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프로젝트 델타-317화 (317/5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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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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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애들이야 재미있을지 몰라도 엘라에게는 그다지 재미없는 일이었다. 그러다보니 금세 다른 아이들에게는 흥미를 잃고 더욱 집안에 틀어박혀 시미나 검둥이와 놀게 되었다.

“그래도 친구가 더 많았으면 하는 생각은 없어?”

“괜찮아. 외롭지도 않고. 다만...”

“다만 뭐?”

준이 되묻자 엘라는 우물쭈물 하면서 작은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어지간한 소리는 다 들을 수 있는 준이었지만 소리가 뭉개져서 그런지 정확히 알아들을 수 없었다.

“엘라가 원하는 거라면 뭐든지 들어줄 수 있는데.”

“그게... 조금 있으면 내 생일이잖아.”

“아직 몇 달 남은 것 같지만 뭐.”

이제 겨우 첫돌이라고 생각하니, 준은 약간 아쉽다는 생각도 들었다. 그녀가 태어나고 나서 무리어미 사태가 터지고, 그것들을 처리하러 다니느라 한창 귀여울 나이의 갓난아이 시절을 거의 보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나 생일때 선물 말인데... 갖고 싶은 게 있어요.”

부탁을 시작하니 자연스럽게 미소를 지으며 존댓말을 쓰는 것이, 확실히 서은설의 손에서 자란 티가 팍팍났다. 저런 여우 짓은 루나에게도 준에게도 없는 능력이었다.

“뭔데?”

“...동생 만들어주세요.”

“음?”

“귀여운 동생이 있으면 좋을 것 같아요. 엄청, 엄청, 엄청 귀여운 동생으로.”

“음. 그건 일단 엄마한테 물어봐야... 요즘 바빠서 힘들지 않을까?”

루나는 최근 연이은 철야로 정신이 없는 상태였다. 게다가 그녀자신이 워커홀릭 기질이 있어서 준이 말리지 않으면 야근까지 불사할 정도로 일에 매달렸다. 연구원 시절의 습관이 그대로 몸에 남아있는 모양이었다.

“엄마가 힘들면 작은엄마도 있는데...”

엘라는 입술을 오물거리며 말끝을 흐렸다.

“그건...”

준은 이마에 손을 올렸다. 그는 잠시 어디서부터 이야기를 해야할까 잠시 고민했다. 그녀에게 서은설은 말그대로 가족이나 마찬가지. 따지고보면 부모인 루나와 준 만큼이나 오랜시간을 같이 보냈다. 그녀가 서은설에게 각별한 정을 느끼고 있는 것은 그녀를 탓할 수는 없는 문제였다.

“그건 복잡한 문제니까 나중에 이야기 하자.”

“왜요?”

“음... 일단 그 녀석과는 그런 사이도 아니고... 일단 아빠에게는 엄마가 있잖아.”

“작은엄마는요?”

“일단 네가 그렇게 부르는 건 상관없는데. 사실 그 녀석과는 결혼한 사이도 아니거든.”

“엄마랑도 결혼 안했잖아요.”

“그거야 그렇지만.”

준이나 루나나 둘 다 결혼은 생각하지 않고 있었다. 지금도 충분하니 굳이 그런 의식을 치룰 필요는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애초에 결혼제도 자체가 구시대의 유물이기도 했다. 파티마제국처럼 여전히 결혼제도를 유지하고 있는 국가인 경우를 제외하면 거의 대부분의 커플들은 결혼이라고 해도 지인들을 불러서 간단한 축하 자리 정도를 만드는 경우가 대부분이었고, 그것마저도 생략하는 경우도 많았다. 다만 여전히 사실혼 제도는 남아 있어 서로가 갈라질때 재산분할은 법적으로 인정받고 있었다.

그런 것을 일일이 설명하기에는 엘라가 너무 어리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니까 동생 만들어줘요.”

“떼쓴다고 되는 문제가 아니야.”

“동생. 동새앵~”

엘라가 작정하고 매달리기 시작하자 준도 난감해졌다. 그녀가 무언가를 보채는 것도 처음이었고, 그렇다고 그걸 들어줄 수 있는 상황도 아니니 그저 달래는 수밖에는 방법이 없는 것이다.

하지만 그녀는 멈추지 않았고 결국 준의 인내심이 한계에 달했다.

“안된다면 안되는 거야!”

“힉?”

준이 갑자기 목소리를 높이자 엘라가 깜짝 놀라며 숨을 삼켰다. 준은 아차 싶었지만 이미 때는 늦은 상황이었다.

“으...”

“자, 잠깐만. 내가 화가난건 아니고...”

“으아아앙!”

아니나다를까, 엘라가 큰 소리로 울기 시작했다. 준은 쩔쩔매며 그녀를 달랬지만 한번터진 울음은 그칠줄 몰랐다.

“아빠미워! 엄마한테 갈거야!”

“윽... 엄마는 엄청 멀리 있는데...”

“작은엄마 말한거야! 끄윽!”

