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프로젝트 델타-309화 (309/5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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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척행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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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름대로는 준이 못듣는 거리에서 한다고 했지만, 준의 청각은 천리안을 장착하고 있는 시각만큼은 아니지만 상당히 밝은 편이었다.

“헉? 들렸나봐?”

“어떡하지? 이제 짤리는 건가?”

“닥쳐. 누구야? 먼저 욕한놈? 빨리 자수해.”

“이 새끼.”

“다같이 욕해놓고는 왜 나보고 지랄이야.”

병사들은 한참을 웅성거리더니 이내 어색한 웃음을 지으며 빠르게 태세전환을 시도했다.

“하하. 당연히 사장님이 다 드셔야죠.”

“저희는 떨어지는 떡고물만 먹겠습니다. 헤헤.”

“그럼 저희는 다른 사람이 오지 못하게 경계를 하겠습니다.”

“여기에 누가 온다고 경계를 하냐? 하여튼 이것들 입만살아서는...”

준은 고개를 저으며 열린 문으로 천천히 내려갔다. 그 뒤를 검둥이와 에피알게나스가 따랐다. 막스도 은근슬쩍 거기에 끼었다.

“너는 왜?”

“나, 나는 대장이니까. 그 정도 권한은 있잖아?”

“이게 무슨 서열싸움이냐? 위험하니까 오지말라는 거지. 막말로 파란색 외도라도 있으면 어쩌려고.”

“에피알게나스 양이 있으니까 괜찮지 않을까?”

“끙. 알아서 해라.”

준은 한숨을 쉬며 고개를 끄덕였다. 막스는 장민성에게 병력관리를 지시하고는 얼른 준의 뒤를 따라 밑으로 내려갔다.

통로는 꽤 길었다. 한참을 내려가도 끝이 보이지 않을 정도였는데, 어두운데다가 주변을 경계하며 걷다보니 어느순간부터는 방향감각을 잃을 정도였다.

그렇게 한참을 내려간 끝에 준은 계단의 끝에 발을 디뎠다. 계단의 끝에 있는 철문에도 역시 도어락이 있어 라이트세이버로 문을 통째로 베어서 넘어뜨렸다.

쿠웅!

사람 하나가 지나갈 만한 크기로 베어낸 문이 안쪽으로 쓰러지자 문 안쪽에서 빛이 새어나왔다. 안으로 들어서니 꽤나 큰 넓이의 지하공간이 있었다. 맵을 열어 확인해보니 정확히 던전핵이 있는 장소였다.

“여기에서 그 이상한 목소리가 울려퍼진 것 같은데.”

[허락없이 이곳까지 들어오다니.]

그 소리는 지하공동 전체를 울리며 큰 소리로 퍼졌다. 귓가기 징징거리는 소리에 준은 가볍게 눈살을 찌푸렸다.

“누군지는 모르겠지만 좀 작게 말하면 좋겠는데. 꼭 그렇게 무게를 잡고 중요한 사람이라는 걸 티를 내야겠어?”

[마스터의 기운을 품은자여. 그대는 약속된 자인가?]

“영문을 모르겠는 소리 좀 그만하고 모습을 드러내라고.”

지하공동의 크기는 상당히 넓었다. 공장 자체의 크기보다도 큰 것 같았다. 그러다 보니 공동 전체가 어슴프레한 빛으로 가득 차 있음에도 전체의 형태를 쉽게 가늠할 수 없었다.

준은 조심스럽게 주변을 살피며 차가운 금속재질의 기둥을 더듬었다.

‘이건 평범한 철은 아니로군. 아무리 봐도 티타늄 합금쪽인 것 같은데... 아니. 그것도 확실치는 않아.’

만지는 정도로는 재질을 확인할 수 없었다. 샘플을 좀 가져가서 분석을 해야할 것 같았다.

[날 찾는가?]

“그래.”

준은 그렇게 말하며 라이트 세이버를 들어 기둥에 밀어넣었다. 하지만 기둥은 부드럽게 라이트세이버를 튕겨내었다.

준은 깜짝 놀라며 다시한번 기둥을 더듬었다. 분자레벨에서 절단을 시켜버리는 라이트세이버의 절삭력을 버티는 합금이라는 것은 생각해 본적도 없었다.

