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프로젝트 델타-220화 (220/5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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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계인의 유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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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스가 입을 열자, 준이 고개를 저었다. 아무리 그래도 외도나 밴디트도 아니고 함부로 사람을 죽일 수는 없었다. 그것은 준이 가진 그에 대한 복수심과는 별개였다.

브랜든이 비록 못할 짓을 하긴 했지만 그를 죽여야 분이 풀릴 만큼 그에게 원한이 쌓여있는 건 아니었다. 물론 당시에야 죽이고 싶긴 했다. 하지만 지금의 브랜든을 보자, 딱히 그럴 생각조차도 들지 않았다.

하지만 그렇다고 그냥 둘 수는 없었다. 적어도 자신을 모함한 것에 대한 대가는 받아내어야 했다. 그리고 준은 그 방법을 알고 있었다.

[일단 내버려 둬. 아니, 이왕이면 친한척이라도 좀 해줘. 이 안에도 CCTV는 돌아가고 있을테니까.]

[흠. 굳이 그런 피곤한 방법을...]

[그렇게 해줘. 그리고 말해두겠는데. 여기는 알카트뢰즈가 아니야. 함부로 사람을 죽인다는 말은 하지말라고.]

[함장님의 명령이라면.]

막스는 두 손을 들어올리며 대답했다. 그 역시 이곳에 알카트뢰즈가 아니라는 사실을 모르지는 않았다. 죽인다는 말도 진심은 아니었다. 그저 밴디트들을 상대하다보니 습관적으로 튀어나온 말일 뿐이다.

막스는 브랜든의 어깨에 팔을 올렸다. 갑작스런 그의 행동에 놀란 브랜든이 겁먹은 얼굴로 입을 열었다.

“왜, 왜이러십니까.”

[닥치고 웃어.]

“네?”

[웃으라고. 스마일. 몰라? 아니면 내가 그 입을 찢어줄까?]

“아, 아닙니다. 웃겠습니다. 하하하.”

[그래. 잘하네. 그렇게 웃고 있어.]

막스는 고개를 끄덕였다. 자세히 보면 브랜든이 강요에 의해 억지로 웃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겠지만, 뭐 그리 대단한 연기까지 할 필요는 없었다.

애초에 브랜든이 준 일행과 함께 이곳에 도착했다는 것은 CCTV 영상을 보면 나올 것이고, 그 영상은 마치 그가 수상한 자들에게 적극적으로 협조한 것처럼 보일 것이다. 누구라도 그 영상을 보고나면 브랜든을 의심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그 정도면 충분히 자신에게 한 일의 복수는 될 것이라고 생각한 준은 브랜든을 막스에게 맡기고 천천히 방 가운데에 있는 커다란 크리스탈을 향해 다가갔다. 얼핏 보기에도 2미터는 넘는 크기의 그것은 반투명한 우윳빛으로 빛나고 있었다. 가까이 다가서자, 흐릿하지만 그 속에 무언가가 있음을 알 수 있었다.

만약 준이 퀘스트의 내용을 몰랐다면 그것이 사람의 모습이라고 생각할 수는 없었을 것이다. 그만큼 형태를 알아보기 힘들었다.

‘델타의 사용자만이 이 사람을 깨울 수 있다고 했던가...?’

하지만 준은 어떻게 해야할지 방법을 몰랐다. 그리고 잘 모를때는 일단 뭐라도 해보는 것이 우선이었다. 준은 크리스탈을 향해 손을 뻗었다.

멈칫.

[아. 참...]

준은 크리스탈을 향해 내뻗던 손을 거두고는 고개를 들어 주변의 카메라들을 보았다. 아마 지금의 상황을 하나도 빠뜨리지 않고 기록하고 있을 그 카메라들의 위치를 기억한 준은 두 손을 양쪽으로 내뻗으며 매크로 어택 2번을 시전했다.

슈슈슛!

콰앙!

주문도 없이 뻗어나간 원거리 기술들에 여기저기 설치되어 있는 카메라들이 일거에 터져나갔다. 그 광경에 브랜든은 더욱 기겁하며 목을 움츠렸다. 아무리 일반인이라고 해도, 그역시 헌터들을 많이 상대해본 인물이다. 지금 준이 보여준 모습만 해도 보통의 실력이 아니라는 사실쯤은 충분히 알 수 있었다.

콰앙! 쾅!

카메라를 모두 부수고도 모자라 준은 계속해서 돌아가고 있는 각종 기기들도 모두 날려버렸다. 데이터들을 날려버릴 목적도 있었고, 혹시나 숨겨져 있는 카메라가 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준은 몸을 빙글 돌려 겁먹은 눈으로 자신을 보고 있는 브랜든을 향해 걸어갔다.

뚜벅. 뚜벅.