울면서도 할말은 다 하는 그녀를 보면서 준은 하는 수 없이 서은설을 불러야했다. 잠시후, 그녀가 도착하자 엘라가 쪼르르 달려가 그녀의 품에 안겼다.

거짓말처럼 울음을 멈추는 그녀를 보면서 준은 고개를 저었다.

“대체 뭘 했기에 애가 우는 거야?”

서은설이 질책하듯 말하자 준도 지지않고 맞받아 쳤다.

“너야 말로 애한테 대체 무슨 소릴 한거야?”

“내가 뭐?”

“왜 애가 동생을 만들어 달라는 소리를...”

“그게 무슨소리야? 아니. 설령 그렇다고 해도 그게 애를 울릴 일이야?”

“그야... 아니 됐다.”

준은 순간 말문이 막혔다. 뭐라고 말해야 할지 몰라서였다. 준이 말을 잇지 못하자, 서은설은 고개를 숙여 엘라를 보았다. 그녀와 눈이 마주친 엘라는 황급히 다시 그녀의 품에 머리를 묻고는 다시 울기 시작했다.

“으아앙. 아빠가 작은엄마랑은 아기 안만든대.”

“...잠깐만.”

서은설이 이마를 꾹 누르더니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그리고는 준을 향해 입을 열었다.

“이게 무슨 소리야?”

“동생을 만들어 달라고 하더라고. 그래서 루나는 바빠서 힘들다고 했더니. 뭐.”

뒷말은 굳이 하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서은설은 엘라를 번쩍 들어서는 엉덩이를 찰싹 때렸다.

“음?”

“에엑? 왜, 왜?”

“넌 그런거 신경안써도 돼.”

서은설은 엘라가 자신을 신경써서 일부러 상황을 만든 것이라는 사실을 눈치챘다. 동생을 가지고 싶다는 것은 진짜일지 모르겠지만, 거기에서 굳이 서은설을 끌어들인 것은 그녀를 억지로 준과 이어주려고 한 일일 것이다.

한 살도 안된애가 어떻게 거기까지 생각할 수 있느냐고 할 수도 있겠지만, 서은설은 그녀에 대해서 누구보다도 잘알았다. 그리고 엘라는 충분히 그런 계획을 실행에 옮길 만큼 영악한 아이였다.

“으에엥!”

그러자 엘라가 더 큰 소리로 울기 시작했다. 방금전과는 기세가 다른 울음소리였다. 정말 서러워서 죽을 것 같은 기운이 그녀를 중심으로 뿜어져 나오기 시작했다.

[마스터에 대한 위협을 감지. 경고합니다. 그녀에게서 떨어지십시오.]

그러자 A-10, 엘라가 지은 이름으로는 프랜이 서은설에게 다가가 입을 열었다.

“뭐 임마?”

찌릿.

서은설이 눈을 하얗게 뜨고 프랜을 노려보았다. 그러자 녀석이 주춤하며 뒤로 물러섰다. 로봇의 이마에 땀이 흐르는 듯한 착각과 함께 녀석이 입을 열었다.

[이상신호를 감지하여 긴급보수에 들어갑니다. 10분간 셧다운합니다.]

치익-

그리고는 자연스럽게 스스로를 정지했다. 준은 눈빛만으로 전투병기를 침묵시킨 그녀를 보며 마른침을 삼켰다.

“엘라는 내가 잘 교육시켜놓을 테니까. 저 녀석이나 좀 방에다가 가져다 놔.”

서은설은 빽빽거리며 울고 있는 엘라를 어깨에 들쳐메고는 위풍당당하게 사라졌다. 준은 그녀의 뒷모습을 멍하니 보다고 번뜩 정신을 차리고는 고개를 저었다.

“저 녀석 진짜 엄마같네...”

치익-

[이상신호를 제거하여 빠르게 재기동합니다. 정상상태로 복구합니다.]

“시끄러. 너 이제보니 엄청 쫄보였구만.”

[치익- 목록에 없는 단어입니다. 쫄보에 대한 정보를 요청합니다.]

“됐다. 이 녀석도 이제보니 로버과였구만.”

준은 고개를 저으며 프랜의 머리를 찰싹, 소리가 나게 때렸다.

갑자기 혼자 남겨진 준이 이제부터 무엇을 할까 고민하다가 마스터가 있을 식당으로 발길을 돌리려는 순간 제임스로부터 펠로우쉽 메시지가 들어왔다.

-제임스입니다. 현재 1광년 반경 안에서 구조신호를 접수했습니다. 함교로 와주시길 바랍니다.

-알았어. 금방갈게.

준은 프랜에게 알아서 돌아가도록 명령하고는 빠르게 함교로 달려갔다. 다급한 문제는 아니었기 때문에 서은설까지 소환할 필요는 없었다.

[본인은 상하이 캐미컬 전략담당이사 장츠밍이라고 한다. 타고있던 함선이 엔진누수로 문제가 생긴상태이니 구조를 하는 자에게는 후사하도록 하겠다. 혹여나 나쁜마음을 먹고 접근하는 자들이 있다면 생각을 고치도록. 이 함선에는 대량의 폭발물이 탑재된 상태이니 어설프게 접근했다가 같이 죽고 싶지 않다면 말이야. 참고로 본인은 20년간 수련을 한 쿵후마스터로 누구든지 한손에 때려눕힐 수 있으니 시험해보고 싶은 자들이 있다면 시험해보도록.]

