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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계인의 유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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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단 델타스피릿에 대한 문제는 얼추 정리가 되었다. 기업이라고는 해도 준은 전혀 알지 못하는 분야였고, 밥과 제임스가 중요한 부분들은 맡아서 진행할 것이다. 그는 단지 델타폰의 보급을 늘리고, 펠로우쉽을 합법적으로 유지할 수 있기만 하면 그만이었다. 기업자체도 돈을 벌기위함이라기 보다는 경험치를 끌어모으는 형태였기 때문에 굳이 주식회사라던가 하는 형태를 만들 필요도 없었다.
그러니까 이 기업은 출자자인 준 알스버그의 100퍼센트 개인 기업이 되는 것이다. 그리고 PMC라고는 하지만 직접적으로 용병활동을 할 생각도 그다지 없었다. 그럴거면 레이드 기업의 형태로 만들면 되지 않냐고 생각할 수도 있을 것이다. 사실 어느 쪽이든 상관없는 문제였다. 둘다 사적인 무력단체였고, 그 차이는 인간을 상대로 전쟁을 하느냐, 아니면 외도를 상대로 결정체를 수집하느냐의 차이였다.
다만 일정규모 이상의 레이드 단체는 반드시 허가받은 업체의 지휘하에서만 움직여야 한다는 문제가 있었다. 연합에서는 결정체를 철저히 관리하고 있었고, 특히나 레이드 기업에 있어서는 그 규제가 더욱 빡빡했다. 때문에 대부분의 레이드 기업들은 대기업의 산하 조직이었다. 그 틈바구니에 굳이 머리를 디밀고 들어갈 필요가 없다고 생각한 것이다.
제임스는 그렇게 설명했다. 준은 고개를 갸웃거리며 입을 열었다.
“그렇다면 펠로우쉽을 데리고 레이드를 할 수는 없는 건가?”
“공식적으로는 그렇습니다.”
“비공식적으로는 가능하다는 이야기군.”
“얼마든지 가능하지요. 다만 비공식적으로 진행된 레이드라도 반드시 신고를 하게 되어 있습니다. 이유는 잘 아시겠지만 결정체 유통법 때문이지요.”
“사적으로 결정체를 유통하면 처벌을 받는다는 법 말이지?”
“네. 하지만 델타 스피릿은 그것을 걱정할 필요가 없습니다.”
“그렇군. 델타폰의 존재 때문인가.”
“네. 레이드를 통해 얻은 결정체를 모두 펠로우쉽의 경험치로 이용하거나, 혹은 델타폰의 EP로 환산할 수 있으니까요. 실제로 거래는 되고 있으나, 결정체는 사라지게 되는 셈이니 법망을 벗어날 수 있습니다.”
“나중에 문제가 되지 않을까?”
“아무리 연합이라도 없는 법을 만들어서 처벌할 수는 없습니다. 물론 나중에 특별법의 형태로 만들 수도 있긴 하겠습니다만... 뭐, 그 정도로 델타폰이 퍼져있다면 굳이 연합에 얽매이지 않아도 되지 않을까 생각이 듭니다.”
“연방도 연합과 그리 다르진 않을텐데.”
“넓게 보십시오. 우주는 넓지 않습니까?”
“설마, 행성 개척이라도 하자는 건가?”
“못할 것도 없지요. 정 싫으시다면 파티마제국도 있고, 소비에트 유니온도 있습니다. 그게 아니면 대중화제국도 있지요.”
“전부 다 그리 마음에 드는 선택지는 아닌데...”
언급된 국가들 모두 그다지 이미지가 좋은 나라들은 아니었다. 델타 스피릿이 파티마제국에 등록된 기업체라고는 하지만, 어디까지나 왕정국가였기 때문에 그 나라에 가서 살고 싶지는 않았다. 그나마 소비에트 유니온과 대중화제국은 나은 편이었지만 규모가 다른 나라에 비해서 작은 편이었다.
“어디에 있든 관계없습니다. 지금이야 눈치를 볼 수밖에 없지만, 나중에는 델타스피릿을 무시할 수 있는 국가는 없을테니까요.”
“정말 그렇게 될까?”
준은 제임스의 호언장담에 왠지 마음이 불편했다. 델타의 잠재력이 무궁무진하다는 것은 알지만 그렇다고 해도 설마 국가단위와 맞상대 할 정도로 키울 수 있을 거라는 생각은 잘 들지 않았다.
“됩니다. 절 믿으십시오.”
“그, 그래.”
준이 당황할 정도로 제임스는 확신을 담아 말했다.
“자, 그럼 일단 맨 처음 뭘 해야 하나 하는 것이 문제인데...”
알카트뢰즈를 나가게 되면 맨 처음 하고 싶었던 것은 다름아닌 마리엘 쿤 함장에 대한 복수였다. 하지만 이렇게 되고 보니 그일은 잠시 뒤로 미뤄야 할 것 같았다. 알카트뢰즈에 있으면서 자신이 생각했던 것 보다 훨씬 더 큰일을 만들어 버렸다. 그것들을 내팽개치고서 개인적인 복수에 매몰될 수는 없었다.
