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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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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저런 실험을 해 본 결과, 구현화 기능은 간접체험의 몰입감을 극단적으로 끌어올린 기술이라고 볼 수 있었다. 전장에서 총탄을 맞으면 실제로 통증이 느껴지고 체력이 떨어졌지만, 구현화가 취소되면 곧바로 회복되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던 것이다. 즉, 어디까지나 구현화의 기능은 환상에 불과했다. 게임에서 죽는다고 실제로 죽는 것은 아니었다. 그래도 그것이 의미가 없는 것은 아니었다. 결과는 환상이라 하더라도 그 과정은 실제와 똑같았기 때문에 얼마든지 사용할 수 있는 여지가 있었던 것이다.
“그나저나 형님... 이거 좀 위험한데요.”
검둥이가 입을 열었다. 준도 고개를 끄덕였다. 지금 준은 델타폰에 19금 게임을 넣을까 말까로 고민하고 있었다.
“이건 너무 파급력이 큽니다. 물론 지금도 비슷한 게 없는 건 아니지만...”
현대의 체감형 게임들은 당연하게도 성인컨텐츠시장에도 뻗어 있었다. 뇌파를 이용해 오감을 만족시킨다던가 하는 기술은 아직 개발되지 않아, HMD와 진동기구를 이용한 조악한 수준에서 머물러 있긴 하지만, 마음먹고 투자를 감행하면 거의 진짜와 비슷할 정도까지 현실감을 끌어올릴 수 있었다.
하지만 역시 진짜와는 다르다. 하지만 이 구현화 기술은 진짜라고 착각을 하게 만드는 것이 아니라, 그냥 진짜였다. 물론 구현화가 끝나면 모든게 사라지기는 하지만, 그렇다고 자신이 경험했던 일들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때문에 이 19금게임을 이용해 구현화를 시도하면, 여기에 환장하고 달려드는 이들이 많을 것이다. 그리고 그만큼 경험치는 엄청난 속도로 소모될 것이다. 밤마다 외로움에 몸이 달아 낙타에까지 손대는 것이 알카트뢰즈의 수형자들이다. 준이 감히 예상컨데, 거의 대부분의 가진 결정체나 경험치를 전부 여기다가 쏟아부을 것이 분명했다.
그리고 그렇게 구현화에 들어가는 경험치는 그냥 허공으로 사라지는 것이다. 델타폰이나 여타 제작품처럼 한번사고 그만두는 것이 아니라 지속적으로 경험치를 빨아들인다는 점에서 아무래도 신경이 쓰일 수밖에 없었다. 물론 적정 마진을 붙여 다소 많은 EP를 지급해야 하도록 해서 무분별한 사용을 줄이도록 할 수도 있었다.
일단은 그 성능을 시험해 볼 필요가 있었다. 만약 돈이 될 것 같으면 그 정도 소모를 감내 하고도 사용할 만한 가치가 있을 것이다.
“음... 너 한번 해볼래?”
“형님... 사실 전 기쁨을 잃어버린 몸이 되고 말았습니다.”
“어...? 정말?”
준은 깜짝 놀랐다. 인간화 할 수 있는 상태였기 때문에 설마 그게 불가능하다는 생각은 하지 못했던 것이다.
“흠... 그것이... 엄밀히 말하면 사람을 상대로는 잘 안된다고나 할까...”
“사람을 상대로 안된다는 게 뭔소리냐. 설마 내가 생각하는 그건 아니겠지?”
“아마 그게 맞을 겁니다.”
검둥이는 고개를 끄덕이며 입을 열었다. 실험과정에서 늑대와 유전자풀이 뒤섞이며 그쪽으로도 뭔가 교란 된 모양이었다. 그러니까, 녀석은 개과의 동물이 아니면 잘 안선다는 뜻이었다.
인간과 늑대의 중간 어디쯤에 위치한 녀석이지만, 생식만은 또 그쪽으로 치우쳐져 있는 것이다.
“끙... 힘내라. 언젠가는 좋아지겠지.”
“사실 뭐 그렇게 힘들지는 않습니다. 어떻게 보면 꽤나 편리하기도 하고.”
“편리하다니. 무슨 소리야?”
“훗, 아무리 형님이라도 그건 개인사라 말씀드리기 좀 뭐하네요. 정 궁금하시다면 말씀드릴 수도 있습니다만.”
“...아니. 됐다. 별로 안궁금해.”
준은 황급히 고개를 저었다. 개과의 동물에게만 흥분을 느낀다면, 뭐 아무래도 그런 녀석들을 찾아 돌아다니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알카트뢰즈에는, 분명히 늑대를 닮은 외도들도 있었을 테니까.
‘아. 모르겠다. 더 상상하지 말자.’
준은 머리를 흔들어 자꾸면 상상되는 이미지를 떨쳐내려 애썼다.
“그럼 일단 누구한테 먼저 시험해볼까?”
