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프로젝트 델타-258화 (258/5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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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벽위의 바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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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흠. 어떻게 할까...”

“그냥 패버려욧.”

시미가 고개를 내밀며 입을 열었다. 가만히 듣고 있자니 그녀도 화가 난 모양이었다. 갑작스레 나타난 시미의 모습에 사내들이 깜짝 놀라며 시미를 쳐다보았다.

“요정인가?”

“대박인데? 저거 팔면 얼마나 받을까?”

“돈이 문제냐? 저런건 돈주고도 못산다고.”

시미의 모습을 본 사내들의 얼굴이 탐욕이 떠올랐다. 준이 혀를 차며 입을 열었다. 그는 이런 어수룩한 동네 건달들과 드잡이질을 할 필요성 조차 느끼지 못하고 있었다.

“말로 할 때 가라. 물론 내가 이렇게 말해도 안가겠지?”

“시끄럽고. 그 요정이나 내놔. 그럼 몸 성히 가게 해주지.”

“참. 결국 힘을 쓰게 만드는 군.”

준은 주먹을 들어 골목길의 벽을 후려쳤다.

쿠웅!

엄청난 소리와 함께, 벽이 와르르 무너졌다. 생각지도 못한 상황에 사내들이 움찔 하며 한걸음 물러섰다.

“뭐, 뭐냐?”

“이제 가도 되지?”

이쯤 되면 말을 섞기도 귀찮았다. 알카트뢰즈에서야 욕심이 눈이 멀어 검을 꺼내는 놈들을 용서하지 않았지만, 이곳에서까지 그러고 싶지 않았다. 일단 그럴 가치를 느끼지 못했다. 위협도 되지 않는 놈들을 굳이 병신만들어 가면서 훈계하고 싶지도 않았다.

준이 검을 든 녀석을 향해 뚜벅뚜벅 걸어가자, 그자는 그제야 정신을 차린 듯 검을 곧추 세우고는 준을 향해 외쳤다.

“머, 멈춰! 더 이상 가까이 오면 벤다!”

“그러시던가.”

“에잇!”

슈칵!

그래도 나름 칼밥을 먹었다는 듯, 휘둘러 오는 기세가 제법 날카로웠다. 하지만 준이 보기에는 한없이 느린 검. 준은 날아오는 검면을 중지손가락으로 가볍게 튕겼다.

쩌엉!

고막을 찢는 쇳소리와 함께 사내가 들고 있던 검이 반토막으로 부러졌다. 준은 멍한 얼굴로 자신의 부러진 검을 쳐다보고 있는 사내의 앞에 서서는 입을 열었다.

“비켜.”

“헉?”

쿵.

그는 준의 말에 화들짝 놀라더니 자신도 모르게 엉덩방아를 찧었다. 준은 귀찮다는 듯 발로 녀석을 한쪽 구석으로 슥 밀고는 골목을 빠져나왔다. 사내들은 두려운 눈으로 준을 쳐다볼 뿐 얼어붙은 듯 꼼짝도 하지 못했다.

“치안이 개판이군.”

“준. 성질 많이 죽었어요.”

“일단 내 책임도 없는 건 아니니까. 하긴 저런 놈들은 어디가서나 저럴테지만.”

준은 씁쓸한 얼굴로 입을 열었다. 가난하다고 해서 모두가 범죄를 저지르는 건 아니다. 때문에 그냥 잡아다가 경찰에다 넘기거나, 아니면 두 번 다시 이런 짓을 저지르지 못하도록 병신을 만들어 놓는 것도 한 방법이었을 것이다.

다만 오늘은 골치아픈 일을 만들고 싶지 않았던 것뿐이다.

숙소를 잡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 최근의 불경기로 인해 절반 이상의 방들이 비어있었고, 준이 머무를 방도 쉽게 구할 수 있었다. 일단 식사를 위해 음식을 시키고 기다리면서 준은 사람들의 대화에 귀를 기울였다.

아니나 다를까 대화주제는 델타폰과 니들건에 대한 이야기들이 주를 이루고 있었다. 델타폰은 최초에 세일럼에서 판매되기 시작해 수라드 전역에 퍼지고 있는 상황이었기 때문에 이곳이 가장 큰 영향을 받는 곳일 수밖에 없었다.

“그놈의 델타폰이 뭔지... 돈은 버는 놈들만 벌고 이미 다 떠나고 이제 남은 이들은 뭐 먹고 살라는 건지 모르겠군.”

“그러게 말이야. 거기다가 결정체 가격까지 떨어지니 더 문제가 되는거 아니겠어?”

“하긴. 최근에는 80만원대 까지 떨어졌다고 하더라고. 이래서야 하급헌터들이 일반외도를 찾아다니는 것도 이상한 일이 아니지.”