평소보다 과하게 발걸음에 힘이 들어가는 것을 느끼며 준은 그의 코앞에 다가가 걸음을 멈추었다. 준에게서 느껴지는 기운이 심상치 않음을 깨달은 막스가 브랜든의 어깨에서 팔을 풀고는 뒤로 물러섰다.

“무, 무슨 일이십니...까?”

브랜든은 감히 고개를 들 생각조차 하지 못하며 입을 열었다. 준은 말없이 그의 얼굴을 노려보았다. 솔직히 방금전까지는 약간은 용서하고자 하는 마음도 있었다. 어차피 이번일이 끝나면 그는 새크리파이스에서 해고될 것이 틀림없었다. 어쩌면 이번일로 준 일행에게 협력했다는 누명을 쓰고 소송을 당할 수도 있었다. 그렇게 되면 준이 당했던 것보다 더 처절한 미래가 브랜든을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역시 분이 안풀려.’

설령 브랜든이 절망밖에 없는 미래를 맞이하게 되더라도, 그건 나중의 일이다. 준은 비굴한 표정을 지으며 억지웃음을 짓고 있는 브랜든을 보며 주먹에 힘을 주었다.

뻐억!

“커헉!”

준의 주먹이 브랜든의 안면에 적중했다. 그렇지 않아도 준의 힘은 현재 57에 이르고 있는 상황, 거기다가 근력을 보조해줄 강화수트까지 입고 있었기 때문에 전력을 다해 주먹을 휘두르면 그대로 두개골이 박살나며 목숨을 잃을 수도 있는 일격이었다.

투둑. 툭. 툭.

브랜든의 입에서 피와 함께 부러진 이빨이 우수수 떨어졌다. 그나마 힘조절을 한 덕분에 즉사는 하지 않았지만 제대로 치료를 받지 못한다면 평생동안 안고 갈 상처를 입힌 것이다.

‘젠장. 힘이 너무 센것도 문제로군.’

솔직한 마음은 이대로 분이 풀릴때까지 두들겨 패고 싶었다. 하지만 진심으로 치게 되면 단 한 방도 버티지 못할 것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꺼억. 흑. 크흑...”

브랜든은 바닥에 주저앉은 채 피를 토하며 울고 있었다. 아마 자신에게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도 깨닫지 못하고 있을 것이다. 준은 입술을 깨물고는 돌아섰다. 때리기 전보다 때린 이후에 더욱 분노가 치밀어 올랐다.

‘비겁한 자식.’

당장이라도 헬멧을 벗어던지고 자신의 얼굴을 보여주고 싶었다. 그토록 쉽게 자신을 나락으로 밀어버렸던 브랜든의 구겨진 얼굴을 보면서 복수를 즐기고 싶었다. 하지만 여기서 물러나는 것이 현명하다는 사실 정도는 알고 있었다.

퍼억!

“컥!”

바닥에서 낑낑거리고 있는 브랜든의 명치에 발길질을 날린 준은 그대로 돌아섰다. 더 이상 그에게 손을 댔다가는 정말로 죽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서였다.

[살아라. 평생 벌레처럼 그렇게.]

“크흑... 가, 감사합니다.”

브랜든은 엉망이 된 얼굴을 하며 필사직으로 입을 열었다.

‘제기랄. 괜히 건드렸어.’

그냥 카메라만 부수고 크리스탈 안의 생존자를 구해서 돌아가야했다. 복수를 했지만 통쾌하다기보다는 기분만 더러워지고 있었다. 한없이 나약하기만 한 인간의 추악함을 목도함에, 그리고 그런 인간에게 당할 수밖에 없었던 자신의 어리석음에 자꾸만 가슴이 들끓었다.

꼬옥.

그리고 그런 준을 뒤에서 끌어안는 작은 손이 있었다. 준은 움찔했다가 시미의 얼굴을 보고는 가볍게 한숨을 쉬었다.

‘괜한 걱정을 시킨건가.’

준은 시미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그녀는 준의 손을 잡고는 조용히 자신의 가슴에 준의 손을 가져다 대었다. 놀랍도록 청량한 기운이 강화수트를 넘어 준의 손에 전해졌다. 머리가 맑아지는 느낌과 함께 그는 입을 열었다.

[고맙다.]

“쟤도 재울까요?”

시미의 물음에 준은 고개를 끄덕였다. 지금부터 일어나는 일은 브랜든이 알게 해서는 안되었다. 어차피 깨어나면 크리스탈이 사라진 것을 알겠지만 그 안에 뭐가 있었는지 까지 알려줄 필요는 없었다.

준은 크리스탈로 다가가 그 위에 손을 가져다 대었다. 그러자 기다렸다는 듯이 시스템메시지가 울려퍼졌다.

-생명유지장치를 언락하시겠습니까?

-그래. 부탁해.

준이 고개를 끄덕이자, 준의 몸속에서 특정한 파장의 엑조틱 에너지가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준은 가만히 그것을 느끼며 크리스탈의 변화를 주시했다.

