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프로젝트 델타-219화 (219/5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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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계인의 유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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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슨 소릴 들으려고.”

준의 처지를 잘 알고 있는 브랜든이다. 회사에 빚으로 매여 반강제로 노동력을 착취당하고 온갖 핑계로 빚은 늘어만 가고 있었다. 그런 상황에서도 절망에 빠지지 않고 어떻게든 일해서 돈을 갚으려는 미련한 녀석이기도 했다.

그는 스스로 인정하고 있지 않았지만, 브랜든은 준에게 상당한 열등감을 느끼고 있었다. 볼품없이 늙어가는 자신에 비해 준은 젊고, 능력있는 청년이었다. 아마 빚이 없었다면 자신보다 훨씬 더 나은 삶을 살았을 것이다. 대학도 조기졸업을 했던 인재였고, 실무적인 능력도 좋았다. 제대로 석사까지 마치고 구직을 했다면 업계 최고 중 하나인 갤럭시 인더스트리에 기술직으로 입사할 수도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새크리파이스가 빚을 미끼로 그를 낚았고, 그는 저임금에 혹사당하며 밑바닥에서 구를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자신은 그런 그의 상급자로 그를 손가락 하나로 부릴 수 있었다. 그것은 1년짜리 단기계약직으로 연명하는 자신의 삶에서 그가 누릴 수 있던 유일한 유흥이었다.

“생각해보면 그녀석이 나에게 고마워 해야지.”

평소에 좀 괴롭히기는 했지만 별다른 악의를 가지고 행한 일도 아니었고, 자신 덕분에 준이 능력을 발휘할 기회도 많았다. 그는 많은 일을 준에게 떠맡겼고, 그 덕에 그의 실력이 일취월장했다고 여겼다. 물론 그렇다고 그가 준을 모함한 것이 옳은 일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그것은 나중에 자신이 더 높은 자리에 올라가 그를 도와주면 될 일이었다.

브랜든은 그때가 되면 준이 오히려 자신에게 고마워 할거라고 확신했다. 평생 그런 고물 화물선에서 구르는 것 보다는 자신의 밑에서 편하게 일하는게 당연히 나은 일이니까.

‘그래. 그렇게 하면 되겠군.’

정규직 관리자가 되어 준을 부리는 자신의 모습을 상상하자 방금전까지 마리엘 함장의 성의없는 통화로 인해 가라앉았던 기분이 조금 나아지는 것을 느꼈다. 어쨌든 현재 처지는 별로 좋지 않지만 과장급 대우를 받고 있는 상황이었다. 계약직이라는 것은 달라지지 않았지만 마리엘 쿤 함장으로서도 자신을 그냥 내치는 것은 손해였다. 자신의 명령을 충실히 수행할 수 있는 인물이라는 것은 어디가서도 쉽게 구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니까. 단지 지금은 테스트 기간일 수도 있었다. 과연 자신이 어디까지 마리엘의 명령을 잘 수행하는가 하는.

‘그래. 조금만 더 참고 기다리면 좋은 자리가 나올거야.’

현재로서는 언젠가 마리엘 함장이 자신을 다시 중히 써줄 것이라는 믿음만이 유일한 희망이었다.

[뭘 저렇게 중얼거리는 거야?]

준은 브랜든의 뒤를 따라가면서 입을 열었다. 무언가 불만인 듯한 얼굴을 하고서 걸어가다가 다시 기분이 좋아졌는지 발걸음이 가벼워지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아무래도 이런 행성에 오래 있다보니 사람이 좀 이상해진 모양이었다.

현재 브랜든은 정신교란에 걸려 준 일행을 인식하지 못하는 상태였다. 시미의 정신교란은 이런 일반인 레벨에서는 거의 무적의 기술이었다. 그도 그럴것이 자그마치 초록색 외도의 기술이었다. 그것도 육체적인 능력을 완전히 배제하고 특수능력에만 올인한 타입이기 때문에 그 능력은 더욱 가공할 위력을 가지고 있었다.

‘이래저래 편리한 녀석이라니까.’

준은 시미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그녀는 약간 피로한 얼굴이었다. 아무래도 이 행성의 환경이 좀처럼 적응되지 않는 모양이었다. 평소와 다르지 않은 얼굴로 킁킁거리며 주변의 냄새를 맡는 검둥이와는 다른 모습이었다.

[도착한건가?]

준은 브랜든이 걸음을 멈추자 발걸음을 세웠다. 그의 앞에는 철제문이 세워져 있었다. 원래 우주선에 있던 물건은 아닌지, 주변 통로와 그 형태가 상당히 이질적이었다. 아마도 새롭게 만든 모양이었다.

브랜든이 뭐라고 통신을 하자 철문이 천천히 열렸다. 안쪽을 들여다보니 이중격벽 형태인 것 같았다. 아무래도 그 안쪽은 모종의 시설이 있고, 우주복을 입지 않고서도 활동할 수 있도록 생명유지장치가 가동되고 있을 확률이 높았다.

[어쩌지? 지금 들어갔다간 금방 들킬텐데.]

