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227 ----------------------------------------------
사냥
*
*
*
=델타스토어에 올릴 새 제품 구상중. 아이디어 있으면 댓글 좀.
준이 글을 올리자마자 엄청난 속도로 댓글이 달리기 시작했다.
-여자친구.
-여자.
-여자사람.
-섹스.
“끙... 이놈들은 생각하는게 그런 것 밖에 없나.”
순식간에 수십개의 댓글이 달렸지만 하나같이 여자에 관련된 이야기였다. 개중에는 차마 낯뜨거워서 입으로 말할 수 없는 단어를 써갈기는 놈들도 있었다. 준은 그런 놈들에게 적당히 벌점을 먹이고는 다시 글을 올렸다.
=쓸데없는 소리하는 놈들 죄다 벌점.
-갑질 개쩌네. 니가 뭐라도 되는 줄 아냐?
-윗 놈 배짱보소. 주인장 성질 더러운 거 모르는가?
-ㅂㅂ. 저놈 다시는 댓글 못쓸 듯. 주인장 진짜 빡치면 델타폰도 정지먹이는데.
-헉... 나 얼마전에 샀는데. 이거 진짜 정지 먹는 거임?
-수라드 놈이지? 눈팅 3개월 모르냐? 입 잘못놀리면 훅 간다. 조심해라. 내가 당해봐서 아는데 주인장 진짜 성질 개같음.
-맞음. 새로 사도 소용없음. 어차피 지문인식이라 자기 계정 날아간다고 보면 됨. 그동안 산 야동 다 날아감.
가만히 댓글을 보던 준의 미간이 좁혀졌다.
“이것들이... 한동안 조용히 있었더니.”
=아닌척 하면서 욕하는 놈들도 다 벌점 먹인다. 쓸데없는 소리말고 아이디어나 내. 좋은 아이디어면 지분 좀 떼줄게.
-헤헤. 전 욕한적 없습니다. 그건 그렇고 차량같은 건 올릴 생각 없으십니까?
=차는 못올림. 스쿠터도 힘듬.
준이 타고 다니는 비너스 스쿠터가 경험치 200짜리였다. 엔진이 달려있는 물건들은 대체로 경험치가 많이 드는 편이었다.
-자전거도 알카트뢰즈에서는 쓸만합니다. 산악용으로 나온 건 언덕길에서도 타고 다닐 수 있습죠.
-자전거 좋네. 낙타 타고다니는 것도 개같았는데.
-대박. 거기선 낙타타고 다니나요? 거기 무슨 중세시대임?
-닥쳐. 니가 여기와봐. 낙타라도 있으면 감지덕지다. 우유도 나온다고.
-낙타랑 해본사람 손.
-시바... 야. 나 솔직히 해봄.
-변태놈들아 그만해. 근데 나도 생각은 해봄.
-나만 그런 생각 한건 아니구나.
-와. 거기 완전 헬이네. 난 나쁜짓 하지 말아야지. 근데 누가 후기좀. 솔직히 궁금하네.
-그냥 손으로 해라. 자괴감 개쩜. 인간이 할 짓이 아니다.
-그걸 해봐야 아냐 병신아.
-ㅋㅋㅋㅋ
-ㅋㅋㅋㅋ
가만히 댓글창을 보던 준은 깊은 한숨을 쉬었다. 자신도 얼마전까지 저 안에 있었다지만 알카트뢰즈에 있는 인간들은 확실히 제정신이 아니었다.
‘아무리 그래도 낙타라니...’
가끔 낙타를 타고 다니는 사람들이 있었는데 그 녀석들이 그짓을 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자 갑자기 기분이 이상해졌다.
동물학대로 죄다 처넣고 싶었지만, 애초에 감옥에 있는 녀석들이다. 준은 고개를 저으며 다시 댓글을 달았다.
=자전거는 상점에서 팔지 않음? 거기가 훨씬 더 쌀텐데.
-안싼데요. 엄청 비쌈.
-10크리스탈 짜리임.
-제정신으로 살만한 물건은 아님.
-왜 낙타타고 다니겠음. 주인장 생각 좀.
=오케이. 접수. 다른 건?
-주인장. 스쿠터 말인데. 분해해서 팔면 되지 않음?
-오. 이색기 기발한데?
-추천.
준은 의외에 댓글에 깜짝 놀랐다. 그의 말대로 가솔린 엔진자체는 경험치가 100을 넘지 않았다. 거기다가 프레임과 구동계만 있는 스쿠터를 따로 팔면 어떻게든 경험치 100아래 선에서 커트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기다려봐. 실험좀 해보고.
준은 곧바로 스쿠터의 설계도를 띄웠다. 일단 소형 2행정 엔진에 들어가는 경험치가 50가량 들었다. 물론 일반 스쿠터 엔진에 비하면 과하다 싶을 정도로 비싼 편이었다. 하지만 델타시스템 자체가 가성비로 따지면 최악인 물건이었다. 어디까지나 알카트뢰즈에 있기 때문에 쓸만한 것이었지, 바깥에서는 같은 돈이면 훨씬 좋은 물건을 살 수 있었다.