우우웅-

잠시 후, 크리스탈에서 진동이 일기 시작했다. 모든 이들이 숨을 죽이며 다음에 일어날 일을 기다렸다. 막스가 입을 열었다.

[저 안에 생존자가 있다는 말이지?]

[아마도 그렇지 않겠나? 퀘스트의 내용이 사실이라면 말이지.]

[델타가 거짓말 할 이유는 없잖아.]

[그렇지. 그나저나 생존자라니. 솔직히 말해 궁금하지 않을 수 없군. 정황상 이들이 외계인이라는 것이 확실하다면 인간과는 다른 형태를 하고 있지 않을까 싶은데.]

[막 문어처럼 생긴 건 아니겠지?]

[상상력 하곤.]

막스와 볼칸의 대화를 귓등으로 흘리며 준은 크리스탈을 유심히 살폈다.

치이이-

어느순간 크리스탈에서 하얀 수증기가 일기 시작했다. 마치 물이 끓는 것처럼 조금씩 피어오르던 그 연기는 어느순간 격렬하게 반응하는 나트륨 덩어리처럼 엄청난 연기를 뿜어내며 시야를 완전히 가렸다.

[무슨 일이 벌어지는 거지?]

[크리스탈이 증발하는 모양이야.]

막스가 입을 열자 준이 대답했다. 잠시 후, 연기가 가시자 준은 크리스탈이 있던 곳에 눈을 감은 채 서 있는 인영을 발견할 수 있었다.

[천사...?]

멍하니 지켜보던 일행 들 중 누군가가 입을 열었다.

하얗다.

가장 먼저 느낀 것은 새하얗다는 사실이었다. 그야말로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순백의 나신을 드러내고 있는 하얀 여성이 있었다.

그리고 완벽했다.

은하수를 늘어뜨린 것 같은 머리칼이 빛을 받아 반짝였고, 새하얀 눈처럼 깨끗한 피부는 차마 범접하기조차 송구스러울 정도였다. 그 투명한 나신위로 LED의 빛이 미끄러지며 숨막히는 곡선을 그렸다. 그 완벽한 폐곡선은 인류가 만들어낸 그 어떤 수학으로도 표현할 수 없는 완전성을 달성한 듯 보였다.

그리고 아름다웠다. 너무나도 아름다워서 인간의 육체라기 보다는 신의 예술품이라고 느껴질 정도였다. 그 성스러운 자태는 바닥에서 한 뼘 이상 떨어져 자연스럽게 허공에 떠 있었고, 그 모습은 마치 중력의 영향을 받지 않는 것처럼 보였다. 그것은 마치 천사를 박제한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아니, 준은 자신의 생각을 정정했다. 그녀의 모습은 그야말로 순백의 천사 그 자체였다.

파르르-

죽은 듯이 잠자고 있던 그녀의 눈꺼풀이 가볍게 떨렸다. 그제서야 준은 꿈에서 깨어난 듯 퍼뜩 정신을 차렸다.

“옷을 좀 입혀야 하지 않을까요?”

놀랍게도, 검둥이가 가장 먼저 입을 열었다.

[아... 그, 그렇지.]

준은 황급히 인벤토리에서 옷을 꺼내어 그녀에게 입혔다. 혹시 몰라 여성용 옷을 몇 벌 구해둔 것이 다행이었다. 염동력을 이용해 얼추 그녀에게 옷을 입히고 나자, 타이밍 좋게 그녀가 눈을 떴다.

“아...”

그녀는 눈을 동그랗게 뜨고 준을 바라보았다. 그는 어쩐지 얼굴을 보여야 할 것 같아, 헬멧을 벗었다. 두 사람의 시선이 마주치자 그녀의 얼굴에 미소가 떠올랐다. 태어나서 처음보는, 티없이 맑은 미소였다.

그녀는 바닥에 사뿐히 내려서더니 천천히 준에게 다가섰다. 준은 얼어붙은 듯 그 자리에서 꼼짝 할 수 없었다. 마치 온세상이 준을 붙잡고 있는 것 같았다.

‘이... 이건...?’

어쩐지 익숙한 전개였다. 준은 천사의 얼굴이 점점 자신에게 가까워지는 것을 느끼며 숨을 멈췄다. 거의 코가 닿을 듯한 거리에서 그녀는 입을 열었다.

“좋은 냄새.”

“헛.”

털썩.

준은 자신도 모르게 엉덩방아를 찧으며 주저앉았다. 다리에 힘이 풀릴 정도로 달콤한 목소리였다.

[루나에게 말해야겠군.]

막스가 뭔가 배알이 꼴린다는 투로 입을 열었다.

[그 일은 나에게 맡겨주게.]

볼칸이 이를 가는 소리가 들려왔다.

============================ 작품 후기 ============================

오늘은 여기까집니다. 좋은 하루되세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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