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261 ----------------------------------------------
절벽위의 바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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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아악!
엄청난 열기와 함께 수천도의 불꽃이 군인들의 몸을 집어삼켰다.
“으아아악!”
“끄아아!”
“이게 무슨...?”
순식간에 화염에 휩싸인 그들은 단발마의 비명만을 남기고는 모두 사망했다.
“...어?”
“사, 살아있나?”
그들은 멍하니 주변을 둘러보았다. 사방은 황량한 사막이었다. 방금전까지 세일럼 시티에 있었다는 걸 떠올린 그들은 모래바람을 맞으며 멍청한 얼굴로 주변을 바라보았다. 입고 있는 옷도 군복이 아니었고, 들고 있던 총도 어디로 갔는지 사라진 다음이었다.
“낙타...?”
고개를 돌려보니 등짐을 진 낙타 한 마리가 입술을 오물거리며 이쪽을 바라보고 있었다.
할짝!
낙타가 그 군인의 뺨을 크게 핥았다. 혼란에 빠진 그는 황급히 달리기 시작했다. 방금전까지 세일럼 시티에 있었는데 갑자기 이런 곳으로 왔다는 것이 이해되지 않았다.
‘이건 환상이야. 분명히 어딘가에 나갈 수 있는 문이 있을거야.’
나름대로 합리적인 판단이었고 또 그럭저럭 진실에 가까웠다. 하지만 거의 십여분간을 뛰었음에도 나가는 문을 찾을 수가 없었다.
털썩.
“말도 안돼... 정말 사막인건가...?”
그는 바닥에 무릎을 꿇고는 침음성을 흘렸다. 목구멍이 버석하게 타들어갔다. 멀리 오아시스로 보이는 것이 눈에 띄었다.
“하아. 하아.”
거의 두시간여를 걸어 도착한 곳에는 다행히 작은 오아시스가 있었다. 신기루라면 어떻게 하나 하고 걱정했지만 다행히도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그의 뒤를 따라 부대원들이 낙타 한 마리를 끌고 천천히 따르고 있었다.
“이쪽이다! 오아시스가 있다고!”
그의 말에 군인들이 반색하며 걸음에 힘이 실렸다. 꼼짝없이 죽게 생겼다고 생각한 찰나에 살길이 생긴 것이다.
콰아아-
그리고 그 순간 머리위에서 들리는 기이한 소리에 그들은 고개를 들었다. 수백, 수천개의 유성이 그들이 있는 오아시스를 향해 떨어지고 있었다.
“하암.”
준은 1층과 2층을 연결하는 계단에 앉아 허우적대는 군인들을 바라보고 있었다. 구현화는 본래 델타폰을 가지고 있는 사람만이 사용할 수 있는 기능이다. 하지만 델타의 주인인 준은 다른 방식으로 사용할 수 있었는데, 바로 이렇게 타인을 구현화에 빠뜨려 환상속의 세계에 빠져들도록 만들 수 있는 것이다.
현재 일정 반경안에서 군인들은 사막을 횡단하고 있었고, 준과 시미는 반구형태의 그 공간바깥에서 군인들을 관찰하고 있었다. 그들은 준이 구현화를 풀기전까지는 계속해서 그 안을 헤맬 수밖에 없었다.
마나를 가진 헌터라면 어떻게 힘으로라도 빠져나올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저들은 일반인에 불과했다. 자의적으로는 구현화의 덫에서 빠져나올 방법이 없었다.
이윽고 사막에 운석들이 떨어지고 군인들은 다시한번 죽음을 맞이했다. 준은 다음 시나리오를 틀었다. 이번에는 우주괴물들이 잔뜩 나타나는 호러영화의 한 장면이었다.
“으음... 이정도면 거의 트라우마에 걸리겠는데.”
괴물에게 잔인하게 찢어발겨지며 죽어가는 군인들을 보며 준이 살짝 미간을 찌푸렸다.
하지만 어차피 진짜로 죽는 것이 아니니 양심의 가책을 느낄 필요는 없었다.
그렇게 한 두어시간 정도 괴롭히고 나자, 군인들의 눈동자는 이미 죽어 있는 사람과 진배없을 정도가 되었다. 새 시나리오가 돌아가더라도 움직일 생각은 하지 않고 멍하니 주변을 둘러볼뿐 곧 다가올 죽음을 기다리는 눈치였다.
“이 정도면 되겠지.”
준이 구현화를 끝냈지만, 군인들은 환급소 안의 풍경을 보고서도 멍하니 있을 뿐이었다. 이 역시 다른 시나리오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준은 염동력을 이용해 그들의 화기를 모두 빼앗고는 전부 건물 바깥으로 밀어내었다. 저항을 할 생각조차 하지 못한 채 군인들은 바닥을 구르며 바깥으로 튕겨나갔다.
