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프로젝트 델타-236화 (236/540)

0236 ----------------------------------------------

사냥

*

*

*

꽤애애애액!

새라고는 하지만 그 덩치 때문에 거대 괴물로 밖에 보이지 않는 가스토르니스. 녀석의 부리가 찢어질듯 벌어지며 굉음이 터져나왔다. 녀석의 주 공격 중 하나인 음파공격이었다.

“이 녀석 궁지에 몰린 모양인데?”

토르가 씨익 웃으며 입을 열었다. 음파공격은 전원이 상급의 헌터인 토르 일행에게 전혀 먹히지 않았고, 엉뚱한 준 일행에게 덮치고 있었다.

“전부 귀막아!”

“나도요?”

“넌 됐고!”

콰아아아!

음파가 준 일행을 덮치자 미처 반응하지 못한 쿠르베가 낮은 신음을 흘렸다. 다행히 체력의 손실은 미미했다. 머리칼을 흩날리며 편안한 얼굴로 서있던 에피알게나스가 입을 열었다.

“위험해.”

“음파공격은 이미 지나갔어.”

“아니. 저 아이들.”

“아이들?”

준은 고개를 돌려 상급헌터 무리를 보았다. 그들은 순조롭게 레이드를 진행하고 있었다. 일단 가스토르니스 레이드를 가장 까다롭게 만들었던 공중기동을 막은 상황이니 이대로 시간만 지나면 충분히 녀석을 쓰러뜨릴 수 있었다.

“문제없어 보이는데?”

“아니. 더 이상 버티지 못할거야.”

에피알게나스의 시선은 아이샤에게 향해 있었다. 준이 그 시선을 따라 아이샤를 바라보자, 아니나 다를까 그녀의 표정이 심상치 않았다.

아이샤가 들고 있던 지팡이의 떨림이 점점 커졌다. 그녀가 입을 열었다.

“토르!”

“그러니까 공간이동은 하지 말자고 했는데. 괜히 자존심 부려서는.”

토르는 아이샤를 쳐다보지도 않고 그녀의 상태를 눈치챘다. 안그래도 그의 몸을 짓누르고 있는 중력이 약해지고 있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던 것이다. 아무리 그녀가 뛰어난 마법사라고 해도 공간이동 후에 충분한 휴식없이 전투를 시작한 것은 실수라고 밖에 할 수 없었다.

“지금 그런 소리 할 때가 아니잖아!”

“후퇴할까? 저 녀석이 날아오르면 잡아둘 자신 없는데.”

“마지막으로 남은 마나를 사용해서 저녀석을 잡아둘게 그 사이에 빠지는 걸로 해.”

“나중에 사과하는 거다?”

“알았어!”

“그 쪽 일행한테도?”

“알았다고!”

아이샤는 신경질을 내며 지팡이를 더욱 높게 치켜들었다. 그러자 토르의 몸에 걸리는 무게가 더욱 커졌다.

까드득.

토르는 이를 갈며 그 중력에 버티며 마나를 끌어올렸다. 그러자 몸이 가벼워지며 움직임이 그럭저럭 수월해졌다. 그의 능력은 신체의 무게를 자유자재로 조절하는 것이었다. 그런식으로 아이샤의 중력마법에 버티면서 가스토르니스를 탱킹하고 있었던 것이다.

“모두 뒤로 빠... 응?”

후웅!

가스토르니스에게서 한 걸음 물러서며 큰 소리로 외치던 그는 갑자기 녀석이 크게 울부짖으며 허공으로 떠오르는 것을 보았다. 아이샤의 마나가 생각보다 빠르게 고갈된 모양이었다.

“아이고오... 계집애가 입만살아서는.”

하지만 아이샤는 대답이 없었다. 슬쩍 시선을 돌려 그녀를 보니 이미 바닥에 주저앉아 숨을 몰아쉬고 있었다. 마나를 쥐어짠 후유증이 찾아오고 있을 것이다.

“쯧.”

토르는 가볍게 혀를 차며 녀석의 동태를 살폈다. 어차피 녀석이 날아오른 이상 도망치는 것은 아무런 의미가 없었다. 가능하면 자신을 보길 바라며 그는 허리춤에 있던 단검을 날렸다.

티티팅!

하지만 겨우 취미수준을 벗어난 단검투척기술로는 녀석에게 생채기 하나 낼 수 없었다. 그래도 녀석의 시선을 끄는 것에는 성공했는지, 가스토르니스의 머리가 토르를 향했다.

꽤애애애액!

녀석이 다시한번 소리를 질렀다. 토르는 몸이 저릿저릿해오는 것을 느끼며 해머를 쥔 손에 힘을 꽉 쥐었다.

‘레이드는 실패다. 지금은 안전한 후퇴를 최우선목표로 삼는다.’

어차피 한 번에 성공할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이번 실패를 교훈삼아 다음번 레이드를 성공하면 되는 것이다.

‘일단 녀석의 혼을 좀 빼줘야 겠군.’

