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279 ----------------------------------------------
무리어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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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 완전무장을 한 상황이었기 때문에 그는 주저없이 앞으로 나섰다. 후안은 코웃음을 치며 검을 겨누었다.
“그렇지 않아도 우리도 힐러가 필요했거든. 이런 곳에서 저런 수준급의 힐러를 만날 줄은 몰랐지. 예쁘기 까지 하니 그야말로 금상첨화로군.”
“사람을 뭘로 보고 그딴 소리를...!”
장민성은 몸을 부들부들 떨면서 검을 꽉 쥐었다. 무기만큼은 자신의 손에 맞는 것을 쓰고 싶다고 해서 니들리스 스패너는 치워둔 상태였다.
“야... 쓸데없이 흥분하지마.”
“난 에피알게나스 양에게 그런 상스러운 소리를 한 녀석을 용서할 수 없다.”
“아니. 상스럽다니. 예쁘다는 소리를 한 것 정도로... 뭐, 알아서 해라. 죽지만 말고.”
준은 그렇게 말하며 한 걸음 뒤로 물러섰다. 말은 그렇게 했지만 위급한 상황이 되면 끼어들기 위해서 상황을 주시하고 있었다.
그나마 갑옷이 치명적인 일격은 막아주기에 한방에 죽는 경우는 없을 것이었다.
7레벨의 중급헌터와, 아직 본 실력 전부를 보이지 않은 상급헌터. 이 싸움은 시작부터 예상치 못한 방향으로 흘러가기 시작했다.
카앙!
장민성은 손에서 느끼는 저릿저릿한 느낌에 이를 꽉 다물었다. 상대가 가볍게 내지른 검격에 온몸이 떨릴 정도의 충격이 느껴진 때문이었다.
‘이게 상급...’
텅!
후안이 밀려나는 장민성의 다리를 향해 검기를 뿌렸다. 순간적으로 거의 1미터에 가까운 검기가 장민성의 왼쪽정강이를 스치고 지나갔다.
촤악!
“윽!”
화끈한 고통과 함께 얼음바닥위에 피가 흩뿌려졌다. 다행히 깊은 상처는 아니었지만 출혈은 제법 있는 편이었다. 후안은 막스를 상대할 때처럼 가능한한 방어구를 입지 않은 곳을 집요하게 공격하고 있었다.
‘반대로 말하면 그만큼 이 방어구가 제 능력을 발휘한다는 거겠지.’
장민성은 그렇게 생각하며 자신의 측면을 노리를 후안의 검격을 몸으로 막으며 그대로 방패를 앞으로 밀었다.
“헛?”
지금까지 뒤로 물러서기만 했단 장민성의 돌발적인 행동으로 후안이 약간 당황하며 순간적으로 공수가 뒤바꼈다. 그의 검은 장민성의 갑옷을 때렸고, 그것을 갑옷으로 흡수한 장민성은 저돌적으로 후안의 가슴팍으로 뛰어들었다.
터엉!
“큭!”
후안의 몸이 허공으로 떠올렸다. 중급헌터라는 사실을 믿기 힘들 정도로 단순무식한 돌격에 상급헌터인 후안이 무방비로 공격을 허용한 것이다. 이는 후안이 장민성을 너무 무시한 때문이기도 했다. 막스처럼 일방적으로 물러서기만 할 거라고 생각한 것이다.
“핫!”
짧은 기합과 함께 장민성의 허공에 떠오른 후안을 향해 검을 올려쳤다. 단순한 베기였지만 거기에는 이글거리는 검기가 배어 있었고, 방어구를 입지 않은 후안에겐 절체절명의 위기였다.
서걱!
촤악!
‘베었다.’
장민성의 올려베기가 정통으로 들어가며 후안의 몸에서 피가 터져 나왔다. 중급헌터가 상급헌터의 몸에 상처를 내는 것도 모자라 정타로 공격을 명중시킨 것이다.
하지만 기쁨도 잠시, 공격을 성공시켰다는 생각에 순간적으로 집중이 흐트러진 순간 간담이 서늘해 질 정도의 빛이 장민성의 목을 향해 날아들었다.
“윽!”
드드드득!
그 순간 반응이 조금이라도 늦었다면 목이 꿰뚫리며 죽었을 것이다. 장민성은 마지막 순간 머리를 틀며 어깨로 공격을 받아내었고, 갑옷이 무참히 뜯겨져 나간 것을 보며 이를 악물었다.
“그 상황에서 반격이라. 생각지도 못했다.”
“별로 날카롭지 않던데.”
후안은 팔꿈치에서부터 손등까지 길게 베어진 상처를 혀로 핥으며 입을 열었다. 확실히 정타라고 생각했던 공격은 그의 팔을 살짝 베는 것에 그쳤다. 손에 걸리는 느낌과는 전혀 다른 결과였다.
“언제까지 그렇게 여유를 부릴 수 있는지 보겠다.”
꾸욱.
