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프로젝트 델타-247화 (247/5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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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번째 조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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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파시티는 순조롭게 건설되고 있었다. 젊은 시절로 돌아간 듯 활력이 넘치는 노인들은 열정적으로 일했고, 아이들은 그런 어른들 옆에서 함께 일을 배웠다. 아직 학교에서 공부를 해야할 나이였지만, 사실상 연합에서는 교육 자체가 의무가 아니었고 가난한 집 아이들은 유년시절부터 어른들의 일을 돕는 것이 당연하게 인식되고 있었다.

하지만 준은 아이들의 미래를 위해서도 교육은 반드시 필요한 일이라고 생각했다. 문제는 항상 재원이었다.

준은 그 문제에 있어서는 제임스의 입장을 최대한 반영했다. 사실 난민들을 모두 받아들이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재정적으로 부담이었기 때문에 상당히 조심스러울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해서 이스카야 행성과 플랫폼 내부에 아이들을 위한 작은 학교가 만들어졌다. 숫자가 적기 때문에 각각 한 반씩으로 만들었고 교사로는 직원 중 둘을 뽑아서 각각의 교실에 배치했다. 물론 강의를 위한 여러 시설들은 준이 직접 만들어서 배치했다. 델타OS를 탑재한 스마트패널을 보급하니 한 명의 교사만으로도 여러 과목을 가르치는 데는 문제가 없었다.

특히 구현화 기능은 교육목적으로는 완벽한 기술이라고 할 수 있었다.

“저 양반들 저러다 갑자기 픽 쓰러지는 거 아닌가 모르겠네.”

준은 이스카야 행성에서 송출한 영상을 보며 입을 열었다. 50여명의 노인들은 열정적으로 건물을 보수하고, 길을 닦았다. 남는 시간에는 짬짬이 텃밭에서 농사를 지었고 어떤 이는 아예 처음부터 넓은 밭을 갈고 있는 사람도 있었다.

“육체만으로는 최절정기나 마찬가지니까 문제는 없어. 다만 수명은 크게 늘어나지는 않을거야.”

“그것만으로도 대단하지. 진짜 종교라도 만들어 보는 건 어때?”

준은 어깨를 으쓱하며 입을 열었다. 당연히 농담이었지만 에피알게나스는 미미하게 고개만 움직일 뿐 더이상의 반응을 보이진 않았다.

“좀 웃으라고 한 이야긴데.”

“재미있었어.”

“그럼 좀 더 크게 웃어보는 건 어때?”

“음...”

에피알게나스는 잠시 생각에 잠기는 듯 하더니 얼굴에 미소를 떠올렸다. 누가봐도 억지로 웃는 다는 사실을 알 수 있을 정도였지만, 그것만으로도 주변 공기가 밝아지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됐다. 그냥 있는 게 낫겠어.”

준은 고개를 저었다. 그렇지 않아도 주변의 이목을 끄는 얼굴인데 미소를 지으니 마치 후광이 보이는 듯한 착각이 일었다. 저래서는 어딜 나다니지도 못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헌데 왜 여기 있는거야?”

“내 마음.”

홀짝.

에피알게나스는 현재 준의 사무실에 앉아 차를 마시고 있었다. 이곳의 음식이 몸에 맞지 않는다며 최대한 소식을 하는 그녀였지만 차는 꽤 좋아했다. 그 때문인지 마스터와는 종종 대화를 하는 모양이었다.

“음. 이왕 이렇게 왔으니 말인데. 네 능력에 대해서 좀 더 알 수 있을까?”

“뭐가 궁금한데?”

“일단 그 치유능력 말인데 얼마나 사용할 수 있는거야?”

“사람에 따라서 부상정도가 다르니까 딱히 몇명이라고 말하기는 어려워.”

“수치로 나타나거나 하지는 않는 건가?”

“딱히.”

“흠. 오리진의 조각이어도 전부다 능력치가 숫자로 나타나지는 않는 모양이구나. 그러면 능력의 성장은 어떤 식으로 하는 거야?”

“오리진의 조각을 모아야 해.”

“외도를 잡는다던가 하는 방법이 아니고?”

끄덕.

그녀는 대답대신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군. 초기능력이 강한 대신 성장은 다른 조각을 얻어야지만 가능한 건가. 확실히 델타와는 다른 것 같군. 어쨌든 네 목적은 조각을 모으는 거겠지?”

“그래. 시간이 얼마나 걸릴지는 모르겠지만, 가능한 모아서 오리진을 복원하는 것이 내 목적이야.”

“그게 있다면 외도와의 싸움에서 이길 수 있는 거겠지?”

“어쩌면 그럴지도 모르지.”

“가능성이 높아 보이는 대답은 아닌데.”

