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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미의 비밀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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협상은 준의 승리로 돌아갔다. 결과적으로 갤럭시에서의 3조 지원, 그리고 준의 전차 10대를 1년 안에 보내는 것으로 결정되었다. 사실상 D2전차 한 대를 3천억에 판 것이다.
엄밀히 따지고 보면 상식적인 계약이었다. 물론 원가를 생각하면 엄청난 폭리였지만 물건이 가진 가치를 생각하면 오히려 싸다고도 할 수 있었다.
“3조라니... 대체 어떻게 그렇게 된 겁니까?”
바로 옆에서 보던 제임스가 그렇게 말할 정도면 당한 본인은 더 정신이 없을 것이다. 준은 어깨를 으쓱하며 입을 열었다.
“내가 협상능력이 좀 좋잖아. 이 정도면 영업이익은 꽤 되겠지?”
“투자유치는 엄밀히 말해 영업이익으로 들어가지는 않지만... 어쨌든 당분간 한숨은 돌리겠군요.”
“얼마나 버틸 수 있을 것 같아?”
“예상대로라면 1년입니다.”
“갤럭시에서 물건을 더 사갈 수도 있잖아.”
“아무리 갤럭시 인더스트리라고 해도 조 단위의 돈을 그렇게 쉽게 집행하지는 못할 겁니다. 요번 같은 요행을 바라기는 힘들지 않겠습니가?”
“일단 지켜보자고, 다시 안사간다고 하면 더 좋은 물건을 만들어서 팔면 되겠지. 예를 들면 우주선 같은 걸로 말이지.”
“우주선은 경제성이 없습니다.”
“아. 그렇지. 셔틀정도로 해야겠군.”
준의 제작무기가 갖는 이점은 엄청난 화력을 뿜어내는 현대병기들로 외도를 때려잡을 수 있게 만든다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우주선 같은 건 아무리 만들어 봐야 별 의미가 없었다. 그리고 본인의 안전을 위해서도 그건 피해야 했다. 결국 알바트로스에 EX필드를 걸 수 있게 된다면, 그것을 뚫고 공격을 할 수 있는 무기를 파는 것은 자살행위나 마찬가지니까. 우주공간에서는 공격불가옵션도 소용없었다. 우주선이 파괴되는데 몸만 달랑 살아남아봐야 결국 죽게 될 뿐이다.
강원삼을 돌려보낸 준은 드와이트 덴버와 면담약속을 잡았다. 일단 일대를 지배하고 있는 새크리파이스의 인사인 만큼 함부로 대할 수는 없었다. 준은 갤럭시 측 사람들에 준하는 예우를 갖추고는 그를 자신의 사무실로 맞이했다.
그리고 그는 그자가 다름아닌 마리엘 쿤이 보낸 사람이라는 사실을 깨닫고는 쓴웃음을 지어야 했다.
‘돈 되는 일에 무작정 뛰어드는 건 여전하구만.’
이 일은 수라드 플랫폼 관리자인 그가 신경 쓸 일이 아니었다. 드와이트는 준의 그런 속마음에 관계없이 플랫폼에 투자를 하고 싶다는 말을 전했다.
“그러니까 이스카야 행성에 땅을 내어달라는 말인가?”
“네. 거기에서 결정체를 사들일 생각입니다. 어차피 귀사는 결정체 사업을 할 수 없지 않습니까?”
“뭐, 틀린말은 아니지.”
하지만 준은 그럴 생각이 없었다. 어디까지나 이스카야 행성에서 나오는 결정체는 전부 자신이 독식할 생각이었던 것이다. 일부는 델타폰으로 회수할 것이고 나머지는 현금을 주고 사면 된다. 결정체는 EP에 비해 유동성이 좋다. 자신이 직접 경험치로 삼을 수도 있고, 루나나 막스처럼 자신의 사람에게 줄 수도 있다. 정 급하면 갤럭시에 팔아 돈으로 마련할 수도 있다. 문제는 하나였다. 사적으로 결정체 매매를 금지하고 있는 연합법의 존재였다.
플랫폼 거래는 회피할 방법이 있었다.
제임스의 머리에서 나온 아이디어였는데, 사실 플랫폼 거래의 본질은 레이드 산업체에 결정체를 매각을 한 것이다. 하지만 제임스는 그것을 판매가 아닌 기업체간의 교환이라는 관점에서 바라보았다.
이는 비 화폐성 자산을 교환한 것이었고, 실질적인 플랫폼의 가치가 상당히 떨어진데 비해 결정체의 가격은 비교적 안정적이었기 때문에 장부상의 액수와는 달리 공정가치에서는 큰 차이가 없었고 그 사이의 교환에서 준이 실질적인 이득, 즉 양도차익을 얻은 것으로 볼 수 없었다.
