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269 ----------------------------------------------
복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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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그놈이로군.”
준은 사라센의 입에서 흘러나오는 이야기에 한숨을 쉬었다. 한동안 내버려 뒀더니 그새를 참지 못하고 암살자를 보낸 것이다.
“헌데 상급헌터나 되어서 암살자 노릇이나 하고. 넌 대체 뭐하는 놈이냐?”
“큭...”
사라센은 입을 열지 못했다. 몸상태가 엉망인 탓도 있고, 딱히 할말이 없기 때문이기도 했다. 그가 헌터 사냥꾼으로 나선 것은 어디까지나 빠른 출세를 위해서였다. 혼자만의 능력으로는 결국 거대한 권력앞에서 아무것도 아니라는 사실을 몸으로 체험하고 난 이후, 그는 어떻게든 권력의 중심으로 올라가기 위해서 발버둥 쳤다.
그리고 이 나라에서 힘을 가지기 위해선 무엇보다도 돈이 필요했다. 상급헌터라고 해서 모두가 어마어마한 돈을 벌어들이는 것은 아니다. 물론 레이드 팀에 들어가면 상당한 수익을 얻을 수 있었다. 아마 평생동안 돈걱정은 하지 않고 살 수도 있었을 것이다.
원 밀리언이라는 존재는 그만큼 대단한 것이니까. 하지만 그는 그것만으로는 부족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적어도 자신을 배신한 마리엘 쿤을 무릎꿇리기 위해서는 그 정도 수익으로는 모자랐다. 그래서 자청해서 헌터사냥꾼을 시작했다. 애초부터 사람을 죽이는 것에 별다른 거부감이 없기 때문에 일은 수월했다.
의뢰는 많았고, 의뢰주는 대부분 기업가들이었다. 위험을 동반하는 일이었기에 그만큼 수입도 많았다. 이 일을 시작한지 채 몇 년이 되지 않았지만, 이미 계좌에는 수백억의 현금성 금융상품들이 쌓여있었다.
그를 바탕으로 조직을 꾸려 돈을 벌려는 계획까지도 이미 세워놓은 상태였다. 하지만, 뜻하지 않은 곳에서 발목이 잡혔다.
“일단 목숨은 붙여놓는다고 했으니.”
준은 그에게 펠로우쉽을 계약을 걸었다. 사라센은 갑자기 머릿속에서 들려오는 시스템메시지에 놀란 표정을 지었다. 무언가 위험한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지만, 준의 단호한 표정을 보고는 하는 수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어차피 죽기 직전이다. 그가 무슨 짓을 하던 자신에게는 선택권이 없었다.
-펠로우쉽 계약을 맺었습니다. 프로필이 생성됩니다. 자세한 정보는 정보창에서 확인해 주십시오.
“우웃?”
사라센은 일시에 자신의 몸이 재구성 되는 묘한 기분을 받았다. 세포 하나하나가 모두 읽히는 듯한 그 낯선 감각에 그는 자신도 모르게 몸을 부르르 떨었다.
사용자 ; 사라센 블룸버그
레벨 ; 1
클래스 ; 없음.
칭호 ; 펠로우쉽의 대상자(모든 능력치 +1)
능력치
체력 135/2145 마나 721/1121 경험치 0 잔여 스탯 0
힘 21(+1) 민첩성 35(+1) 지능 11(+1) 정신력 18(+1)
기술
없음.
준은 사라센의 프로필을 죽 훑어보았다. 확실히 상급헌터라 그런지 1레벨임에도 불구하고 초기능력치가 높았다. 기술이 없는 것은 아직 시스템이 기술에 대한 파악을 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체력을 회복하고 몇 번 기술을 시전하면 곧바로 등록이 될 것이었다.
“이, 이게뭐지?”
“네 목숨을 붙여주는 구명줄이지. 참고로 네가 어디에 있는지 알 수 있으니 어설프게 도망칠 생각하지 않는게 좋을거야.”
사실 펠로우쉽 계약 자체는 한쪽의 일방적인 의지로도 파기할 수 있었다. 준이 굳이 그렇게 하는 것은 단순히 녀석의 능력과 위치파악을 위해서였다. 게다가 혹여나 있을지 모를 사고를 방지하기 위해서이기도 했다. 적어도 펠로우쉽에 속한 상태에서는 같은 펠로우쉽 소속의 인물들을 죽일 수 없기 때문이었다.
물론 감시도 당연히 붙일 생각이었다.
“검둥아. 네가 이 녀석 감시 좀 맡아라.”
“네? 이 녀석은 싫은데요. 더러운 냄새가 나서.”
“정 싫으면 도른에게 맡기던가.”
“도른이 질 것 같은데...”
“하긴. 그 녀석 새가슴이지.”
