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프로젝트 델타-273화 (273/540)

0273 ----------------------------------------------

무리어미

*

*

*

준도 그에 동의했다. 액수가 적으면 직접 목숨을 걸고 싸우는 이들도 그다지 전의가 살아나지 않을 것이다.

“이번 일이 잘 끝나면 수익금은 알아서 보너스로 넣어 줄게.”

“함장님! 그렇게 말하면 내가 돈 때문에 그런 것 같잖습니까.”

막스가 준을 향해 입을 열었다. 준은 피식 웃음을 흘렸다. 공적인 자리이기 때문에 존댓말을 하긴 하지만, 어쩐지 어색한 느낌이었다. 아마 말하는 본인도 그럴 것이었다.

현재 플랫폼에는 밥과 루나, 그리고 검둥이를 남겨두고 온 상태였다. 검둥이는 루나와 엘라의 보호를 위해서였고 밥은 원거리택배 작업 때문이었다. 루나는 어그로시스템의 생산관리와 함께, 새로운 연구작업에 들어가 있었다.

그때 서은설이 큰 소리로 외쳤다.

“3-5 방향에서 고속기동하는 물체 발견. 거리는 약 20만 킬로미터입니다. 영상을 띄우겠습니다.”

화면에 비교적 소형으로 보이는 고속정이 떠올랐다. 겉모습은 검게 칠해져 있는 바탕에 거친 솜씨로 여성의 누드가 그려져 있었다. 딱 봐도 상업용이나, 군사용 함정은 아니었다. 그리고 그 두가지가 아니라는 것은, 해적이라는 뜻이었다.

“해적이라...”

준은 가볍게 미간을 찌푸렸다. 스팅스의 기관사 시절, 해적을 몇 번이고 만난 적이 있었다. 물론 죽을 뻔한 적도 있었고, 때로는 협상을 통해서 빠져나간 적도 있었다. 놈들은 우주의 크기가 광활하다는 점을 이용해 레이더의 탐지가 닿지 않는 소행성대나 거대 행성의 위성에 기지를 꾸려놓고 인근을 다니는 상선들을 털어먹는 것으로 생계를 이어나갔다.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제임스가 입을 열었다. 준은 곧바로 입을 열었다.

“가는 길인데 청소나 한번 하고 가지.”

그 말로 그들의 운명이 결정되었다. 제임스는 고개를 끄덕이고는 병사들에게 전투준비를 명령했다. 비싼 반물질 탄을 쓸 것도 없었다. 저런 작은 고속정은 근거리용 기관포로도 충분히 상대가능했다.

“통신이 들어옵니다. 수신하겠습니까?”

서은설이 다시 한번 외쳤다. 준은 고개를 끄덕였다. 잠시의 노이즈가 있은 후에 전면의 대형스크린에 웬 산적같이 생긴 사내의 모습이 드러났다.

[하하. 안녕하신가. 나는 그리마 상선대의 대장인 람이라고 하네. 그쪽의 이름을 듣고 싶은데.]

준은 비스듬히 턱을 괸 자세로 귀찮다는 듯 입을 열었다.

“델타스피릿. 용건이 뭐지?”

[거참 말이 짧은 친구로군. 보아하니 아직 햇병아리인 것 같은데. 서로 통성명이나 하는 건 어때?]

“해적따위에게 알려줄 이름은 없는데.”

[크크크. 배짱이 대단하군. 적당히 화물만 빼앗고 놓아주려고 했더니 안될 친구로군.]

“난 당신같은 친구 둔적없어. 용건이 없다면 이만 끊지.”

[하하. 끊은 것은 마음대로지만, 과연 우리에게서 도망칠 수 있을까?]

“딱 한번 경고하지.”

준은 피식 웃음을 흘리며 말을 이었다.

“단 한번이라도 공격적인 행동을 하는 순간, 너희들은 죽는다.”

[뭐라고?]

준의 말에 람의 얼굴이 완전히 일그러졌다.

[아주 간뎅이가 부었구나! 좋다. 어디 언제까지 그런 얼굴을 할 수 있을지 두고보지.]

팟-

그 말을 마지막으로 통신이 끊겼다. 준은 혀를 차며 입을 열었다.

“저 녀석들 상대무장도 제대로 확인하지 않는 건가?”

“평범한 상선이라고 생각하는 모양입니다. 아니면 레이더가 구형일 수도 있겠군요.”

알바트로스 자체는 상선을 베이스로 만든 모델이다. 그러다 보니 구형의 레이더의 경우에는 모델명으로 상대의 무장을 추측하는 경우도 많았다. 현재 알바트로스의 공식모델명은 CSS Shanon-1 으로 무장은 전혀 탑재되어 있지 않은 것으로 알려져 있었다. 그러니 저렇게 자신있게 모습을 드러낸 모양이었다.

“빠르게 접근중입니다. 현재 15만 킬로미터까지 접근했습니다.”