결론만 간단히 말하자면 제임스는 두 기업 간의 성격은 다르지만 동일한 가치를 지닌 자산을 맞교환 한 것으로 결정체 매매법을 피해간 것이다. 무엇보다도 결정체의 1차 출처가 준이라는 점도 문제의 소지를 줄였다. 수가 많아서 그렇지 기본적으로는 개인이 업체에 매각하는 것이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이스카야 행성의 헌터들에게서 결정체를 매입하는 순간은 이야기가 달라진다. 파는 것과 달리 사는 행위는 좀 더 엄밀하게 위법여부를 가릴 수 있기 때문이었다. 준은 때문에 그것을 어디로 빼돌리지 않고 모두 인벤토리에 보유할 생각이었다. 증거가 없다면 죄를 추정할 수 없기 때문이었다. 문제는 현장이다. 현장에서 결정체를 사고파는 모습은 확실한 증거로 남을 수 있었다.
때문에 준은 결정체 매입 직원을 따로 둘 생각이었다. 펠로우쉽 중에서 믿을 만한 자를 추려 10칸의 인벤토리를 부여하고 거기에 매입과 동시에 저장하는 식으로 증거 인멸을 계획한 것이다. 거기까지는 완벽한 계획이었다.
헌데 여기에 마리엘 쿤이 끼어든 것이다. 준은 미소를 지었다. 그를 나락으로 밀어버릴 좋은 기회였다.
“좋아. 대신 지금 우리가 개척하고 있는 곳과는 거리가 좀 멀었으면 좋겠군.”
“어째서죠? 너무 멀면 오히려 결정체 매각이 힘들지 않겠습니까? 이왕이면 가까운 편이 좋을텐데요.”
“아아. 우리 쪽에서 다른 기업과 계약을 맺은 것이 있어서.”
두 도시간의 거리가 가까우면 준의 꼼수가 빨리 드러날 위험이 있었다. 마리엘 쿤의 주도로 이루어진 투자로 만들어진 도시는 처음에는 사람들이 모일 것이다. 하지만 준은 그곳을 곧 완전히 비워버릴 방법을 생각했다. 단순히 준이 매입하는 결정체 가격을 올려버리면 되는 것이다. 평균 100만원인 결정체 가격을, 결정도에 따라 공정하게 지급한다면 일반가의 30퍼센트까지는 더 쳐줄 수 있었다. 그 정도만 해도 새크리파이스의 도시는 순식간에 망하게 될 것이다.
드와이트 덴버는 만족스러운 표정으로 플랫폼을 떠났다. 그 얼굴이 얼마지나지 않아 일그러질 것을 생각하자 준은 벌써부터 유쾌한 기분이 들었다. 이건 시작일 뿐이었다. 마리엘 쿤이 그 정도로 무너진다면 그것으로 끝이겠지만, 진심으로 그러지 않기를 바랐다.
‘브랜든과는 달라. 넌 내 손으로 철저하게 무너뜨려주지.’
브랜든은 비겁했을 뿐이다. 자신의 안위를 위해 준을 팔아넘기기는 했지만, 그래도 같은 인간으로서 이해되지 않는 것은 아니다. 물론 죽기 직전까지 패기는 했지만, 그 정도로 그에 대한 원한은 어느정도 사라졌다. 하지만 마리엘 쿤은 달랐다. 자신의 성공을 위해 관계없는 자신을 끌어들였다.
준은 녀석을 끝까지 지켜볼 것이다. 어디까지 떨어지는 가를 보고, 그때 그자의 앞에서 비웃어 줄 준비가 되어 있었다.
“왜 그렇게 악당처럼 웃어요?”
준의 무릎에 앉아 책을 읽고 있던 시미가 준을 올려다보며 입을 열었다. 준은 그녀의 볼을 잡아당기며 입을 열었다.
“악당이 좀 되어볼 생각이거든.”
“악당들은 전부 못생겼는데.”
“나는?”
“헤헤.”
시미는 몸을 돌려 준을 꼭 끌어안았다. 더 이상 생식이니 뭐니 하는 소리를 못하게 했더니 최근들어서는 이런식으로 애정표현을 하기 시작했다. 그렇다고 두 사람의 관계가 달라지는 것은 없었지만 좀 더 친밀해지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준은 녀석을 번쩍 들어 옆에 내려놓고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슬슬 피곤해지려는 참이었다. 골치아픈 일도 어느정도 해결되었고 오늘은 루나와 함께 있을 생각이었다. 배가 눈에 띄게 부풀어 오른 상태라 별 일은 할 수 없을 테지만 이럴때일수록 옆에 있어줘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시미는 준이 사무실을 나가자 혼자 남은 방에서 멍하니 그가 사라진 문을 바라보았다.
사라락.