가만히 이야기를 듣던 준이 고개를 끄덕였다. 아마도 마리엘 쿤이 이스카야 행성에 투자한 금액의 회수를 위해 결정체 가격을 떨어뜨린 모양이었다. 결정체 가격이 급락하게 되면, 일반외도를 다수 잡아 외도의 사체를 파는 편이 돈이 더 잘될 수밖에 없었다.

준은 헌터들의 불만이 상당하다는 점을 깨닫고는 마리엘을 엿먹일 방법을 강구했다. 일단 식사를 마치고 방으로 돌아온 준은 델타포럼에 접속해 수라드 쪽의 뉴스를 검색해 보았다.

-결정체 가격 폭락. 이유는?

-개당 90만원선 붕괴. 어디까지 떨어질 것인가.

-결정체 가격 조정. 수라드 행성의 인위적인 정책.

사람들은 이번 결정체 가격 하락의 원인을 자기들 끼리 추정하고 있었다. 아직 이스카야 행성에서 일어난 투자건과 그로 인해 손해를 입었다는 사실을 잘 모르고 있기 때문이었다.

준은 몇가지 정보를 흘렸다. 행성투자와 실패, 그리고 그 외의 마리엘 쿤이 손대었다가 말아먹은 일에 대한 정보였다.

장작이 투입되자 포럼이 빠르게 불타오르기 시작했다. 알카트뢰즈 출신들이야 강건너 불구경일 뿐이지만 수라드 행성의 헌터들에게는 직접적으로 수익과 관련되는 이야기 였기 때문에 댓글이 달리는 속도도 상당했다.

-그게 다 그 놈의 플랫폼 소장인가 뭔가 하는 놈이 투자를 했다가 말아먹는 바람에 생긴 일이라고?

-이런 시바. 그걸 왜 우리한테 덮어씌우는 거야?

-그거야 당연하지 않음? 손해 본거 채울려고 그러는거지.

-그러니까. 그걸 왜 결정체 가격에서 뽑냐는 말이야.

-안그러면 본인이 짤릴테니까. 멍청한 녀석아 생각을 좀해라.

-난독증있냐? 그러니까 내말은 왜 본인 잘못을 우리에게 떠넘기냐는 말이잖아.

-난독같은 소리하네. 정말 이유를 몰라서 그러는 거냐?

-결국 그 새끼가 개새끼라는 이야기네.

-이제야 말이 좀 통하네.

현재 수라드 행성에 퍼져있는 델타폰의 수는 2000개에 근접하고 있었다. 그정도면 헌터들의 여론을 움직이기에 충분한 숫자였다. 애초에 언론이라는 것이 기업의 입맛에 맞게 통제되고 있는 탓에 제대로 된 소식을 전하는 곳이 거의 없다보니 델타포럼의 정보는 빠르게 퍼지고 재생산될 것이다.

‘적당히 불을 지폈으니, 어떻게 나올지 궁금하군.’

헌터들도 바보가 아니다. 그렇지 않아도 결정체 가격을 후려치는 것에 대해서 불만이 있는 상태였다. 그 이유가 마리엘의 개인적인 투자 실패 때문이라면 그에 대한 반발이 커질 것은 당연한 일이다.

준은 거기에 쐐기를 박을 작전을 계획했다. 다름아닌 알파시티에서 사용하고 있는 결정도 환급 시스템을 이곳에다가 만들 생각이었다. 알파시티는 아직 사람이 직접 결정체를 받아 계좌이체를 하는 식으로 운영하고 있었다.

준은 그것을 ATM같은 무인 시스템으로 바꿀 생각이었다.

방법은 간단했다. 델타폰은 기본적으로 결정도를 체크할 수 있는 기능이 탑재되어 있다. EP의 충전을 위해서였다. 그것을 이용해 자동으로 결정체를 흡수하고 들어온 EP에 따라 입력한 계좌로 결정도만큼의 금액을 보내는 것이다.

즉, 델타OS에 은행시스템을 마련하는 것이다. 이것을 가능하게 하는 것은 다름아닌 프로그래밍 기술이었다. 준은 밤을 새다시피 해서 델타OS에 계좌연동시스템을 구축하고, 충전된 EP를 소모해서 현금으로 환급받을 수 있는 시스템을 마련했다.

물론 돈은 델타스피릿의 법인계좌에서 빠져나가는 것이다. 물론 이 방법의 단점은 결정체를 현물로 가지게 되는 것이 아니라, 경험치 형태로 얻게된다는 것이다.

물론 각각의 델타폰에 적용은 불가능했다. 시스템 자체가 경험치나 EP의 양도가 불가능하게 되어 있기 때문이었다. 때문에 준은 델타폰의 크기를 키워, 준의 계정으로 연동되도록 해두었다.

준은 그렇게 첫 번째 결정체 환급기를 완성했다. 이 장치의 장점이라면 관리하는 사람이 없이도 결정체를 살 수 있다는 것이고 단점이라면 경험치 형태로 변환해서 얻게 된다는 점이었다. 준의 목적은 결정체를 얻는 것이 아니라, 수라드 행성의 수입을 줄일 생각이었기 때문에 그것은 큰 문제가 되지 않았다.