“빠르긴 하군.”

고속정인 만큼 일반 수송선에 비해서 거의 두배가 넘는 속도였다. 선체 자체가 가볍고 임펄스 추진체 자체가 많기 때문에 단순 속도로는 떨쳐내기가 어려웠다.

“기관포 배치 완료 했습니다.”

“좋아. 영상은 찍고 있겠지?”

“네. 실시간으로 녹화중입니다.”

“그럼 느긋하게 기다리자고. 저쪽에서 먼저 공격행위를 하면 정당방위가 성립되니까.”

해적이라고는 해도, 다른 곳에서는 상선행세를 하는 놈들이다. 멋대로 선제공격을 했다가 혹여나 문제가 될수도 있기 때문에 잠시 기다릴 생각이었다.

그리고 다시 한번 통신이 들어왔다. 두 함선의 거리가 1만킬로미터까지 가까워진 순간이었다.

[꽁지가 빠져라 도망치더군. 말과 행동이 너무 다른거 아닌가?]

“됐고. 공격할거야 말거야?”

[끄응. 소원대로 한발 날려주지.]

람의 말이 떨어지자 마자, 서은설이 큰 소리로 외쳤다.

“수폭미사일이 감지됩니다. 도착 예정시간은 10분 후입니다.”

“10분이라니. 거북이처럼 느리군.”

[하하. 이건 인사치례에 불과하지. 그럼 잠시후에 보자고.]

이런 원거리에서 날리는 수폭은 정확히 명중을 시키기 위한 목적이 아니었다. 가능한 근거리에서 터뜨려 함선의 엔진에 이상을 일으키기 위한 공격이었다. 얼추 피해반경안에 들어가면 보통의 상선들은 상당한 충격을 받고 추진력이 떨어지기 마련이었다.

그 다음에 해적들은 느긋하게 접근해 기관포를 날리던 함재기를 날리던 해서 완전히 상선을 무력화 시키고 점거를 시도하는 것이다.

하지만 알바트로스에는 어느것도 유효하지 못했다. 수폭이 아니라 양전자포를 날린다 해도 튕겨낼 수 있는 EX필드를 지니고 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잠시후, 엄청난 폭발과 함께 알바트로스의 10킬로미터 반경에서 폭발이 일었다. 제법 정밀한 공격이었다.

콰앙!

드드득!

폭발의 여파로 인해 알바트로스의 동체가 흔들렸다. 단순 파괴력 만으로 이정도로 충격을 줄 수 있다는 것은 확실히 수폭의 장점이었다.

“속도 늦춰.”

"네. 엔진감속!“

제임스가 외치자 수습항해사 딱지를 붙이고 있던 홍창만이 엔진레버를 내렸다. 헌터보다는 우주선에 관심을 보인 그는 준에게 부탁에 함선운용을 배우고 있는 중이었다.

우웅-

알바트로스가 감속을 하자 관성으로 인해 모두의 몸이 앞으로 쏠렸다. 그러자 기다렸다는 듯 다시 통신이 들어왔다.

[하하. 이제 슬슬 쫄리지 않나? 지금이라도 사과하면 목숨만은 살려주지.]

준은 서은설을 향해 손을 휘저었다. 그러자 통신이 곧바로 끊겼다. 더 이상 대꾸할 만한 가치를 느끼지 못한 것이다.

“그냥 날려버리시지 않고...”

“아깝잖아.”

준은 입가에 미소를 지었다. 우주선도 팔면 돈이 꽤나 되는 물건이다. 특히 해적들이 사용하는 고속정은 크기는 작지만 상선에 비교될 만큼 비싼 물건이었다. 거기다가 함재기까지 가지고 있다면 그 가치는 더욱 높아진다.

“건드릴 사람을 건드렸어야지... 저 녀석에게 걸리면 영혼까지 탈탈 털릴텐데...”

막스는 스크린에 떠 있는 해적선을 보며 혀를 찼다.

“전방 10킬로미터 지점. 아. 보입니다!”

서은설이 말하지 않더라도 모두들 적의 위치를 파악하고 있었다. 준은 이미 한참 전부터 놈들의 함선을 눈으로 보고 있었다. 그곳에서 날파리처럼 튀어나오는 작은 함재기의 존재도 확인할 수 있었다.

“스파르탄으로 보이는 함재기가 출격합니다. 모두 5기입니다.”

“해적치고는 부자로군. 5기나 되는 함재기를 가지고 있다니.”

함재기는 덩치는 작아도 어지간한 구축함까지 떨어뜨릴 수 있을 정도의 화력을 보유하고 있다. 그 때문에 가격도 상당히 비싼 편이었다. 그런 것을 다섯 대나 가지고 있으니 해적치고는 꽤나 부유한 편이었다.

“이 근방이 나름 무역로라서 그런 모양입니다. 그동안 꽤나 털어먹었던 모양입니다.”

