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프로젝트 델타-263화 (263/5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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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벽위의 바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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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의 천여명에 달하는 병력들을 전부 던전에 넣는 것은 제법 귀찮은 일이었다. 하지만 하려면 못할 것도 없었다. 준은 시미의 정신교란을 이용해 군인들의 막사로 숨어들어 하나하나 던전 안으로 집어넣었다. 던전의 규모가 컸기에 천명이라고는 해도 충분히 들어갈 공간은 있었다.

문제라면 던전의 입구가 열릴때마다 자꾸 나오려는 녀석이 있다는 것이었는데, 그럴때마다 시원하게 두들겨 패서 돌려보내니 그럭저럭 해결되었다.

그렇게 하룻밤을 꼬박 새며 작업을 한 준은 뿌듯한 표정으로 아침해가 떠오르는 모습을 지켜보았다. 세일럼을 포위하고 있었던 병력은 남김없이 던전안에 들어가 있는 상태였다. 일부는 잠든 상태로, 일부는 기절을 한 상태, 그리고 대부분은 맨정신으로 멱살을 잡혀 던전 안으로 던져졌다.

그 정도의 인원이 던전에 들어가 있을 때 가장 문제가 되는 것은 보급이었다. 던전안에는 생존을 위한 것이 아무것도 존재하지 않았다. 그 흔한 물도, 먹을 것도 없었던 것이다.

준도 그 부분이 걱정이었지만 곧 그것이 별로 문제가 되지 않는 다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던전 안에서는 허기와 목마름이 느껴지지 않았던 것이다. 준은 이것이 던전안에서는 생체가 활동하는데 필요한 에너지를 던전 자체의 엑조틱 에너지가 공급하기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도른의 경우와 유사한 것 같은데.’

대형던전에 있던 도른의 경우 그곳에서 약 2000년 가까이를 생존했다고 했다. 그 안에 먹을 만한 음식이 있었을리가 없기 때문에 실제로 그는 거의 아무것도 먹지 않고 살았을 것이다. 때문에 그의 모든 활동력은 엑조틱 에너지의 의해 공급되었고 그 세월이 쌓이다 보니 신체자체가 엑조틱 에너지에 의해 외도화 된 모양이었다. 그 이야기는 그 영향력이 다소 낮을지는 몰라도, 준이 만든 던전 안의 군인들도 오랜 시간이 지나면 외도화가 진행 될 수도 있다는 이야기였다.

‘너무 오랫동안 넣어두면 안되겠군.’

준은 수시로 던전 안에 들어가보며 죄수(?)들의 상황을 파악했다. 본의 아니게 군인을 상대로 던전에 대한 인체실험을 시행하던 준은 또 하나의 재미있는 결과를 알아낼 수 있었다.

준이 만든 던전 안에서는 시간이 대체로 빠르게 간다는 것이다. 도른의 대형던전처럼 2천대 1의 극악한 비율은 아니지만 대체로 8대 1정도로 시간의 차이가 있었다. 즉 던전 안에서의 8시간은 바깥에서의 한시간이라는 점이었다. 이것을 이용하면 여러모로 시간을 절약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마리엘은 그야말로 미칠 지경이었다. 갑자기 ARM이라는 것이 나타나더니 플랫폼에서 관리해야할 결정체가 대거 유실되기 시작했다. 그것만으로도 환장할 지경인데 그 기기를 압수하러 보낸 일천의 병사들까지 모두 실종되었다.

이미 피해는 걷잡을 수 없이 커져가고 있었다. 드와이트 덴버도 그 사건 이후로 종적을 감춘 상태였다. 유능한 비서가 사라지자, 업무에도 차질이 많았다. 급한대로 비서를 새로 뽑기는 했지만 업무에 관련된 부분까지 일부 맡고 있었던 드와이트였기 때문에 모든게 이전 같을 수는 없었다.

“젠장. 제대로 되는 게 하나도 없군.”

계속되는 실패로 인해 분기실적이 형편없이 떨어졌다. 투자금액을 회수하는 것도 거의 불가능했고, 외계 함선에서는 별다른 소득도 없었다. 그나마 결정체 가격을 낮추는 것으로 버티고 있었는데 그것마저 막히니 이 일이 위에 어떤 식으로 보일지는 그가 누구보다도 잘 알았다.

“어떻게 여기까지 올라왔는데.”

최연소 플랫폼소장의 자리에 오를 정도로 그는 능력을 인정받았다. 하지만 빠르게 승진한만큼 몰락도 빠를 수밖에 없다. 어떻게든 이번 위기를 넘기지 못하면 그는 그야말로 나락으로 떨어지게 될 지도 몰랐다.

“손님이 찾아오셨습니다.”

어떻게 이 위기를 타개할까 하고 방법을 고심하던 그에게 새로 뽑은 비서가 다가와 입을 열었다.

