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프로젝트 델타-243화 (243/540)

0243 ----------------------------------------------

갤럭시 인더스트리

*

*

*

그러자 더더욱 사람들은 에피알게나스를 신의 대리인으로 여기며 추종하기 시작했다. 약간은 걱정되었지만, 당장은 이득이라는 생각에 그냥 내버려 두기로 했다. 그렇다고 그녀가 갑자기 교주행세를 할리도 만무했던 것이다.

그 사이 준도 가만히 놀고만 있지는 않았다. 외도를 처리하고 나서도 계속해서 외도사냥을 진행했다. 당장 조각을 얻을 수 있으면 좋겠지만, 어디에 있는지도 모를 조각을 찾기 위해서 적막한 우주를 돌아다닐 생각은 없었다.

때문에 이스카야 행성의 외도를 쥐잡듯이 잡으며 노가다식으로 경험치를 벌여들였다. 어그로 시스템을 최대한으로 활용해서 외도를 잡자, 금방 경험치가 올랐다. 한번에 십여마리씩 몰려드는 붉은색 외도들은 검둥이나 골렘형제들 앞에서 개미떼처럼 쓸려나갔다. 솔직히 말하면 그래도 그리 많은 경험치는 아니었다.

하루에 많으면 경험치 일만, 적으면 오천 정도를 겨우 벌여들였다. 델타폰과 펠로우쉽으로부터 하루에 몇 만의 경험치가 들어오는 준이었기 때문에 그리 큰 수익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가만히 있는 것 보다는 나았다.

그리고 기다리던 소식이 날아왔다. 갤럭시 인더스트리에서 온 공문이었다.

강원삼 대리는 약간 긴장한 얼굴로 플랫폼에서 내렸다. 그의 뒤로 검은 양복을 입은 사람 두 명이 함께 내렸다. 그를 보조해 주기 위해서 따라 온 이들이었다.

“환영합니다. 먼저 숙소로 안내해 드리죠.”

기다리고 있던 제임스가 그들을 맞이했다. 명색이 갤럭시 인더스트리에서 온 사람들이다. 적어도 제임스 정도는 나와주어야 구색이 맞는다고 할 수 있었다.

“우리는 관광을 하러 온 것이 아닙니다. 일 얘기부터 하도록 하죠.”

“하하. 성격이 급하시군요. 그렇다면 이쪽으로.”

제임스는 당황하지 않고 자연스레 그들을 이끌었다. 이미 어느정도는 예상하고 있었기에 그들을 맞이할 준비는 마친 상태였다. 준도 평소와 달리 어렵게 구한 정장을 맞추어 입고 있었다. 모든 물자가 부족한 곳이다 보니 옷가지를 구하는 것도 일이었다. 하루빨리 물류가 정상화 되어 생필품들의 유통이 이루어져야겠다는 생각을 하는 준이었다.

사실 준은 정장을 입는 것을 꺼려했다. 하지만 제임스의 강력한 반대에 뜻을 꺾을 수 밖에 없었다. 전장에서 갑옷이 필요하다면, 회의실에서는 정장이 반드시 필요하다는 것이다. 그것으로 협상테이블에서 기싸움이 시작된다는 논리였다. 준은 울며겨자먹기로 받아들여야 했다. 처음 입어보는 정장은 약간 어색했다. 하지만 지금은 한 기업의 대표로서 있는 것이기 때문에 최대한 익숙해져야했다.

강원삼 일행이 준비된 회의실에 들어서자, 넓은 탁자에서 가장 가운데에 앉아 있던 준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반갑습니다. 이쪽으로 오시지요.”

준이 정중하게 그들을 회의실 안쪽을 가리켰다. 준의 곁에는 배가 불러온 루나 대신 에피알게나스가 서 있었다. 어차피 그들이 오늘 온 목적중에서 그녀도 있을 것이기 때문에 미리 그녀를 준비시켰다. 그녀의 코디는 서은설에게 맡겼다. 그녀는 투덜거리면서도 에피알게나스에게 어울리는 옷을 준비해주었다.

보라색 민소매 린넨 블라우스와 뒤트임이 있는 검정 하이웨스트 펜슬스커트. 시원하게 드러난 어깨선은 하얗다 못해 투명해 보일 지경이었고, 살짝 드러난 작은 루비 귀걸이는 하얀 색 머리칼과 대비되어 시선을 잡아끌었다. 준은 감탄할 수밖에 없었고, 반응은 갤럭시 인더스트리 측의 사람들에게 더 극적으로 드러났다.

한참동안 멍하니 에피알게나스를 바라보다가, 문득 정신을 차린 강원삼이 헛기침을 하며 입을 열었다.

“흠. 흠. 반갑습니다. 강원삼이라고 합니다.”

“준 알스버그입니다. 이쪽은 나르 에피알게나스입니다. 서로 안면이 있으니 편하게 대하셔도 됩니다.”