“오리진 만으로 가능했다면 내가 이곳까지 올 일도 없었을 거야.”

에피알게나스는 차를 탁, 소리나게 내려놓으며 입을 열었다. 아주 작은 동작이었지만, 준은 그녀의 감정이 요동치고 있음을 느낄 수 있었다.

“그러면 다른 방법이라도 있어?”

“조각난 오리진은 원래의 것과는 다른 형태로 진화해. 그것을 다시 모으는 과정에서 그 힘은 점점 커지게 되지. 최종적으로는 본래의 오리진에 비해 강한 힘을 가지게 될거야. 그를 이용하면 외도를 막아낼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해.”

“막연하군. 솔직히 한두 개도 아니고 언제 그걸 다 찾겠어.”

“오래 걸리는 일이야. 어쩌면 후대까지도 이어져야 할지 모를 일.”

“천천히 해도 된다는 이야기네. 안그래도 한동안은 이곳에 있어야 될 것 같았는데.”

“마냥 기다릴 순 없어.”

“알아. 그래도 반경 10광년 안의 조각은 탐사할 수 있으니까. 이 일이 정리되는 대로 슬슬 움직여 볼 생각이야.”

준의 말에 에피알게나스가 준을 바라보았다. 그 시선에 담긴 뜻을 파악한 준이 입을 열었다.

“어라. 설마 너는 그런 능력이 없는거야?”

“없어.”

“그런가. 덕분에 네가 여기 있어야 할 이유가 생겼군.”

“원래부터 떠날 생각은 없었어.”

“그렇긴 하지만, 내 입장에서는 너 정도의 인재를 놓치는 건 아까우니까 이런저런 생각을 하게 된다고. 솔직히 갤럭시 쪽에서 스카웃하려고 했을 때 약간 걱정도 했고.”

“돈은 별 의미가 없어. 가지고 있어봐야 쓸 곳도 없고.”

“밥 사먹을 돈 정도는 있어야 하잖아.”

“준이 줄 테니까.”

“묘하게 양심에 찔리는데. 밥값만으로 최상급 힐러를 고용할 수는 없는 일이고.”

“돈은 필요 없어. 그저 이곳에 머물수 있으면 되니까.”

에피알게나스는 두 손을 모아 무릎위에 올려두고는 멍하니 준을 바라보았다. 대체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 것인지 알 수 없는 눈동자. 준은 입을 열었다.

“왜 이곳에 있으려고 하는지 물어도 될까?”

“델타의 주인이니까. 진화 된 조각은 다른 조각을 끌어들여. 강해지면 강해질수록.”

“그렇군. 내 옆에 있으면 다른 조각을 얻을 수 있다고 생각한 건가?”

끄덕.

에피알게나스는 고개를 끄덕였다. 준도 납득했다는 듯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 어쨌든 한동안은 그녀를 다른 곳에 빼앗길 염려를 하지 않아도 될 것 같았다.

브랜든은 재판도 없이 새크리파이스의 사설감옥에 갇혀 있었다. 아무리 억울함을 호소해도 소용없었다. 그들에게 폭행을 당해 온몸이 만신창이가 된 기억도 있었지만, 어찌 된 일인지 눈을 떠보니 몸은 아픈 곳 하나 없이 멀쩡했다.

꿈을 꾼 것은 아닌가 하고 볼을 꼬집어보기도 수차례. 하지만 눈앞의 현실은 달라지지 않았다. 그는 지독한 고문과 독방생활로 인해 이미 지칠대로 지쳐있었다.

철컹.

감옥의 바깥에서 간수가 빵하나와 물을 가져다 주었다. 그는 창살에 매달리며 입을 열었다.

“마, 마리엘 함장님에게서는 연락이 없습니까?”

“쓸데없는 소리말고 조용히 있어. 조만간 형이 집행될테니까.”

“혀, 형이라니... 전 재판도 못받았습니다...”

“새크리파이스의 영역에서 저지른 범죄는 우리식으로 처리하는 거 모르나?”

꿀꺽.

브랜든은 자신도 모르게 침을 삼켰다. 자신은 잘못한 것이 없었다. 때문에 조만간 무죄석방이 될거라고 굳게 믿었다. 하지만 회사는 아무런 말도 없이 자신을 가두었고, 소명의 기회도 주지 않았다. 궁여지책으로 전화라도 쓰게 해달라고 해서 마리엘에게 전화를 해보았지만, 돌아오는 대답은 기다리라는 말 뿐이었다.

“그럼 이제 전 어떻게 되는 거죠?”

“글쎄. 나야 모르지. 어딘가의 지하 광산에서 썩거나. 그도 안될 것 같으면 그냥 깔끔하게.”

간수는 목을 그어보이는 시늉을 하며 씨익 웃었다. 브랜든은 다리가 풀리며 자리에 주저앉았다.