그러자 바깥에서 무슨일이 일어나는 지 궁금해 하던 헌터들이 깜짝 놀라며 그들을 살폈다. 하나같이 알아듣지 못할 소리를 웅얼거리는 모양새가 제 정신은 아닌 듯 보였다.
“이보시오? 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겁니까?”
“으... 괴물...”
“아아아! 살려줘!”
“여기는 어디...?”
그나마 멀쩡한 사람이 겨우 걸을 수 있을 정도였다. 하지만 그 역시 정상이라고 보기엔 어려웠다. 갑자기 일어나더니 미친놈처럼 웃으며 어디론가 달려가기 시작한 것이다.
“무슨일이 있었던 거야?”
헌터들은 환급소 안을 흘낏 쳐다보며 몸을 부르르 떨었다. 군인들을 미치게 만든 무언가가 저 안에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때문이었다.
하지만 활짝 열린 문안에는 별 다를 것이 없었다. 여전히 ARM기기를 제외하면 지키는 사람도 없었다. 근처에서 눈치만 살피던 헌터들 중 뒤쪽에 서있던 이가 성큼성큼 안쪽으로 들어섰다. 벌써 이곳에서 반나절이나 기다린 이였다. 더 이상 기다릴 수는 없다는 생각을 한 모양이었다.
그가 먼저 들어가 환급을 받고 건물을 빠져나오자, 눈치를 보던 헌터들이 하나 둘씩 환급소 안으로 들어가기 시작했다.
그리고 다시 긴 줄이 늘어서기 시작했다.
“뭐라고? 실패했단 말이냐?”
“네. 하나같이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있습니다.”
“대체 무슨 일이 있었길래...”
“그나마 멀쩡한 녀석도 용이 불을 뿜었다던가, 사막에 떨어졌다던가 하는 소리를 하는 걸로 봐선 무언가 환상에 당한 것 같습니다.”
“마법사가 있는 건가?”
“제법 상위의 마법사인 모양입니다. 아무리 일반인이라지만 분대단위의 군인들을 전부 환상에 빠뜨릴 수 있을 정도라면 보통의 실력은 아니라고 봐야겠지요.”
“젠장. 레이드 팀이라도 보내. 군인이 안된다면 녀석들은 어떻게든 되겠지.”
“그것이...”
드와이트는 곤란하다는 얼굴로 입을 열었다.
“다들 세일럼에 가 있습니다.”
“설마 그 녀석들도 거기서 환급하는 건가?”
“...”
드와이트는 고개를 끄덕였다. 마리엘은 이를 부득부득 갈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렇지 않아도 사정이 좋지 않은데 계속해서 이런 일이 벌어지니 무슨 마가 끼인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차라리 세일럼을 폐쇄하는 건 어떻겠습니까?”
“녀석이 다른 도시로 옮기면 어떻게 할 건가?”
드와이트는 입을 다물었다. 마리엘의 말처럼 ARM이라는 기기는 언제든지 옮길 수 있는 물건이다. 굳이 그곳이 아니라도 기기 설치에는 문제가 없는 것이다.
“하지만 네 말에도 일리가 없는 건 아니로군. 일단 도시 전체를 포위하도록. 개미새끼 한 마리도 빠져나갈 수 없게 하고, 건물을 폭파시킨다. 일단 시간은 좀 벌 수 있겠지.”
“그대로 시행하도록 하겠습니다.”
-세일럼 시티로 대규모 부대 이동 중. ARM을 무력화 시킬 생각인 모양.
-하여튼 이런 일에는 기가막히게 빠른 듯.
-주인장 도망쳐야 되는 거 아님?
-별 걱정을 다하네. 세상에서 제일 쓸데없는 걱정이 주인장 걱정임.
-대규모라고 해봐야 시어도어 대령이 이끌던 부대 만 하겠어? 수라드 놈들은 아직 주인장이 얼마나 괴물인지 모르는 듯.
-그러니까 주인장의 정체가 대체 뭐냐? 궁금해 죽겠네. 누가 설명 좀.
-너 스파이지?
-스파이네. 주인장이 이거 보면 계정 추적해서 신원 알아내는데 얼마나 걸릴 거 같냐?
-아님. 그냥 순수하게 궁금해서 그럼.
델타포럼은 여러모로 편리했다. 일단 적극적으로 커뮤니티 활용을 하는 이들이 많았고, 대부분 사용자들이 헌터다 보니 고급정보들도 많이 섞여 있었다. 게다가 의심스러운 정보는 그 글을 올린 사람을 추적해 진위여부를 가릴 수 있으니 가짜정보에 속을 우려도 낮은 편이었다.
보아하니 군부대 사이에 델타폰을 가지고 있는 이가 있는 것 같았다. 계정을 추적해 보니 다름아닌 드와이트 덴버였다. 그와는 한 번 만난 적이 있었기 때문에 이곳에서 얼굴을 보이면 결국 이 일이 델타스피릿에서 벌인 일이라는 것을 알아차리게 될 것이다.
