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프로젝트 델타-300화 (300/540)

0300 ----------------------------------------------

외도화

*

*

*

“잠깐만.”

그때 일반인들로 구성된 사람들 사이에서 낯이 익은 인물 한명이 걸어나왔다. 다름아닌 준이었다. 사라센은 그 얼굴을 보고는 숨을 들이켰다.

“너, 너는...?”

“아. 미안. 놀라게 할 생각은 없었는데.”

뿌드득.

“이 자식이...!”

“아는 사람입니까?”

사라센의 옆에 있던 군인하나가 입을 열었다. 그는 자다가 습격을 당한 때문에 준의 얼굴을 모른 채로 던전에 끌려 온 상태였다.

“그 녀석이다. 우리를 이런 지옥에 쳐넣은...”

“뭐라고요?”

웅성웅성.

사람들의 시선이 승무원들의 앞으로 나선 준에게 모두 꽂혔다. 수백명에 달하는 사람들의 시선이 모두 한 사람을 죽일 듯이 노려보고 있었다. 그리고 그 뒤로도 계속해서 사람들이 모여들고 있었다. 준이 나타났다는 소식을 듣고 찾아온 사람이었다.

“죽여버리겠어...”

부들부들.

사라센은 허리춤에 꽂아 둔 단검을 뽑아들며 입을 열었다. 하루에도 몇 번씩이나 준의 얼굴을 상상하고 얼굴을 찢어발기곤 했다. 헌데 이렇게 눈앞에 나타나주니 그 꿈을 현실로 이룰 찬스였던 것이다.

게다가 자신은 이 던전에서 반년 넘게 있으면서 실력도 이전에 비해 크게 향상된 상태였다. 지금이라면 저 빌어먹을 인간의 면상에 칼을 꽂아넣을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크크. 죽을 자리를 찾아온 건가?”

“아니. 아무래도 이 사람들을 여기에 그냥 넣어두기는 불안해서. 부득이하게 같은 공간을 써야되긴 하지만 너희들 같은 악질과 동일 선상에 놓기는 좀 미안하더라고.”

“무슨 소리냐!”

“그렇잖아? 너희들이야 죄질이 나쁜 편이니 좀 더 고생해도 신경안쓰겠지만, 이쪽은 나름대로 정상참작의 여지가 있다고.”

“그렇다면 우리는!”

누군가 앞으로 나서며 외쳤다. 아마도 베를루스 대위의 산하에 있던 군인이었다. 준이 피식 웃으며 입을 열었다.

“너희들이야. 애초에 이 곳의 분위기를 이렇게 만든 장본인 아니냐? 게다가 원래 악당이더구만.”

사실 이 던전 내의 사회가 이렇게 엉망이 된 것은 물론 준이 그들을 극한 상황에 밀어넣은 때문이기도 했지만, 그들이 스스로 자초한 일이기도 했다. 좁고 어두운 던전이라는 환경이 극단적인 스트레스를 유발케 한다는 것도 사실이지만, 그렇다 해도 지금처럼 분위기가 막장이 된 것은 그들 스스로가 지닌 성향때문이기도 했다.

대량살상을 밥먹듯이 하며 온갖 범죄의 뒤치다꺼리를 해왔던 특수부대이다 보니 이런 공간에서 스스로의 폭력성을 주체하지 못한 것 뿐이었다.

결국 자기 자신의 죄에 먹혀버린 셈이었다. 거기에 사라센이 끼어들었고, 실버서퍼 측 사람들도 말려들었다. 어찌보면 제일 불쌍한 건 나중에 들어오는 바람에 온갖 수모를 당한 헌터들이었다. 물론 그들은 준을 직접적으로 죽이려고 노린 것이니 정상참작의 여지가 없기는 했다.

“닥쳐! 네놈 때문에 우리가 얼마나 지옥같은 삶을 살았는지 알기나 하는거냐?”

“무슨 개소리래. 그럼 너희들 때문에 지옥같은 삶을 살아온 이들에게는 뭐라고 할 건데?”

물론 준이 그들을 대신해서 정의의 철퇴를 내리거나 한 것은 아니다. 애초에 그런 귀찮은 일은 할 생각도 없고 할 이유도 없었다. 다만 그들을 도구로 부리는데 있어 일말의 양심의 가책을 느낄 필요가 없어졌다는 점에서 편리해졌을 뿐이다.

하지만 이번에 자신을 공격한 함선의 승무원들에게 까지 같은 논리를 적용하기란 힘들었다. 그들 중 일부를 델타스피릿 1전대에 합류시키기도 했고 그들은 후에 다시 써먹을 곳이 있기 때문이었다.

“뭐하러 말로 하는 거야? 당장 저놈을 때려눕히자고!”

“그래! 죽이자!”

“어차피 살아날텐데?”

“그럼 또 죽여야지!”

우우우-

던전의 사람들은 눈을 희번득하게 뜨며 준을 향해 살기를 뿜어냈다. 누군가 건드리기만 해도 폭발하기 일보직전의 상황. 그때, 그들의 앞으로 걸어나오는 인물이 있었다. 다름아닌 베를루스 대위였다.

