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310 ----------------------------------------------
개척행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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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정도면 자격으로는 충분하지 않을까 생각했지만 로버의 대답은 준의 예상을 벗어나는 것이었다.
[너무 나이가 많군.]
“뭐 이 자식? 이제 겨우 23인데?”
처음 델타를 얻을 것이 21살. 알카트뢰즈에서 거의 1년을 있었고 그 이후로 일 년 가까이 더 지났다. 하지만 그래봐야 아직 이십대 초반에 불과한 나이다. 델타스피릿에서 준보다 나이가 어린 사람은 손에 꼽을 정도였다.
[십대의 순결한 처녀가 아니라면 받아들일 수 없다.]
“니가 무슨 유니콘이냐?”
준은 한숨을 푹 쉬었다. 그렇다고 당장 어디서 순결한 처녀를 구해올 수도 없었다. 로버를 구동시키기 위한 기본조건이 아닌이상 이건 어디까지나 이 녀석의 취향문제. 그리고 준은 그런 녀석의 변태같은 취향을 만족시켜주고 싶지 않았다.
“됐어. 그럼. 별로 필요한 것도 아니고.”
[자격에 맞는 자를 데려오라. 나는 타락한 자를 원하지 않는다.]
로버는 준을 내려다보며 입을 열었다. 놈의 얼굴에 표정이 있거나 하지는 않았지만, 준은 녀석이 틀림없이 자신을 경멸하듯 내려보고 있다고 확신했다.
“이 로리콘로봇새끼가... 콱 부숴버릴까.”
[할수있다면 해보시던가.]
지지않고 맞받아쳐 오는 로버를 보며 준은 기가차다는 듯 헛웃음을 흘렸다. 준은 에피알게나스를 향해 고개를 돌렸다.
“원래 이렇게 개성들이 강한건가?”
“그 정도까지는 아닐텐데... 불량품일지도.”
[감히 이 나를 불량품이라고 논하다니.]
쿠르르-
로버가 몸을 움직이더니 발을 떼었다. 거대한 로봇이 첫 걸음을 떼는 모습은 그 자체로 상당히 위압적이었다.
녀석은 오른발을 몇 미터 앞에 내려놓았다.
쿠웅!
땅이 들썩일 정도로 엄청난 충격이 지하공동 안을 뒤흔들었다. 준은 자신의 이마를 스치고 지나가는 바람에 휘파람을 불며 녀석을 향해 입을 열었다.
“꽤나 인상적이었어.”
[이제 나의 위대함을 알았겠지?]
“그래. 네가 쓸모없다는 사실을 알았지. 뭘하나 했더니 기껏 걷는거냐? 보여줄거 다 보여줬으면 이제 그만 분해해야겠다.”
[대체 무슨 소리냐?]
“알것없어. 설명하기도 귀찮고.”
던전핵을 파괴해야 20만이나 들인 경험치의 일부라도 제대로 돌려받는다. 지금까지 얻은 경험치는 외도들을 잡고 얻은 2만 가량의 경험치. 여기서 로버를 챙겨버리면 경험치를 제대로 받을 수가 없다. 던전핵의 파괴는 퀘스트 완료도 걸려있었기에 꼭 필요한 일이었다.
로버의 힘이 기대되는 것은 사실이다. 그 기술력도 궁금하다. 하지만 놈에게 순결한 처녀를 바칠 생각은 없었고, 루나가 분석하기에는 놈을 구성하는 기술 자체가 지나치게 난이도가 높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래저래 고민을 하다보니 그냥 부숴버리는 게 낫겠다는 결론으로 치달았다.
준은 허공에 손을 휘저었다.
쿵! 쿵! 쿵! 쿵!
우오오오!
그러자 인벤토리에서 골렘들이 모습을 드러내었다. 로버를 파괴하기 위한 용도가 아니라 순전히 일꾼으로 사용하기 위함이었다.
“부품이라도 몇 개 건져가는 걸로 하지.”
준은 라이트세이버를 최대한으로 펼쳤다. 거의 2미터 크기로 자라는 라이트세이버는 황홀한 빛을 사방에 뿌려댔다. 마나를 최대한을 때려박으며, 매크로 어택을 시전하려는 준을 보며 로버가 다급히 입을 열었다.
[잠깐. 그대는 나의 강대한 힘을 필요로 하지 않는가?]
“필요해.”
[그럼 어째서 날 파괴하려 하는 것인가?]
“기회비용이라는 게 있잖아. 관상용 인형과 경험치를 생각해보면 아무래도 경험치 쪽이 이득이라는 생각이 드는 걸.”
[나는 인형이 아니다.]
“알아. 누가 그걸 몰라?”
준은 뱉듯이 말하고는 몸을 훌쩍 날렸다. 순식간에 15미터가량을 점프한 준은 로버의 신체 한가운데, 하얀 빛으로 반짝이는 둥그런 구슬을 향해 검을 휘둘렀다. 크기는 대략 1미터 정도. 갑옷으로 상체를 방어하고 있으면서도 저 구슬은 외부로 드러나 있었다. 당연히 원래 설계에 존재하던 물체는 아니었을 것이다.