“누구야? 이런 시국에?”

“사라센이라고 합니다. 자신의 이름을 대면 알거라고 하던데.”

“...당장 들어오라고 해.”

마리엘의 표정이 딱딱하게 굳었다. 질풍의 사라센. 그가 큰 돈을 들여 섭외한 상급헌터였다. 그는 조용히 눈을 감고 기다렸다. 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리고 맞은 편 소파에 사람이 앉는 기척이 느껴졌다.

눈을 천천히 뜨자 잊고 싶었던 얼굴이 눈에 들어왔다.

“오랜만이군.”

마리엘 쿤이 먼저 입을 열었다. 사라센이 입가를 일그러뜨리며 입을 열었다.

“잘 지내는 듯하군.”

“오는데 불편함은 없었나?”

“별로. 쓸데없는 소리는 치우고 본론부터 말하지.”

작은 체구에 찢어진 눈매의 사내, 사라센은 그렇게 말하며 자신의 앞에 놓여진 차를 들이켰다. 마리엘은 떨리는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처리해야 할 인물이 있다.”

“이름은?”

“준 알스버그. 세일럼 시티에 있지.”

“ARM 사건 때문인가?”

“알고 있었나?”

“조금은 조사해봤지. 일천명의 군대가 하루밤 새에 증발했다고 하던데.”

“그래. 목격자의 말에 따르면 한 사람에 의해서 그렇게 되었다고는 하는데 그 말이 백퍼센트 진실이 아니라해도 만만히 볼 녀석이 아니다.”

마리엘은 인상을 쓰며 입을 열었다. 보통의 헌터라면 총기를 든 군인만으로 처리가 가능하다. 하지만 일정 수준 이상의 헌터들은 군대로도 막을 수 없는 경우가 있다. 그럴 경우를 대비해, 헌터를 사냥하는 헌터의 존재가 필요했다.

그리고 눈앞의 인물인 사라센이 바로 그 헌터사냥꾼 중 하나였다. 본 실력은 상급헌터에 이르지만 외도보다는 인간을 사냥하는데 특화된 인물.

비록 한 번 부를때마다 비싼 돈이 들지만, 그 돈만큼의 결과를 보여주는 인물이었다.

‘준 알스버그...’

군인들과 드와이트까지 전부 실종되었지만, 그럼에도 마리엘은 이미 흉수가 누구인지 파악하고 있었다. 세일럼에는 그가 심어놓은 사람들이 있었고 군인들만 제거한다고 그들의 이목까지 피할 수는 없었던 것이다.

‘빌어먹을 녀석. 그때 그냥 죽여버렸어야 했어.’

처음 델타스피릿의 주인이 준 알스버그라는 사실을 알았을때는 애써 부정했다. 감옥에서 나온 녀석이 갑자기 플랫폼을 사들이고 행성을 개발할 정도의 기업을 세울 수 있을리가 없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는 이상한 결정체 환급방식을 이용해 자신의 뒤통수를 때렸다. 그리고 비슷한 방식으로 수라드 행성에까지 진출해서 자신을 골탕먹이고 있었다. 이정도면 악의가 없다면 할 수 없는 일. 그제서야 마리엘은 그 알스버그가 자신이 예전에 감옥에 쳐넣은 그 녀석일 거라는 확신을 했다.

그렇게 생각하면 모든 일이 들어맞는다. 준이 출소하기 전에는 아무런 문제가 없던 사업들이 그 자가 나오자 마자 문제를 일으키기 시작한 것이 바로 그때문인 것이다.

‘어떻게 한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녀석은 감옥을 나오자마자 델타스피릿을 세웠고, 바쉬르 행성의 대형 크리스탈을 탈취했다. 그 와중에 새크리파이스의 함선 하나를 날려버리고 도주, 이스카야 행성에서 플랫폼을 구입하여 결정체 장사를 시작했다. 거기에 말려들어 투자금을 날리게 한 것도 모자라, 이제는 수라드 행성에서도 같은 짓을 반복하고 있다.’

행동 하나하나가 자신에게 치명적인 일들이었다. 이렇게 된 이상 녀석을 확실히 처리하지 않으면 자신의 미래도 불투명할 수밖에 없었다.

“그럼 지금 출발하지.”

“벌써?”

“시간을 끄는 건 내 취향이 아니라서 말이지.”

“녀석은 위험해. 상상이상의 능력을 가지고 있을 가능성도 있다.”

“1년 전 까지는 보통 사람이라고 하지 않았나? 그 능력이 무엇이든, 나를 이길 수는 없지.”

“하긴...”

마리엘이 고개를 끄덕였다. 준이 어떤 기연을 얻었는지는 모르겠지만 기껏해야 1년이다. 사라센은 이미 몇 년 째 탑클래스의 헌터사냥꾼으로 명성을 날리고 있었다. 아무리 준이라고 해도 그의 칼날을 피할 수는 없을 것이다.