하지만 준은 그다지 개의치 않았다.
들켜봐야 별로 상관이 없다는 생각이었다. 알바트로스가 무적의 함선이 된 이상 어떤 이들이 위협을 가해도 크게 두렵지 않았다. 애초에 드와이트에게 얼굴을 공개한 것도, 이왕이면 마리엘이 알아줬으면 하는 바람이 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예상과는 달리 아직 그는 자신이 델타스피릿의 주인이라는 사실을 모르는 모양이었다.
“그럼 손님 맞을 준비를 좀 해볼까.”
세일럼 시티를 향해 밀려오는 군대의 숫자는 연대급의 병력이었다. 1000여명이 넘는 군인과, 각종 화기와 병기로 무장한 군대의 위용에 헌터들은 무슨일이 생겼나 하고 집안에서 몸을 사렸다. 헌터가 마나를 사용할 수 있다고는 해도 군인앞에서는 평범한 일반인이나 다름없었다. 그러다보니 세일럼 시티를 틀어막은 병사들 앞에 나서서 항의를 할 수 있는 이들은 아무도 없었다.
“제법 규모가 큰데.”
준은 피식 건물 옥상에서 도시를 포위한 군대를 보며 피식 웃음을 흘렸다. 저들은 준을 몰라도 너무 모른다. 화기를 상대로 아무런 위협을 느끼지 못하는 준에게 군대라니, 솔직히 말하면 가소로울 지경이었다.
“어쨌거나 환영은 해줘야겠지.”
세일럼을 완벽 봉쇄한 후, 군인들은 본격적으로 도시 안으로 진입하기 시작했다. 어지간한 사람들은 전부 집안에 틀어박혀 꼼짝도 하지 않고 있었다. 애초에 그들의 목표도 결정체 환급소였기 때문에 다른 곳으로 향하지 않고 곧장 준이 있는 것으로 다가왔다. 건물을 빙 둘러 수백의 군인들이 총을 겨누었고, 준은 건물 옥상 위에서 그런 그들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드와이트 요크는 군인들 사이에 섞여 환급소 건물을 올려다 보았다. 듣기로는 하루아침에 갑자기 생긴 건물이라고 했다.
모든 것이 이해가 되지 않았다. 건물이 갑자기 생긴것도, 듣도보도 못한 환급기도, 그리고 그 안에 들어갔다가 정신이상을 겪은 군인들도. 가장 유력한 추측은 강력한 마법사가 자신들을 상대로 도발을 하고 있는 것이라는 정도였다.
그가 누구인지, 무슨 목적을 위해서 그러는 것인지는 아직 아무것도 밝혀진 것이 없었다.
“어? 건물 위에 누가 있는데요?”
그때 군인 들 중 누가 입을 열었다. 드와이트도 그의 말에 고개를 들어 환급소 옥상을 바라보았다. 햇볕을 등지고 있어서 얼굴이 드러나지는 않았지만 그는 왠지 낯이 익다는 생각이 들었다.
“설마...”
그의 머릿속에 떠오른 이름은 델타스피릿이었다. 실루엣만으로 확신할 수는 없었지만, 그때 만났던 어린 사장과 놀랍도록 비슷하다는 느낌이었다.
‘그러고 보니 그자의 이름이 준 알스버그였지.’
그 이름을 듣고도 그는 마리엘이 감옥에 보낸 준 알스버그를 떠올리지 못했다. 왜냐하면 빚을 지고 죄를 저질러 감옥에 간 애송이와, 델타스피릿이라는 상당한 규모의 기업의 오너와 동일시하기가 힘들었기 때문이었다.
그때, 준이 옥상에서 훌쩍 뛰어내렸다.
탁.
그 높이에서 뛰어내렸음에도 마치 계단 두 칸 정도에서 뛰어내린 것 같이 가볍게 착지한 준의 모습을 본 드와이트는 깜짝 놀라며 입을 열었다. 설마 했던 일이 사실로 드러난 것이다.
“준 알스버그!”
“아. 거기 있었군. 안보이기에 어디있나 한참 찾았거든.”
“대, 대체 여기서 뭐하는 겁니까?”
“뭐하긴, 사업이지.”
“사업이라니... 엄연히 불법이라는 걸 알고 있겠지요?”
“아닐걸.”
준은 능청스럽게 대꾸했다. 그 모습에 드와이트가 이를 뿌득 갈며 외쳤다.
“대체 무슨 억하심정이 있어서 이러는 겁니까? 지금 새크리파이스와 전쟁이라도 하자는 겁니까?”
“전쟁이라... 뭐 하려면 못할 것도 없지. 하지만 난 정말 죄가 없는 걸. 증거 있어? 대체 무슨 권리로 이렇게 많은 병력을 끌고와서 멀쩡한 사람을 괴롭히는 거야?”
“증거는 뒤지면 나올 겁니다. 이제 당신은 끝입니다. 이대로 끝날거라고 생각하지 마시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