준은 혀를 차며 입을 열었다. 현재 도른은 검둥이가 데리고 다니면서 적당히 외도를 사냥하며 수련을 시키고 있었다. 혹시라도 키워두면 쓸만해지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서였다.
“어쩔 수 없군. 너도 여기에 들어가 있어.”
“윽?”
준은 그렇게 말하며 던전의 입구를 열어 사라센을 던져 넣었다.
쿵.
던전의 안에 들어선 사라센은 갑자기 달라진 주위환경에 얼떨떨한 얼굴로 고개를 돌렸다. 아직 완전히 회복된 몸이 아니지만 고통은 확연히 줄어든 상태였다. 펠로우쉽의 기능 덕이었다.
“후... 여기는 대체 어디지?”
그는 아무도 없는 동굴 안에서 주변을 둘러보았다. 습관대로 사방을 훑자 여러 가지 흔적이 눈에 들어왔다.
‘사람이 있다.’
그는 조심스럽게 걸음을 내딛으려는 찰나, 사람의 머리로 보이는 것이 동굴 한쪽에서 불쑥 튀어나왔다.
“누구냐.”
“신입인가?”
“누구냐니까?”
“이번 신입은 꽤 건방지군.”
사라센의 질문과 관계없이 그 자는 천천히 어둠속에서 모습을 드러내었다. 이렇다 할 무기도 없는 맨몸이었지만 상당히 단련된 듯한 탄탄한 육체의 소유자였다. 하지만 상급헌터인 사라센이 보기에는 한 대 툭 치면 죽을 것처럼 연약해 보였다.
그는 사라센을 위아래로 훑어보더니 입을 열었다.
“따라와. 어차피 한동안 같이 있어야 할테니까.”
사라센은 일단 그자를 따라 움직이기로 결정했다. 어쨌든 이곳에 대한 상황을 알아야 했기 때문이었다.
그를 따라 넓은 공간으로 나가자, 가로길이만 수십미터는 되어보이는 거대한 공동에 도착했다. 그곳에는 많은 사람들이 있었다. 대부분은 몸을 단련하거나 하면서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그들은 공동에 들어선 두 사람, 그중에서도 사라센을 보며 동작을 멈추었다.
“신입은 오랜만이군. 아니. 처음인가?”
그 중에서 가장 나이가 많아보이는 자가 입을 열었다. 다름아닌 베를루스 대위였다. 이곳 천여명의 군인들을 실질적으로 통제하는 자였다. 그가 아니었다면 아무것도 없는 이 던전안에서 대부분의 군인들은 자살을 택했을 것이다.
“여기는 어디고? 대체 너희들은 누구지?”
“감히! 신입주제에 건방지구나!”
사라센이 입을 열었다. 그러자 베를루스의 곁에 있던 군인들이 버럭 소리를 질렀다. 베를루스는 고개를 저으며 그들을 제지하고는 입을 열었다.
“보아하니 헌터 같은데. 이름을 알 수 있을까?”
“흥. 소개라면 그쪽부터 하지?”
“나는 새크리파이스 소속의 베를루스 대위다.”
“나는 사라센. 헌터 사냥꾼이다.”
“흠. 들어본 적이 있는 이름이군.”
베를루스는 고개를 끄덕이며 입을 열었다. 사라센도 뭔가 떠올랐는지 황급히 입을 열었다.
“잠깐. 너희들. 세일럼에서 실종되었다던 그 군인들인가?”
“그래. 네 녀석도 그 자에게 당한 거겠지?”
“준 알스버그를 말하는 거라면 그렇지.”
“천하의 헌터 사냥꾼도 별 수 없었던 모양이군.”
“...그자가 그렇게 강한가?”
사라센이 주저하며 입을 열었다. 사실 그는 준에게 당한 것이 아니라, 그의 애완동물에게 당한 것이었다. 차마 그 이야기까지는 하지 못하고 돌려서 물어보았다.
“직접 상대해 보지 않았나? 어쨌든 그건 우리도 잘 모른다. 잠든 사이에 영문도 모르고 이곳에 들어왔으니. 벌써 2년 가까이 지난 듯 한데... 바깥은 어떤가?”
“잠깐. 2년이라고?”
사라센은 눈을 크게 뜨며 입을 열었다. 분명히 그들이 실종 된 것은 채 3개월이 지나지 않은 시점이었다. 베를루스가 눈을 가늘게 뜨며 입을 열었다.
“2년이 아닌가? 보시다시피 이곳에는 해가 없어서 정확한 날짜를 알기 힘들지.”
“아니. 그런 차원이 아니야. 그쪽이 실종된지 겨우 3개월 남짓이 되었을 뿐이라고.”
“3개월?”
사라센의 말에 베를루스 뿐 아니라 그 자리의 모든 군인들이 그를 바라보았다. 도저히 납득할 수 없다는 표정이었다.
