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283 ----------------------------------------------
무리어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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준은 어느정도 회복된 멜기오스를 들어 웜홀의 입구로 던져넣었다. 갑자기 허공으로 사라진 멜기오스를 보며 샬롯이 깜짝 놀라며 외쳤다. 그녀는 실버서퍼 유일의 여성헌터였다. 날렵한 몸과 들고 있는 세검으로 보아선 힘보다는 기술과 스피드를 이용하는 검술에 특화된 스타일 같았다.
“그, 그를 어떻게 한거지?”
“잠시 감옥에 넣은 것 뿐이야.”
“감옥이라니...”
“걱정마. 너희들도 곧 모두 안에서 만날 수 있을테니까.”
준은 다음으로 땅에 절반쯤 몸이 박혀 있는 헬로스를 안으로 던져넣었다. 굳이 완벽히 치료하지 않아도, 던전안에서는 금세 몸이 회복되기 때문에 치료하지 않아도 별 상관없었다. 다만 멜기오스의 경우 준조차도 놀랄 정도로 몸이 망가졌기 때문에 응급치료를 한 것이었다. 죽은 상태로 던전에 넣을 수는 없기 때문이었다.
준은 그 외에도 니들건의 탄자에 맞아 바닥을 뒹굴고 있는 헌터들을 들어 하나하나 던전안에 밀어넣었다. 안타깝게도 사망자도 다섯이나 나왔다. 하지만 자업자득이라는 생각밖에는 들지 않았다. 상대를 죽일각오로 덤볐으니 그 운명이 자신이라고 빗겨갈 수 없음을 너무 늦게 깨달은 것 뿐이다.
준은 쓰러진 이들을 전부 던전에 밀어넣고 죽은 자들은 얼음밑에 파묻었다. 그리고는 아직 멀쩡히 두 다리로 서있는 이들을 향해 웜홀의 입구를 가리켰다.
머리위에 떠있는 백개의 니들건과, 자신들을 에워싼 네 마리의 골렘들의 위용에 그들은 어쩔 수 없이 무엇이 있을지도 모를 던전으로 걸어들어가야 했다.
“넌 잠깐 대기.”
준은 이를 악물고 안으로 들어가려는 샬롯을 제지했다.
“뭐지? 여자라고 특별대우하는 건가?”
“음. 이 안은 여자가 있기에 좋은 환경이 아니라서 말이지. 원한다면 가도 좋지만, 일단 들어가면 네가 상상하는 가장 최악의 상황보다도 더 끔찍한 경험을 하게 될거야.”
던전안은 이미 어느정도의 질서가 잡혀 있는 상태였다. 문제는 그곳이 남자들로만 이루어진 사회라는 점이다. 헌데 그런 곳에 여성헌터가 들어가게 되면 어떻게 될지 뻔했다. 차라리 죽는게 나을거라는 생각이 들겠지만, 골치아프게도 이 안에서는 제대로 죽지도 못했다.
“넌 그냥 가. 아무리 나라도 여자를 내 손으로 이런 곳으로 밀어넣지는 못하겠군.”
“이 안에 내 동료들이 있겠지?”
“뭐, 그렇지.”
“그럼 가겠어. 여자라고 특별대우 해 줄 필요 없어.”
“흠... 후회할텐데.”
“후회는 이미 충분히 하고 있어.”
샬롯은 그렇게 말하며 성큼성큼 던전의 입구로 들어섰다. 준은 가볍게 미간을 찌푸렸지만, 본인이 가겠다는 것을 말릴 수는 없었다.
‘경고는 충분히 했고... 상급헌터라니 정신력은 강하겠지.’
그렇게 준 쪽으로 오던 모든 헌터들을 던전으로 넣고 난 준은 반대쪽을 돌아보았다. 그곳은 차라리 던전으로 들어가는 게 낫겠다 싶은 상황이 펼쳐져 있었다.
무리해서 전차로 돌격하다가 거의 대부분이 포격과 기관총탄에 맞아 목숨을 잃은 것이다. 살아남은 이들은 반쯤 정신이 나간채로 덜덜 떨면서 바닥을 기고 있었다.
“너무 많이 죽인거 아니야?”
“쩝. 그렇다고 우리가 당할 수는 없잖아.”
막스도 찝찝한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설상전차의 최초포격에 죽어나간 헌터가 열 명. 그리고 거기에 눈이 돌아가 무턱대고 달려들다가 기관총에 맞아 죽은 이들이 서른명이었다. 결국 살아남은 것은 겨우 열 명이었고, 그들은 도망칠 생각조차 하지 못한 채 바닥에 주저앉아 있었다.
“어쩔 수 없지.”
준은 그 열명도 전부 던전안으로 밀어넣었다. 이로서 총 55명의 새로운 신입생들이 던전에 들어서게 되었다.