훙- 훙-

괴물새가 날개를 두어 번 펄럭이자 엄청난 바람이 그를 때렸다. 하지만 토르의 몸은 꼼짝도 하지 않았다. 그의 두 발은 바닥에 고정된 듯 딱 붙어 움직이지 않았고, 그런 토르를 보며 기분이 나빠진 듯 녀석이 울부짖더니 곧바로 급하강했다. 날카로운 부리로 토르를 공격할 셈이었던 것이다.

“와라. 이 닭대가리야!”

후웅!

토르는 쥐고있던 배틀해머를 크게 휘둘렀다. 동시에 그는 손잡이에 달려있는 스위치를 엄지로 꾹 눌렀다.

콰앙!

엄청난 폭음과 함께 가스토르니스의 부리와 토르의 해머가 부딪혔다. 그 순간 일어난 폭발은 반경 수십미터를 휩쓸며 사방을 초토화 시켰다.

‘저게 폭발의 원인이었군.’

준은 폭발에 말려들지 않기 위해 실드를 펼쳤다. 아무래도 저 녀석이 들고 다니는 해머에 무슨 장치가 되어있는 모양이었다.

‘헌데 순간적으로 엑조틱 에너지의 흐름이 느껴졌는데...?’

그러고 보면 아이샤의 지팡이에도 붉은색 결정체가 박혀 있었다. 어쩌면 그것이 단순한 장식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무엇보다도 방금의 폭발이 의심스러웠다. 그것은 흡사, 결정체 폭탄에서 느껴지는 폭발의 기운과 유사했다.

키에에에에!

가스토르니스가 시커멓게 그을린 모습을 하고 비명을 질렀다. 파란색 외도가 고통을 호소할 만큼 방금의 일격은 어마어마한 폭발력을 가지고 있었다. 사실 그보다 놀라운 것은, 그 폭발 속에서 토르가 무사하다는 것이었다.

그는 뜨거운 열기가 아직 남아있는 폭발의 중심부에서 큰 소리로 외쳤다. 그 외침은 마치 호랑이의 포효처럼 웅장하게 숲을 뒤흔들었다.

“내가 돌아가면 후라이드 치킨만 열 마리 먹을거다!”

“이 멍청앗! 쓸데없는 소리말고 빠져!”

뒤에서 아이샤가 외쳤다. 그녀를 제외한 나머지는 점점 거리를 벌리며 도주할 준비를 하고 있었다. 애초에 최악의 상황을 가정한 도주계획을 짜두었다. 이제 한 방 제대로 먹인 토르가 뒤로 빠지면서 아이샤를 데리고 튀면 끝이었다.

토르의 해머를 직격으로 맞은 이상 아무리 파란색 외도라 할지라도 잠시동안 정신을 차리지 못할 것이고, 그 시간이면 도주하기에는 충분했다.

“아니... 잠깐.”

뒤로 물러서려던 토르가 멈추었다. 가스토르니스가 충혈된 눈으로 그를 바라보고 있었던 것이다.

섬칫!

토르는 온몸에 소름이 돋는 것을 느꼈다. 녀석의 살기가 그의 온몸을 잠식하고 있었다.

“도망가라. 아이샤.”

“뭐?”

“이 자식. 대가리가 생각보다 단단한 것 같아.”

콰직!

그의 말이 끝남과 동시에 가스토르니스가 토르의 몸을 물었다. 탄성강화수트 덕에 단번에 몸이 잘리거나 하지는 않았지만 그 충격에 토르의 입에서 피가 쏟아져 나왔다. 그 양으로 보아 모르긴 몰라도 최소 갈비뼈는 완전히 박살이 났음이 틀림없었다.

“토르?”

아이샤가 멍한 얼굴로 그 모습을 지켜보았다.

후웅! 훙!

그 사이 가스토르니스가 날개를 펄럭이더니 몸을 훌쩍 띄웠다. 녀석이 토르를 입에 문채 허공으로 떠오른 것이다. 몸의 뼈가 산산조각이 난 듯 토르는 더 이상 움직이지 못했고, 그가 자랑하는 체중조절기술은 쓸 엄두조차 내지 못했다.

“토르!”

아이샤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더니 지팡이를 세웠다. 하지만 그녀의 마나는 고갈 상태. 자신이 무엇도 할 수 없다는 사실을 뒤늦게 깨달은 그녀의 두 팔이 부들부들 떨리고 있었다. 나머지 헌터들이 뒤늦게 달려와 공격을 쏟아부었지만, 애초에 그 정도 공격력으로 도망치는 파란색 외도를 떨어뜨리기에는 한없이 부족했다.

그들 모두 절망감을 느끼며 사라져가는 괴물새의 뒤꽁무니를 쳐다보고 있을 때쯤.

콰앙!

하고 엄청난 굉음과 함께 가스토르니스의 몸이 폭발하며 허공에서 휘청였다. 굉음은 그들의 뒤쪽에서 들려오고 있었다.

“뭐, 뭐야?”