“아무래도 믿을 만한 사람에게 먼저 물어보는게 낫지 않겠습니까? 저는 막스님을 추천합니다.”
“흠. 할려고 할까?”
“내 인생 최고의 경험이었다.”
막스는 한껏 상기된 얼굴로 엄지손가락으로 치켜세웠다. 그는 태어나서 쌓은 모든 불만을 일거에 털어낸 사람처럼 후련한 얼굴을 하고 있었다.
“음... 그렇게 말하는 걸 보니 확실히 괜찮긴 한데...”
“뭐가 걱정되는거야? 이거 판매만 제대로 되면 순식간에 엄청난 경험치를 벌어들이게 될텐데.”
“이제와서 이런 말하긴 좀 그렇지만. 너무 이쪽에 경험치를 쏟아붓다가 정작 필요한 물건을 못사게 될까봐 걱정되는 거지. 하루종일 이거에만 매달리는 녀석들도 나올 수 있고.”
“이 자식 무슨 노인네 같은 소리를 하는 거냐? 다들 성인이라고. 그 정도 사리판단은 본인에게 맡겨야지. 네가 무슨 윤리위원장이라도 되냐?”
“하긴 그렇네. 내가 무슨 권리로 그들의 행동을 멋대로 제한하겠어.”
“물론 자제를 못하는 녀석들도 나오긴 하겠지. 그래도 네 덕분에 결정체 수익도 많이 늘어나 있는 상태니까 크게 걱정할 필요는 없을거야.”
“좋아. 네 말대로 이대로 스토어에 올리도록 할게.”
“좋은 선택이다. 그럼 난 이만 돌아가보록 하지.”
막스는 그렇게 말하며 빠른 걸음으로 움직였다. 준이 그런 막스를 불러세웠다.
“그건 내놓고 가야지.”
“아? 이, 이거? 하하하. 내가 깜빡하고 그냥 갈뻔했네.”
막스는 어색한 웃음을 흘리며 쥐고 있던 델타폰을 준에게 넘겼다. 준은 고개를 저으며 다시 손을 내밀었다.
“이건 네 거잖아. 내걸 줘야지.”
“아. 헷갈렸나 보네. 잠깐만...”
“어차피 금방 올릴거니까 네걸로 해도 돼. 그러니까 서두를 필요 없어. 그렇게 팔팔한 나이는 아니잖아.”
“끙... 덕분에 아주 중학색처럼 팔팔하다만.”
막스는 볼을 씰룩이며 준의 델타폰을 건넸다. 준은 웃음을 흘렸다.
구현화 기술은 그야말로 엄청난 반응을 불러일으켰다. 준이 공식적으로 구현화 기술의 업데이트를 공지하자 델타포럼은 그야말로 아수라장이나 다름없을 정도로 난리가 난 상황이었다. 베스트 게시판 전체가 구현화 기술에 대한 이야기와 후기로 가득 메워진 것이다.
덩달아 준의 경험치도 쭉쭉 늘어났다. 아무래도 성인용 컨텐츠의 소모 높을 것으로 생각해서 비교적 높은 가격으로 잡았다. 가능하면 적당히 사용하라는 의미였다. 하지만 그럼에도 사람들은 가진 경험치를 전부 소모할 기세로 구현화 기능을 써대고 있었다.
하지만 아무도 준에게 비싸게 받아먹는다고 뭐라고 하는 사람이 없었다.
-주인장. 찬양함다. 신이여. 신.
-교주 할 생각없음? 내가 바로 신도로 가입하고 십일조도 꼬박꼬박 낼게여. 앞으로 이런거만 계속 내주세요.
-이 부르조아놈들. 나는 아직 경험치 모자라서 해볼 생각도 못하고 있는데.
-일해라. 노예야. 우리는 주인장의 일개미다. 열심히 일해서 경험치를 갖다 바치는 하찮은 미물이라고!
-시바. 주인장 진짜 발바닥이라도 핥고 싶다.
반응은 하나같이 찬양일색이었다. 기존에는 아무리 유용한 물건이라고 하더라도 불만이 있는 사람 하나쯤은 있었는데, 돈없다고 투덜거리는 사람을 제외하고는 아무도 불만을 가지는 사람이 없었다.
‘내가 너무 이 녀석들의 어두운 욕망을 우습게 봤구나.’
어느정도 예상을 하기는 했지만 그 반응은 그야말로 상상을 초월하는 것이었다. 좋다고 하니 어쨌든 나름 뿌듯한 생각도 들었다. 정말 낙이라고는 요만큼도 없는 그 삭막한 감옥생활에 일말의 생기를 부여해 준 것 같은 느낌도 들었다.
‘그래. 니들이 범죄자라고는 하지만 그래도 사람답게는 살아야지.’