준은 구조메시지를 보며 한숨을 쉬었다.

“저런 말에 잘도 속겠다.”

“나름대로는 최대한의 방어수단이라고 생각하긴 합니다만.”

실드를 치던 제임스도 같은 생각이긴 한 듯 가볍게 한숨을 쉬었다.

“언제 뿌려진 신호야?”

“두 시간쯤 된 것 같습니다.”

“이쪽 해역의 해적들 숫자는?”

“알려진 바대로라면 소호 해적대의 근거지입니다. 그외에도 자잘한 녀석들 몇이 더 있지만 신경쓸 정도는 아닙니다.”

“없지는 않다는 이야기군.”

“해적이야. 어디든지 있으니까요.”

해적들의 함선은 워프드라이브 중의 우주선을 잡아챌 정도로 기동성이 뛰어났다. 이것이 가능한 이유는 워프기동중의 함선이 엄청난 중력파를 일으키기 때문인데, 중력파 자체는 빛의 속도로 움직이지만 그것을 기반으로 역추적하여 우주선의 정확한 위치를 계산할 수 있기 때문이었다.

일단 위치가 드러난 함선의 워프드라이브를 멈추는 방법은 그리 어렵지 않다. 빠른 기동성의 함선을 이용해 그들보다 앞서 진로를 막아버리면 되는 것이다.

공간이 간섭된 상태에서 워프드라이브를 계속 가동하는 것은 자살행위나 마찬가지였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워프기동을 멈출수밖에 없고 그 다음은 해적들과의 지루한 추격전을 벌이거나, 그도 아니면 항복하는 수밖에는 없었다.

물론 그 방법은 해적들에게도 부담이 큰 방식이었다. 위치계산이 조금이라도 틀리면 허탕을 치는 것은 당연하고, 설령 위치를 잡았다 하더라도 공간간섭의 위험성은 해적들도 동일하게 지는 것이다. 자칫 잘못하면 두 대의 함선이 서로 일그러진 공간으로 인해 동시 폭발하는 경우도 있는 것이다.

때문에 해적들은 구조신호를 보내는 함선들을 요리하는 것을 더 좋아했다. 우주여행중에 조난을 당하게 되면 십중팔구 해적을 마주치게 되는 것도 그런 이유에서였다. 굶어죽기 싫으면 조난신호는 보내야하고, 그렇게 되면 가장 가까이에서 먹잇감을 노리는 해적들에게 포착된다.

결국 어느쪽도 선택하지 못하고 시간만 보내다가 마지막 순간에 조난신호를 보내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즉, 조난신호를 받은 시점에서 이미 그 함선의 내부상황은 한계에 도달해 있는 시점이라고 할 수 있었다.

“상하이 캐미컬이라... 뭐, 일단은 도와주는게 낫겠지.”

자신에게 통상금지를 걸어버린 100대기업의 한 곳인지라 그다지 내키지는 않았지만 그것과 이것은 별개로 봐야했다.

“목표 재설정. 간섭공간 계산합니다.”

제임스가 기기를 조작하며 입을 열었다. 워프도중에 마주치게 되는 성간물질의 대부분은 함선 뒤쪽의 위상공간에 축적된다. 그것이 워프가 끝남과 동시에 일거에 터져나오게 되는데 그 후폭풍은 후방으로 수백킬로미터 까지 뻗어나갈 정도. 만약 중간에 마주치게 되는 먼지들이 많아지면 그 위력은 더욱 커지게 된다.

그렇다보니 혹시라도 소행성같은 걸 마주치게 되면 그 순간에는 괜찮지만 워프드라이브가 끝나는 순간 엄청난 폭발과 함께 함선까지 말려들게 된다. 물론 그런 경우는 거의 없다. 확률로 따지자면 0.0000000001퍼센트의 미약한 수준이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조심해서 나쁠 것은 없었다.

보통 영화에서 보는 소행성대는 우주선이 드리프트를 하며 곡예비행을 해야할 정도로 좁은 거리에 있는 것으로 묘사된다. 하지만 실제의 소행성대는 가장 근거리에 위치한다고 해도 최소 수백킬로미터 이상의 거리를 두고 있다.

우주적 개념으로 밀집된 공간이라는 것은 실제 인간의 개념에서는 텅 비어있는 것이나 마찬가지 인 것이다.

어찌되었든 그렇다보니 어지간해서는 질량이 큰 물체와 충돌할 위험이 없었고 조심해야 할 것은 목표지점 근처의 커다란 행성들이었다. 그 정도 체급차이라면 워프드라이브고 뭐고 그냥 행성에 충돌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실제로 워프드라이브를 통해 행성에 충돌실험을 행한 적도 있었다. 결론은 그냥 바위에 계란던지기로 결론이 났다. 행성의 거대한 중력이 워프드라이브의 위상공간을 무력화 시키기 때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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