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295 ----------------------------------------------
실버스노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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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단 포로들을 감시하는 일은 전적으로 막스에게 맡겼다. 그는 투덜거리면서도 어쩔 수 없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300명의 포로들을 관리하는 일은 꽤나 버거운 일이었다. 델타스피릿의 총 직원수는 채 40명이 되지 않았고, 그 중 상당수는 여기저기 배치되어 맡고 있는 업무가 있었다.
결국 한가한 직원의 수는 채 스무명이 되지 않았고, 그들을 전부 돌려서 포로를 감시하는 역할을 하는 것만으로도 버거운 수준이었다.
‘확실히 사람이 부족하긴 해.’
굳이 펠로우쉽만으로 델타스피릿을 꾸리는 데에는 여러 가지 이유가 있었다. 그 중 하나는 직원관리가 수월하기 때문이었다. 거기다가 델타의 수장인 준에게 가지는 묘한 호감까지 더해지면 굳이 애사심을 강조하지 않아도 적극적으로 일을 하는 충성심 높은 직원들이 가득한 기업을 만들 수 있었다.
하지만 그러다 보니 직원의 수가 절대적으로 부족했다. 헌터는 기본적으로 머리를 쓰는 직업이 아니다보니 기업을 운영하는데에는 부족했다. 무엇보다도 함선을 운용하기 위한 기본 지식조차도 없는 이들이 너무 많아 장기적으로는 잘 교육받은 인물들이 반드시 필요했다.
양 주안의 제의는 준이 이러한 고민을 직격으로 건드리는 것이었다. 새크리파이스 출신이라고는 하지만 어느곳이든 간에 우주선의 승무원들은 고등교육을 받은 인물들이다. 반노예 출신인 준조차도 10대에 석사까지 마친 수재였다. 그 멍청해 보이는 브랜든도 이름만 대면 알만한 대학의 공학과를 졸업했고 마리엘 쿤이야 엘리트 코스를 밟아왔으니 굳이 말할 것도 없었다.
하지만 델타스피릿 직원중에 대학을 졸업한 이들은 손에 꼽을 정도였다. 그런 이들을 데리고 함대를 꾸린다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한 일.
알바트로스는 준이 없으면 제대로 기동할 수조차 없고, 그나마 스왈로우는 외부에서 긴급히 항해사를 고용해서 운영하고 있었다. 하지만 전투함 같은 경우는 더욱더 전문적인 지식이 필요한 영역.
결국 장기적으로 델타스피릿의 덩치를 키우기 위해서는 더 많은 교육받은 인재가 필요했다. 물론 공채를 통해 사람을 뽑을 수도 있다. 하지만 그런 경우에도 새크리파이스에서 사람을 심어넣을 수 있다는 위험에서 벗어날 수 없다.
‘모르겠다. 일단 상황을 보자고.’
이리저리 고민하던 준은 답이 나오지 않는 문제라는 것을 깨닫고는 한숨을 쉬며 플랫폼의 식당으로 향했다. 골치아픈 일이 있을때면 마스터와 밥과 농담따먹기나 하면서 낄낄거리는 것이 가장 좋았다. 어차피 루나의 일이 끝나려면 좀 더 시간이 걸렸고 그 사이 시간이나 때우려는 심산이었다.
“까하핫!”
안에 들어가보니 벌써 반쯤은 파티분위기였다. 긴 항해를 거치고 돌아온 이들은 정신적으로 꽤나 지쳐있었고, 그런 이들이 오자마자 술판을 벌인 것은 당연하다면 당연한 일이었다.
“아? 사장님이다아~”
서은설이 반쯤 혀가 꼬부러진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준은 눈을 가늘게 뜨며 자신을 향해 다가오는 서은설을 가볍게 피하고는 입을 열었다.
“너는 원정대에 있던 녀석도 아니면서 무슨 술을 그렇게 마신거냐?”
“헤헤헤. 쓸쓸했다구요. 친한 사람들이 죄다 사라져서는 말이죠.”
“마스터나 밥이 들으면 섭섭할 말인데?”
“쳇. 그런 노땅들... 맨날 다리나 훔쳐보고. 정작 보라는 사람은 관심도 없는데.”
그녀는 쭉 뻗은 다리를 의자에 척 올리고는 가볍게 스윽 훑었다. 이쪽으로 시선을 주고 있던 몇몇 직원들이 침을 꿀꺽 삼켰다. 하지만 이내 준과 시선이 마주치자 황급히 고개를 돌렸다. 아무리 그래도 이 곳에서 서은설을 건드릴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그래? 그 놈이 누군지는 모르겠지만 너도 인기가 꽤나 많을테니 그 중에서 한 명 골라잡아서 연애라도 해보는 건 어때?”
“으하하. 사장님 진짜 나쁘다.”
“뭔 소리야. 진심으로 조언해주는 사람에게.”
“됐네요. 전 술이나 더 마실래요.”
“민성이 오면 혼날텐데.”
“오빠는 술 안마시거든요?”