볼칸이 입을 열었다. 만약 격벽에 CCTV라도 있다면 정신교란이고 뭐가 할틈도 없이 준 일행의 존재가 발각될 것이다.

[무슨 상관이야? 어차피 누군지도 모를텐데.]

막스가 그렇게 말하며 격벽안으로 성큼 들어섰다. 잠시 갈등하던 준도 그의 말이 맞다 여기고는 그의 뒤를 따랐다.

[지금은 운에 맡기자. 어차피 이 안으로 들어가는 통로는 여기밖에 없는 것같고, 지금이 아니면 나중에 무력으로 돌파할 수밖에 없는데 그게 더 문제야.]

준의 말에 모두가 동의하며 브랜든을 따라 격벽안으로 들어섰다.

쿵.

치이이-

등뒤의 철문이 닫히고, 곧바로 내부에 질소와 산소가 섞인 혼합공기가 주입되기 시작했다. 내부에 가득차 있던 메탄공기가 빠지고 새로운 혼합공기로 밀실이 가득차자, 두번째 문이 열렸다. 브랜든은 아무 생각없이 앞으로 걸어갔고, 일행도 그 뒤를 따랐다.

[운이 좋은데? 아마도 우리를 이자의 부하라고 생각하고 있는지도 모르겠어.]

막스가 휘파람을 불며 입을 열었다. 준은 대답대신 고개를 움직여 격벽 내부를 살펴보았다. 여기저기 CCTV로 보이는 카메라가 있었다. 아마도 그것을 통해 누군가 이쪽을 보고 있을 것이다.

[그렇게 쉽게 뚫린다면 좋겠는데...]

상황은 아직 낙관할 수 없었다. 하지만 준이 생각하기에도 현재로서는 이 방법이 최선이었다. 어찌보면 때 마침 브랜든이 지나간 것이 행운이라고 할 수도 있었다. 그가 아니었다면 결국 무력으로 이 문을 뚫고 지나갈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끼이이-

그리고 곧 세번째 문이 열렸다.

맨먼저 눈에 들어오는 것은 실내의 한 가운데에 떡 하니 자리하고 있는 거대한 크리스탈이었다. 반투명한 우윳빛의 크리스탈은 은은한 빛을 내고 있었다. 정확히는 크리스탈의 밑에 설치된 전구의 빛을 받아 빛나고 있는 것이었다. 그리고 그 주위로 정체를 알 수 없는 기기들과 무언가를 바쁘게 기록하고 있는 사람들이 있었다. 공간 자체는 꽤나 넓었다. 본래의 용도가 무엇인지는 모르겠지만 거의 수백명이 들어갈 수 있는 강당 정도의 크기였고, 그곳에는 십여 명의 연구원으로 보이는 이들이 각자 자신 앞의 기기들을 조작하며 그래프를 살피고 있었다.

그리고 그들 중 한 명이 철문앞에서 브랜든을 기다리고 있었다. 꽤나 연륜이 있어보이는 반백의 사내였다.

“아. 왔나? 물건은?”

“여기. 이런 사소한 일로 자꾸 날 부르지 말라고.”

브랜든은 우주복의 헬멧을 벗은 채 입을 열었다. 이 곳은 지구의 환경과 거의 유사하게 조성되어 있었다.

그는 브랜든으로 부터 검은색의 작은 공구함을 받아 내용물을 확인하고는 입을 열었다.

“맞군. 헌데 뒤쪽의 사람들은 누구지? 새롭게 배치된 인원인가?”

“누구?”

브랜든은 깜짝 놀라며 고개를 돌렸다. 하지만 그의 눈에 보이는 건 아무도 없었다. 그는 상대가 자신을 놀리는 거라 생각하고는 약간 짜증이 섞인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이제 하다하다 이런 장난까지 치는 건가?”

“장난이라니...?”

“장난이 아니면 뭐야? 아무도 없잖아?”

“무슨소리야. 자네 뒤쪽에 분명히...”

입을 열던 사내가 갑자기 눈을 꿈뻑이더니 안경을 벗어 소매로 닦고는 다시 썼다. 방금전까지 분명히 보았던 사람들의 모습이 갑자기 보이지 않는 것이다.

“어, 없어?”

“재미없는 장난 그만쳐. 볼일없으면 난 이만 돌아가지.”

“자, 잠깐만. 뭔가 이상한데. 영상을 좀 확인해봐야겠어.”

그는 그렇게 말하고는 황급히 어디론가 달려가려했다.

[거기까지.]

갑자기 사내의 앞에 강화수트를 입은 사람 하나가 나타났다. 볼칸이었다.

퍽! 쿠웅!

기절시키기 위해 세게 내려친다는 것이 너무 셌던 모양인지 큰 소리와 함께 사내의 몸이 바닥에 거의 부딪치다시피 하며 쓰러졌다. 갑작스런 상황변화에 브랜든이 깜짝 놀라며 뒤로 물러섰지만, 그의 뒤에서 누군가 나타나며 브랜든의 입을 틀어막았다.

“누구냐!”

하지만 방금의 소음때문인지 이미 이목이 이쪽으로 끌린 상황이었다. 실내에 있던 모든 사람들의 시선이 준 일행에게로 쏠렸다.