샬롯은 흔치 않은 여성헌터였다. 어린시절부터 세검을 사용하는 스승의 손에서 자라 검을 익혀 왔고, 거의 20년간 그 검을 손에서 놓지 않았다. 여성의 몸으로 헌터 생활을 하다보면 별의 별 상황을 겪게된다. 하지만 그녀는 운좋게 이른 나이에 상급헌터에 올라 설 수 있었고, 이후 그녀에게 단 한마디라도 허튼 소리를 하는 이들은 없었다. 그만큼 그녀의 손속이 사나웠기 때문이었다.
그녀를 건드렸다가 손목이 날아간 이들만 해도 수십이 넘었고, 개중에는 거시기를 잘린 놈들도 있었다. 목을 날린 녀석들만해도 두 손으로 전부 헤아릴 수 없을 정도였다.
그녀가 당당하게 던전안으로 들어선 것은 무슨 상황이 벌어지든 스스로를 지킬 수 있을 거라는 자신감에서 였다. 하지만 그녀는 이곳으로 오자마자, 준이 했던 말의 뜻을 어렴풋이 이해할 수 있었다. 그녀의 앞에는 거의 이백 여명의 헌터들이 새롭게 들어온 헌터들을 에워싼 채 검을 들이밀고 있었다.
“뭐지? 네놈들은 대체 누구냐?”
“여자?”
샬롯이 입을 열자, 자신들을 에워싼 사람들의 표정이 기이하게 변했다. 가끔이지만 이렇게 신입이 들어오는 경우가 있었기 때문에 기선제압겸 해서 사람들을 우르르 몰고 왔다. 헌데 지난 몇 년간 없었던 일이 벌어진 것이다.
“여자다.”
“진짜야?”
“여자같이 생긴 놈아냐?”
“목소리 못들었냐? 틀림없는 여자라고.”
“그럼 혹시... 할 수 있는 건가?”
“그렇지 않을까?”
그녀를 둘러싼 남자들의 시선이 모두 그녀에게 향했다. 샬롯은 이토록 많은 남자들에게 노골적인 시선을 받아본적이 단 한번도 없었다. 바깥의 기온 때문에 온몸을 두꺼운 옷으로 꽁꽁싸매고 있었음에도, 그녀는 마치 옷을 하나도 걸치지 않은 나신으로 사람들 앞에 나선 것 같은 착각을 느꼈다.
“이... 이 자식들이. 전부 죽고 싶은 거냐...?”
스릉.
샬롯은 이를 뿌득 갈면서 검을 뽑아들었다. 검 하나만 손에 있으면 적이 백명이든 이백명이든 두려울 것이 없었다.
“크크큭. 재미있는데? 저년 제법 매서운 맛이 있는 것 같아.”
“꽤 실력이 있는거 아니야? 오늘 여러 번 죽겠는데?”
“큭. 그래봤자지. 결국 이곳에서 몇십 년이 될지도 모를 시간동안 같이 살아야 할텐데. 제년이 버티겠어? 결국은 다리를 벌리게 되어 있다고.”
“크크. 그곳이 남아나질 않겠구만.”
“천명이나 되는 사람들의 정액받이를 하려면 강인하게 단련해야 할거야.”
뿌드득.
사방에서 들려오는 음담패설에 샬롯은 성큼 앞으로 나섰다. 그런 그녀를 제지하는 사람이 있었다. 그 사이 정신을 차린 멜기오스였다. 준에게 패배하고 꼼짝없이 죽었다고 생각했던 상황에서 정신을 차리고 보니 이 던전안이었다.
대충 정황만으로 상황을 빠르게 판단한 그는 우선 자신들과 함께 왔던 헌터들을 한데 모아 조직적으로 움직이지 않는다면 살아남기 힘들거라고 판단했다. 그런 상황에서 한 명의 돌출행동은 위험한 일이었다.
“가만히 있어. 지금은 섣불리 움직여서는 안돼.”
“하지만 리더...”
“지금은 참아. 숫자가 저것뿐이라면 괜찮겠지만. 그 뒤에 몇 명이나 더 있을지 몰라.”
끄덕.
샬롯은 하는 수 없이 한걸음 물러섰다. 그 수많은 음담패설 중, 유독 귀에 걸리는 한 마디가 있었다.
‘천명이나 되는 사람이라고 했던가.... 그말이 정말이라면 골치아파 지겠는데.’
상급헌터가 섞여 있다고는 하지만 이쪽의 수는 오십이 안된다. 저쪽에서 죽을 각오로 덤벼든다면 이쪽도 각오를 하지 않으면 안되는 것이다.
멜기오스가 나섰다.
“나는 실버서퍼의 리더 멜기오스 오르곤이라고 한다. 그쪽의 대표를 좀 만나고 싶은데.”
“대표? 아. 대위님 말인가?”
현재 던전의 지도자는 베를루스 대위였다. 실력으로는 하급헌터 정도에 머무르고 있지만 전체 군인들을 통솔하는 역할이다보니 자연스레 수장을 맡게 된 것이다. 그 아래로 베를루스와 손을 잡은 사라센이라던가 하는 실력좋은 헌터들이 포진하고 있었다.