하지만 대신 준이 제작한 물건에는 일반 공산품에서는 볼 수 없는 능력이 있었다. B급만 나와줘도 엔진효율이 30퍼센트 이상 올라가는 것이다.
‘이등분은 힘들고, 3조각으로 나눠서 판매해야겠군.’
설계를 이렇게 저렇게 변경해도 결국 2등분은 힘들었다. 준은 총 경험치 200을 들여 3등분한 스쿠터 세트를 완성했다. 경험치를 배분하고 엔진자체도 설계단계에서 손을 봐서 효율을 끌어올렸다. 프레임은 일반 철이 아니라 합금을 사용해 알카트뢰즈의 거친 환경에서도 오랫동안 버틸 수 있도록 만들었다.
‘제작도 하다보니 느는군.’
단지 기술 숙련도만 느는 것이 아니라, 제작기술을 사용하는 것 자체에 요령이 붙기 시작했다. 준 자신이 사용하던 스쿠터에 비해서 연비는 물론이고 내구도도 훨씬 뛰어난 제품이 완성되고 있었다.
‘재미있는데.’
지금까지는 그저 대충 설계도를 이용해서 만들었을 뿐이다. 하지만 강화된 제작능력으로 디테일한 부분까지 손을 댈 수 있게 되면서 제작을 하는 것 자체에 대한 재미가 붙고 있었다.
그리고 마침내 준이 스쿠터를 완성했다. 그러자 머릿속에서 시스템메시지가 울려퍼졌다.
-심혈을 기울여 만든 조립식 스쿠터(A급)
이 물건은 철저하게 수요자의 환경에 입각하여 제작되었습니다. 또한 운반을 용이하게 하기 위해 조립식으로 제작되어 편의성도 한층 높아졌습니다. B급 이상부터는 특수능력이 붙습니다.
특수능력 : 연료효율이 30퍼센트 높아집니다. 내구도가 30퍼센트 향상됩니다.
“헉? A급?”
제작을 완료한 준은 생각지도 못한 결과에 깜짝 놀랐다. 강화를 통해서 만든 것이 아니라 설계단계에서 A급이 나온 것이다. 덕분에 추가능력도 두 개나 붙어 훨씬 더 쓸만한 물건이 만들어졌다.
연비뿐만 아니라 내구도도 향상되어 거친 환경에 더욱 잘 버틸 수 있게 된 것이다. 문제라면 비싼 가격이었다. 들어간 경험치만 200이 넘다보니 책정된 가격도 비쌀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이정도면 비싼 값을 충분히 하는 물건이라고 할 수 있었다.
준은 완성된 물건을 델타스토어에 올렸다. 신제품 태그를 달아 메인에 올리니 사람들의 반응도 뜨거웠다.
-신제품이다. 아까 아이디어 낸 놈 누구냐? 주인장이 얼마 떼주기로 했음?
-이야. 이번기회에 나도 하나 장만할까? 이거 있으면 사냥도 더 빨라질 것 같은데.
-300EP? 이거 너무 비싼거 아니야?
-비싸기는. 니들건 저번에 싸게 풀렸을 때 안 사뒀냐? 한달만 빡세게 사냥하면 금방 모을텐데.
-나 그때 델타폰 없었음.
-쯧. 지금이라도 사서 사냥해라. 그거 있으면 사냥속도 두 배는 넘게 나온다.
-감옥에서까지 빈부차를 느낄줄이야.
-노력이 부족해서 그래. 노력해. 요새 젊은 놈들은 노력도 안하고 징징댐.
-밖에서 그러면 말이 안되는데, 여기선 노력하면 되긴 됨.
-시바. 감옥이랑 바깥이랑 비교하는게 말이 되냐?
-솔직히 그건 아니지. 여기가 더 살기 좋음.
-ㅋㅋㅋ감옥이 더 살기 좋대. 거긴 여자도 없잖아.
-너 아까 그 수라드 놈이지? 넌 뭐 여자친구라도 있냐?
-미안. 없다. 생각해보니까 거기가 더 나은 듯.
-븅신들. 난 벌써 하나 삼. 조립도 생각보다 안어려움. 조금있다가 시승기 올림.
-오. 부자놈이네. 난 아직 좀 모자람. 일주일 쯤 빡세게 해야할 듯.
-여긴 상위 1퍼센트만 모였냐? 300EP가 뉘집 애 이름이냐? 바깥이면 3000만원이다.
-여기선 300만원도 안하지.
-후기 올린다. 이거 대박임. 승차감 개 쩜. 이제 낙타는 필요없들 듯.
-낙타 삽니다.
-낙타 삽니다.(2)
-낙타 삽니다.(3)
스쿠터의 반응은 생각보다 좋았다. 당연하다면 당연한 것이 좀처럼 보기 힘든 A급이었기 때문이었다. 바깥이라면 고민을 좀 해야할 가격이지만, 적어도 알카트뢰즈 안에서는 가성비도 나쁘다고 볼 수 없었다.
