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프로젝트 델타-318화 (318/540)

0318 ----------------------------------------------

결전

*

*

*

4시간 가량 걸려 목적지에 도착한 준은 붉은 색으로 칠해진 수송선 한 대를 발견할 수 있었다.

“취향한번 고약하군.”

“아무래도 중국계 기업이다보니 붉은 색을 선호하는 모양입니다. 저렇게 하면 해적들을 만나지 않는다고 하는 속설도 있더군요.”

제임스가 입을 열었다. 파티마제국의 황금색 유조선도 끔찍하긴 마찬가지자만 함선 전체를 붉은색으로 물들이는 것도 보기 좋지는 않았다. 멀리에서 보면 커다란 간이 둥둥 떠다니는 것 같기도 했다.

“함선 상태는?”

“겉으로 보기엔 문제없습니다. 모델명 스타라이트. 비교적 작은 수송선입니다.”

서은설이 입을 열었다. 함교로 돌아온 그녀에게 엘라의 상태를 묻자, 그녀는 가볍게 웃으며 괜찮다고 했다. 혼내거나 하지는 않고 대화를 조금 나누었다고 했다. 어쩐지 그게 더 무섭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준은 굳이 그 생각을 입밖으로 꺼내지 않았다.

“통신 걸어. 일단 이쪽에서 접근하고 있다는 것 정도는 알려야지.”

“통신회선 연결합니다.”

팟.

화면에 장츠밍의 얼굴이 떠올랐다. 준이 입을 열었다.

“델타스피릿의 준 알스버그라고 한다. 조난신호를 보낸 장츠밍이 맞는가?”

[델타스피릿? 처음듣는 곳이로군. 해적은 아니겠지?]

“해적같은 소리하네.”

[말투가 무례하군. 이래서 중소기업들은 안된다니까. 일단 기다리도록. 확인 후에 다시 통신을 연결하겠다.]

장츠밍이 옆을 보며 뭐라고 명령을 내리는 모습을 마지막으로 통신이 끊어졌다. 준은 황당한 기분을 느끼며 제임스를 향해 입을 열었다.

“저것도 자기방어로 봐야할까?”

“어디나 상황파악이 안되는 사람은 있는 법입니다.”

“무릎꿇고 도와달라고 해도 모자랄 판에 저런태도라니. 내가 정말 해적이었다면 저 녀석부터 먼저 목을 쳤을 것 같은데.”

“쿵후 마스터를 우습게 봤다간 큰 코 다칠겁니다.”

“농담인거지?”

“진담처럼 들렸습니까?”

“뭐든지 네가 말하면 진담같아.”

“그게 제 유일한 단점이지요.”

“이것도 농담인거지?”

“그럴리가요.”

제임스가 정색하며 입을 열었다. 참 재수없는 녀석이구나, 하고 생각하며 준은 통신이 재개되길 기다렸다.

잠시후, 통신이 재개되며 붉은 색의 함선을 비추고 있던 디스플레이가 장츠밍의 얼굴로 전환되었다. 그는 잠시 준을 바라보더니 고개를 끄덕이며 입을 열었다.

[그 얼굴이 맞군. 신원이 확인 되었으니 구조작업을 진행하도록.]

“공짜로?”

다짜고짜 명령조로 말하는 장츠밍의 화법에 슬쩍 짜증이 난 준이 반사적으로 대답했다. 조난당한 함선의 구조는 보상을 바라지 않고 해주는 게 일반적이었다. 물론 도움을 받은 쪽에서는 후에 알아서 적당한 보상을 해준다. 아무리 돈이 최고인 연합이라 해도, 우주에서의 조난은 누구나 겪을 수 있는 문제였고 이런 부분에서는 서로 좋은게 좋은 거라는 인식이 있는 것이다.

하지만 이미 빈정이 상한 준이 그런 상식을 제대로 지켜줄 이유는 없었다. 대기업 이사라는 직함이 무슨 귀족딱지라도 되는 양 거만하게 구는 꼴이 보기 싫은 것도 하나의 이유였다.

[허... 이래서 중소기업놈들은 안된다니까. 상도덕도 모르는 애송이 같으니라고.]

“이봐. 통신이 켜져있는 걸 까먹은 건 아니겠지?”

장츠밍은 마치 준이 앞에 없는 것처럼 입을 열었다. 생각하는 것을 입으로 말하지 않으면 견디지 못하는 성격이거나, 아니면 정말로 준을 자기 부하라고 생각하고 있는 것이거나 둘 중 하나가 아니면 나올 수 없는 행동이었다.

[보상은 나중에 넉넉해 해주도록 하지. 시간을 끌다가 소호해적대 놈들이 나타나면 골치아파지니 빨리 작업을 시작하도록 해.]