“그래서. 하고싶은 말이 뭐지?”

“아. 그나마 머리가 돌아가는 인물이 나타났군.”

준의 말에 베를루스가 가볍게 미간을 찌푸렸다.

“말장난은 그만했으면 좋겠군. 천 명이나 되는 헌터들의 분노는 나도 감당할 수 없으니 말이야.”

“도대체 왜 저런 놈과 대화를 하려는 겁니까?”

“당장 저 놈을 죽여야 합니다!”

“멍청한 놈들! 우리가 어떻게 당했는지 벌써 잊은거냐?”

“하지만 우리도 강해졌습니다.”

“그동안 저 녀석은 놀고 있었겠나?”

유일하게, 이곳에서 베를루스만이 그 사실을 이해하고 있었다. 조금만 생각해보면 알 수 있는 일이지만, 모두들 분노에 차 그것을 떠올리지 못하고 있었던 것이다.

“게다가 유일하게 우리를 이곳에서 꺼내줄 수 있는 사람이다. 지금 그에게 분노를 쏟았다가 그를 놓치기라도 한다면 어찌되겠는가.”

어쩌면 던전의 생명이 끝날때까지 이곳에서 삶을 이어나가야 할지도 모를 일이었다. 그 기간이 천년이 될지 만년이 될지 누구도 알 수 없는 일이었다.

그 사실을 깨닫자 절로 소름이 돋았다. 그래도 지금까지는 언젠가 나갈 수 있을 거라는 희망을 안고 있었다. 하지만 만일 준에게 잘못보이기라도 한다면 그 희망이 물거품처럼 사라질 수도 있는 것이다.

“아...”

“그, 그렇군.”

뿌득!

하지만 그 중 한명, 동의하지 않는 사람이 있었다. 사라센이었다.

“다 필요없다! 너를 죽이지 못하면 내가 사람이 아니다!”

스릉!

탓!

사라센은 번개같이 준에게 달려들어 준의 심장을 향해 단검을 찔러넣었다. 하나의 검이 두 개로, 두 개가 네 개로, 네 개가 여덟 개로 분화되더니 한순간에 천개의 검이 준을 향해 폭사했다. 사라센의 필살기, 일천세였다.

콰아아!

엄청난 검기가 준의 몸을 산산조각 낼 것처럼 쏟아졌다. 그 어떤 실력을 가지고 있더라도 이런 기습에는 반응하지 못할 것이라고 생각할 정도의 빠른 공격이었다.

“확실히 실력이 늘긴했군.”

하지만 준이 가볍게 손을 들어올리자, 검기와 함께 사라센의 몸이 힘없이 뒤로 튕겨나갔다. 항력전개였다. 마나량에서 압도적으로 차이가 나다보니 전력을 다한 사라센의 공격마저도 어렵지 않게 튕겨낼 수 있게 된 것이다.

휘리릭! 턱!

수미터나 밀려난 사라센은 자신의 손에서 튕겨난 검이 허공을 맴돌다 준의 손으로 빨려들어가는 것을 보며 믿을 수 없다는 듯 입을 열었다.

“이, 이럴수가.”

“귀찮게 두 번씩이나 가르쳐 줘야하나?”

준은 손에 쥐고 있던 단검을 이리저리 살펴보다 인벤토리에 넣었다. 엑조틱 웨폰은 아니었지만 꽤나 잘 만들어진 단검이었다. 적어도 팔면 몇억은 받을 수 있을 정도의 명품이라고 할 수 있었다.

파아앗-

준이 오른손을 떨치자 그곳에서 눈부신 빛의 검이 뽑아져 나왔다. 비교적 어두운 던전의 내부가 일시에 밝아지자 사람들이 눈을 가리며 뒤로 물러섰다. 오랜시간 던전에 있었던 그들의 눈이 적응하기에는 지나치게 밝았던 것이다.

“뭐, 뭐야?”

사라센이 눈을 찡그리며 입을 열었다. 준은 들고 있던 라이트세이버를 둔기형태로 바꾸며 입을 열었다.

“일단 넌 좀 맞자.”

“뭐?”

뻐억!

피하고 뭐고 할 시간도 없었다. 매크로무브로 달려든 준의 공격을 시력이 극도로 약해진 지금 보고 피한다는 것은 불가능에 가까웠다. 사라센은 둔기형태의 라이트세이버에 옆구리를 얻어맞고는 그대로 던전의 벽에 처박혔다.

쿵!

마지막 순간에 팔을 들어 어떻게든 막은 덕분에 즉사는 면했지만, 죽는 것이 차라리 나을 정도의 피해를 입은 상태였다.

꿀꺽.

준의 압도적인 무력을 확인한 군인들은 침을 꿀꺽 삼키며 입을 다물었다.

“누가 날 죽이자고 했던 것 같은데?”

움찔.

