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프로젝트 델타-302화 (302/5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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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도화

“용케도 살아있네?”

사박. 사박.

가벼운 발걸음 소리. 헬로스는 귓가에 울리는 익숙한 목소리에 입술을 깨물었다. 하필이면 지금 가장 만나고 싶지 않은 사람이 나타난 것이다.

“샬롯. 굳이 이렇게 까지 해야했나?”

“그건 내가 하고 싶은 말인데. 나를 넘겨서 까지 그쪽에 붙으려 한 것 너 아니었어?”

“뭐. 부인하진 않겠다.”

헬로스는 이를 악물었다. 외도와 전투를 벌이며 이미 거의 모든 마나는 소모한 상태였다. 정신상태가 불안정한 샬롯을 상대로는 완전한 상태라 할지라도 이기기 어렵다. 헌데 지금이라면 제대로 손도 쓰지 못하고 당할 것이 틀림없었다.

“멜기오스를 풀어주려 했던 것 뿐이야. 헌데 이렇게 될 줄이야 누가 알았겠어?”

“그는?”

“다른 곳에 있어. 지금의 그와 나라면 이 던전 안을 완전히 장악할 수 있겠지. 어때? 이제 조금 후회가 돼?”

“그렇군. 이제와서 손을 잡자고 해도 들어주지 않겠지?”

헬로스는 무거운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가능하면 저 녀석이 완전한 외도화가 되지 않았기를 바랄 뿐이다.

“무릎을 꿇고 내 발이라도 핥아보련?”

샬롯이 쿡쿡거리며 웃었다. 헬로스는 한숨을 쉬고는 쇠기둥을 다시 들어올렸다. 죽을 때 죽더라도 발악은 해봐야했다.

“미안하지만, 그건 무리겠어.”

쿵!

땅을 박차고 달려드는 쪽은 헬로스. 어차피 시간을 끌어봐야 소용없다는 생각에 선제공격을 가한 것이다. 기실 샬롯의 세검과 헬로스의 쇠기둥은 무기 상성면에서 압도적으로 헬로스가 이득을 보는 형태였다.

하지만 샬롯은 현재 이전에 비할 수 없을 만큼 강해진 상태였다.

카아앙!

“이런 젠장.”

“생각보다 가벼운 걸.”

샬롯의 세검이, 헬로스의 이백킬로그램 짜리 쇠기둥을 정면에서 튕겨냈다. 어느정도 예상한 일이라, 헬로스는 욕설을 뱉으며 곧바로 몸을 크게 회전하며 다시한번 길게 쇠기둥을 휘둘렀다. 이번에는 직접 부딪히지 않았다. 샬롯은 가볍게 몸을 띄워 자신의 발밑을 스쳐지나가는 쇠기둥을 발고는 그대로 헬로스의 머리를 날렸다.

슈칵!

촤아악!

피보라가 일며 헬로스의 머리와 몸통이 분리되었다.

“별로 재미없었어. 내일은 좀 더 화끈하게 싸워보자고.”

“미안하지만 그런 일은 없을 거야.”

샬롯은 깜짝 놀라며 뒤를 돌아보았다. 그곳에는 준 알스버그가 서 있었다. 샬롯의 입가에 짙은 미소가 떠올랐다.

“오랜만이네. 그동안 잘 지냈어?”

“널 이곳에 넣은 건 딱히 좋은 선택이 아니었던 것 같다.”

“내가 원해서 들어온 곳이야.”

“그러니까. 이런 난리를 피울 줄 알고 있었단 말이지.”

준은 한숨을 쉬었다. 남자들이 바글바글한 곳에 여자 하나를 던져넣었으니 그렇지 않아도 자기들끼리 심심하면 싸움박질을 벌이는 놈들이 가만히 있을 리가 없었다.

샬롯 하나로 인해 던전안의 분위기는 더욱 흉흉하게 변했고, 전투는 매일 같이 이어졌다. 새 개척행성에 풀어줄때까지만이라도 별 문제 없이 넘어갔으면 했던 것이 너무나도 안이한 생각이었다는 사실을 다시한번 깨달을 수밖에 없었다.

“보아하니 완전히 미친건 아닌거 같고 이성은 남아있군.”

“미치긴 누가 미쳤다고.”

퓻.

준은 고개를 꺾었다. 두 사람의 거리는 10여미터. 그 거리를 격하고 검기가 준의 뺨을 스치고 지나갔다.

“검기방출이라. 이런 기술 아무나 쓰는 건 아닌데 말이지.”

준은 뺨을 타고 흐르는 피를 닦으며 입을 열었다. 준의 현재 민첩성은 47. 그 정도 능력으로도 완전히 그녀의 검기를 피하지 못했다. 각잡고 한 공격도 아니고 슬쩍 던진 공격임에도 그정도였으니 그녀의 힘이 어느정도까지 강해져 있는지 예상할 수 있었다.

‘이 정도면 초록색 외도 정도는 혼자서 상대할 수 있을 정도로군.’

순수하게 신체능력과 검술로만 상대한다면 절대로 이길 수 없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그만큼 그녀는 사라센에 비해서도 압도적으로 강해져 있는 상태였다.