그는 준의 말을 무시하고 다시한번 명령이나 다름없는 말을 했다. 그쯤 되자 제임스도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선택은 사장님이 하십시오.”

“기분 같아선 별로 구해주고 싶지 않은데. 돈이라도 왕창주면 모를까.”

“저런 수송선 하나 구해준다고해서 많은 보상을 받지는 못할 겁니다. 그냥 버리고 가는 것도 하나의 선택이지요.”

“하지만 굳이 시간을 들여서 여기까지 왔잖아. 이거 때문에 하루정도는 시간이 더 걸리게 된 셈인데 허탕을 치기엔 좀 그런데.”

준과 제임스는 통신회선을 열어놓은 상태에서 대놓고 저울질을 시작했다. 장츠밍의 얼굴색이 실시간으로 변하는 것이 눈에 들어왔다.

하지만 그 역시 준이 도와주지 않으면 당장이라도 해적이 공격할지도 모른다는 불안감 정도는 있었는지 애써 꾹 참고 있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생각보다 잘 참는 군. 한마디만 더 나불거리면 진짜 내버려 두고 가려고 했는데.”

[...]

장츠밍은 당장이라도 자리를 박차고 일어날 것처럼 부들부들 떨었다. 하지만 그는 초인적인 인내력으로 그 모든 분노를 참아내고는 천천히 입을 열었다.

[착륙장을 열어두겠다.]

“얼마줄건데?”

[상례대로 줄테니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

“뭐 그러시다면.”

준은 어깨를 으쓱하고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엔진상태가 어떤지 봐야 알수있겠지만 어지간한 문제는 자신이 처리할 수 있었다.

“직접 가시겠습니까?”

“엔진문제잖아. 내가 전문이지.”

“사고를 치실까 걱정됩니다만.”

“문제될 거 있어?”

“없습니다.”

제임스가 고개를 저었다. 어차피 연합에서 준은 왕따나 마찬가지였다. 갤럭시 정도가 약간 호감을 가지고 있었지만 그들 하나로는 델타스피릿을 어떻게 해줄 수 없었다. 아니, 어쩌면 그들도 은근히 준을 경계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그런 상황에서 사고 하나 더 친다고 해서 당장 델타스피릿에 치명적인 문제가 생길일은 없었다.

“그럼 갔다올게. 해적이라도 나타나면 바로 연락 주고.”

준은 그렇게 말하며 착륙장으로 향했다.

스타라이트는 알바트로스보다도 작은 함선이었다. 경제적인 이유로 최근의 함선이 점점 대형화 해간다는 것을 생각해봤을 때 시대를 역행한다는 느낌도 있었지만 이 모델의 경우는 적재량을 줄이는 대신 속도를 택한 쪽이라 단순비교를 할 수는 없었다.

치익-

스타라이트의 착륙장에 내린 준은 산소가 주입되길 기다려 셔틀에서 내렸다. 그곳에는 장츠밍과 함께 몇 명의 항해사들이 준을 기다리고 있었다.

“준 알스버그.”

“장츠밍이다. 혼자 온건가?”

“나 하나면 충분하지.”

“우리 기술진이 전부 달려들어도 고치지 못했건만...”

아무래도 준 혼자 왔다는 사실이 미덥지 못한 모양이었다. 이해하지 못할 정도는 아니었지만 첫인상이 워낙 좋지 않다보니 마냥 기분이 좋지 않은 것은 사실이었다.

하지만 굳이 남의 함선에까지 와서 싸울 필요는 없었다. 준은 어깨를 한번 으쓱하고는 입을 열었다.

“안내나 해.”

“끙.”

장츠밍의 뒤를 따라 도착한 엔진룸의 상태는 생각보다 나빴다. 일단 반물질 원은 전부 우주공간으로 배출한 상태였고, 엑조틱 탱크는 완전히 비어있는 상태였다.

“총체적 난국이로군. 대체 원인이 뭐지?”

“반물질을 감싼 전자기장이 감마선 폭발의 영향으로 붕괴했습니다. 그 여파로 내부온도가 십만도를 넘었고 내열장비가 다수 파손되었습니다.”

기술진으로 보이는 한 여성이 입을 열었다.

“엑조틱 탱크는 왜 비어있는거야?”

“반물질을 대체해서 추력을 발생시키는데 사용했습니다.”

“왜 그런 바보같은 짓을...”

준은 나직이 한숨을 쉬었다. 현 인류는 엑조틱 에너지의 사용법을 모른다. 그저 겉으로 알려진 현상만을 이용해 약간은 어거지로 사용하고 있는 상태였다.