“그럼 조만간 좋은 소식 기대하지.”

사라센은 마리엘의 굳은 표정을 응시하며 입을 열었다.

“실종 된 사람에 대해서는 아무말이 없군.”

“최우선은 준 알스버그의 척살이다. 그들이 인질로 나선다해도 신경쓸 필요 없어.”

“애초에 그럴일도 없지만... 네 녀석도 여전하군.”

사라센은 입술을 일그러뜨리며 피식 웃음을 흘렸다. 두 사람이 처음만난 건 10여년 전. 한 사람은 헌터지망생이었고, 한사람은 사관학교에 갓 들어간 인물이었다.

“이 일이 실패하면 네녀석도 끝인건가?”

사라센은 느긋하게 소파에 몸을 기대었다. 진즉 만나서 이렇게 얼굴을 대면한 채 이야기 하고 싶었다. 누명을 씌우고 자신을 감옥행성으로 밀어넣은 남자. 그의 낭패한 얼굴을 보는 것으 그 어느때보다도 즐거웠다.

“뭔가 착각하는 모양인데. 난 이대로 무너지지 않아.”

“그거야 그쪽 생각이고. 실적이 나빠지면 정리해고는 금방이야. 너도 잘 알텐데? 그나이에 직장에서 짤리면 어디 받아줄 데라도 있을까?”

“이 자식이!”

마리엘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며 큰 소리로 외쳤다. 그는 얼굴이 시뻘겋게 달아오를 정도로 분노하고 있었다.

“워워. 화내지 말라고. 난 오늘 그저 비지니스를 하러 온 거니까.”

“과거의 원한을 아직도 잊지 못했다면 그냥 돌아가. 나는 믿을 수 있는 이에게 일을 맡기려고 한 것이지 사사로운 감정으로 일을 그르칠 녀석이 필요한 것은 아니니까.”

“아아. 알겠어. 나 역시 돈이 필요하고, 넌 최대의 고객이니까 서로 사이가 나쁠 필요는 없겠지.”

사라센은 그렇게 말하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와의 구원은 이미 오래전의 일이다. 한때는 그를 죽이고 싶을 정도로 미워한 적도 있지만, 이제는 그런 기억마저도 시간에 씻겨 흘러갔다.

“그럼 또 보자.”

사라센은 소장실을 빠져나갔다. 익숙한 향기가 코끝을 맴돌았다.

그렇게 사라센이 세일럼 시티로 향할 무렵, 공교롭게도 준은 이스카야 행성으로 돌아가 있었다. 루나가 산기를 보인 때문이었다. 그리고 얼마 후 그녀가 아이를 낳았다. 예상대로 딸이었다. 준과 루나는 아이의 이름을 ‘엘라(ELLA)’라고 지었다. 빛의 아이라는 뜻이었다.

아이를 돌보느라 준은 한동안 수라드 행성에 돌아갈 수 없었다. 돌아오는 길이 ARM까지 같이 가지고 왔기 때문에 마리엘은 한숨을 돌린 셈이었다.

“어그로 시스템을 완성했어요.”

루나는 엘라에게 젖을 물린 채 준을 향해 입을 열었다. 출산한지 얼마 지나지도 않아 연구를 재개한 그녀는 이미 마무리 작업중이던 어그로시스템을 완성하는데 성공했다. 그 사이 바쁜 것은 오히려 준이었다. 아이를 돌보느라 눈코뜰새 없이 바빴던 것이다.

“정말이야?”

준은 진심으로 기뻐했다. 그 물건이 돈이 되기 때문이라기 보다는 그녀가 얼마나 공을 들인 연구인지 잘 알기 때문이었다.

제임스의 자문에 따라 어그로 시스템은 갤럭시 인더스트리의 협조를 얻어 판매하기로 했다. 어차피 델타스피릿은 작은 기업이었고 전국적인 유통망 같은 것을 가지고 있을리 없었다. 무엇보다도 엑조틱 웨폰 사업을 하려는 갤럭시와 어그로시스템은 잘어울리는 한쌍이라고 할 수 있었다.

그로 인해 델타스피릿과 갤럭시 인더스트리간의 공조는 더욱 단단해졌다. 물론 이것이 임시적인 동맹이라는 것 쯤은 준도 잘알고 있었다. 언제든지 그쪽에서 기술을 빼먹고는 계약을 해지할 수도 있었다.

때문에 완제품의 생산까지 모두 이쪽에서 맡기로 했다. 물건을 뜯어보려 하면 자동으로 부서지게끔 설계를 해서 갤럭시는 물론 어느기업에서도 그 내부를 제대로 알 수 없도록 만든 것이다. 언젠가는 그 원리가 알려지기는 하겠지만, 당분간은 그것으로 충분할 듯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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