얼마전에 들어온 신입해적들은 서열상으로 가장 낮은 위치에 있었다. 하지만 아무것도 없는 이곳에서 유일한 유흥거리라면 목숨을 건 대결을 통한 순위정하기 였기 때문에 언제든지 그 서열은 바뀔 수가 있었다.
단 하나 현재의 질서에 순응하기만 하면 모든 대우는 다른사람과 동일하게 받을 수 있었다.
“대위? 군인인가? 아니... 잠깐.”
멜기오스는 문득 떠오르는 생각이 있었다. 수라드 행성에서 대대병력이 증발했다는 뉴스를 읽은 적이 있었던 것이다.
“설마. 너희들, 수라드 행성에서 실종된 녀석들인가?”
“음? 아직도 우리를 기억하고 있는 녀석이 있었나?”
“아까도 말했지만 나는 레이드팀 실버서퍼의 리더다. 새크리파이스 산하의 레이드팀중 하나이지. 어떻게 보면 같은 식구라고 할 수 있는데 서로 피를 볼 필요는 없지 않을까?”
“협상같은 건 없어. 너희들이 선택할 수 있는 건 단 두 가지 뿐이야. 전쟁을 하던지, 고개를 숙이고 밑으로 들어오던지. 사실 우리 입장에선 어느쪽이든 별 상관없지만.”
“크크크.”
군인들이 일제히 웃음을 터뜨리기 시작했다. 아무것도 없는 던전 안에서 그들이 살아있음을 느끼는 것은 오로지 목숨을 건 대결을 하는 순간 뿐이었다. 전쟁이라고 할지라도 그들에게는 하나의 유희에 불과할 뿐이었다.
“대체 이녀석들 뭐지...?”
멜기오스로서는 이해가 되지 않는 상황이었다. 헬로스가 킁, 하고 코를 풀고는 그의 옆에 서서 커다란 강철 기둥을 휘둘렀다.
후웅.
“대화가 통하는 상대가 아닌 것 같은데. 그냥 쓸어버리자고.”
“후. 어쩔 수 없지. 전원 전투태세. 어차피 적들은 평범한 군인들이다. 제대로 된 무기도 없으니 마음껏 날뛰어도 좋다.”
“크하하. 날 원망하지 말라고.”
헬로스가 광소를 터뜨리며 군인들의 사이로 뛰어들었다.
퍼퍼퍽!
잠깐 사이 몇 명의 머리가 터져나가며 목숨을 잃었다. 상급헌터 헬로스의 위용은 아무리 마나를 사용할 수 있게 된 군인들이라 할지라도 당해내기 어려웠다. 마치 양떼속의 늑대를 보는 듯한, 압도적인 무력을 발휘하며 그는 상대의 목숨을 일방적으로 앗아가고 있었다.
‘대체 이 녀석들 뭐지?’
전투가 진행되면 될수록 멜기오스는 혼란스러운 느낌이었다. 적들은 죽어가면서도 웃음을 잃지 않았다. 인간이라면 응당 죽음에 대한 공포는 있어야 하는 것 아닌가?
“시작했군.”
실버서퍼를 비롯 적들을 모두 정리하고 숙소로 돌아온 준은 다음날 있을 레이드를 준비하며 휴식을 취하고 있었다. 장비는 모두 정비를 마쳤고, 남은 것은 무리어미의 드랍위치와, 외도들이 있을만한 곳을 마지막으로 체크하는 정도였다. 그렇게 모든 준비를 마치고, 잠들기 전 던전안의 상황을 확인했다.
마침 실버서퍼를 포함한 헌터들과 기존 사람들의 전투가 벌어지고 있었다. 전투는 거의 일방적인 학살로 시작되었다. 헬로스가 먼저 뛰어들고 그 뒤로 다른 헌터들이 참여하자 수는 적지만 압도적인 실력으로 우위를 점한 것이다. 그렇게 55대 200의 전투는 일방적으로 끝나는 듯 했다. 하지만 곧 사라센을 비롯한 나머지 군인들이 등장했고 두 집단은 거의 양패구상을 하는 형태로 첫날의 전투는 끝을 맺었다.
그리고 샬롯은 전투 도중 사망했다. 전리품 신세가 되었다면 어떤 결과가 벌어졌을지 뻔한 상황에서 어찌보면 다행이라고 할 수도 있었다. 하지만 전투는 이제 시작이었다. 어느쪽이든 한쪽이 먼저 굴복을 하지 않는 이상 전투는 계속해서 이어질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양측의 화해의 전리품은 십중팔구 샬롯이 될 확률이 높았다.
‘과연 어디까지 버틸 수 있을까.’
생각보다 팽팽하게 전투가 진행되는 바람에 나름대로 보는 재미가 있었다. 오히려 목숨을 건 전투를 하는 때문인지 실력도 빠르게 상승하는 기분이었다.
‘제임스에게 빨리 정착행성 문제를 해결하라고 해야겠군.’
실력이 빠르게 상승한다는 것은 그만큼 외도화도 가속된다는 말과 같았다. 너무 오랜시간을 둔 것도 있으니 하루빨리 그들을 정착행성에 풀어두어야 할 것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