[그대가 찾는 나는 그대의 앞에 있다.]

“무슨 소리지?”

쿠르릉-

그 순간 지하공동이 지진이라도 일어난 것처럼 심하게 뒤틀리기 시작했다.

“젠장. 일단 다 내 곁으로 모여.”

최악의 상황이 벌어져 천장이 무너져 흙으로 덮힌다고 해도, 일단 준의 곁에 있으면 살아날 확률이 높았다. 항력전개를 통해 흙과 골조들에서 안전하게 피신한다음 조심스럽게 땅을 파서 올라가면 되는 것이다.

“준.”

“왜?”

쿠르릉-

말을 하는 와중에도 기둥은 계속해서 움직이고 있었다. 에피알게나스가 말을 이었다.

“이곳, 보통의 공장은 아니야.”

“그럼?”

에피알게나스는 손가락을 들어 하늘을 가리켰다. 준이 고개를 들자, 까마득한 높이에서 자신을 내려다보는, 거대로봇이 있었다.

“어?”

갑자기 생각지도 못한 것이 나타나다보니 준의 입에서 헛바람이 새어나왔다. 대외도형 결전병기들이 수두룩하게 있는 이곳이었지만 대부분 그 크기는 인간형에서 벗어나지 않았다. 개중 탑승형 병기가 없는 것은 아니었지만, 그렇다해도 전차의 개념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 놈들이었다.

헌데 지금 자신을 내려다보고 있는 ‘로봇’은 병기의 개념에서 한참이나 벗어난, 그러니까 애니메이션이나 아동용 영화에나 나올법 한 이족보행거대로봇이었다.

“저런 걸 대체 어떤 정신나간 놈이 만든거야?”

준은 자신도 모르게 그렇게 말했다. 어찌보면 당연한 일이다. 소형 이족보행 로봇은 상황에 따라서 쓰일일이 많다. 재난현장에서의 구조나, 시가전 등, 인간의 편의에 맞게 만들어진 구조물이 있는 곳에서는 인간형태의 로봇이 가장 빠른 상황대처를 할 수 있는 것이다. 하지만 그것이 병기의 개념, 그러니까 화력지원형태의 대형병기로 가게 되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막말로 만화영화에서 나오는 거대로봇은 물리적으로 성립자체가 안되는 물건이다. 작게는 10미터에서 크게는 백여미터 까지 있는 그런 로봇은 크기만큼이나 무게도 엄청나다. 수십톤에서 수만톤까지 되는 그런 크기의 로봇은 중력하에서 제대로 움직일 수도 없거니와, 일상생활 레벨에서 느낄 수 없는 온갖 힘의 저항들을 맞닥뜨리게 된다.

아주 단순하게 인간형태를 크기만 키운다고 만들어 지는게 아닌 것이다. 게다가 그렇게 큰 로봇을 만들어서 어디다가 쓸 것인가. 그 덩치만큼 느리기 그지없어 미사일 한두방이면 장갑을 관통당하고 폭발하게 될 뿐이다.

차라리 그런 로봇을 만들바에야 미사일 하나라도 더 생산하는 게 훨씬 더 효율적인 것이다.

[그대는 약속 된 자인가?]

그리고 계속 똑같은 소리만 반복하는 저 로봇의 크기는 얼추보아도 약 20미터는 되어보였다. 준이 기둥이라고 생각하고 만지고 있던 그 합금은 다름아닌 놈의 다리였다.

에피알게나스도 고개를 들어 그 로봇을 바라보았다.

“대외도형결전병기 로버(ROVER). 나도 이렇게 가까이에서 보는 건 처음.”

그녀는 좀처럼 내비치지 않는 감정까지 드러내보이며 그것을 우러러보고 있었다. 일행은 로버를 보기 위해 조금 더 뒤로 물러섰다. 어느정도 뒤로 물러서자 녀석의 전체 실루엣이 한눈에 들어왔다.

일단 기본적으로 인간의 형태를 띠고 있었고, 비교적 날렵한 몸체에 상체위주로 약간 두꺼워 보이는 갑주를 달고 있었다.