휘청.
서은설은 그렇게 말하며 의자에 올렸던 다리를 내리다 중심을 잃고 휘청거렸다.
“야 임마.”
준은 그런 그녀의 한쪽 어깨를 잡았다. 그러자 서은설의 몸이 자연스럽게 준의 가슴으로 파고들었다. 졸지에 서은설을 끌어안은 셈이었다.
“우우. 불륜이다!”
휘익! 삑!
그러자 식당내부에서 야유와 휘파람 소리가 난무했다. 준이 한숨을 쉬며 야유를 하는 녀석들에게 가운데 손가락을 들어보이고는 품에 안긴 서은설을 내려다보았다. 방금전까지 의식이 또렷해 보였던 그녀는 반쯤 정신을 잃은 채 술냄새를 풀풀 풍기고 있었다.
“이 자식. 술을 얼마나 마신거야?”
“으음... 준...”
“끙. 민성이나 좀 불러야겠군.”
“오빠는 안돼...”
“뭔 소리야.”
“...화낼거야.”
“그러니까 왜 이렇게 술을 처마셔가지고는.”
준은 일단 그녀를 의자에 앉혔다. 하지만 자꾸만 휘청대다보니 금방이라도 의자에서 굴러떨어질 것 같아 혼자 둘 수는 없는 상태였다.
근처에 있던 밥이 입을 열었다.
“그 녀석 아무래도 재워야 할 것 같은데?”
“그러게요. 이 녀석 숙소까지 누가 좀 데려다 놔야 할 것 같아요.”
“그래. 네가 좀 데려다 주고 와라.”
마스터가 컵을 치우며 입을 열었다. 준은 살짝 한숨을 쉬며 입을 열었다. 기껏 좀 쉬러 왔더니 골칫거리를 떠맡은 셈이었다.
준은 한숨을 쉬며 서은설을 들어올렸다. 그녀의 몸에서 술냄새와 함께 짙은 로즈마리향이 느껴졌다.
털썩.
“휴. 이 녀석 엄청 무겁구만.”
준은 서은설의 숙소에 그녀를 던져놓고는 입을 열었다.
“별로 안 무거운데?”
“응? 뭐야? 벌써 깬거야?”
“흐음... 글쎄. 어떨까나? 깬 것 같기도하고.”
“몸도 가누지 못하는 것 같던데.”
준은 자리에서 일어나려는 서은설의 이마를 꾹 누르고는 말을 이었다.
“민성이에게는 말 안할테니까 푹 자둬.”
“준님.”
서은설이 그를 응시하며 입을 열었다. 그 눈빛에서 느껴지는 기이한 열기에 준은 흠칫 놀라며 물러섰다.
“뭐야? 닭살돋게.”
“이렇게 불러보는 것도 오랜만이네.”
“그, 그런가?”
서은설은 천천히 몸을 일으키고는 준의 앞에 마주섰다. 슬슬 밀려오는 불안감에 준은 자신도 모르게 한 걸음 뒤로 물러섰다. 아무래도 너무 가까웠다.
하지만 준이 물러선 만큼, 서은설은 한 걸음 더 다가갔다.
“너 술이 덜 깬 모양인데. 그만 자는 게 낫지 않겠어?”
“그러게. 지금까지는 잘 참았는데.”
“무슨 소리야?”
“그러니까 이건 술을 마셔서 그런거야. 알지?”
“뭐, 흡?”
순간 서은설의 입술이 준의 입술에 닿았다. 순간적으로 당황했지만 재빨리 그녀에게서 고개를 빼려는 순간 그녀의 두 손이 준의 뒷목을 잡았다.
‘어?’
그리고 서은설의 혀가 준의 입술 안으로 미끄러지듯 들어왔다. 생각보다 술 냄새는 그리 강하지 않았다. 아니, 애초에 술을 마시기나 한 것일까? 준은 로즈마리향과, 부드러운 입술의 감촉에 정신을 차릴 수 없었다.
“핫?”
준은 가까스로 정신을 차리고는 그녀에게서 입술을 떼어냈다. 하지만 서은설의 입술은 집요하게 준의 입술을 쫓았고, 다시한번 두 사람의 입술이 겹쳐졌다.
혀와 혀가 얽히고 눈앞이 아찔 할 정도의 키스가 이어졌다. 루나와는 또 다른 강렬한 감각이었다.
“자, 잠깐... 이건...”
준은 필사적으로 그녀를 떼어내려고 애썼다. 하지만 어찌된 일인지 몸에 힘이 들어가지 않았다.
“준님...”
“흐읍...?”
콰당.
“읏?”
“꺅?”
서은설의 체중을 실어 준을 밀어뜨리자, 준과 그를 끌어안고 있던 서은설의 몸이 바닥에 넘어졌다. 서은설도 준이 그렇게 쉽게 넘어갈 거라고 생각하진 못했는지 꽤나 놀란 모양이었다.
“야... 술주정 작작해라... 너 나중에 술 깨면 어쩌려고.”