“혹시 계획해 둔 것이 있으십니까?”
“아... 계획이라기 보다는 예전부터 생각하던 거긴 한데...”
준은 조심스럽게 말을 이었다.
“내가 처음 델타를 얻은 곳에 가보고 싶어.”
“흠... 이유를 물어도 되겠습니까?”
사실 지금까지 아무도 생각하고 있지 않았다. 델타라는 것이 준의 소유라는 점 외에는, 사실 어느누구도 그것의 정체나 기원에 대해서 알지 못했다. 아니 궁금해 하지도 않았다는 점이 맞을 것이다. 모두들 그것의 존재를 당연시하고 있었던 것이다.
“난 델타를 바로쉬행성에 있던 우주선으로 부터 얻었어. 그리고 그 함선은 아마도 우리 세계의 것이 아니라고 생각 돼.”
“그렇다면 설마 다른 지적생명체가 존재한다는 겁니까?”
“오히려 지금까지 발견을 못한게 이상한거겠지.”
준의 말에 모두들 고개를 끄덕였다. 인류의 생활권이 1000천 광년 정도로 넓어졌고, 1만광년 정도까지는 탐사에 성공했다. 하지만 여전히 지적생명체는 발견하지 못한 상태였다. 물론 인류에 유사한 생명체는 존재했다. 하지만 그들 대부분은 침팬지나 고릴라 수준에서 아주 조금 더 영리한 정도였고, 자신들만의 문명도 이루지 못한 상태였다. 역사 이래 인류가 만난 가장 지적인 외계생명체는 외도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지적생명체의 탐사는 매번 실패하고 있었다.
“그렇군요. 그렇다면 한 번 가볼 가치가 있겠습니다.”
“그때는 정신없이 도망쳐 나오느라 델타이외에는 아무것도 챙기지 못했지만, 지금 다시 가보면 무언가 얻을 수 있는 것이 있을지도 몰라.”
“델타를 만든 이들의 함선이라... 무언가 엄청난 게 나올지도 모르겠군요. 일단 준이 퇴소하는 날까지 델타스피릿의 용병들을 모집해야겠습니다. 일단은 100명 정도는 있어야 할 듯 한데...”
제임스가 준의 눈치를 살폈다.
펠로우쉽의 무력은 강력하지만 그들을 유지하는 비용은 상당히 비싸다고 할 수 있었다.
“알아서 해. 돈이라면 결정체로 지급한다고 하고. 그걸 정부에 팔면 될테니까.”
“네. 알겠습니다.”
델타 스피릿에 입사하려는 이들에 대한 대우는 제임스와 밥이 알아서 하기로 했다. 물론 최종적으로는 준의 주머니에서 나가게되겠지만 별다른 걱정은 없었다. 현재 준의 주머니에 있는 결정체의 숫자만 해도 10만개가 넘어간다. 대체 언제 이만큼 모았는지 본인조차도 기억에 없을 정도였다.
시미와 골렘형제들도 상당한 경험치를 얻었지만 아직 진화에 성공하지는 못했다. 다만 검둥이의 경우는 충분히 초록색 외도가 될 수 있는 경험치를 얻은 상태였지만 여전히 정예 노란색 외도로 머무르고 있었다. 아마도 미래연구소에서 당했던 실험과정중에 무언가 어그러진 모양이었다.
하지만 본인은 그다지 개의치 않는 모습이었다. 애당초 인간일때부터 별 생각이 없는 녀석이었다. 지금에 와서는 인간으로 돌아가고 싶다는 생각도 없어보였다. 사실 정예 노란색 외도가 되면서 인간화 할 수 있게 되었으니 굳이 인간의 모습에 집착할 필요도 없었다.
다만 외도의 형태가 편한지 별일 없으면 늘 개 형태로 돌아다녔다. 그런 검둥이가 인간형으로 변태하고는 준에게 다가왔다.
“형님. 이제 곧 나가실거죠?”
“그래. 갑자기 그게 궁금한거야?”
“그런건 아닌데... 혹시 저도 데리고 나갈 수 있으신가 해서.”
“응? 아. 그러고보니...”
준은 전혀 생각지도 않았던 문제를 깨달았다.
“너 수형자였지.”
“헤헤. 네. 아직 10년 정도 남은 것 같은데... 형님이 좀 빼내주실수 있을까요?”
“흠... 그러면 가석방심사를 받아야 할텐데... 이거 골치아프네.”
준 하나를 빼내는 것도 엄청 생색내던 클라이드 소장이었다. 헌데 검둥이를 빼내려면 또 뭔가를 요구할지도 몰랐다.
하지만 그 고민은 금세 풀렸다. 특별한 방법이 있어서라기 보다는 너무 당연한 사실을 깨달았던 것이다.
“그런데 너 외도잖아. 이제와서 줄리앙이라는 신분이 꼭 필요한건가?”
“혀, 형님? 제 이름 기억하고 계셨던 겁니까?”
