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235 ----------------------------------------------
사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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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가 놀란 것은 초록색의 외도를 소환수로 부린 다는 사실 때문이었다. 아니, 애초에 외도를 소환수를 부린다는 것 자체가 기이한 일이다. 외도의 정신을 조작해 일시적이나마 녀석들을 조종하는 경우가 없는 것은 아니었다. 상급의 정신계통 능력자들은 종종 그런식으로 외도를 이용하기도 한다고 들었다. 하지만 저렇게 외도를 소환 하는 것은 확실히 처음보는 것이었다. 그렇게 생각해보면 처음의 늑대인간도 보통의 소환수가 아니라 외도일 것이다.
“당신. 평범한 소환사는 아니군요.”
“내가 소환사라고 말한 적은 없는 것 같은데.”
“그럼 대체 뭐죠? 어떻게 외도를 소환할 수 있는 거에요?”
“그 질문에 대한 대답을 할 필요는 없을 것 같군. 싸움 구경이나 하자고.”
카앙! 캉!
“젠장!”
슬랩스는 욕설을 뱉었다. 강철도 뚫는 그의 단검이 대흉근의 몸체를 뚫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물론 공격은 제대로 명중하고 있었고, 착실히 상처는 입히고 있었다. 하지만 몸 전체가 합금덩어리인 대흉근의 육체에 그런 상처는 별로 큰 데미지가 아니었다. 결국 강력한 일격을 통해 대흉근의 신체 중 일부를 파손해 움직임을 둔화시킨 다음 핵을 찾아 부술 수밖에 없었다.
‘물론 대흉근에게는 핵 같은 건 없지만.’
펠로우쉽 시스템에 귀속되어 있는 대흉근은 다른 골렘과 달리 체력시스템의 보정을 받는다. 외도에게는 장점과 단점이 공존하는 시스템인데. 다른 외도와 달리 항력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았고, 체력이 다하면 설령 사지가 멀쩡하더라도 힘을 잃고 죽게 된다.
하지만 대신 체력이 높을 때는 그 단점이 장점이 된다.
-적의 공격으로 인해 대흉근의 체력이 360감소합니다.
-적의 공격으로 인해 대흉근의 체력이 620감소합니다.
지금처럼 슬랩스의 공격이 명중할 때마다 백단위로 체력이 감소한다면 32만이라는 체력을 가진 대흉근을 쓰러뜨리기 위해서는 몇시간을 두들겨 대고 있어야 한다는 계산이 나온다. 물론 그 전에 슬랩스가 지쳐나가 떨어지고 말 것이다.
“큰 소리 친 것 만큼 실력이 뛰어난 것 같지는 않은데?”
“치잇!”
쿠웅!
슬랩스는 대흉근이 휘두르는 주먹을 피해 백덤블링을 했다. 순식간에 수미터로 거리를 벌린 그는 등에서 활을 꺼내 한꺼번에 세 개의 화살을 날렸다. 처음 검둥이를 공격했던 바로 그 연사공격이었다.
콰콰콱!
무슨 재질로 만들어졌는지, 그 화살은 거의 꼬리만 남기고 대흉근의 몸에 파고들었다.
-적의 공격으로 인해 대흉근의 체력이 1510감소합니다.
-적의 공격으로 인해 대흉근의 체력이 1560감소합니다.
-적의 공격으로 인해 대흉근의 체력이 1120감소합니다.
하지만 그래봐야 기껏 천을 조금넘는 데미지가 들어올 뿐이었다. 확실히 아이샤의 말대로, 파란색 외도라면 저정도의 화살쯤은 수백발을 맞아도 멀쩡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당장 대흉근 마저도 어쩔 수 없는 공격력이었던 것이다.
슬랩스는 빠르게 이동하면서 계속해서 화살을 날렸다. 대흉근이 꽤 방어력이 튼튼하다고 해도 계속해서 저 화살 공격을 맞으면 언젠가는 쓰러질 것이다. 하지만 화살은 한계가 있었고, 곧 그의 화살통에 남은 화살은 단 하나였다.
“이건 쓰지 않으려고 했는데...”
슬랩스는 이를 뿌득 갈고는 마지막 남은 화살을 걸었다. 그의 눈이 순간적으로 붉게 변하더니, 엄청난 기운이 그 화살에 모여들었다.
“마탄의 사수! 그것까지!”
지켜보던 아이샤가 큰 소리로 외쳤다. 준은 흥미로운 표정으로 슬랩스를 보였다. 그의 주변으로 마나가 회오리치며 화살촉으로 모여들고 있었다. 확실히 엄청난 파괴력을 보일 것 같은 기술이었다. 전신의 마나를 일점에 모아 적에게 명중시킨다는 것은 검같은 무기보다는 활이나 석궁 같은 투사체형 무기에 더 잘 어울리는 공격법이었다.
쿵쿵!
그 기세를 느꼈는지 대흉근이 가슴을 치고는 슬랩스를 향해 달려들었다. 단 두어걸음만에 슬랩스의 지근거리까지 다가간 대흉근이 두 손을 들어 땅을 내리찍었다.
