

-노력이 부족한 듯. 댓글달시간에 외도하나라도 더 잡아라.

-시발... 여기서까지 빈부격차를 느껴야하다니.

-그나전나 요즘 컨텐츠가 너무 부족한데. 주인장 뻘짓하고 돌아다니는 모양이다. 이쯤되면 직무유기 아니냐? 업데이트 된지가 벌써 몇 달은 되는 거 같은데.

-나도 게임 전부 클리어 했음. 2D가 최고인 듯.

-변태새끼가 뭘 좀 아는 구만.

댓글들을 살펴보며 준은 그렇지 않아도 구상하고 있던 다음 컨텐츠를 업로드 하기 시작했다. 2D게임은 고전게임 아카이브 같은 걸 뒤지면 얼마든지 저작권이 없는 것들을 구할 수 있기 때문에 큰 어려움은 없었다.

방송컨텐츠 들도 저작권없이 풀리는 것들만을 골라서 업로드했다. 후에 조금이라도 문제가 될 소지를 미리 차단하고자 하는 생각에서였다. 이미 여러 업체에서 홍보삼아 저작권 프리로 풀어준 것들이 꽤나 있었고 그것만으로도 당분간 업로드에는 문제가 없었다.

‘최신컨텐츠도 올릴 수 있으면 좋겠는데...’

막말로 올리려고 마음만 먹으면 언제든지 올릴 수 있었다. 어차피 델타폰의 판매주체가 모호한 상황에서 누군가 법으로 걸려고 해도 걸 수가 없는 상황이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후에 델타스피릿이 제대로 성장하고 100대 기업에 견주어도 밀리지 않을 정도로 성장하게 되면 델타폰을 본격적으로 판매할 생각이었기 때문에 그때가서 문제가 될 일을 만들고 싶지는 않았다.

‘아예 직접 만들어 보는 건 어떨까?’

야동을 업로드 하며 든 생각이었다. 물론 직접 야동을 만들겠다는 것은 아니었다. 현재 델타폰에는 준이 직접 만든 영상도 판매가 되고 있는 상황이었다. 다름이 아니라 델타스피릿의 직원들끼리 결투를 하는 영상을 녹화한 것이다.

시스템에 편집을 맡기면 그럭저럭 볼만한 영상이 나오기 때문에 그리 힘들이지 않고도 영상을 제작할 수 있기 때문에 들이는 품에 비해 수입도 나쁘지 않은 편이었다.

특히 펠로우쉽끼리의 전투는 여타의 격투대회에서 맛볼수 없는 피 튀기는 진짜 싸움을 볼 수 있기 때문인지 인기도 상당히 높았다. 어디가서 진짜 칼을 들고 서로의 몸을 쑤셔대는 전투를 볼 수 있을 것인가.

‘엔터테인먼트 회사를 하나 만들까.’

물론 골치아픈 일은 제임스가 맡아서 할 테니 자신은 손해 볼 것이 없었다.

‘일단은 사내 토너먼트를 대회로 만들어서 정식으로 이름을 붙여서 팔아도 꽤 될 것 같군. 잘만 풀리면 델타폰이 아니라 다른 곳에 팔아도 될 것같기도...’

준은 거기까지 생각하다고 고개를 저었다. 이 컨텐츠가 펠로우쉽이나, 혹은 델타폰을 사용하는 사람들 내에서만 통용되는 거라면 괜찮을 수 있다. 하지만 외부로 유출되는 경우에는 심각한 부작용이 예상되었다.

만에 하나 그 토너먼트 영상이 인기를 끌고 사람들의 관심을 얻게 되면, 유사한 대회영상들이 등장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 것이다. 이 나라에는 돈이 된다면 뭐든지 하는 이들이 널려 있었다.

지금도 암암리에 서로의 목숨을 걸고 하는 결투가 이루어지고 있는 판국인데, 그렇게 드러내놓고 영상물이 뿌려지기 시작하면 펠로우쉽이 아님에도 그런 결투를 강요받을 이들이 생길지도 몰랐다.

‘됐다. 하던 일이나 열심히 하자.’

그렇게 짧은 상상이 끝날 즈음, 에피알게나스가 입을 열었다.

“새로운 조각은 없어?”

“아직. 내가 억지로 찾으러 다닌다고 해서 찾을 수 있는 것도 아니고.”

반경 1광년 안에서 조각의 신호를 탐지할 수 있는 능력이 있다고 해도, 우주는 넓었다. 막말로 로오나 인들의 우주선은 상당수 웜홀 속에서 파괴되었다. 그것들이 어디로 흘러갔는지는 누구도 예상할 수 없었다.

이 넓은 우주 어디에 흩뿌려졌는지 알게 무언가. 6만개가 넘는 조각이 우주에 흩뿌려졌다고 가정했을 때, 그 중 하나가 우리은하에 있을 가능성은 수억분의 1도 되지 않을 정도로 낮았다. 그 엄청난 확률에도 불구하고 준이 2개를 얻었다는 것이 어떻게 생각해보면 기적적인 일이었다.

“곧 나타날거야. 네 힘이 점점 강해질수록.”

“아아. 조각은 조각을 부른다고 했던가.”

준은 잊고 있었던 사실을 떠올렸다. 분명히 그녀가 그렇게 말한 적이 있었다.

“오리진은 스스로 완전해지려고 하는 성질이 있어. 만약 어딘가의 부서진 우주에 있다면 반드시 너에게 접근하려고 할거야.”

“결국 기다리는 수밖에 없다는 거군.”

준은 어깨를 으쓱했다. 당장 조각을 얻기 위해서 준이 돌아다녀야 할 필요성이 더욱 낮아진 것이다. 그렇다면 그동안은 할 수 있는 일을 하는게 최선이었다. 준은 문득 그녀가 초조해 하고 있다는 것을 느꼈다.

“내가 좀 더 적극적으로 찾아다녔으면 좋겠어?”

“무리어미가 나타났어. 이건 시작일 뿐이야.”

“물론 그게 문제이긴 한데... 어떻게든 처리는 가능한 것 같고.”

“앞으로 더욱 수가 많아질거야. 조각을 더 모아야 해.”

에피알게나스의 얼굴은 창백했다. 아니, 원래 하얀 색이라 정확히는 알 수 없었지만 그렇다고 느꼈다.

준이 입을 열었다.

“무언가 불길한 꿈이라도 꾼거야? 네말대로 아직은 시작에 불과하니까 너무 초조해 할 필요없어. 로버도 생겼고, 어떻게든 처리할 수 있을테니까.”

툭.

“?”

순간 에피알게나스가 준의 어깨에 머리를 기대었다. 갑작스런 그녀의 대담한 행동에 놀란 준이 깜짝 놀라며 그녀를 바라보았다. 그녀는 붉게 달아오른 얼굴을 감추지 못한채, 가쁜 숨을 쉬고 있었다.

“에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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