무인 결정체 환급기(ARM:Auto-crystal Refund Machinery)(B급)

델타폰을 개조한 결정체 환급기입니다. 결정도에 따라 설정한 액수를 입력된 계좌로 보낼 수 있습니다. 계정은 사용자에 종속되어 있으며 이 기기를 통해 얻은 경험치는 양도할 수 없습니다.

B급 이상부터는 특수능력이 붙습니다.

특수능력: 결정도의 10퍼센트만큼의 추가 경험치가 붙습니다.

“헐...”

준은 특수능력을 보며 헛웃음을 흘렸다. 결정도에 따라 추가경험치가 준에게 더 들어오는 것이다.

‘이게 말이 되는 건가...?’

결정도는 결정체의 엑조틱 에너지 량을 의미한다. 이 말은 결정체에서 얻을 수 있는 엑조틱 에너지 이상을 얻는다는 것이다. 그렇다는 이야기는 결국 없는 경험치를 부여한다는 것인데, 준은 이부분을 이해하기 어려웠다.

-시스템. 이 특수능력이 이해가 잘 안되는데. 어떻게 결정도 이상의 경험치를 얻을 수 있는 거지?

-델타시스템 내부의 연산에 대해서는 저도 접근할 수 없습니다.

-뭐, 알았다.

어차피 대답을 해줄거라고 생각하지도 않았다.

‘루나와 상의를 해봐야겠군.’

무에서 유를 창조하는 방법은 없다. 즉 10퍼센트의 추가 경험치가 존재한다는 것은, 어쩌면 델타시스템이 보이지 않게 떼어가는 경험치가 존재한다는 의미일 수도 있었다. 즉 결정도 이상의 엑조틱 에너지를 효율좋게 흡수하면서 준에게는 알리지 않을 수도 있다는 뜻이었다.

어쨌든 그렇게 완성된 ARM을 준은 세일럼 시티에 설치하기로 마음먹었다. 현재 세일럼의 문제는 돈이 많은 헌터들이 모두 떠났다는 데 있다.

이 기기를 세일럼 시티에 설치하는 것만으로도 그 사람들이 다시 이곳으로 오게 만들게끔 할 수 있었다.

‘그럼 이 동네 사정도 조금은 나아지겠지.’

겸사겸사 좋은 일이었다. 비싸게 환급을 한 만큼 이곳에서도 돈을 쓸 것이고 세일럼은 다시 살아날 것이다. 물론 그 돈이 최하급 헌터들에게까지 들어갈 거라는 보장은 없지만 준이 할 수 있는 일은 거기까지였다.

다음날. 준은 세일럼 시티의 외곽지에 빈 집을 하나 구입했다. 그리고 곧바로 대흉근을 이용하여 건물을 부수고는 새 건물을 하나 세웠다. 결정체 환급소라는 이름과 함께 ARM을 몇 개 설치하자 사람들이 뭔가 싶어서 기웃거렸다.

굳이 광고를 할 필요는 없었다. 준에게는 델타포럼이라는 공짜 홍보수단이 있기 때문이었다.

-세일럼 시티에 환급소 설치. 결정도에 따라 현금으로 바꿔드림.

그 한 줄의 글만으로도 사람들은 엄청난 관심을 보였다. 그리고 첫날부터 사람들이 모여들기 시작했다. 처음은 가까운 개척도시에서 사냥을 하던 하급 헌터들의 무리였다. 그들은 현재 가격이 떨어진 결정체를 팔지 않고 모아두고 있는 이들이었다. 하지만 결정체는 보관하기 까다로운 물건이었고, 유통기한이 지나면 제 값을 받을 수 없다. 결국 싼값에 팔아야 할 수밖에 없던 차에 밑져야 본전이라는 심정으로 세일럼 시티까지 찾아온 것이다.

“오오? 정말 인데?”

“나 지금 150만원이나 들어왔어! 겨우 하나 팔았는데.”

“대박. 이거 팔아봐야 80만원밖에 안주는건데.”

사람들의 표정이 의구심에서 환희로 바뀌는 데는 채 몇분도 걸리지 않았다. 그들은 환급소가 진짜라는 사실을 깨닫고는 가지고 있는 모든 결정체를 투입하기 시작했다.

‘계좌가 버티려나.’

1조라는 현금이 있기는 하지만 현재 빠르게 소진되고 있는 상황이었다. 제임스에게 간단히 통보하기는 했지만, 이런식이면 생각보다 현금의 소모율이 높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아직 2조라는 돈이 추가 투입 될 예정이었기에 벌일 수 있는 짓이었다.

일단 세일럼 시티에 ARM를 설치해두고 준은 사냥터로 향했다. 일반외도를 사냥하기 위함이 아니라 실험해 볼 것이 있기 때문이었다. 인적이 뜸하고 넓은 공터를 찾아 준은 차량에서 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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