그리고 그 순간 슬랩스가 한껏 당긴 활시위를 놓았다. 붉은마나를 실은 화살이 회오리치며 땅을 내려치는 대흉근을 향해 쏘아졌다.
콰아아앙!
엄청난 소리와 함께 땅이 뒤집어지며 자욱한 흙먼지를 날렸다. 순간적으로 슬랩스의 모습이 완전히 가려지고 대흉근의 모습도 반쯤은 보이지 않았다.
“으음... 안 좋은데...”
준이 입을 열었다.
“벌써 패배를 시인하는 건가요?”
“아니. 그게 아니라...”
준은 고개를 저었다. 이정도의 소음과 진동이 일어나게 되면 가스토르니스가 눈치챌 수도 있겠다고 생각한 때문이었다. 물론 8킬로미터라는 거리는 충분히 멀다. 하지만 조심해서 나쁠 건 없었다.
후우우-
바람과 함께 먼지가 쓸려나가자 장내의 모습이 드러났다. 대흉근은 두 주먹을 땅에 내려찍은 채 정지해 있었고, 슬랩스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어, 어디로?”
아이샤가 당황하며 주변을 둘러보았다. 준이 손가락을 들어 대흉근의 반대쪽을 가리켰다. 지금 위치로부터 20여미터나 떨어져 있는 곳이었다.
“아아?”
“크윽.”
슬랩스는 엉망이 된 몰골로 나무등걸에 몸을 기대고 있었다. 그 앞쪽에 몇 개의 나무가 쓰러져 있는 것으로 봐선 대흉근의 내려치기에 튕겨나간 것으로 보였다.
“이럴수가...”
“애초에 상성이 안좋잖아. 궁수와 골렘이라니. 생각이 있으면 저 녀석이 나왔어야지.”
준은 한쪽에 앉아서 자꾸만 준을 힐긋거리는 토르를 가리켰다. 혹시라도 다시 시미가 나타날까 싶어 자꾸만 쳐다보는 모양이었다.
“나는 기권.”
토르가 두손을 들며 입을 열었다. 준이 고개를 돌려 아이샤를 쳐다보자, 그녀는 아랫입술을 깨물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좋아요. 슬랩스를 이길 정도라면 구경정도는 할 수 있도록 해드리죠.”
“영광이로군.”
준은 두 손을 가볍게 들어올리며 과장된 제스춰를 취했다. 명백한 조롱이었지만 아이샤는 별다른 말을 하지 않았다. 어차피 먼저 도발한 것은 그녀 쪽이었으니까. 패배자는 말이 없는 법이다.
그녀는 돌아서며, 마지막으로 입을 열었다.
“따라오시는 건 상관하지 않겠어요. 할 수 있으시다면 말이에요.”
“무슨...”
“아이샤. 그거 하는거야? 난 싫은데. 그거 울렁거린다고.”
“시끄러워. 나라고 하고싶은 줄 알아? 그거 쓰고나면 싸울 때 마나 모자란단 말이야.”
그녀는 그렇게 말하고는 지팡이를 높이 들었다.
“대지를 딛고 나아가는 자는 그에게 도달하리라. 물을 밟고 가는 자는 그에게 도달하리라. 불을 뚫고 가는 자는 그에게 도달하리라. 대기를 타고 나아가는 자는 그에게 도달하리라.”
그녀의 주위로 무시무시한 마나가 몰려들었다. 준은 가볍게 인상을 썼다. 그녀가 하려는 것이 무엇인지 대충 감이 왔기 때문이었다.
“공간이동인가...”
준은 한숨을 쉬었다. 그렇다고 지금 저들을 막는 것은 정말로 싸우자는 소리밖에 되지 않았다. 공간이동 중에 건드리는 것은 심각한 위험을 유발하기 때문이었다.
“준? 쟤네들 도망가는데요?”
시미가 고개를 내밀었다.
“냅둬. 어쩔 수 없지.”
“시미쨩~ 나중에 만나~”
토르가 이쪽으로 향해 두 손을 흔들었다. 시미가 준의 주머니 속으로 다시 들어가자, 그에 맞춘 듯 저들의 모습도 사라졌다.
“거참. 도깨비 같은 놈들이구만. 공간이동이라니. 처음봤어.”
막스가 신기하다는 듯 입을 열었다. 상아탑 출신이라고는 해도 공간이동을 아무나 사용할 수 있는 것은 아니었다.
“상급의 헌터들이 모인 레이드 팀이라. 구경은 제대로 해줘야겠지.”
준은 에피알게나스를 바라보았다. 다른 이들은 전부 풍운보를 사용할 수 있지만 그녀는 불가능했다.
“혹시 빨리 움직일 수 있어?”
“아니요.”
“어쩔 수 없지. 검둥아. 네가 태워라.”
준의 명령에 검둥이의 몸이 커지더니 사람 하나가 충분히 탈 수 있을 정도가 되었다. 평소 시미가 자주 타고 다녔기에 사람을 태우고 다니는 것도 익숙했다.