“피했네.”

“그걸 맞아주리?”

준은 라이트세이버를 펼쳤다.

“검술이라면 얼마든지 상대해줄게.”

“미쳤냐? 너랑 검술로 싸우게?”

준은 그렇게 말하고는 인벤토리를 열었다. 니들건이 와르르 쏟아져 나오며 그 사이 섞인 니들리스 스피어 하나가 샬롯을 향해 폭사되었다.

쩡!

하지만 샬롯이 검을 휘두르자 3미터 길이의 창이 튕겨나가며 동굴벽에 꽂혔다. 나름대로 기습이었는데도 가볍게 막아낸 것이다.

‘빠르군. 어쩌면 나보다도 빠를지도.’

준은 딱히 방어구를 가지고 있지 않은 대신, 마나를 이용해 항력전개를 펼칠 수 있는 능력이 있었다. 하지만 자칫 잘못해 그녀의 움직임을 놓치게 되면 항력을 펼치기도 전에 심장이 뚫려 치명타를 입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철저히 거리를 벌려서 싸워야...’

슈칵!

“헛?”

준은 헛바람을 삼키며 황급히 항력을 펼쳤다. 육각형의 실드가 좌르륵 펼쳐지며 샬롯의 검기를 튕겨냈지만 완벽히 펼칠 시간이 부족했던 탓인지 그 중 일부가 살드를 뚫고 들어오며 준에게 상처를 입혔다.

“큭.”

준은 황급히 뒤로 물러나며 니들건을 움직였다. 하지만 선공을 가한 샬롯은 준을 따라붙으며 계속해서 검을 찔러넣었다.

‘너무 가까워!’

최대속도로 매크로무브를 사용하며 움직이고 있었지만 샬롯의 움직임은 놀랄정도로 빨랐다. 아무리 해도 그녀의 검을 떼어놓을 수가 없었다.

준은 정신없이 도망치는 와중에서도 염동력을 이용해 니들건의 방아쇠를 당겼다.

촤촤촤촤!

엄청난 수의 탄환이 준과 샬롯을 향해 비처럼 쏟아졌다. 샬롯은 흠칫 놀라며 어쩔 수 없이 준과 거리를 벌렸다.

“자살이라도 하겠다는 거야!?”

샬롯의 외침에 대답하는 대신 니들건의 방향을 틀었다. 준의 몸으로 쏟아지던 탄환들은 모두 그의 몸에 닿기도 전에 튕겨져 나갔다. 니들건은 그 자체에 공격불가 옵션이 붙어있다. 그 사실을 알지 못하는 샬롯이 의아해 하는 것도 당연한 일이다.

촤촤촤!

수백발의 탄환이 샬롯을 향해 쏟아졌지만, 그녀는 빠르게 벽을 타고 달리며 다시 한번 준에게 접근했다. 니들건의 방향을 트는 것보다 더 빠르게 그녀가 움직이지 이번에는 준도 정면으로 그녀를 맞이할 수밖에 없었다.

준은 눈깜빡할 사이에 자신의 턱밑을 파고든 샬롯을 향해 라이트세이버를 휘둘렀다. 속도자체는 그녀의 검이 빨랐지만 어쨌거나 준도 따라갈 정도는 되었다.

파앙!

라이트세이버와 샬롯의 세검이 맞부딪히며 허공에서 빛이 터졌다. 원래라면 반발력으로 인해 그녀의 검이 튕겨져 나가야 했지만 그녀는 요령좋게 검을 회전하며 준의 몸을 사선으로 내리그었다.

도저히 따라갈 수 없는 빠른 속도였다.

“죽엇!”

왼쪽 어깨에서부터 그어내려지는 강력한 일격. 준의 상체는 완전히 허점을 드러낸 상태였다.

쩌정!

고막을 찢는 듯한 소리와 함께 샬롯이 뒤로 튕겨나갔다. 그녀는 화들짝 놀라며 준을 향해 이빨을 드러내었다.

“그건 뭐지...”

“방패지. 아직 쓸만하네.”

준은 방금전까지 없었던 방패를 움직이며 입을 열었다. 상체를 전부 가릴 정도로 큰 직사각형 형태의 티타늄 방패. 장민성이 부숴먹었던 것을 전부 수리해 둔 것이다.

“크으으.”

샬롯이 분하다는 듯 이를 갈았다. 완벽한 찬스를 잡았다고 생각했던 만큼 아쉬움이 더 큰 것이다. 준은 그러거나 말거나 인벤토리에서 헬멧과 갑옷까지 꺼내서 입었다.

혼신의 힘을 다해 날린 공격이 방패에 막히며 잠시 스턴상태에 빠져든 그녀는 몸이 완전히 회복되는 동안 그가 갑주를 챙겨입는 것을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치덕치덕 갑옷을 걸친 준이 용접용 헬멧을 슬쩍 들어올리며 입을 열었다.

“자 빨리 끝내자. 너 말고도 아직 처리해야 할 놈들이 70명은 넘거든.”

