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306 ----------------------------------------------
개척행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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던전에 입장을 하기 위해 사람들이 모여들었다. 개중에는 비번인 서은설과 홍창만도 있었다. 그들은 한동안 함선운용에만 신경쓰느라 가장 레벨업이 느린 편이었다. 특히 홍창만은 성격상 투기장에서 대련을 자주 하지도 않아 사실상의 최약체였다. 굳이 앞으로 전투를 할필요가 없다면 사실 무리해서 싸울 필요는 없었지만 레벨업은 해두는 게 좋았기에 이번 던전훈련에 끼워넣었다.
“그런데 우주선안에서 던전을 열어도 되는 걸까? 이동중에 만들면 우주선 바깥으로 튕겨나가는 거 아니야?”
막스가 고개를 갸웃거리며 입을 열었다. 현재 알바트로스는 워프 중으로 FTL(Faster than light:초광속, 빛보다 빠른)기동 상태였다. 준은 가볍게 한숨을 쉬었다.
“상관없어. 같은 관성계 안에서 상대속도는 0이니까.”
“사람말로 해. 에피알게나스랑 다니더니 외계어만 늘었어 이자식.”
막스가 투덜거리자 준이 끙, 하고 잠시 생각에 잠겼다. 어떻게 해야 이 말미잘 같은 뇌를 가진 녀석에게 설명을 해야할지 난감했던 것이다.
그때 서은설이 입을 열었다.
“어차피 절대속도가 0인 물체는 없어요. 이 우주의 모든 물체는 끊임없이 움직이고 있죠. 가장 중요한 것은 물체와 관찰자 사이의 상대속도. 그러니까 사실상 멈추어 있는 것으로 보이는 행성들도 끊임없이 움직이고 있잖아요? 그러니까 우주선이 아무리 빠른 속도로 움직이고 있다고 해도 관찰자 역시 같은 속도로 이동중이라면 그런 건 걱정할 필요가 없다 그거죠.”
“흠. 나와 이 우주선이 같은 속도로 움직이고 있으니까, 그 상대속도라는 게 0이고 그러면 사실상 멈추어 있는 것과 같다는 거지?”
“맞아요. 땅위에서 웜홀을 만든다고 해도 마찬가지에요. 행성은 끝임없이 태양 주변을 공전하고 있잖아요. 따지고보면 움직이고 있는 셈인데 웜홀의 입구는 그 자리에 가만히 있죠. 같은 관성계에 있기 때문이에요.”
서은설의 설명에 준은 놀란눈으로 그녀를 쳐다보았다.
“뭐, 뭘 그렇게 쳐다보는 거야?”
“아니. 멍청한 줄 알았더니 제법이잖아.”
“사람을 무시하는 것도 적당히 하지? 이래봬도 지능캐거든?”
“아. 맞다. 너 마법사였지.”
“흥. 이정도 기본 상식쯤은 책 하나만 읽으면 금방이야.”
준은 고개를 끄덕였다. 기본적으로 마법사들의 마법은 지능이 높을수록 데미지가 높아진다. 그 때문에 그녀는 레벨업에서 얻는 스탯을 지능 위주로 찍었고, 수치가 30을 넘은 상태였다. 그정도면 이미 일반인이 따라올 수 없는 수치였다.
간단히 던전에 대해서 설명을 마친 준이 던전을 열었다. 이번 던전은 따로 귀속시킬 생각이 없었다. 던전핵을 부숴야 경험치 손실을 최소화 할 수 있었고, 던전핵을 부수면 던전은 파괴되기 때문이었다.
경험치 20만이 쭉 빠져나가자 준이 잠시 고개를 갸웃하다가 자신의 머리를 탁 쳤다.
‘맞다. 던전생성은 조각 두개로 돌아가는 거지?’
던전생성 기술 자체가 람다와 시그마의 조합으로 돌아가는 기술이다. 그렇다 보니 각각 10만의 경험치를 먹어야 발동되는 것이다.
“끙. 이거 20만 짜리 던전이다. 다들 긴장 바짝하라고.”
준은 그렇게 말하며 던전안으로 발을 들였다. 던전 자체는 새롭게 생성되는 것이 아니라, 코스모틱 이벤트인 대우주 충돌의 여파로 인해 생긴 것들 중 하나에 들어가는 것이다.
그러다 보니 준도 그 안에 뭐가 들어있을지 몰랐다.
[샤트라스의 병기창] 퀘스트가 발동했습니다.
던전은 멸망하기 전 최후의 도시 중 하나인 샤트라스의 일부지역 중 하나입니다. 첨단기술의 폐허에 잠들어 있는 모든 외도를 정리하고 던전핵을 파괴하십시오. (보통 난이도)
메인퀘스트
외도사냥 (0/200)
던전핵 파괴 (0/1)
‘퀘스트?’