준 일행이 가스토르니스가 있는 곳 까지 도착한 것은 채 20여분이 되지 않아서였다. 전력으로 달려서 얻은 시간이었다. 중간중간 달려드는 외도가 없는 것은 아니었지만, 그런 녀석들은 대흉근으로 깔아 뭉개면서 오니 시간도 많이 단축 되었다.
콰앙!
“이크! 벌써 시작인가?”
현장에 도착하기 직전, 엄청난 굉음이 울려퍼졌다. 근처 어딘가에 폭탄이라도 떨어진 듯한 굉음이었다.
푸르르륵!
그 폭발과 함께 인근 숲의 새들이 한 번에 허공으로 날아올랐다. 준은 속도를 높여 전투가 벌어지고 있는 현장으로 뛰어들었다.
“헛?”
그런 준을 반기는 것은 탄환처럼 날아오는 가스토르니스의 깃털이었다. 준은 뒤쪽에서 달려오고 있는 일행을 의식하며 두 손을 앞으로 뻗었다.
쩌엉-
대기가 얼어붙는 듯한 소음과 함께, 준의 앞으로 안티에너지필드가 펼쳐졌다.
콰콰콰콱!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깃털들은 절반 가까이 장막을 뚫고 들어왔다. 다행인 것은 항력장을 뚫고 들어온 깃털들이 힘을 잃어 그다지 위협적이지는 않다는 사실이었다.
“어떻게 됐어?”
막스가 황급히 준의 뒤에 바짝 붙으며 입을 열었다. 위험할때는 준의 곁에 있는 것이 가장 안전하다는 사실을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는 그였다.
“시작한지 얼마 안되는 것 같아. 그나저나 저 녀석들 정말 잘 싸우는데?”
준은 약간 감탄하며 상황을 지켜보고 있었다.
현재 상황은 가스토르니스를 토르가 붙잡고, 나머지 여섯명이 원거리에서 공격을 하는 형태였다. 저정도로 강력한 외도를 혼자서 탱킹한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한 일이었음에도, 토르는 두려움 없이 적을 맞서고 있었다. 강함 여부를 떠나, 준은 파란색 외도 앞에 홀로 설 수 있다는 것에서 감탄을 할 수밖에 없었다.
‘우로보로스와 상대할 때는 그냥 쳐다보는 것만으로도 다리가 떨렸는데.’
물론 지금이라면 그때와는 다를거라는 확신은 있었다. 그럼에도 토르가 대단하다는 의견은 바뀌지 않았다.
‘보통 파란색 외도는 상급헌터가 무더기로 와서 싸워야 잡을까 말까라는데... 헌데 저 놈을 어떻게 잡아두고 있는 거지?’
준은 가스토르니스가 좀처럼 허공으로 떠오르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일단 녀석은 비행행 외도다, 아무리 강력하다고는 해도 지상에서는 그 힘이 반감될 수밖에 없었다.
“몸이 엄청 무거워 보여.”
에피알게나스가 입을 열었다. 준도 동의했다. 가스토르니스는 계속해서 날개를 펄럭이며 허공으로 떠오르려고 하고 있었다. 하지만 좀처럼 몸이 떠오르지 않았다. 보통이라면 벌써 하늘로 날아올랐어야 하는 상황인데도 그러는 것에는 분명히 이유가 있을 것이다.
‘원래라면 폭탄을 투하한 후에 움직이는 것이 정석이라고 했는데... 아까의 그 폭발음이 그럼 폭탄을 터뜨린 건가?’
하지만 겨우 7명으로 움직이는 팀이 그정도의 폭발물을 가지고 있을 리가 없다. 애초에 잘못터뜨렸다간 자신들 마저도 모두 폭발에 휩쓸리는 것이다.
전황을 살피던 준은 가장 뒤쪽에서 지팡이를 들고 꼼짝하지 않는 아이샤를 발견했다. 다른 이들이 원거리에서 딜을 집중하고 있는 상황에서도 그녀는 무언가에 집중을 하고 있는 듯 공격에 참여하지 않고 있었다.
“중력마법이로군.”
준이 입을 열었다. 마법의 정확한 정체는 파악할 수 없었지만, 적어도 그녀가 하고 있는 것이 가스토르니스의 주변 중력을 극단적으로 높인 것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외도의 주변에서 일어나는 현상들이 다른 공간과는 상이했던 것이다.
“중력마법?”
막스가 되묻자 준이 간단히 설명했다.
“그래. 작은 파편이나 흙더미들이 보통 보다 몇배는 빠른 속도로 떨어지고 있어. 적어도 3G이상의 중력이 가해지고 있는 것 같아.”
“잠깐. 그러면 저 녀석은?”
막스가 토르를 가리켰다. 준은 그제서야 그 역시 중력마법의 영향권 아래에 있다는 사실을 깨닫고는 다시한번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저 녀석... 괴물이로군.”
준은 자신이 말해놓고도 깜짝 놀랐다. 지금까지 수없이 듣기만 했던 말이 자신의 입에서 흘러나온 것이다.
============================ 작품 후기 ============================
이제 자러갑니다. 좋은 하루 되세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