기존의 하이젠베르크 드라이브에 엑조틱 에너지를 흘려넣으면 그 효율이 압도적으로 상승한다는 사실만을 가지고 운용하는 레벨이었다. 물론 그렇다 보니 기술의 발달이라는 것도 없었다. 시간이 지나면서 효율은 다소 상승하긴 했지만 그 수준이라는 것이 얼마만큼의 엑조틱 에너지를 어떤 속도로 주입하느냐 정도의 차이만 있을 뿐이었다.

그런 상태인데 무리하게 엑조틱 에너지를 무슨 가솔린 쓰듯이 사용했으니 제대로 효율을 뽑아내지도 못하고 소모해버린 것이다.

“그것이...”

그녀는 살짝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장츠밍의 눈치를 살폈다. 준은 대충 상황을 이해했다. 엔진에 대해서 아무것도 모르는 자가 최고상급자로 있을 때 종종 생기는 경우였다.

“엑조틱 에너지를 저렇게 낭비하다니 대체 어떤 멍청한 녀석이 그런 명령을 내렸는지 모르겠지만, 애초에 엑조틱 에너지는 하이젠베르크 드라이브의 보조역할이라는 걸 모르는 녀석이겠군. 물론 결정체가 만능이라고 생각하는 일반인이겠지만.”

“그래서 방법은?”

장츠밍은 애써 표정 관리를 하며 입을 열었다.

“없어. 애초에 반물질을 전부 내보냈을때부터 반물질 수집을 시작했어야 되는데 이거 뭐 준비된게 하나도 없잖아. 대체 그동안 뭐한거야? 기술자들이 이런 기본적인 걸 모를 리가 없을거고.”

준은 그렇게 말하며 장츠밍을 쳐다보았다. 그의 표정은 울그락푸르락 하며 당장이라도 욕설을 쏟아낼 기세였다.

“반물질 수집을 위한 포집기도 고장났습니다.”

“뭐? 그게 왜 고장나?”

“그게 과도한 엑조틱 에너지의 발산으로...”

“끙.”

준은 고개를 저었다. 이래저래 사람 하나가 문제였다. 그는 고개를 돌려 장츠밍의 곁에 있는 항해사들 중 하얀 견장을 차고 있는 이를 향해 입을 열었다.

“당신이 함장이지? 바보는 아닐테니 지금 상황에 대해서 알고 있을테고.”

“그, 그렇습니다.”

그는 자신도 모르게 고개를 숙였다. 스타라이트의 함장이면 준보다 낮은 지위가 아님에도 그에게 뿜어져 나오는 묘한 위압감 덕에 저자세를 취한 것이다.

“그럼 설명을 잘 해줬어야지. 함장이 일반인에게 휘둘리면 어쩌자는 거야?”

준은 애초부터 장츠밍이 함장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이미 구조신호를 보낼 때부터 콜사인 조차 제대로 하지 않았고, 어지간한 함대는 모두 입고 있는 정복조차 착용하지 않았다. 델타스피릿 조차도 정복을 갖추고 있었다.

전략기획이사라는 건 보통 어지간한 기업의 부사장쯤 되는 위치다보니 함장이 그의 말에 휘둘린 것 같았다.

“엔진하나 고치지도 못하는 놈이 입만 살았군. 그랜슨 함장. 당장 이자를 체포해!”

“네?”

“실력도 없는 놈이 입을 나불거렸으니 충분히 죄를 저지른 것 아닌가? 당장 체포하지 않고 뭐하는 건가!”

“하, 하지만 그는 엄연히 우리를 도와주러 온...”

“이름도 모르는 좆만한 기업의 사장주제에 상하이 캐미컬의 전략기획이사인 나를 화나게한 놈이다. 더 이상 이유가 필요한가? 아니면 내 손으로 직접 이 녀석을 죽여야 할까?”

장츠밍은 품에 손을 넣었다. 딸깍 하는 소리가 들리는 것으로 봐선 분명히 권총일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잘 생각 하는게 좋을텐데. 밖에 내 함선이 있거든. 미사일 한방이면 이런 우주선 하나쯤은 그냥 반토막 날텐데.”

“쯧. 함장이 여기에 있는데 그럴 리가.”

“좋아. 날 체포한다 쳐. 그래서 뭐 어쩔건데? 당장 이곳을 벗어나야 하지 않아? 근해는 소호해적대의 근거지라고. 구조신호가 퍼진지 꽤 되었으니 당장이라도 해적들이 나타나도 이상할게 없는데.”

“너희 우주선을 좀 빌리도록 하지.”

장츠밍이 입가를 일그러뜨리며 입을 열었다. 준도 그의 표정을 똑같이 따라하며 입을 열었다.

“내 함선은 꽤 비싼데. 뭐, 하루에 100억 정도면 빌려주도록 하지.”

“아직도 상황파악이 안되는 건가?”

장츠밍이 권총을 꺼내어 준의 머리에 겨누며 말을 이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