자리에 앉은 갤럭시 측 사람들은 자꾸만 에피알게나스에게 돌아가려는 시선을 고정하기 위해 애써야 했다. 어떤 흑심이나 이런 것 때문이 아니라, 가만히 있으면 자연스럽게 시선이 그쪽으로 향하는 것이다. 무채색의 회의실 안에 홀로 빛나는 존재를 외면하기란 참 어려운 일이었다.

“그쪽이 보낸 제안서는 잘 살펴보았습니다. 제작무기에 대한 기술협정을 원하신다고요?”

“하나가 더 있을것입니다만.”

“아. 그건 생각 할 가치도 없어서 일단 제외했습니다.”

두 번째 제안은 다름아닌 에피알게나스였다. 준은 일부러 강경한 어조를 써가면서 까지 선을 그었다. 이 부분은 어떤 협상이 있을 수 없는 안건이었다. 초반부터 강하게 나오는 준의 모습에 강원삼의 표정이 미미하게 일그러졌다.

“흠. 유감이군요. 하지만 그것은 개인의 의사에 따른 문제 아닙니까? 아무리 대표라고는 하지만,스카웃까지 막을 수 있는 권한이 있는 건 아니실텐데요.”

“그럼 직접 물어보시죠.”

준은 어깨를 으쓱하며 입을 열었다. 강원삼이 침을 삼키며 에피알게나스에게 시선을 돌렸다. 그는 스마트 패널을 꺼내들고 그녀를 향해 내밀었다. 거기에는 숫자가 적혀있었는데, 얼핏 보아도 0이 엄청나게 박혀 있었다. 일반인은 평생동안 벌어도 채우지 못할 액수였다.

“저희가 약속드릴 수 있는 금액입니다. 연봉계약이고, 계약기간은 최소 3년입니다.”

“저는 누구 밑에서 일할 생각이 없습니다.”

에피알게나스는 태도는 항상 차가웠다. 감정을 드러내지 않는 것은 아니지만, 대부분의 것들이 그녀에게 별 감흥을 주지 못하는 듯 보였다. 가끔, 푸른 빛으로 빛나는 이스카야 행성을 볼때면 표정이 미미하게 변하는 듯 했지만, 그녀의 기분까지 알 수는 없었다.

“금액이 부족하십니까?”

강원삼은 예상했다는 듯 머뭇거리지 않고 스마트 패널을 조작했다. 단숨에 0이 하나 더붙었다. 하지만 그럼에도 그녀의 표정은 전혀 달라지지 않았다. 강원삼은 다소 초조해지는 것을 느꼈다. 아무리 그녀가 대단한 능력을 가지고 있어도, 100억이라는 액수는 절대 적은 금액이 아니었다. 이런 작은 회사에서 그녀에게 충분한 대우를 할 리가 없다. 때문에 이정도면 최소한 어떤 반응이라도 보여야 정상이었다.

“부족... 하십니까?”

“제가 말을 어렵게 했나 보군요. 확실히 통역이 제대로 되지 않는 것 같아요.”

에피알게나스가 준을 돌아보며 입을 열었다. 준은 쓴웃음을 지으며 고개를 저었다. 그녀는 아직 인간사회에 충분히 익숙하지 않았고, 이런 식의 대화가 어떤식으로 돌아가는지 이해하지 못하고 있었다.

“아니. 통역은 괜찮아. 단지 저쪽에서 네 말을 곡해하고 있을 뿐이야.”

“그런가요. 어렵군요.”

그녀는 고개를 끄덕이더니 강원삼 쪽으로 스마트 패널을 다시 밀었다. 강원삼의 미간이 꿈틀거렸다. 그녀의 행동이 말하는 바는 명확했다. 자신은 절대로 갤럭시 쪽으로 가지않겠다는 의지의 표현이었다.

“어째서 입니까? 이 회사가 우리보다 더 나은 조건을 제시할 수는 없을 거라고 생각합니다만.”

“애초에 뭔가 착각을 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만.”

준이 끼어들었다. 강원삼이 그를 힐긋 보았다. 끼어들지 말라는 뜻이었다. 준은 아랑곳 하지 않고 말을 이었다.

“저 녀석은 내 직원이 아닙니다. 그냥 손님이지요.”

“손님?”

“그녀는 자신의 의지로 이곳에 머무는 것입니다. 원한다면 언제든지 떠날 수 있지요.”

“그런...”

강원삼은 생각에 잠겼다. 애초에 그녀에 대한 조사는 완벽히 실패했다. 한 달이라는 시간에 걸쳐 이루어진 광범위한 조사에 대한 결론은, 결국 그녀에 대해서 아는 것이 아무것도 없다는 사실이었다. 그녀는 마치 하늘에서 뚝 떨어지기라도 한 것 같았다. 이 정도로 미인이라면, 그리고 뛰어난 힐러라면 유명해지지 않을 수가 없다. 설령 산속에 처박혀 있다가 나오더라도 나오는 과정에서 사람들의 눈에 띄기 마련이다. 그 사이 사진 한 두 장이 없을까? 그리고 그녀와 말 한마디 섞어본 사람이 없을까? 그리고 그녀를 낳아준 사람이 없을까?