“내 머리를 뭘로 보는거야? 나 지능 엄청나게 높거든?”
“역시 형님이십니다.”
“어쨌든 지금 네 유전자 정보는 줄리앙이라는 인간과는 상당히 상이할거야. 외모도 원래와는 상당히 다르고, 유전정보도 다르다면 완전히 신분세탁이 되었다고 봐야지. 원래 네 정체를 알고 있는 사람도 별로 없잖아.”
“그렇습니다. 전 괜한 걱정을 한거로군요.”
“설마 내가 널 떼놓고 가겠냐?”
“혀, 형님...”
검둥이는 감동의 눈물을 흘리며 준에게로 뛰어들었다.
휙.
쿵.
준이 몸을 틀어 피하자 검둥이가 벽에 머리를 들이받았다. 집이 큰 소리를 내며 뒤흔들렸다. 거의 태클 수준으로 몸을 던진 모양이었다.
“누구 죽일일있냐?”
“흑흑. 시미는 잘 안아주시면서.”
“걔는 여자애고.”
“그렇다면 저도 여자가 되어 형님의 가슴을 쟁취하겠습니다.”
“그런 끔찍한 소리를 아무렇지도 않게 하지마!”
준은 검둥이가 여성체가 되어 꼬리를 흔드는 모습을 떠올렸다. 가만히 생각해보니 그리 나쁠건 없다는 생각이 잠시 스쳤다.
정신을 차려보니 검둥이가 음흉한 미소를 지으며 준을 바라보고 있었다.
“형님. 지금 상상하셨죠?”
준은 대답대신 녀석의 안면에 주먹을 꽂아 넣었다.
퍽!
“캥!”
검둥이가 울면서 집구석에서 훌쩍거리자 준은 한숨을 쉬며 고개를 저었다. 펠로우쉽은 준에게 강제로 호감을 느끼게 만든다. 보통의 인간은 그 정도가 덜한 편이지만, 외도인 검둥이는 그 제약이 상당히 강하게 걸려드는 모양이었다. 확실히 시미나 골렘형제들의 경우만 보아도 외도는 인간에 비해 ‘호감도’가 높게 설정되는 모양이었다.
“쓸데없는 소리하지말고 나가서 시미랑 산책이나 해. 요즘 녀석도 심심한 모양이니까.”
“형님이 놀아주시기로 한 거 아니었어요?”
검둥이에게서 강제로 시미를 떨어뜨린 것은 어디까지나 준이었다. 하지만 한시가 멀다하고 재잘거리는 시미를 데리고 다니는 것도 쉬운 일은 아니었다. 특히 밴디트와의 전투가 끝난 이후로는 더욱 준에게 달라붙는 것 같았다.
“취소. 이 녀석 엄청 걸리적 거려.”
“으하암. 뭐라고 했어요?”
준은 자신의 앞주머니에서 머리를 꺼내는 시미를 보며 한숨을 쉬었다. 자고 있을때야 천사처럼 귀여운 녀석이지만 일단 눈을 뜨면 쉴새없이 재잘거린다. 정신사납게 떠드는 것은 둘째치고 이상하게 끈적거리는 것이 영 기분이 이상했다.
시미는 두 팔을 쭉 뻗어 기지개를 켜고는 준을 향해 입을 열었다.
“준... 모닝키스는?”
“시끄러. 이 변태풀아.”
“벼, 변태풀이라니...”
시미는 잠시 부들부들 떨더니 얼굴을 붉혔다.
“그건 고백인거에요?”
“아니야!”
준은 머리를 짚으며 시미를 검둥이에게 냅다 던졌다. 검둥이는 반사적으로 시미를 입으로 물었다. 개일때의 습관이 발동된 것이다.
“꺅! 검둥이가 시미를 잡아먹어욧!”
퉷.
검둥이가 바둥거리는 시미를 물을 담아놓은 시미 전용 컵에 뱉었다. 시미는 물속에서 몸을 부르르 떨면서 훌쩍거렸다.
“더렵혀졌어요... 이제 준에게 시집을 못가는 몸이 되어버렸어요...흑.”
“다행이네.”
“나쁜 사람. 소녀의 마음을 빼앗아 놓고서는 모른체 하기에요?”
“너 요즘 무슨 책보냐?”
“...그, 그건 비밀이에욧.”
준은 집안에 있던 스마트패널을 집어들었다. 현재는 시미가 책을 보는 용도로만 쓰이고 있는 물건이었다. 거기에서 최근 읽은 책 목록을 살피던 준이 고개를 갸웃했다.
“브리타니아 개정판 식물편?”
“보, 보여져 버렸어...”
시미는 온몸을 붉히고는 물속으로 들어갔다. 부끄러움에 몸둘바를 모르며 물속에서 부글거리는 그녀를 보며 준은 고개를 저었다.
“대체 저 녀석 왜그러는 거지?”
준은 그녀가 보던 부분을 펼쳤다. 그곳에는 식물의 생식에 대해서 자세한 설명과 함께 사진이 게제되어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