그러자 가장 큰 목소리로 준을 죽여야 한 다고 외쳤던 한 사람이 슬그머니 일행의 뒤쪽으로 물러섰다. 그 외에도 찔리는 것이 있는 이들은 모두 준에게서 고개를 돌리며 시선을 회피했다.

“그래서. 원하는 것이 뭔가?”

베를루스가 한숨을 쉬며 입을 열었다. 그 역시 사라센의 마음을 이해하지 못하는 것은 아니었다. 능력만 있다면 준을 몇 번이고 죽이려고 했을 것이다.

“이 녀석들에게 따로 구획을 정해주고 건드리지 마. 만약 문제가 생기면 다시는 빛을 못보게 될 수도 있을거야.”

“나는 약속하겠지만. 혹시 일탈을 하는 자가 생길 수도 있다.”

“그런 것 쯤은 알아서 하라고. 내가 일일이 사정을 봐줘야 하는건가? 어쨌든 난 말했으니까. 알아서 하라고. 다시 빛을 보고 싶다면 철저히 관리를 하던가. 사고가 생기면 그건 전부 너희들 책임이니까.”

“읏... 알겠다.”

베를루스는 그렇게 말하고는 몸을 돌려 자신의 부하들을 바라보았다. 그들은 분노와 두려움, 그리고 혹시라도 나갈 수 있다는 희망에 찬 복잡한 얼굴을 하고 있었다.

“모두 들었는가? 지금부터 이 자리에 있는 이들에게 손가락 하나라도 건드리다가 적발되면 ‘그곳’으로 쳐넣어 버리겠다.”

“알겠습니다!”

전원이 약속이라도 하듯 큰 소리로 외쳤다. 어쨌거나 베를루스를 중심으로 돌아가고 있는 조직이다 보니 통솔에 대한 걱정은 하지 않아도 될 듯 했다.

그는 다시 몸을 돌려 준에게 입을 열었다.

“그럼 하나만 물어보지. 우리는 언제쯤 밖으로 나갈 수 있지?”

“흠... 빠르면 석달. 늦으면 반년 안으로는 나갈 수 있도록 해주지.”

“좀 더 서두를 수는 없겠나. 솔직히 말해 다들 지쳐가고 있다. 너무 길어지면 나도 이들을 통제하기 힘들수도 있어.”

“노력해보지. 나도 슬슬 위험해지고 있다는 생각이 들고 있으니 말이야.”

준은 그렇게 말하고는 던전의 출구를 열었다. 푸른빛으로 일렁이는 그 웜홀을 보며 군인들은 당장에라도 뛰쳐나가고 싶어 몸을 움찔거렸다.

그때였다.

으아아아!

멀리서 누군가의 비명소리가 들렸다. 이곳에 모든 사람이 있는 것은 아니니 만큼, 어디선가 싸움이 일어나고 있는 모양이었다.

“이 상황에서도 싸우고 있는 건가?”

“그럴 리가... 우리쪽에서는 정해진 시간 외에는 전투가 금지되어 있다.”

베를루스가 입을 열었다. 거의 일년이 넘는 시간동안 체계가 잡히면서 이곳에도 나름대로의 질서가 있었다. 그 중 하나가 지정된 시간 외에는 전투가 금지되어 있다는 것이다. 하루종일 싸움을 하게 되면 정신적으로 피폐해져 쉽게 미쳐버릴 수 있기 때문이었다.

“그럼 저 소리는 뭐지?”

비명소리는 계속해서 이어지고 있었다. 그리고 준이 이상함을 느낀 무렵, 그 소리가 점점 커지면서 이곳으로 다가오고 있었다.

“뭐, 뭐지?”

웅성웅성.

조용한 던전 안에서 반복적으로 들려오는 비명소리는, 죽음에 익숙해져 있던 군인들 마저도 등골을 오싹하게 만들 정도였다.

“크, 큰일 났습니다!”

그때 누군가가 동굴 저편에서 피투성이가 된 채 필사적으로 달려오고 있었다. 죽음을 두려워 하지 않는 던전의 인물이 저토록 다급한 얼굴을 하고 달려올 일이라는 것이 과연 무엇인지 모두들 궁금해 할 무렵.

“무슨 일인가?”

베를루스가 그자에게 다가가 입을 열었다. 그러자 그는 두려움이 깃든 얼굴로 입을 열었다.

“무, 문이... 열렸습니다.”

“뭐라고? 그건 바깥에서만 열 수 있게 된 것 아닌가?”

“모르겠습니다 누군가... 일을 저지른 모양입니다."

“젠장...”

베를루스는 고개를 저었다. 이곳에서는 사람의 정신이 빠르게 오염된다. 이유는 모르겠지만 그렇게 정신이 붕괴된 이들은 손쓸 수 없을 정도로 빠르게 강해지고, 어느순간 인간이라고 할 수 없을 정도로 파괴만을 목적으로 움직이게 되는 것이다.

그런 이들을 모아둔 것이 던전핵이 있던 던전의 최심처, 그들이 검은방이라고 부르는 곳이었다. 헌데 그곳에 가두어 둔 이들이 문을 열고 나왔다는 것은 보통의 문제가 아니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