없었다. 모든 것이 전산화 되어 데이터베이스에 저장되어 있는 이 시대에는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하지만 강원삼은 포기할 수 없었다. 그는 스마트 패널을 조작해서 다시한번 그녀에게로 밀었다. 거기에는 0이 하나가 더 붙어 있었다.

‘1000억이라... 거참 땡기는 군.’

준은 입맛을 다셨다. 일년에 1000억이면 준이 만져 본 적도 없는 엄청난 금액이다. 정말 눈딱감고 1년만 일하면 평생을 하고 싶은대로 하면서 살 수 있었다. 과연 힐러라는 존재가 그렇게 투자를 할 만한 가치가 있을까 싶을 정도의 투자였다.

물론 준은 에피알게나스의 능력을 안다. 그녀라면 1000억이 아니라 그 열 배를 준다고 할지라도 데리고 있으려고 할 것이다. 그녀를 원하는 대로 부릴 수 있다면 1년이라는 시간 안에 그 수십배의 가치를 만들어 낼 수 있을 것이다.

‘녀석들이 본 건 토르를 죽음직전에서 구해낸 정도일텐데. 겨우 그것만으로 이정도 금액을 배팅한다는 건가. 그 놈들은 대체 돈이 얼마나 많은거야?’

투자라는 건 항상 위험을 동반한다. 그들의 입장에서 에피알게나스는 아무것도 검증된 것이 없었다. 단 한 장면만 보고 1000억을 배팅하는 그들의 자금력에는 솔직히 혀를 내두를 수밖에 없었다.

“제가 있을 곳은 제가 결정합니다. 저는 어디에도 소속될 생각이 없습니다.”

방안 온도가 낮아진 듯한 착각이 느껴질 정도로 차가운 말투였다. 하지만 강원삼은 기분나빠하기보다는 아쉽다는 표정만을 지을 뿐이었다. 그는 고개를 저으며 스마트 패널을 챙겼다.

“이 건은 나중에 따로 이야기 하도록 하고, 본론으로 들어가도록 하지요.”

강원삼은 여지를 남겨두고는 첫 번째 안건을 꺼내들었다.

갤럭시 인더스트리에서 우려하는 점은 준의 제작무기가 자신들의 엑조틱 웨폰에 비해 그 화력이 월등하다는 것이다. 토르가 사용한 폭발해머의 위력이 강력하기는 하지만, D2전차의 포격에 비할 바는 아니었다. 게다가 근접도 아니고 원거리 공격이다. 갤럭시에서 내놓는 어떤 무기와도 비교를 불허하는 것이다.

“귀하께서 보유하고 있는 엑조틱 웨폰, 아. 우리는 공식적으로 엑조틱 에너지를 사용하는 무기를 엑조틱 웨폰이라고 합니다.”

준은 대답대신 고개를 끄덕였다. 그 사실은 이미 알고 있었다. 강원삼은 탁자위의 물을 들이키며 목을 축이고는 말을 이었다.

“그 전차형 엑조틱 웨폰의 제작기술을 공유하기를 원합니다. 그리고 다른 것이 있다면 그것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와 협력하여 더 나은 기술을 개발하고 공동으로 이득을 취할 수 있다면 서로 윈윈이라고 할 수 있겠지요.”

준은 강원삼이 전송한 문서를 읽으며 혀를 찼다.

“이건 그냥 내가 가지고 있는 기술을 전부 내놓으라는 소리로군. 이 조항은 뭡니까? 갤럭시 인더스트리와 협의되지 않은 물건이 시판될 경우 피해액의 세배를 보상한다? 이거 그냥 죽으라는 소리 아닙니까?”

“오해의 여지가 있군요. 계약을 어길 시 물리는 세 배의 금액은 상식적인 수준입니다. 그리고 우리 측은 협의를 통해서 이야기를 풀어나갈 의지가 있습니다. 초안에 너무 실망하셔도 곤란합니다.”

“내 제안은 이렇습니다.”

준은 자신들의 의견서를 강원삼에게 전송했다. 그것을 읽은 강원삼의 입에서 침음성이 흘러나왔다.

“흠... 이것 역시 동의하기 어렵군요.”

“대화를 통해서 협의해야 겠군요.”

준은 미소를 지었다. 곁에서 제임스가 조용히 웃었다. 서로의 입장차를 확인했으니, 이제 남은 것은 지루한 협상전 뿐이었다.

============================ 작품 후기 ============================

분량이 좀 적네요ㅠㅠ 졸려서 더 못쓰겠... 내일 봬용.

PS. 다쓰고 보니까 이번 편이 딱 한글파일로 딱 1000페이지가 되네요. 참 많이도 썼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