준은 하는 수 없다는 듯 한숨을 쉬고는 뒤쪽, 검둥이의 뒤에 숨어있던 시미를 향해 입을 열었다.

[그거 좀 부탁해.]

시미가 고개를 끄덕이고는 조용히 손을 허공에 흩뿌렸다. 그러자 그녀의 손끝에서 반짝이는 가루가 확 퍼지더니 순식간에 실내의 사람들에게 내려앉았다.

“으... 갑자기 엄청나게 졸리는...”

“뭐지...”

“이러면 안되는데...”

갑작스런 침입자에 당황하고 있던 그들은 자신들의 머리위로 떨어져 내리는 황금색의 가루를 미처 피하지 못하고 그대로 뒤집어썼다.

결국 장내의 모든 사람들이 잠에 빠져들었다. 그 영향권에서 벗어나 있던 것은 준 일행과 함께 있던 브랜든 뿐이었다.

“누, 누구냐? 너희들? 어떻게 여기까지 왔지?”

[어떻게 왔기는. 그쪽 뒤를 따라서 왔지.]

준이 입을 열였다. 하지만 브랜든은 준의 목소리를 듣고도 알아차리지 못한 듯 그저 반복적인 질문을 던졌다.

“너희들 대체 정체가 뭐냐? 이런 짓을 하고도 무사할 줄 알아?”

[거참 말이 많은 친구구만. 우리가 누군지 알려주면, 네가 죽을지도 모르는데 괜찮겠어?]

“헉?”

막스가 외부스피커를 통해 은근한 목소리로 위협을 하자 브랜든이 황급히 숨을 들이키며 입을 다물었다. 확실히 이런 쪽으로는 막스의 스킬이 남달랐다. 준이 듣기에도 충분히 악당처럼 들렸으니까.

[질문은 우리가 한다. 너는 그저 묻는 말에만 대답하면 돼. 알겠어?]

준의 말에 브랜든이 거칠게 고개를 끄덕였다. 눈알을 데굴데굴 굴리는 것이 어떻게든 지금 상황을 모면해보려는 듯 했지만, 그가 무슨 짓을 하든 지금상황에서 빠져나갈 길은 요원했다. 애초에 이곳의 존재 자체가 기밀이었기 때문에 배치된 사람도 많지 않았고, 그나마 있는 경비대는 모두 함선의 바깥에 있었다.

거기다가 연구원으로 보이는 이들은 이미 모두 정신을 잃고 쓰러져 있었다. 설령 그들이 모두 정신을 차리고 있어도 이 자리에 있는 인물 중 단 한명도 당할 수 없을 것이었다.

[그럼 첫번째 질문. 여기서 뭘 하고 있는거지?]

“그, 그것은...”

[아. 질문이 너무 광범위 했나? 정정하지. 저기 보이는 저 크리스탈이 대체 뭐지?]

“그건 나도 몰라. 나는 그냥 여기서 잡일이나 도와주는 사람이지, 아무것도 아니라고. 애초에 중요한 사람도 아니고, 아는 것도 없어. 그러니까 날 보내줘.”

브랜든은 필사적으로 자신의 무가치함을 입증하려 애썼다. 준은 안쓰럽다는 듯 입을 열었다.

[멍청하군. 아무것도 아는 것이 없는 놈을 우리가 왜 살려둬야 하지.]

“그런...”

브랜든은 잠시 당황한 듯 얼굴이 붉게 달아오르더니 다시 입을 열었다.

“나, 나도 자세한 건 몰라. 하지만 무언가 중요한 것만은 사실이야. 내가 아는 건 이게 외계인의 함선일지도 모른다는 거고, 저 안에 특별한 것이 있다는 사실정도야.”

[외계인의 함선이라. 이 사실을 새크리파이스에서는 이미 모두 파악하고 있는건가?]

“나도 몰라. 이게 어느선까지 연결된 일인지 나같은 말단이 뭘 알겠어? 그냥 마리엘 쿤이라는 자가 주도적으로 하고 있는 일이라고.”

준은 마리엘 쿤의 이름이 나오자 미간을 살짝 찌푸렸다. 어차피 강화수트 안의 얼굴은 코를 박고 들여다보지 않는 이상 거의 보이지 않기 때문에 브랜든이 준의 표정을 읽을 수는 없었다. 준이 브랜든의 얼굴을 알아본 것은 천리안을 익히면서 얻게 된 놀라운 시력 때문이지 보통의 사람은 알아보기 힘든 것이 당연한 일이었다.

[마리엘 쿤이라... 그자의 현재 직위가 어떻게 되기에 이런 정도의 규모의 탐사를 진행할 수 있는 건가?]

“바쉬르특별탐사팀의 팀장이야. 아마도 윗선의 누군가와 연결이 되어 있는 것 같은데 그것까지는 몰라.”

[도움이 안되는 녀석이군.]

준은 혀를 찼다. 뭘 기대한 것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쳐도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 정보들이었다.  나름 마리엘 밑에서 중요한 일을 맡고 있나 했더니 이정도면 거의 버린 돌 취급이나 마찬가지였다.

[그냥 죽여버릴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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