빠른 움직임을 구현하려고 한 이유인지 하체는 크기에 비해 비교적 얇았는데, 준의 머릿속에는 대체 저런 얇은 다리로 어떻게 이 로봇을 지탱하고 있는 것일까 하는 생각밖에는 떠오르지 않았다.

“왜 저렇게 큰거야?”

“그래야 할만큼 적들도 크니까.”

“뭐, 그렇긴 하겠네.”

당장 파란색 외도만 해도 저 로버정도의 크기는 나온다. 하지만 궁금한 것은 아직 많았다. 저 로봇의 존재자체가 준에게는 여전히 미스터리였다.

“헌데 굳이 이족보행병기로 만든 이유는 뭐야? 저런거 기동하기만 어렵고, 당체 쓸모는 없어보이는데.”

“사람의 움직임에 최대한 맞추기 위해서라고 들었어.”

“왜 사람의 움직임에 맞추는... 설마 진짜 저 안에 사람이 타는 건가? 그런 만화영화같은 짓을 어딘가의 우주에서 정말로 하고 있었단 말이야?”

준은 깜짝 놀라며 입을 열었다. 아무리 생각해도 비효율적이다. 남자의 로망이라는 말로 하기에도 너무나도 큰 낭비. 도저히 납득할 수 없다는 얼굴을 하고 있는 준을 향해 에피알게나스가 입을 열었다.

“강도와 경도가 높고, 무게가 가벼운 금속이 있어. 하르듐이라고. 보통 우주선의 외피에도 쓰이는 물건인데 그걸 또 다시 강화한 금속도 있어. 초하르듐이라고 해.”

“거참 편리하네. 그럼 그걸 사용하면 저렇게 커도 움직이는데 이상이 없다는 건가?”

“아니, 그것을 다시 강화한 금속을 사용해.”

“그럼 그 금속의 이름은 초초하르듐 정도 되는 건가?”

“정답.”

“끙. 농담인줄 알았는데.”

그렇다고는 해도 그런식의 네이밍을 사용하는 것은 인류도 마찬가지다. 이런저런 골치아픈 네임을 새로 만드느니, 저런식으로 만들어놓으면 재료의 형태라던가 성질등을 유추하기 쉽기 때문에 오히려 선호되는 측면도 있었다.

“어쨌거나 그 초초하르듐을 사용해서 로버를 만들었다는 건 알겠어.”

준은 가만히 생각에 잠겼다. 20미터에 달하는 기계로봇을 타고 외도를 상대한다는 것은 대체 어떤 기술이 필요한 것일까? 저 만한 기계가 움직이기 위해서는 엄청난 양의 에너지가 필요하다. 거기다가 순간적으로 힘을 뽑아낼 수 있어야 하기 때문에 생각하는 것 이상의 출력이 필요할 것이다.

거기다가 구동계는 어떤가? 생각만으로도 토가 나올 것 같은 난이도의 작업이다. 이건 단순히 프라모델을 조립해서 뚝딱 키워놓은 형태가 아니다. 전투용인 만큼 신체자체가 유연해야 했고, 인간의 몸에 유사하게 만들기 위해서는 그만큼 많은 관절과 유연한 동체가 필요했다. 인간의 근육을 흉내내기 위해서는 또 그에 걸맞는 신소재도 필요하다. 무엇보다도 무게를 버틸 수 있는 충분한 충격흡수시스템 존재가 필수적이다.

거기다가 크기가 큰 만큼 갑작스런 움직임으로 인해 파일럿이 겪게될 신체의 부담역시 고려해야할 일이다. 로버의 파일럿이 겪게될 순간가속은 얼추 따져봐도 우주선 조종사보다 훨씬 더 크다. 신체의 부담도 부담이지만, 전투라는 것은 충격을 동반하기 때문에 그 안의 인간이 제대로 살아있을 거라는 보장을 하기 힘들다.

“하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저걸 만든다는 건, 특히 인간이 탑승한다는 것은 이해를 못하겠어. 너희들은 어떻게 그 모든 문제들을 해결한거지?”