준은 어렵게 상체를 일으키며 입을 열었다. 서은설은 그런 그를 향해 미소를 지어보였다.
“싫으면, 언제든지 날 밀쳐내도 돼.”
“야... 그게...”
서은설은 그렇게 말하고는 준의 몸 위로 슬금슬금 올라가더니 상체를 숙여 바닥에 누워있는 준의 목덜미를 핥았다.
찌릿.
“읏.”
그녀의 혀가 닿는 곳에서부터 퍼져나가는 강렬한 쾌감에 준은 거의 숨이 멎을 지경이었다. 머리로는 안된다고 끊임없이 외치고 있지만 몸이 도저히 말을 듣지 않았다. 서은설의 애무는 점점 더 짙어져 귓불을 가볍게 깨물더니 후, 하고 바람을 불어넣었다.
솔직히 말하면 약간은 서툰 애무였다. 다소 과하기도 했다. 어쩌면 어디선가 본 것을 따라하는 듯도 했다. 하지만 그것과 별개로 준의 몸은 대단히 민감하게 반응하고 있었다.
“윽...”
찌르르-
서은설이 놀랄 정도로 준은 그녀의 행동 하나하나에 반응했다. 놀란 것은 그녀만이 아니었다. 정작 당하고 있는 본인조차도 당황하고 있었다.
‘뭐가 이렇게...’
“솔직히 이 정도일 줄은 몰랐어.”
“그, 그건...”
“이렇게 되면 그만 둘 수도 없어졌잖아.”
서은설의 행동이 점점 과감해지자 준은 아랫도리에 피가 쏠리는 것을 느꼈다. 아니, 이미 한참전부터 준의 그곳은 당장이라도 폭발할 것처럼 팽창해 있었다. 오히려 너무나도 강렬한 감각에 그것을 미처 깨닫지 못하고 있었을 뿐이다.
톡.
서은설의 손이 스치자, 준의 앞섶이 자연스럽게 끌러졌다. 다른 건 몰라도 단추를 푸는 솜씨 하나만은 기가막혔다.
“오빠 옷을 자주 입혀줘서 익숙한 것 뿐이야.”
“이제 그만 둬. 그리고 안 물어봤어.”
“말과 행동이 다른 거 알지?”
“지금 너 정상이 아닌거 같아.”
“그건 준님도 마찬가지...”
준의 몸은 흥분으로 달아올라 있었다. 서은설도, 준도 모두 그 사실을 잘알고 있었다.
‘아니... 이건 아니야.’
준의 이성은 끊임없이 그녀를 밀쳐내야 한다고 외쳐대고 있었다. 물론 그가 서은설에 대한 감정이 없는 것은 아니었다. 첫 인상과 달리 그녀는 제법 매력이 있는 소녀였고, 만약 알카트뢰즈로 끌려가지 않았다면 루나가 아닌 그녀를 좋아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도 했다. 하지만 지금 준에게는 루나가 있었고, 그녀와 그녀와의 사이에서 낳은 딸을 생각해서라도 외도는 안될 일이었다.
할짝.
“으음...”
문제는 몸이 말이 듣지 않는 다는 것이다. 준의 목덜미와 가슴에 입을 맞춘 서은설은 준의 상의를 완전히 풀어헤치고는 그의 유두에 혀를 가져다 대었다. 마치 전기뱀장어라도 된 듯 그녀의 몸은 미끄러웠고 닿는 곳 마다 전류가 흘렀다.
“하아.”
서은설이 달뜬 한숨을 내쉬었다. 그녀의 얼굴은 붉게 달아올라 있었고 눈빛은 정복욕으로 끓어오르고 있었다. 준이 반항을 하지 못하는 상태라는 것을 본능적으로 깨달은 순간부터, 그녀의 행동은 과감함을 넘어 점점 노골적으로 변하기 시작했다.
“읏.”
준은 자신도 모르게 서은설의 뒷 머리를 잡아챘다. 하지만 준의 손길은 자신이 생각했던 것 보다 부드러웠고, 서은설의 움직임을 막을 수는 없었다. 어째서 생각과 몸이 따로노는 것인지 준은 스스로도 이해할 수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니, 어쩌면 이것은 그 자신이 원하던 상황이 아닐까 하는 생각마저 들었다. 어쩌면 지금 준의 이성은 이 상황에서 벗어날 수 없다는 핑계를 대고 자기합리화를 하고 있는 것인지도 몰랐다.
그리고 조금씩 준의 몸을 탐닉하던 서은설은 이윽고 그의 벨트를 풀기 시작했다. 서툰 솜씨로 자신의 벨트를 푸는 데 집중하는 그녀의 모습은 준의 이성을 마비시키기에 충분했다.
“서은설...”
“준님. 가만히 있어. 내가 알아서 할테니까...”
그게 결정타였을까? 준은 그때까지 자신을 필사적으로 유지하고 있던 이성의 벽이 유리처럼 산산이 깨어지는 것을 느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