준은 내심 놀랐다. 던전에 들어서면서 퀘스트를 얻은 것이 처음은 아니었지만 자연발생적인 것이 아니라, 인위적으로 입구를 연 던전에서도 퀘스트를 얻을 거라고는 생각지 못한 것이다.
‘퀘스트 생성도 랜덤인가.’
퀘스트가 발동되면 그냥 던전을 박살내는 것보다는 들어오는 경험치의 양이 많다. 거기다가 숨겨진 보조퀘스트가 있는 경우가 대부분이기 때문에 예상외의 소득이 있을 수도 있었다.
“어? 퀘스트가 뜨는데?”
준을 따라들어온 막스가 입을 열었다. 모두 파티를 체결한 상태였기 떄문에 퀘스트는 공유되고 있었다.
“난이도가 이전보다는 높으니까 다들 조심하고.”
모든 사람이 들어온 것을 확인하고 준은 조심스럽게 앞으로 걸어갔다. 그의 곁으로 에피알게나스가 따라붙었다.
주변은 황폐해진 공장지대의 안쪽이었다. 한눈에 보기에도 큰 공장 건물들이 여러 동 놓여 있었고, 대부분은 부서지고 파괴되어 제 기능을 수행할 수 없어 보였다.
“에피알게나스. 혹시 아는 곳이야?”
퀘스트의 설명대로라면 이곳은 외도에 의해 멸망한 도시 중 한 곳이었다. 그렇다면 로오나 인인 에피알게나스가 알 수도 있었다.
“아니요. 다만 익숙한 풍경이긴 하군요. 우리 문명의 흔적이 곳곳에 있어요.”
“로오나의 도시가 맞긴 하나보군.”
“지금은 폐허가 되어버린 곳에 불과할 뿐이에요.”
그녀는 별다른 감정의 변화를 보이지 않았다. 그녀가 태어날 때부터 이미 로오나는 멸망직전의 상태였다. 이런 폐허는 수도없이 많이 보아왔던 흔한 풍경 중의 하나였다.
“무언가 건질게 있을까?”
“글쎄요. 어쩌면.”
에피알게나스는 알수없는 표정을 하며 입을 열었다. 그녀가 생각하기에 로오나의 가장 큰 유산은 다름아닌 오리진의 조각이다. 그것을 얻은 이상 다른 것은 그저 장난감에 불과할 뿐이다. 하지만 준의 생각은 달랐다.
‘문명의 유산에는 철 조각 하나에도 기술력이 담겨있는 법이지. 잘 챙겨가면 루나에게도 도움이 될거야.’
지금의 루나는 빠르게 기술을 발전시켜가고 있는 중이었다. 어그로시스템을 시작으로 독자적인 과학체계를 발전시키고 있는 그녀는 엑조틱에너지를 이용한 새로운 물리법칙을 정립해가고 있었다.
우리우주에서는 작동하지 않는, 엑조틱에너지의 존재가 있어야만 발동하는 새로운 물리현상은 델타스피릿의 기술력을 크게 높여줄 것이다.
어차피 외도를 모두 처리해야 했기 때문에 준은 눈에 띄는 첫번째 공장안으로 들어섰다. 지붕이 절반가량 날아가고 쇠기둥이 엿가락 처럼 구부러진, 언제무너져도 이상할 것이 없는 건물안은 그야말로 부서진 기계들로 가득차 있었다.
“이래서는 원형을 복원할 수 없겠는데.”
어차피 공작기계를 가지고 있어봐야 쓸데도 없다. 준이 원하는 것은 이 공장지대에서 생산되었을 물건이었다. 그것이 무엇이든 간에 이쪽의 기술력을 넘을 만한 물건이면 가져가서 분해해볼 생각이었다.
기이이-
여기저기 쑤셔보며 쓸만한 물건이 없나 뒤져보던 준의 귓가에 금속성의 소리가 들려왔다. 그리고 곧 쿠르릉, 하는 소리와 함께 한 쪽 구석의 고철들 사이에 파묻혀 있던 무언가가 들썩이며 움직이기 시작했다.
“등장했군. 다들 전투준비.”
준의 명령에 델타스피릿의 병사들이 저마다 무기를 꺼내들었다. 각자의 포지션에 따라 자리를 잡은 그들은 침을 꿀꺽 삼키며 곧 나타날 외도의 모습을 상상했다.
쩌정. 기기긱!
강철과 콘크리트의 더미를 부수고 일어난 것은 사람크기의 기계덩어리였다.
‘로봇?’
처음에는 골렘이라고 생각했다. 금속질의 외형과, 인간을 닮은 그 모습은 얼핏보기에 아이언 골렘과 유사해 보였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주황색 눈을 반짝이며 움직이는 녀석의 모습이 완전히 드러나자, 합금으로 보이는 은백색의 외골격으로 온몸을 두르고 있는 인간형 기계로봇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주황색 외도군.”