“정말이다. 젠장. 거짓말이 아니라고. 나도 강제로 이곳에 들어왔는데 거짓말을 할 이유가 없지.”
“그런가... 네 말대로라면 이곳의 시간이 8배 정도 빠르게 흘러간다고 봐야겠군.”
“그게 말이 되는 이야기인가?”
“애초에 이런 동굴에 우리가 와있다는 것부터가 말이 안되지.”
“젠장.”
사라센은 그제서야 준이 말한 죽는 것 보다 나쁠지도 모를 것이 무언지 깨달았다. 이곳은 바깥과 달리 아무것도 없는 동굴이었다. 감옥중에서도 가장 최악의 감옥이라고 할 수 있었다. 탈옥은꿈도 꿀 수 없었고, 그들의 행색으로 보아선 보급도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는 것을 알 수있었다.
물도 없어 씻지도 못하고, 먹을 것도 없어 늘 굶주림에 시달린다. 하지만 이야기를 들어보니 최소한 굶어 죽지는 않는다고 하니 그나마 다행이라는 생각은 들었다.
“제대로 잘 못 걸렸군.”
당장 이 의뢰를 한 마리엘의 면상에 주먹을 날리고 싶을 정도였다.
“그럼. 신입. 네 자리는 저쪽이다.”
너덜너덜 한, 옷이라고 할 수도 없는 천조각을 걸치고 있던 장신의 사내가 사라센을 향해 입을 열었다. 그는 코웃음을 치며 입을 열었다.
“사정은 잘 알았다. 너희들이 군인이라는 것도, 용케도 이곳에서 버티고 있다는 것도. 하지만 내가 너희들의 말을 들을 필요는 없겠지.”
“이곳에 예외는 없다. 모두가 함께 움직이지 않으면 버틸 수 없다. 혼자서 아무것도 없는 이곳에서 멀쩡하게 버틸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나?”
“그러니까 그건 너희들처럼 약한 놈들에게나 먹히는 소리라고.”
사라센은 귀찮다는 듯 등을 돌렸다. 그런 그의 뒤에서 뿌드득, 하고 이를 가는 소리가 들려왔다.
“이 자식이 헌터라고 대우해줬더니...”
“죽고싶나?”
싸악-
사라센이 고개만 돌려서 자신에게 덤벼들기 직전인 군인의 눈을 바라보았다. 그 순간 공기가 차가워지더니, 공동 전체의 온도가 떨어지는 듯한 착각이 일었다. 멀리서 바라보던 베를루스 대위 마저도 몸을 움찔 할 정도였다.
“그만하지시죠. 여기서 우리끼리 싸울 필요는 없습니다.”
그때 억지 웃음을 지으며 다가오는 이가 있었다. 다름아닌 드와이트 덴버였다.
“넌 누구지?”
“마리엘 소장님의 전직 비서 드와이트라고 합니다.”
드와이트는 손을 내밀며 악수를 청했다. 그러자 사라센의 표정이 기묘하게 변했다.
“그래... 네가 마리엘의 비서였단 말이지?”
“그렇습니다. 그런데... 허억?”
서걱!
사라센은 허리춤에 매고 있던 검을 뽑아들고는 그대로 드와이트의 손목을 내리그었다.
촤악!
“아아아? 끄아아!”
갑작스런 상황에 정신을 반쯤 놓아버린 드와이트가 비명을 지르며 바닥을 뒹굴었다. 잘린 손목에서 엄청난 피가 뿜어져 나와 사라센의 얼굴에 튀었다.
“그렇지 않아도 기분이 더러운 차였는데 잘 됐군. 덕분이 조금 기분이 나아졌어.”
사라센은 그렇게 말하고 등을 돌려 천천히 걷기 시작했다. 모두가 침묵하는 가운데 드와이트의 비명소리만이 동굴에 울려퍼졌다.
그렇게 상황이 끝나려 하나 싶을 때쯤, 베를루스가 입을 열었다.
“제이슨 중위.”
“네. 대위님.”
“저자를 결박하게.”
“알겠습니다. 1중대 전원 집합!”
“옛써!”
처처척!
제이슨이라 불린 군인이 큰 소리로 외치자 근처에서 휴식을 취하고 있던 군인들이 전부 도열했다. 전체 군인은 아니었지만 거의 200명이 넘는 군인들이 몸에서 열기를 내뿜으며 모두 제이슨을 바라보고 있었다.
사라센은 등 뒤에서 들려오는 소리에 약간 어이없어 하며 그들을 쳐다보았다.
‘뭐야? 설마 지금 나에게 덤비려는 건가?’
자신은 상급헌터다. 무력하게 당하고 이곳까지 오긴 했지만 그렇다 해도 일반인에게 만만하게 보일 정도는 아니었던 것이다.
‘가만있어봐... 체력이 얼마나 남았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