장민성은 검을 두 손으로 쥐고는 마나를 끌어올렸다. 녀석은 마나를 이용해 신체의 방어도를 올리는 기술을 사용하는 듯 했다. 어설픈 공격으로는 녀석의 가죽도 베지 못한다.
“어디 이것도 막아봐.”
장민성의 검이 서서히 빛나기 시작했다. 이렇다할 공격기술이 없는 장민성이 오랜시간 갈고닦아 스스로 창조해낸 자신만의 기술. 이름조차도 없어 그저 ‘일격필살’이라고 자신이 부르고 있는 그 강력한 공격을 지금 선보일 생각이었다.
“제법 서늘하군. 아까 그놈보다는 나아.”
그 모습에 후안도 더 이상 가볍게 보지 못하고 자세를 낮추었다. 그리고 일촉즉발의 긴장감이 팽팽하게 당겨진 줄처럼 두 사람 사이에 가로놓였다.
파앙!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스프링처럼 두 사람의 몸이 도약했다. 조금이라도 먼저 움직인 쪽은 장민성, 하지만 후안의 몸놀림이 더욱 빨랐다. 그는 장민성이 휘두르는 검을 상체를 틀어 슬쩍 피하며 한손으로 쥔 검을 채찍 휘두르듯이 그대로 수평으로 그었다. 얼핏보면 그다지 힘이 실려있지 않은 듯한 검격.
“큭!”
하지만 장민성은 느꼈다. 저 검에 실린 힘은 결코 무시할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콰드드득!
허점을 드러내보인 이상 공격을 피한다는 것은 무리였다. 장민성은 상체를 슬쩍 틀어 갑옷으로 검을 흘리며 그대로 한 손을 뻗어 후안의 목을 감았다. 갑옷이 깨져나가는 소리가 들려왔지만 여기서 멈추면 일방적인 피해를 볼 뿐이었다.
“큭!”
장민성의 변칙적인 공격에 후안은 상체를 뒤로 눕혔다. 그야말로 아크로바틱한 자세로, 상체를 거의 지면과 수평이 되도록 눕히면서 그대로 검을 휘두르는 자세가 되었다. 하지만 그 덕에 검에 충분한 힘을 싣지 못했다. 장민성의 갑옷을 완전히 깨뜨리지 못한 채, 검은 힘을 잃었고 후안은 혀를 차며 상체를 뒤로 눕히며 땅을 짚고 백덤블링을 하며 거리를 벌렸다.
쉬익!
하지만 백덤블링을 위해 순간적으로 시야를 놓친 순간, 그는 자신의 등뒤로 들려오는 소리에 기겁하며 착지를 포기하면서 까지 옆으로 몸을 날렸다.
쿠당탕.
“끙...”
후안의 몸이 꼴사납게 바닥을 굴렀다. 무리하게 덤블링을 하면서 몸의 진행방향을 바꾸느라 제대로 중심을 잡지 못한 것이다.
그는 분노한 얼굴로 얼른 자세를 고치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곳에서는 맨손으로 달려드는 장민성의 모습이 있었다. 거리를 벌리는 후안을 향해 마나를 실은 검을 집어던지고는 그대로 돌격한 것이다.
무기도 없이 이렇게 덤벼들 거라고 예상치 못한 후안이 기겁하며 달려드는 장민성을 향해 검을 내리쳤다. 하지만 거리가 너무 가까운 탓인지 충분한 힘이 실리지 않았고, 장민성은 그 공격을 머리로 받아내며 그대로 몸을 밀었다. 헬멧의 방어력을 믿지 않으면 할 수 없는 숄더차지였다.
쿠웅!
“큭!”
온몸의 체중을 실은 장민성의 몸통박치기에 후안의 입에서 신음이 터져나왔다. 내장이 뒤흔들리며 눈앞이 번쩍였다. 순간적이지만 정신이 빠져나갈 정도의 충격에 빠진 그는 실끊어진 인형처럼 볼성사납게 바닥을 뒹굴었다.
“으아아!”
하지만 장민성은 거기서 멈추지 않았다. 괴성을 지르며 바닥을 뒹굴고 있는 후안을 향해 다가가 강하게 발을 휘둘렀다. 소위말하는 사커킥에 후안은 바닥에 쓰러진 상태에서 황급헤 두 팔을 교차해 막았다.
퍼억!
후안의 몸이 말그대로 공처럼 수미터를 날았다. 허공에 떠오른 그를 향해 미끄러지듯 접근한 장민성이 주먹을 뻗었다. 이쯤되자 후안은 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다. 실력으로만 따지면 도저히 자신을 이길 수 없을 거라 생각한 상대가 놀라운 능력을 보이며 자신을 압박하고 있었다.
이미 충분히 꼴사나운 모습도 보였다. 그는 당황과, 분노, 그리고 창피함을 동시에 느끼며 내뻗어 오는 장민성의 주먹을 향해 머리를 가져다 대었다.
빠악!
뚜둑!
“윽!”
“크윽!”
장민성은 내뻗은 주먹을 회수하며 뒤로 물러섰다. 주먹에서 끔찍한 고통이 밀려왔다.