아이샤가 고개를 돌렸다. 그쪽은 준 일행이 도착해 있던 곳이다. 애초에 그들이 와있다는 사실 정도는 알고 있었다. 위험하다고 경고는 해두었으니, 도망치던 말던 그것은 그쪽이 알아서 할 것이라고 생각하고 그다지 신경을 쓰고 있지 않았다.

하지만 지금의 폭발은 그녀가 생각하는 것 이상의 화력이었다. 심지어 토르의 해머보다도 훨씬 더 강력한 폭발이었다. 특수한 공법을 거쳐 완성된 토르의 해머보다도 더 강력한 무기가 있을 거라고는 생각한 적이 없던 그녀에게는 너무나도 놀라운 일이었다.

쿠르르르--

하지만 그것으로 끝이 아니었다. 숲을 헤치고 드러난 모습은 그녀를 경악시키기에 충분했다.

“태, 탱크?”

콰앙!

콰앙!

그리고 두 번의 굉음이 더 울려퍼졌다. 그들의 눈에 보이는 것 말고도 두 대의 전차가 더 있다는 뜻이었다.

콰지직. 콰직.

그리고 이내 나무를 뭉개며 모습을 드러내는 두 대의 전차. 현세대 전차와는 그 크기도 작고 모습도 많이 달랐지만, 저것이 가스토르니스의 몸에 명중탄을 박은 놈들이었고 그 위력도 엄청나다는 것은 분명한 사실이었다.

키에에에!

가스토르니스는 겨우 백여미터를 날아가다 활강탄을 맞고 추락하기 시작했다. 그러자 가장 앞에 있던 전차의 뚜껑이 열리며 준의 모습이 드러났다.

“뭐해? 구경났어? 가서 저 친구 구해야 할 거 아니야!”

“아!”

아이샤는 준의 말이 떨어짐과 동시에 재빨리 가스토르니스가 추락한 곳으로 달리기 시작했다. 그녀를 따라 나머지 다섯의 헌터도 뒤따랐다. 그들의 머릿속에는 온갖 의문이 떠올랐지만, 지금 급한 것은 토르의 생사였다.

‘좀 잘 싸우나 싶더니만. 쯧.’

준은 전차를 움직이며 빠르게 가스토르니스가 있는 곳으로 향했다. 현재 준 전용 전차와 D2전차 한 대, 그리고 한 대의 D1전차가 그쪽으로 맹렬히 달리고 있었다. 나머지 두 대를 운전하는 것은 쿠르베와 검둥이였다. 쿠르베는 전차병 출신이고 D1전차는 애초에 검둥이가 준에게서 받아낸 것이었다.

막스는 D2전차의 안에 있었고, 에피알게나스는 D1전차의 뒤에 서서 바람을 맞으며 가고 있었다.

‘탱크위에 선 미녀라니. 그림 되는 군.’

준은 그런 쓸데없는 생각을 하며 앞을 막는 나무들을 염동력과 마법을 이용해 박살내며 전진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나무들이 쓰러져 있고, 거기에서 꿈틀거리고 있는 가스토르니스의 거대한 몸이 보였다. 토르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는데, 아마 녀석이 추락하는 도중 어딘가에 떨어진 것이 아닌가 추측되었다.

하지만 멋대로 포격을 하다가 토르가 맞으면 그야말로 즉사였기 때문에 일단 포격을 멈추고 그의 흔적을 쫓았다. 이미 아이샤와 일행들이 주변을 수색하고 있었지만 아직 찾지 못한 모습이었다.

-검둥아. 녀석의 냄새 맡을 수 있어?

-잠시만요.

덜컹.

일인승 D1전차의 해치가 열리며 검둥이가 뛰어나왔다. 녀석은 재빨리 늑대형태로 변하고는 킁킁 거리며 대기의 냄새를 맡았다. 가스토르니스에게서 나는 지독한 노린내와 화약냄새 때문에 쉽사리 토르의 냄새를 찾기 어려울 테지만, 검둥이는 놀라운 후각으로 그 지독한 냄새 사이에서 토르의 행방을 찾아냈다.

“컹!”

검둥이는 날렵하게 전차의 포대를 타고 뛰어 가스토르니스의 그을린 날개 밑으로 파고 들었다. 금방이라도 녀석이 정신을 차리고 다시 움직일 것 같았지만, 검둥이는 두려움 없이 그 안에서 토르의 육신을 찾을 수 있었다.

꿈틀.

가스토르니스의 날개가 들리고, 그 안에서 늑대인간으로 변신한 검둥이가 토르를 어깨에 들쳐매고 빠져나왔다. 그리고 그 순간 가스토르니스가 눈을 번쩍 뜨더니 날개를 펄럭였다.

“큭.”

후우웅-

엄청난 바람이 일며, 검둥이가 바람에 밀려 튕겨나갔다. 준도 전차 안으로 몸을 숨겨야 할 만큼 엄청난 바람이었다.

준은 전차의 해치를 통해 녀석이 허공으로 떠오르는 것을 지켜보았다. 힘들게 떠오른 녀석은 밑을 쳐다보지도 않고 그대로 멀리 날아가버렸다. 아무래도 방금 전차의 포격이 신경쓰였던 모양이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