준은 조립식 아이디어를 제공한 녀석에게 수익의 1퍼센트를 배분했다. 퍼센트로만 보면 많은 양은 아니지만, 한 대 팔릴때마다 경험치가 3씩 들어오는 셈이니 그의 입장에서는 상당히 많은 액수였다.
=다음 아이디어.
준이 정말로 경험치 배분을 해준다는 사실이 알려지자 본격적으로 아이디어 배틀이 벌어지기 시작했다.
-냉장고. 세탁기.
-에어컨.
하지만 줄줄이 올라 오는 것들은 다 일반가전 제품이었다. 물론 필요한 물건들이긴 했다. 하지만 준이 원하는 것은 단순한 물건이 아니라, 헌터들이 사용할 수 있는 맞춤제작형 물품이었다. 그냥 냉장고를 찍어내는 것은 어렵지 않지만, 그것 자체로는 한계가 있다.
=그런 단순한 거 말고. 그런거 물어볼거면 내가 글을 왜 올리냐. 정말 필요한 걸 올리라고.
-태양광 발전판을 이용한 휴대용 냉장고 어떻습니까.
-태양광 발전판을 이용한 에어컨! 태양광을 이용한 전등!
-물 안쓰는 세탁기.
-섬유유연제!
=나오는 데로 아무렇게나 이야기 하면 다 선택 될 것같냐. 됐다. 내가 알아서 한다.
준은 한숨을 쉬었다. 태양전지 냉장고 정도를 제외하면 전부 말이 안되는 것들이었다. 그나마 그것도 사실상 그다지 필요가 없었다. 신선한 음식은 델타스토어를 통해 얼마든지 구입할 수 있기 때문이었다.
일단 일반 가전 중에서 준이 제작할 수 있고 당장 스토어에 올릴 있는 것들을 분류했다. 평범한 물건을 제작하는 것은 A급이 나와주지 않았다. 어떨때는 C급까지도 나오는 경우가 있어, 설계를 다시 손봐야 할때도 있었다.
에어컨은 사실 필요전력이 너무 높아 작은 태양광 발전기로 그 전력을 전부 충당하기란 힘들었다. 때문에 그는 에어컨 대신 선풍기를 제작해서 올렸다. 건조한 알카트뢰즈의 기후를 생각해서 물을 냉각해 사용하는, 에어컨보다는 약하지만 그래도 차가운 바람을 뿜어내는 직사각형 형태의 박스형 선풍기였다.
고심한 흔적이 보이는 박스형 선풍기(A급)
건조한 기후에서 사용하기 좋은 얼음 선풍기입니다. 사용하는데 물이 필요하고, 일반 선풍기에 비해서 소비전력이 높습니다만, 그만한 값어치를 하는 물건입니다. B급 이상부터는 특수능력이 붙습니다.
특수능력 : 전력효율이 30퍼센트 상승합니다. 바람의 온도가 1도 하강합니다.
“이건 괜찮군.”
이것저것 실패한 끝에 가까스로 A급을 만드는데 성공할 수 있었다. 얼음 선풍기이다 보니 사실 일반 선풍기 보다 전력을 많이 잡아먹는 경향이 있었다. 하지만 특수능력으로 효율을 높이고 실제 냉각효과도 상승한 지금은 꽤나 쓸만한 물건이 되어 있었다. 이정도라면 알카트뢰즈에서 뿐만이 아니라 다른 곳에서도 팔리지 않을까 생각했다.
박스형 선풍기의 반응도 뜨거웠다. 더위를 어쩔 수 없이 받아들여야 했던 알카트뢰즈의 수형자들에게 드디어 더운 여름을 버틸 수 있는 희망이 생긴 것이다. 가격도 스쿠터보다 싼 150EP였다. 물론 전력이 필요하다는 점에서 태양광 발전기나 가솔린 발전기가 있어야 했다. 하지만 현재 알카트뢰즈에는 준과 함께 협동퀘스트를 했던 사람들이 많이 남아 있었다. 그들 중 대부분은 레벨업을 하고도 많은 경험치를 남겨둔 상황이었다.
그러다 보니 스쿠터와 함께 선풍기도 꽤나 잘 팔렸다. 그러다 보니 그동안 상당히 소모해 바닥을 드러내고 있던 경험치가 순식간에 차오르기 시작했다.
준은 델타스토어의 판매탭을 열어 판매 현황을 살펴보았다.
“음. 의외로 수라드 행성에서도 제법 팔리는 구나.”
현재 수라드 행성에 깔려있는 델타폰은 대략 100여개 안팍이었다. 팔린지 겨우 한달이 조금 넘은 시점이라는 걸 생각해보면 보급대수가 낮긴 해도 전망이 어두운 것은 아니었다. 딱히 대리점도 없고 광고도 없는 물건이 입소문만으로 팔리기 위해서는 상당히 오랜 시간이 필요한 법이다.
============================ 작품 후기 ============================
늦게 올려서 죄송합니다. 글쓰다 잠들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