그렇다면 그것의 정체는 뻔했다. 다름아닌 던전핵인 것이다.
[감히!]
위이이잉- 기이이익! 카카카칵!
로버의 팔이 움직이며 구동계가 비명을 질렀다. 구석구석 녹슨 구역이 있는 모양이었다.
콰앙!
준은 공격을 멈추지 않고 그대로 녀석의 팔을 때렸다. 전완을 감싸고 있던 초초하르듐 구속구가 우적, 하고 우그러졌다.
준이 낼 수 있는 최대출력의 공격이다. 파란색 외도라 할지라도 절대 경시할 수 없는 공격. 하지만 겨우 장갑을 약간 손상시키는 것에서 그쳤다.
“제법 단단한데?”
공격의 반동으로 몸을 띄운 준은 다시 떨어지며 재차 공격을 감행했다. 매크로어택이 실린 라이트세이버에서 광폭풍이 일며 주변의 대기를 찢어발겼다.
콰아앙!
두 번째 공격에 다시 한 번 전완갑주가 보기 흉하게 우그러졌다. 하지만 여전히 치명타는 아니었다.
“어디까지 버티나 보지.”
준은 계속해서 허공에 떠있는 상태로 몸을 가볍게 띄웠다가 아래로 힘껏 검을 내리쳤다. 그리고 세 번째의 공격에 드디어 초초하르듐갑옷에 균열이 가기 시작했다.
우드득!
보통의 강화금속에 비해 탄성과 연성이 높으면서도 일정충격량 이상의 피해를 흡수하게 되면 균열을 일으키며 부서진다. 이런 성질을 지닌 금속은 본적이 없다. 재질을 분석해서 재현할 수 있다면 방어구의 방어력을 높일 수도 있을 것이다. 준은 샘플을 가지고 가야겠다는 생각을 하며 다시 한 번 공격을 감행했다.
[그만!]
로버도 마냥 당하고만 있지 않았다. 그는 아직 멀쩡한 오른팔로 가슴을 가리고 반파된 왼팔을 휘둘러 준을 공격했다. 하지만 그 속도는 하품이 나오도록 느렸고, 관성제어에 능숙한 준은 가볍게 몸을 띄우는 것만으로 피해낼 수 있었다.
“큰 소리 친 것 치고는 별 능력이 없군. 내가 너를 파괴하지 않아야 할 이유를 대봐.”
[나는 처녀를 원한다.]
“너 임마... 이제는 체면같은 것도 없는거냐?”
준은 한숨을 푹 쉬며 입을 열었다. 처음에는 유니콘 흉내라도 내려는 건가 싶었지만 이런식이면 그냥 변태나 다름없었다.
[나는!]
로버가 왼팔을 마구 휘둘렀다. 흥분한 녀석이 움직이며 벽을 후려치차 지하공동 전체가 흔들리며 부서진 콘크리트가 사방으로 튀었다.
[순결한 소녀를 원한다아아!!!]
콰아앙!
“끙. 오지말걸.”
막스가 황급히 날아오는 콘크리트 덩이를 피하며 투덜거렸다. 로버를 본 것 자체는 진귀한 경험이었지만 고래싸움에 새우등터진다고, 괜한 일에 휘말려 피해를 보고 있는 것이다. 그는 에피알게나스의 머리를 향해 주먹만한 콘크리트 파편이 날아드는 것을 보고는 황급히 들고 있던 니들리스 해머를 휘둘렀다.
쾅!
허공에서 파편이 먼지로 화하고, 에피알게나스는 잠시 놀란 눈을 하더니 막스를 향해 가볍게 고개를 숙였다.
“자기몸은 알아서 지키라고. 물론 내가 곁에 있으니 별일은 없겠지...켁?”
퍽!
막스는 자신의 뒤통수를 때리는 묵직한 감각을 느끼며 자리에 풀썩 주저앉았다. 완전히 방심하고 있던 사이 파편하나가 머리에 정면으로 꽂힌 것이다. 머리에 피를 철철흘리는 막스를 보며 에피알게나스가 가볍게 손을 휘젓자, 빛무리와 함께 피가 멈추고는 상처가 빠르게 아물었다.
“그러니까 멋있는 척은 아무나 하는 게 아닙니다.”
어느새 거대화 한 검둥이가 입을 열었다. 녀석은 에피알게나스의 뒤에 서있었는데 어지간한 돌덩이들은 그냥 몸으로 튕겨내고 있었다. 꿈틀거리는 검은 육체는 콘트리트 파편따위에 아무런 영향도 받지 않았다.
“부러운 녀석.”