갑주를 걸치자 몸의 움직임이 꽤나 제한되는 느낌을 받았다. 시스템메시지가 그의 상태를 알려주었다.

-용접공세트(헬멧, 장갑)을 착용하셨습니다. 민첩성이 3저하됩니다. 세트효과로 피해감소가 10퍼센트 상승합니다.

-갑주와 방패의 착용으로 인해 민첩성이 5저하됩니다.

모든 갑주를 착용하니 결과적으로 민첩성이 8이 떨어지며 39까지 낮아졌다. 하지만 그만큼 방어력 효과는 탁월했다.

이것저것 다 따져서 피해감소 85퍼센트, 물리방어 55퍼센트, 마법방어 35퍼센트를 만들었다. 갑옷 자체가 치명상을 입을 수 있는 급소를 모두 가려주고 있었기 때문에 어지간한 공격은 몸으로 때워도 버틸 수 있을 정도였다.

“후아앗!”

짧은시간 동안 몸을 회복한 샬롯이 괴성을 지르며 다시한번 준에게 달려들었다. 민첩이 낮아지다 보니 그만큼 그녀의 움직임을 따라가는 것도 버거웠다. 하지만 굳이 몸 전체를 방어할 필요가 없어지다 보니 전투 자체는 훨씬 수월했다. 준은 몸을 슬쩍 움직이며 그녀의 검을 방패로 막고는 라이트세이버를 휘둘렀다.

휘익!

그저 우에서 좌로 휘두르기만 하는 볼품없는 모양새였지만, 그 간단한 수평베기에 샬롯은 뒤로 물러날 수밖에 없었다. 그와 동시에 니들건이 불을 뿜었기 때문이었다.

착착착!

바닥에 대못이 주르륵 틀어박혔다. 그리고 그 중 한 발의 탄환이 물러서는 그녀의 발목에 틀어박혔다.

“크읏!”

검붉은 혈액이 튀며 그녀의 움직임이 일순간 경직되었다. 속도를 생명으로 하는 검사가 발목에 상처를 입었으니 싸움은 끝난 것이나 진배없었다.

“으아아!”

하지만 샬롯은 더욱 더 난폭하게 날뛰었다. 고통을 잊고자 더욱 미친 듯이 움직이는 그녀를 보며 준은 최대한 몸을 웅크린채 슬쩍슬쩍 몸을 틀어가며 공격을 방패나 갑옷으로 막았다. 그러면서 그녀를 쫓아 니들건을 발사했고, 틈틈이 라이트세이버를 휘두르자 결국 버티지 못한 그녀의 가슴에 탄환이 틀어박혔다.

“커헉!”

하지만 공격은 멈추지 않았다. 발목, 가슴, 어깨, 옆구리, 목덜미에 차례로 탄환이 박혀들었고, 그렇게 수십개의 대못으로 인해 신체의 기능이 한계에 도달해서야 겨우 그녀는 바닥에 무릎을 꿇었다.

“크으으...”

그녀는 입가에 피거품을 물고는 준을 노려보았다. 그녀는 덫에 걸린 맹수처럼 준을 노려보고 있었다. 준은 한숨을 쉬며 입을 열었다.

“미안하다.”

준은 라이트세이버를 들어 그녀를 내리쳤다.

쿠웅!

둔기화 된 라이트세이버에 머리를 얻어맞은 그녀가 그대로 혼절하며 쓰러졌다. 원래는 목을 날릴 작정이었으나 마지막 순간에 마음을 바꿔먹었다.

약간의 책임감도 있었지만, 그녀의 강력한 힘을 좀 더 유용하게 써먹을 방법이 없을까 하고 생각한 것이다.

외도화 된 인간들의 힘은 본래 가지고 있던 힘에 비례했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단 한명을 제외한 나머지는 그다지 상대하기 어렵지 않다는 것이었다. 대부분은 상급헌터에 미치지 못하는 능력을 가지고 있었는데 그나마 강력한 녀석이 노란색 외도였다.

일단 기절한 샬롯을 알루미늄 밧줄을 이용해 꽁꽁 묶어 사람들이 모인 입구 광장의 뒤편에 던져놓은 준은 사람들을 쫓아 모여 든 외도들을 헌터들과 함께 물리쳤다.

그렇게 모두 합해 80이나 되는 외도를 처리한 그는 마지막 남은 외도 하나를 보며 표정을 굳혔다.

쿠웅! 쿵!

던전에서 활동하기에는 불편할 정도로 거대한 몸집의 사내가 입구광장에 모습을 드러내었다.

“저 녀석 멜기오스 아냐?”

“맞는 것 같은데...?”

한때 실버서퍼였던 자들, 그리고 그 들과 함께 준을 공격했던 이들이 그를 알아보고는 웅성거렸다.

준은 거대한 한때 멜기오스라는 사내였던 외도를 올려다 보았다. 키만 해도 7미터 가량. 두발로 꼿꼿이 서서는 통로를 지나오지 못했을 테니, 허리를 구부리고 몸을 웅크린채 지나왔을 것이다. 그 때문에 늦게 도착한 모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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