준의 질문은 타당했다. 설령 로오나인이 살던 우주의 물리법칙이 현 우주와 다르다고 해도 저 정도로 이레귤러인 상횡이 되버리면 이야기가 다르다. 아무리 그래도 사람이 버틸 수 있는 한계라는 것이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준이 생각하기에 20미터 크기의 로봇에 사람이 탑승한다는 것은 그냥 원심분리기에 넣고 갈아버리는 것과 별 차이점이 없었다.

“그다지 어려운 일은 아니야.”

“그러니까 대체 어떻게 했다는 거야?”

“오리진.”

에피알게나스의 대답에 준은 허탈한 기분이 되었다.

“설마. 설계부터 완성까지 그 컴퓨터가 다 한거야?”

“맞아. 네 말대로 우리 로오나 인은 기술적 난제를 극복하지 못했어. 모든 것은 오리진이 해결했어.”

“끙. 그쯤되면 컴퓨터가 인간에 비해 더 뛰어나다고 할 수 있겠군.”

“오리진은 보통의 컴퓨터가 아니야.”

“나도 알아. 델타와 람다, 시그마가 지금 내 몸속에 있으니까. 그것의 대단함은 세상누구보다도 내가 잘 알고 있다고.”

준은 그렇게 말하며 고개를 들어 로버를 바라보았다. 녀석은 반복해서 ‘약속의 주인’을 찾고 있었다. 어쩌면 처음 생산될 때 주인이 정해지지 않은 상태에서 공격을 받았고, 비교적 안전한 땅속에 있어 큰 훼손없이 오랜 시간을 잠들어 있었던 것 같았다.

“어쨌거나 오리진이 만든 물건이라면 딱히 걱정할 필요는 없겠군. 뭐가 되었든 안전에 대한 부분은 확실하지 않을까?”

“우주공간에서도 약 한달간 생존할 수 있다는 실험결과도 있어.”

“그래. 뭐, 그정도라면 충분하겠군.”

준은 녀석을 슬쩍 올려다보고는 입을 열었다.

“약속의 주인이 되려면 어떻게 해야하지?”

[나에게 다가와 주인으로서의 증거를 보여라.]

“그러니까. 그 증거가 뭐냐고.”

[마스터의 흔적. 그리고 그 자격이다.]

“끙. 에피알게나스. 로버를 가지는데 자격이 필요한 건가?”

“외도를 상대하기 위해 출력을 높이다보니 자아가 형성된 놈들이 생기기 시작했어. 그런 경우에는 대체로 사람을 가리는 경우가 있다고 해.”

“그냥 취향이라는 건가? 생긴 것 가지고 차별하지는 않겠지?”

“자세한 건 나도 몰라. 그런 건 군사비밀이니까.”

“뭐, 일단 부딪혀 보면 알겠지.”

준은 대화를 마치고 로버를 향해 뚜벅뚜벅 걸어갔다. 상당히 거리가 떨어져 있었기에 녀석에게 다가가는데만도 한참의 시간이 걸렸다.

‘일단 마스터의 흔적이라는 건 다름아닌 오리진의 조각을 말하는 걸거야. 계속 반복해서 그 점을 강조하는 것 보니, 조각을 가진 사람이 아니면 받아들이지 않겠다는 뜻인 것 같기도 하고. 일단은 그 점을 어필해봐야겠군.’

졸지에 로봇에게 잘 보여야 한다는 생각이 들자 신세가 처량해졌다.

척.

준은 로버의 10미터 앞에 서서 허리에 손을 올린채 입을 열었다.

“나는 델타와, 람다, 시그마의 주인이다. 오리진의 조각을 잔뜩 가지고 있으니 어서 내앞에 무릎을 꿇도록 하여라.”

“...뭔가 아닌 것 같지않아?”

가만히 지켜보던 막스가 입을 열었다. 그도 이미 로버의 거대한 크기에 상당히 질려있던 차였다. 검둥이는 앞발로 눈을 가렸고, 에피알게나스는 가볍게 눈을 감았다.

[마스터의 흔적인가... 그리운 느낌이 드는 군. 그대는 마스터와 무슨 관계이지?]

“내가 마스터고 마스터가 곧 나지.”

말하지면 틀린 것은 아니었다. 오리진의 조각을 가지고 있는 이상 준은 강력하게 그에 종속되어 있었고, 조각들 역시 준과 한몸이 되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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