‘뼈가 부러진건가...’
때린 사람의 주먹이 이럴 진대 맞은 사람의 머리라고 멀쩡할리는 없었다. 후안은 비척거리며 자리에서 일어나며 자신의 이마에서 흐르는 피를 소매로 닦았다.
“스타일 구기는군.”
그는 그렇게 말하며 허리춤에 찬 검을 뽑아들었다. 양손에 검 하나씩. 지금까지와는 다른 파이팅 자세였다. 그는 천천히 고개를 들어 장민성을 노려보며 볼을 씰룩이며 입을 열었다.
“죽여주지.”
피잉-
피아노줄이 끊어지는 것 같은 기이한 소리와 함께 후안의 모습이 사라졌다. 장민성은 생각보다 먼저 몸을 날렸다. 녀석이 어디로 사라졌는지, 어디에있는지는 생각할 필요도 없었다. 적의 목표는 자신이었고, 그렇다면 녀석의 움직임을 놓친 순간 무조건 자리를 이탈하는게 맞았다.
콰드드드득!
그리고 장민성이 몸을 날리자마자 그가 서 있던 자리가 엄청난 소리와 함께 두 줄기의 패인 흔적을 남겼다. 깊이만 1미터가 넘어갈 정도의 엄청난 위력이었다.
“젠장.”
자신이 서있던 자리에 서서 자신을 내려다보는 후안을 보며, 장민성은 욕설을 뱉었다.
‘근접했다고 생각했는데.’
잠시지만 이길 수 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지금 보인 신위는 그가 아직 닿을 수 없는 경지였다.
“봐줄거라 생각하지 마라.”
“바라지도 않아.”
하지만 장민성은 입가에 미소를 띄웠다. 이런 싸움. 등줄기기 저릿저릿하게 울리는 기분, 나쁘지 않았다.
후안이 검을 늘어뜨린 채, 장민성을 향해 서서히 다가왔다. 장민성도 자세를 고치고는 검을 들어 녀석을 노려보았다. 한 순간도 녀석의 움직임을 놓치지 않기 위해서였다.
그리고 후안이 두 개의 검을 채찍처럼 휘둘렀다.
‘보인다.’
두 개의 검이 마치 뱀처럼 자신의 목줄을 노리기 위해 날아들고 있었다. 그 궤적이 장민성의 두 눈에 똑똑히 보이고 있었다.
쩌엉!
다음 순간 후안의 두 줄기 검격은 장민성의 검과, 갑옷과, 헬멧을 날려버렸다. 실끊어진 연처럼 허공으로 떠오른 장민성의 몸이 머리부터 바닥에 떨어졌다.
둥실.
머리가 바닥에 부딪히기 직전, 그의 몸이 살짝 떠오르는 듯 하더니 서서히 바닥에 착지했다. 준이 염동력을 이용해 그의 몸을 받아든 것이다.
“잘 싸웠네.”
준이 장민성의 몸을 끌어다가 에피알게나스의 앞으로 가져다 놓았다. 완전히 정신을 잃고, 갈비뼈가 드러날 정도로 깊은 상처를 입었지만, 죽지는 않았다.
“다음은 누구지?”
후안이 입을 열었다. 말도 길지 않았다. 그 얼굴에는 짜증, 분노, 그리고 살의가 떠올라 있었다. 장민성에게 당한 것에 자존심이 꽤나 상한 것이다.
“나.”
그리고 준이 앞으로 나섰다.
“큭. 이제야 나서는 군.”
“아아. 나는 싸우는 걸 싫어해서. 보통은 부하들이 다 해주는데 말이지.”
“겁쟁이로군.”
“그런 셈이지.”
준은 미소를 지었다. 원래라면 검둥이를 여기다 붙였을 테지만, 녀석은 지금 루나와 엘라의 신변보호를 위해서 이스캬야 행성에 있는 상태였다.
“솔직히 이제와서는 숙소고 뭐고 상관없다는 생각이 드는 군. 그냥 네놈들이 마음에 들지 않아. 그냥 당장 여기서 꺼져줬으면 좋겠어.”
후안의 말에 준이 어깨를 으쓱했다. 어차피 이들과는 딱히 엮일일도 없었다. 헌데 멋대로 자기들이 쳐들어와서는 시비를 걸어놓고, 이제는 적반하장식으로 구는 것이다.
하지만 이제는 그런 일에 일일이 화를 내지는 않았다.
“실버서퍼라고 했지?”
“그렇다. 너희들 같은 조무래기와는 다르지.”
“오늘로 너희팀은 해체될 거다.”
“무슨 개소리를...?”
“그렇다고 죽일 수는 없잖아. 그정도로 하는 걸 다행이라고 생각해. 인벤토리 개방.”
준은 그렇게 말하며 팔을 들어올렸다. 그러자, 준의 뒤쪽에서 대기가 일렁이는 듯한 착각과 함께 니들건이 쏟아져 나오기 시작했다.
“자. 열심히 춤춰봐.”
준은 그렇게 말하며 손가락을 튕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