“어쩌면 뒤에 다른 기업이 있을 수도 있겠지.”

“그럴 수도 있겠군요.”

제임스가 고개를 끄덕였다. 저정도로 장비를 갖추고 있는 놈들은 순수하게 해적질로만은 먹고 살기 힘들다. 어쩌면 새크리파이스나, 혹은 그들을 견제하려는 다른 기업들의 스폰서를 받고 있을 확률이 높았다.

소위 의뢰를 받고 적대기업의 수송선만을 주로 공격하는 사략선의 역할을 하고 있는 셈이었다.

“어느쪽이 되었든 해적은 해적이지.”

알바트로스는 계속해서 전진했다. 그 사이 스파르탄이 어지럽게 교차하며 알바트로스의 동체에 불꽃을 퍼부었다.

쾅! 콰콰쾅!

어두운 우주에 밝은 빛을 내뿜으며 쏘아대는 다연발 미사일과 동축기관포가 EX필드에 막혀 모두 스러졌다. 주로 함교보다는 추진체가 있는 후면을 집중적으로 노리는 모양이었다. 일단 도주를 막기 위해서였다.

하지만 알바트로스가 전혀 피해를 입지 않자 스파르탄들의 행동이 더욱 거칠어졌다. 아예 가장 약해보이는 함교부분을 노리고 집중적으로 포탄을 쏟아붓는 것이다.

번쩍! 쿵!

폭발력에 직접적인 타격을 입지는 않았지만 함선 전체가 흔들리는 것 까지 막을 수는 없었다. 하지만 그 정도로는 어떤 피해도 줄 수 없었다.

“전진.”

스파르탄들이 얼추 화력을 전부 쏟아냈다 싶자 준은 알바트로스를 전진시켜 적 함선에 접근했다. 적 함재기들이 파리떼처럼 알바트로스 주변을 날아다녔지만 이미 화력을 쏟아내고 난 이후라 무얼 할 수가 없는 상황이었다.

“잠깐 나갔다 오지. 사출장치 준비 해.”

“설마. 맨몸으로 나갔다 오시려는 겁니까?”

“왜? 안될 것 같아?”

“아니, 아닙니다. 제가 괜한 소리를 했군요.”

제임스는 피식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준이 대기권을 돌파해 궤도를 날았던 광경이 머리를 스치고 지나간 것이다. 그런 준에게 근접한 우주선으로 파고드는 일 정도는 아무것도 아니었다.

“어, 어떻게 된거냐?”

람은 턱이 빠질 것처럼 입을 쩍 벌리고는 자신을 향해 서서히 다가오고 있는 적함을 보며 입을 열었다.

“적함 손상... 없습니다.”

“그게 말이 되는 소리야?”

“저, 저도 모르겠습니다.”

스파르탄 5기면 어지간한 함선은 그냥 주저앉힐 수 있었다. 적은 조금의 반항도 하지 않았고, 곧 피탄되어 추진을 멈추고 항복선언을 할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상황은 그가 생각한 것과 전혀 반대로 흐르고 있었다.

“가, 가까이 다가옵니다. 현재 8킬로미터 근방까지 다가왔습니다.”

“젠장! 선체 돌려!”

“그러면 함재기를 수습할 수 없습니다!”

“지금 그게 문제야? 저 녀석이 들이 받으면 우리는 끝장이라고!”

람의 고속정은 알바트로스에 비해 크기가 작은편이었다. 거기다가 스파르탄의 맹공을 받고도 버티는 장갑을 가진 녀석과 충돌하게 되면 어떻게 될지는 보지 않아도 뻔했다.

“함선 반전!”

부함장의 외침과 함께 고속정 ‘포르노스타’가 그 자리에서 선체를 돌렸다. 하지만 그 행동은 준으로 하여금 먹잇감을 고스란히 내준 것 이나 다름이 없는 행동이었다. 바로 다음 순간, 알바트로스에서 기관포가 불을 뿜은 것이다.

콰앙!

“뭐, 뭐야?”

“적함에서 기관포 공격! 3번 추진체 파괴. 1,2,4번 추진체 손상이 있습니다!”

“젠장! 뭐야? 무기를 탑재하고 있었던 건가?”

“있... 습니다! 기관포 5문. 그리고... 양전자포... 1문.”

“야, 양전자포? 어째서 몰랐던 거야?”

“섀넌급 스타쉽이라 예상을 못했습니다.”

“젠장. 눈으로 확인이라도 했어야 하는 거 아니야!”

쉬운 먹잇감이라고 생각하고 너무 안이하게 접근했다. 조금만 유심히 살펴보면 양전자포도 확인할 수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방심의 대가는 컸고, 지금은 추진력을 절반 이상 잃고 다가오는 적 함을 멍하니 바라볼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빌어먹을... 더럽구만.”

람은 품에서 담배를 하나 꺼내었다. 해적질을 하면서 이렇게 절망적인 순간은 처음이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