그녀의 몸을 감싸고 있던 머리칼이 펼쳐지며 아무것도 입지 않은 나신이 드러났다. 아무도 없는 방안, 아무것도 걸치지 않은 작은 소녀가 콧노래를 흥얼거리며 춤을 추기 시작했다. 별 의미가 있는 행위는 아니었다. 그렇게 방안을 빙글빙글 돌던 시미는 생각났다는 듯 사무실 구석에 있는 작은 서랍을 뒤적거렸다. 거기에는 최근 글을 배우기 시작하면서 사용하는 작은 노트가 있었다. 삐뚤빼뚤한 글씨체로 가득한 그 노트에는 그녀가 남에게 말하지 않은 비밀이 적혀 있었다.
[내 남자 만들기 프로젝트]
“흐응...”
그녀는 노트에 글을 적어나가갔다. 거기에는 그날 하루의 준의 일상과 함께 또 다른 정보가 적혀 있었다.
[포옹 4번 . 볼 당기기 2번. 가슴스치기 1번. 무릎앉기 1번.]
그리고 그 밑에 작은 글씨로 적어나갔다.
[내일의 목표. 볼 뽀뽀 달성하기. 파이팅.]
그리고는 별표를 세 개나 쳤다.
“뭐하는 거야?”
“핫?”
시미는 황급히 머리칼로 다시 몸을 감싸고는 뒤를 돌아보았다. 그곳에는 갈색의 머리를 질끈 올려묶은 서은설이 팔짱을 낀 채 이쪽을 바라보고 있었다. 시미의 이마에서 수액이 흐르기 시작했다.
서은설은 눈을 가늘게 뜨고 흐음, 하고 콧소리를 내더니 천천히 다가오기 시작했다. 시미가 크게 당황하며 입을 열었다.
“다, 다가오지 마여. 인질의 목숨이 아깝지 않나여?”
“인질이라니. 대체 무슨 소리야? 그보다 혼자서 발가벗고 뭘 그렇게 히죽대고 있었냐?”
“아, 아무것도 아니에요.”
“흐음... 그 뒤에 감춘건 뭐야?”
“이, 인질이에요.”
“그럼 인질을 구해야겠네?”
서은설이 시미의 등뒤로 손을 뻗었다. 시미가 재빨리 손을 움직였지만, 짧은 팔로는 그녀의 손을 피할 수 없었다.
서은설이 노트를 살펴보더니 흥미롭다는 듯 입을 열었다. 시미가 팔을 뻗어 노트를 낚아채려 했지만 서은설이 노트를 높게 치켜들고는 한 장 한 장 넘기며 읽기 시작했다.
“오늘은 준이 귀엽다고 해줬다. 뽀뽀하고 싶다.”
“으아아아! 읽지마욧!”
퍽퍽.
이윽고 시미가 서은설의 다리를 걷어차자 그녀는 뒤로 물러서면서도 계속 읽었다.
“오늘은 준이랑 아침을 같이 먹었다. 뽀뽀하고 싶다.”
“우에엥!”
“오늘은 준이랑 같이 잤다. 뽀뽀했다.”
“우아...”
시미는 결국 자리에 털썩 주저앉았다. 지금까지 아무에게도 보여주지 않은 치부를 들킨 것이다.
“이제 다 틀렸어요. 시미는 경멸당할거에요.”
“...젠장. 귀엽잖아.”
“예?”
서은설은 분한 표정으로 시미를 바라보고 있었다. 시미는 영문을 몰라 자신을 노려보고 있는 서은설을 향해 고개를 들었다.
“너 말이야.”
“네. 넷!”
왠지 모르게 서은설은 상대하기 어렵다는 생각이 들었다. 정확히 표현할 수는 없지만 첫만남부터 그랬다. 마치 무시무시한 토끼를 앞에 둔 기분이었다. 풀 한조각도 남기지 않고 잘근잘근 씹어먹는 토끼는 공포의 대상이었다.
“내가 도와줄게.”
“네? 뭐, 뭐를요?”
“조금 분하지만... 일단 준의 윤리관념을 무너뜨릴 필요가 있어보여서.”
서은설은 손톱을 물어뜯으며 무언가를 골똘히 생각하는 모습이었다. 그게 옳은 일인지는 그녀도 확신하지 못했다. 하지만 무언가 지금 머리가 파팍하고 돌아가는 것이, 이 방법만이 자신이 준과 루나의 사이에 끼어들 수 있는 유일한 일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둘이나 셋이나 별 차이는 없겠지.”
“은설이 무슨소리 하는지 모르겠어요.”
“일단 생긴거부터 바꾸자.”
“예?”
“준이랑 잘 되고 싶지?”
끄덕끄덕.
다른 말은 하나도 이해가 가지 않았지만, 마지막 말에는 자신도 모르게 고개가 끄덕여졌다. 그녀 자신도 자신이 무엇을 하고 싶은지 몰랐다. 그저 마음이 움직이는 대로 행동했고, 적어도 그것이 지금까지는 제대로 먹히지 않고 있었다. 그래도 좌절하지 않고 이것저것 시도해 보고 있었지만 꽤 오랜시간 동안 준은 조금의 반응도 보이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