“사, 사형? 어째서?”

“후. 네 녀석은 아직도 사태의 위중함을 모르는 모양이군.”

뚜벅. 뚜벅.

그때 익숙한 목소리와 함께, 그가 그토록 기다리던 사내가 모습을 드러냈다. 마리엘 쿤 전함장. 지금은 수라드 플랫폼 관리자인 그가 브랜든이 갇혀 있는 감옥에 나타난 것이다.

“하, 함장님. 살려주십시오.”

“새크리파이스의 함선 하나가 증발했다. 네놈이 그 자들과 함께 움직이는 영상이 남아있고. 이것만으로도 충분히 죄는 입증 가능해. 협박을 당했다느니 하는 식으로 조각사유를 읊어봐야 소용없어.”

“하지만 정말 아무도 없었습니다. 목숨을 걸고 맹세할 수 있습니다.”

“그깟 싸구려 목숨에 무슨 의미가 있나.”

“함장님... 제발... 살려주십시오... 이대로 죽고 싶지 않습니다...”

브랜든은 오열하며 창살너머 손을 뻗어 마리엘 함장의 바짓단을 부여잡았다. 마리엘은 불쾌한 표정으로 발을 빼고는 허공을 움켜쥐고 있는 브랜든의 손을 밟았다.

꾹.

“끄윽.”

브랜든은 손에서 느껴지는 무게감에 신음을 삼켰다. 하지만 이정도는 지금껏 이어졌던 고문에 비하면 고통이라고 할 수도 없는 정도였다. 협력자들의 정체를 밝히라며 가해진 수많은 고문에 이미 그의 몸은 만신창이가 되어 있는 상태였다.

“개만도 못한 녀석. 맡긴 일 하나도 제대로 못하고 배신을 해? 네놈 때문에 얼마나 큰 피해를 입게 되었는지 알기나 해?”

마리엘은 구둣발에 힘을 주어 브랜든의 손등을 짓이겼다. 뚜둑, 하고 뼈가 부러지는 소리가 들려왔지만 브랜든은 입술을 깨물면서 비명을 참고 있었다. 혹시라도 자신을 구하러 온 것은 아닐까 하고 마지막 희망을 잡고 있었던 것이다.

“사, 살려 주십시오. 크흐흑.”

“마지막 질문이다. 그 놈들은 대체 누구였지?”

“전부 말씀드렸습니다. 강화수트를 입고 있어서 얼굴을 확인할 수가 없었습니다.”

“쯧. 구제불능인 녀석이로군.”

마리엘은 그대로 몸을 돌려 브랜든의 시야에서 사라졌다. 브랜든은 피가 흐르는 손을 뻗으며 필사적으로 계속해서 입을 열었다.

“제발! 살려주십시오!”

“시끄러워!”

쾅!

간수가 쇠봉으로 철창을 때리자 브랜든은 움찔거리며 물러섰다. 하지만 곧 마리엘이 자신을 외면했다는 사실을 깨닫고는 힘없이 자리에 주저앉고는 웅얼거렸다.

“어쩌다가... 이렇게 된거지?”

문든 이 순간에 준 알스버그의 얼굴이 떠올랐다. 자신도 그때 저렇게 등을 보이고 걸어갔었던가. 그녀석의 비통한 외침을 뒤로 한 채 자신은 살아남았다며 안도했다. 하지만 그 생각이 틀렸던 모양이었다.

‘멍청한 건 나였어.’

마리엘 입장에서 자신은 귀찮은 존재였을 것이다. 이렇다 할 능력도 없고, 항해사 자격증은 있었지만 그 실력이 탁월한 것도 아니었다. 그냥 흔한 월급도둑 중 하나였을 뿐이니, 마리엘의 눈에 찰리가 없었다.

그런 상황에서 높은 자리를 달라고 귀찮게 했으니 그의 입장에서는 언제든지 제거할 기회만 노리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뚝. 뚝.

그의 뺨을 타고 눈물이 흘러내렸다. 이제 앞으로 어떻게 될 지 생각하기 조차 싫었다. 그렇게 한참을 울다 지쳐 잠든 그는 감옥에서 탈출 하는 꿈을 꾸었다. 벽을 파내고 통로를 지나 플랫폼의 착륙장까지 가서 몰래 도망치는 것이다.

하지만 눈을 떠보니 다시 적막한 독방이었다. 꿈이 너무나도 생생했던 탓에 그 절망감은 두배로 찾아왔다.

그는 혹시라도 정말 꿈처럼 되지 않을 까 싶어 벽을 더듬어 보았다. 하지만 벽은 헌터들의 힘으로도 뚫을 수 없을 정도로 단단한 합금강으로 만들어져 있었다.

‘꿈은 꿈일 뿐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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