준과 로버의 전투는 지루하게 이어지고 있었다. 로버의 방어력이 막강한데 비해 민첩성은 극도로 떨어졌고, 공격력도 별볼일없었다. 무슨 기술적으로 팔을 휘두르거나 하는 것도 아니고 싸움을 한 번도 해본적 없는 사람처럼 꼿꼿하게 서서 파리잡듯 준을 향해 손을 뻗는 것이 전부였다.
“곧 끝나겠군.”
어느새 검둥이의 곁에 바짝 붙어선 막스가 입을 열었다. 괜히 자존심을 내세워 일일이 콘크리트 파편을 막아내느니 녀석의 곁에 붙어 몸을 감추는 쪽이 아무래도 편리한 것이다.
휘청!
로버가 갑자기 중심을 잃으며 상체를 휘청였다. 골렘들이 로버의 다리를 후려치기 시작한 것이다. 준에게 집중하느라 골렘의 존재를 잊고 있던 로버는 크게 당황하며 두 팔을 허우적 거렸다. 할 수 있는 거라곤 꼿꼿이 서서 두 팔을 휘두르는 것 밖에 없었던 로버는, 자신의 다리에 붙은 녀석들을 해치울 만한 능력도 없는지 그저 계속해서 준만을 노리다가 그만 중심을 잃고 비스듬히 넘어지기 시작했다.
“다들 적당히 피해!”
준은 그렇게 외치고는 쓰러지기 시작하는 녀석의 머리를 향해 라이트 세이버를 휘둘렀다.
쩌엉!
비교적 약해보이던 머리였지만 오히려 전완갑보다 훨씬 더 단단했던지 상처를 입히기는 커녕 준에게 상당한 반발력이 되돌아왔다.
[으아아!]
하지만 로버는 의외로 상당히 충격을 받은 모양이었다. 그는 지금껏 한번도 내지른 적 없는 비명성과 함께 머리를 감싸고는 그대로 바닥을 굴렀다.
콰앙! 쿵! 쿠르르!
거대한, 그야말로 거대한 쇳덩어리가 쓰러지자 지하공동 내부가 엉망으로 망가지며 자욱한 먼지가 시야를 가득 채웠다.
“쿨럭. 쿨럭.”
준은 폐에 한가득 들어찬 먼지를 뱉어내며 손을 휘저었다. 그러자 바람이 일며 그의 주위에 있던 먼지들이 밀려났다. 염동력을 이용해 먼지를 제거한 것이다.
“휴. 일단 넘어뜨리긴 했는데. 이 녀석 또 일어나기 전에 끝장을 봐야겠군.”
준을 중심으로 이십여미터 반경의 먼지가 모두 사라지며 시야가 밝아졌다. 준은 한쪽 구석에서 웅크린채 머리를 감싸고 있는 로버를 보며 한숨을 쉬었다.
[끄흑... 끅...]
“울지마라. 어차피 인생은 한 번이니까.”
뚜벅. 뚜벅.
준은 그를 향해 천천히 다가갔다. 그러자 로버가 흠칫하며 몸을 더욱 웅크렸다. 거대한 로봇이 마치 어린애 처럼 겁을 먹고 있는 모습을 보자, 약간은 불쌍하다는 생각도 들었다.
[대체 왜 이러는 건가. 난 그저 순결한 처녀를 원했을 뿐인데.]
“그러니까 그게 문제라고. 여기서 10대의 순결한 처녀를 대체 어떻게 구한다는 거냐. 아니 일단 구해 줄 생각도 없어. 이 변태녀석아. 그냥 입다물고 조용히 분해되기를 기다리라고.”
[나는 변태도 아니다. 다만 나의 자아가 가진 성향일 뿐.]
“그거나그거나.”
결국 10대의 순결한 여성이 아니라면 녀석을 움직일 수 없다는 것만 더 확인한 것 뿐이다.
사실 딱히 녀석이 잘못한 것은 없었다. 개인의 성적취향이야 준이 참견할 문제도 아니었고, 그렇다고 실제로 문제를 일으킨 것도 아니었다. 다만 이 녀석이 품고 있는 던전핵이 최소한 경험치 10만은 가지고 있다는 것이 문제라면 문제였다.
어차피 다룰 수 없는 로봇이라면 경험치라도 가지고 가는 게 이득이기 때문이었다.
준은 반항할 의사조차 없는 로버에게 다가가 녀석의 가슴에 훤히 드러난 던전핵을 향해 라이트세이버를 치켜세웠다.
우웅-
빛의 검이 변화하더니 커다란 망치의 형태로 변화했다.
‘확실히 이거 편리하군.’
라이트세이버는 니들리스 시리즈를 완전히 대체할 만한 무기였다. 매번 용도에 따라서 인벤토리에서 무기를 꺼내지 않아도 되고, 그 절삭력이나 파괴력등은 니들리스에 비할바가 아니었다. 물론 던전에서 얻은 아이템이니 만큼 가격으로 따지면 최소 200억 짜리 무기였다. 하지만 그 능력을 생각하면 거의 헐값으로 얻은 것이나 마찬가지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