“인간형 기계병기 A-10.”
에피알게나스가 입을 열었다. 준이 그녀를 향해 고개를 돌렸다.
“아는 물건인가?”
“몬스터를 상대하기 위해 생산했던 전투병기야. 엄청나게 생산된 보급품.”
“단순한 로봇은 아닌 것 같은데?”
기기긱-
어딘가 부서진 듯 부자연스러운 움직임을 보이는 A-10은 하지만 명백한 적의를 띄고 이쪽을 향해 다가오고 있었다. 그리고 그것을 시작으로 공장 여기저기에서 동 모델의 로봇들이 몸을 일으키기 시작했다.
“외도가 되어버린 것 같아.”
“로봇에 외도가 되다니. 하긴 골렘도 있는데 로봇이라고 그러지 먈라는 법 없지. 녀석들의 공격패턴은?”
“충전식 레이저 병기. 고성능 유탄. 그리고, 근접용 엑조틱 나이프.”
“젠장.”
준은 이쪽을 향해 두 손을 들어올리는 로봇들을 향해 두 손을 펼쳤다.
번쩍, 하고 적 로봇들로 부터 수십개의 섬광이 준을 향해 발사되었다.
“크.”
준이 펼친 안티에너지필드에 맞고 튕겨나간 레이저 들은 공장벽을 녹이며 사방으로 튕겨나갔다.
‘생각보다 강하진 않군.’
저지력보다는 관통력이 높은 광학병기의 특성 때문인지 아니면 단순히 화력부족인지는 모르겠지만 실드에 가해지는 압박은 그리 크지 않았다.
준은 실드의 뒤에서 전투준비를 하고 있는 병사들에게 큰 소리로 외쳤다.
“탱커들은 전부 방패들도 조심스럽게 접근해! 레이저는 별거 아니지만 근거리에서 유탄을 맞게 되면 피해가 생길 수 있으니 알아서 조심하라고! 포지션 대로 움직여!”
“가자고!”
막스가 방패를 치켜들고 가장 먼저 달렸다. 탱커들에게 지급된 방패는 준이 일전에 프로토타입으로 제작한 쇠방패를 개량한 것이다. 능력치의 차이는 없지만 겉 모습을 좀 더 그럴듯하게 다듬었다. 겉면에는 델타스피릿의 기업로고를 박아넣고 방패의 뒤에서도 전면을 볼 수 있게 투명한 강화유리를 끼워넣었다.
지이잉!
“큭! 이거 녹는데?”
막스가 방패를 들고 달리며 입을 열었다. 준의 실드에는 무력했던 로봇의 레이저 공격이지만 방패에 직격을 하자 일부가 달아오르며 흐물흐물하게 녹아내리기 시작했다.
“껍데기만 녹는거야. 계속 돌진하라고!”
준의 외침에 막스가 고개를 끄덕이며 로봇에 달라붙었다. 공장지대에서 모습을 드러낸 로봇은 모두 스무 대. 탱커 하나당 몇 마리씩 담당해야 하다보니 이래저래 시선이 분산 될 수 밖에 없었다. 준은 후방에서 위험한 상황에 처한 탱커들을 지원하며 명령을 내렸다.
“원거리 딜러들 공격시작!”
어그로가 어느정도 잡혔다 싶자 준이 딜러들에게 공격명령을 내렸다. 서은설을 비롯한 마법사와 기공사, 궁수들이 공격을 퍼부었다.
콰앙! 쾅!
마나가 실린 공격이 쉴새없이 쏟아졌다. 외도인 이상 로봇이라고는 해도 실드가 있었고, 놈들은 주황색 외도답게 쉽게 본체에 공격을 허용하지 않았다.
“근접딜러 공격시작.”
레이드에서 가장 위험한 것은 근접딜러였다. 방어가 약하고 지속딜에 최적화 된 그들은 탱커로부터 쉽게 어그로를 빼았았고 아차 하는 사이 공격을 당해 황천길로 향하는 경우가 많았다.
“히익?”
콰아!
파비앙이 자신의 어깨를 스치고 지나가는 레이저에 적중당하며 뒤로 밀려났다. 정신을 차려보니 어깨뼈가 드러날 정도의 깊은 상처를 입은 상태였다. 체력은 반절이 날아가 있었다. 체력도 체력이지만 오른쪽 팔을 쓰지 못하게 된 이상 전투를 지속하는 것은 무리였다.
“크윽. 이탈하겠습니다.”
리타이어를 선언하고 뒤로 물러서려던 파비앙의 머리위로 황금색의 빛무리가 쏟아져 내렸다.
“어?”
뻐까지 드러났던 어깨쪽이 빠른 속도로 회복되기 시작했다. 그 속도가 어찌나 빠른지 손상된 뼈와, 인대, 근육이 채 10초가 지나기도 전에 완전 회복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