물론 그들 중 상당수는 큰 잘못을 범한 이들이다. 중범죄를 저지른 이들도 적지 않았다. 그들의 죄를 생각하면 이런 호사를 누리게 해주는 것이 과연 옳은 것인가 하는 고민도 있었다. 하지만 준 역시 그 감옥에 수감되어 있던 범죄자 출신이었고, 아무리 준이 여러 가지 편의 시설을 제공한다고 해도 그들이 처한 혹독한 환경이 나아지는 것은 아니었다. 감옥의 존재가 복수가 아니라 수형자의 교화라는 측면에서 생각해보면 어느정도 이런 즐길거리 정도는 만들어 주는 것도 나쁘지 않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뭐, 나도 덕분에 경험치 좀 버는 거고.”
준은 단순하게 생각하기로 했다. 그들은 죗값을 치루기 위해 그곳에서 중노동을 하고 있고, 준은 거기에서 약간의 이득을 취하는 것 뿐이라고.
구현화 기능은 생각지도 못한 문제를 대거 양산했다. 준은 식당에 앉아 델타폰을 이용해 음식 몇가지를 구입했다. 평소라면 마스터가 만들어 준 요리를 먹고 있어야 했지만, 오늘은 임시휴업이었다.
“대놓고 아주 임시휴업이라고 써붙여놨구만.”
“마스터도 쉴때가 있어야죠.”
루나가 풋 하고 웃으며 입을 열었다. 함선 전체를 휩쓸고있는 구현화의 열풍을 그녀라고 모르지 않았다. 여자가 절대적으로 부족한 것은 알카트뢰즈나 알바트로스나 마찬가지다. 그렇다고 준과 관계가 있는 이들에게 어설프게 접근했다가는 기껏 잡은 기회가 모두 사라짐을 알고 있었기 때문에 감히 접근조차 할 수 없었다.
에피알게나스의 경우는 더했다. 그냥 접근할 수 없었다. 그녀의 주위로 눈에 보이지 않는 어마어마한 접근금지오라가 펼쳐져 있기 때문이었다.
“쟤는 왜 저렇게 혼자 먹는대.”
서은설이 툴툴 거리며 입을 열었다. 그녀를 멍하니 쳐다보고 있던 홍창만이 혼잣말처럼 입을 열었다.
“감히 인간의 더러운 몸으로 천사에게 다가갈 수는 없는 거겠지.”
“그렇게 좋으면 가서 말이라도 걸어보지 그래?”
“어휴. 갔다가 거절이라도 당하면 어쩌려고.”
“쯧. 사내놈이 그렇게 겁이 많아서야.”
“그런 너도 준에게... 읍읍.”
서은설이 재빨리 홍창만의 입을 틀어막았지만 이미 들을만한 사람은 다 들은 상태였다. 서은설이 식은땀을 흘리며 어색한 웃음을 터뜨렸다.
“하하하. 다들 식사하세요. 아침부터 이상한 녀석이 하는 이상한 말 신경쓰지 말구요.”
“같이 먹자고 해볼까요?”
루나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준이 뭐라고 하기도 전에 벌써 에피알게나스에게 다가간 루나가 미소를 지으며 입을 열었다. 그녀는 이곳의 음식이 익숙하지 않은지 깨작대며 조금씩 음식을 입에 밀어넣고 있었다.
때때로 가볍게 인상을 쓰기도 했는데, 그때마다 홍창만의 입에서 안타까운 듯한 한숨이 흘러나왔다.
“혼자 드시지 말고 같이 먹어요.”
“나 말이야?”
“네.”
“좋아.”
에피알게나스는 자리에서 일어나 준 일행이 있는 테이블로 가서 앉았다. 그 순간 침묵이 맴돌았는데, 다름이 아니라 그녀가 방금 루나가 일어난 자리에 앉았기 때문이었다. 다름아닌 준의 옆자리였다.
“야. 너. 왜 거기 앉는거야?”
서은설이 참지못하고 입을 열었다. 에피알게나스가 고개를 돌려 그녀를 바라보자 순간 서은설이 헉, 하고 숨을 들이켰다.
‘뭐, 뭐가 저렇게 예뻐?’
원래 알고 있었다. 알고 있었는데, 투명한 황금색 눈동자를 바라보니 자신도 모르게 눈앞이 아찔해질 정도였다.
“빈 자리라서 앉았는데, 여기에 앉으면 안되는 모양이지?”
“아. 괜찮아요. 거기에 앉아도.”
“하, 하지만...”
서은설이 루나를 향해 입을 열었다. 뭔가 이건 아니라는 듯한 느낌이었지만 루나가 가볍게 고개를 저었다.
“어차피 함께 오래 있을 사인데 자리싸움을 할 필요는 없잖아요. 아침식사일 뿐이니 굳이 의미부여를 할 필요는 없어요.”
“그렇다면 할 말없지만...”
서은설이 고개를 푹 숙였다. 에피알게나스가 합석 한 이후 급격히 말수가 줄어든 테이블에서는 달그락 거리는 식기 소리만이 존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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