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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레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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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초비연이 그렇게 협조적인 것이 이상하기는 했다. 그는 이 펠로우쉽이라는 것에 다른 사람들에 비해 훨씬 더 큰 소속감을 지니고 있었다. 아마 나름의 사정이 있는 모양이었다.
‘나중에 막스에게 물어봐야겠군.’
펠로우쉽 병사들과의 친밀도로 따지면 자신보다는 막스가 훨씬 더 높았다. 그는 다른 병사들과 함께 먹고 마시고 떠드는 것을 좋아했다. 준이 홀로 떨어져 자신만의 쉘터에서 지내는 것과는 달리 그는 낯선 이들과 어울리는 것을 그리 어려워 하지 않았다.
그런 그라면 아마 초비연의 사정에 대해서도 어느정도 알고 있을 것이다.
“흠... 이쪽인가?”
루나가 찍어준 맵을 따라 운전을 하던 준의 눈에 양쪽으로 언덕이 솟아있는 좁은 길이 드러났다. 원래 사람이 다니라고 있는 길이 아니기 때문에 그 폭이 상당히 좁았다. 예전이라면 모를까, 지금처럼 덩치가 커진 개조험비를 타고서는 지나가지 못할 것 같았다.
“루나. 잠시 내려서 걷자. 저기만 지나면 될거 같으니까 그리 많이 걷지는 않을거야.”
“저야 오히려 좋죠. 준과 붙어서 갈 수도 있고.”
“하하.”
준은 머쓱한 듯 머리를 긁적였다. 사실 다른 차량과 달리 오프로드용으로 설계된 험비는 차체가 높기 때문에 트랜스미션이 차량내부를 가로지르는 형태로 설계되어 있었다. 이게 무슨 소리인고하니, 운전석과 조수석의 가운데를 구분짓는 커다란 턱이 있다는 것이다. 그러다 보니 두 사람의 거리는 팔을 최대한 뻗어야 거우 손이 닿을 만큼 떨어져 있는 상태였다.
끼이익.
차량을 세우고 두 사람이 내렸다. 준은 험비를 인벤토리에 넣고 오랜만에 분홍색 비너스 스쿠터를 꺼내들었다.
“어머? 이게 뭐에요? 귀엽다.”
“마음에 들어?”
“네. 완전 마음에 들어요.”
루나는 눈을 동그랗게 뜨고 고개를 끄덕였다. 경험치가 3000이나 들어가는 험비보다, 겨우 200이 들어간 스쿠터를 더 마음에 들어하는 걸 보니 어쩐지 웃음이 나왔다.
“한 번 운전해 볼래?”
“그래도 돼요?”
“나야 하나 더 만들면 되니까. 그리 비싼 물건도 아니고.”
“에이. 보니까 두사람이 타도 되겠는데요?”
“나보고 뒤에 타란 말이야?”
준은 곤란한 웃음을 지었다. 그렇지 않아도 분홍색 스쿠터라는 점이 마음에 걸리는데, 거기다가 여자뒤에 타고간다는 것이 어쩐지 부끄럽다는 생각이 들었다.
“네.”
하지만 어려운 부탁도 아니었고, 어차피 근처에는 사람도 없었으니 눈치보일일도 없었다. 준은 루나를 먼저 좌석에 앉히고는 그 뒤에 바로 붙어서 그녀의 허리를 잡았다. 뭔가 남녀가 뒤바뀐 듯한 느낌이 들었지만, 루나는 별로 개의치 않는 듯 했다.
부르릉-
스쿠터가 두 사람의 체중을 견디며 앞으로 나아가기 시작했다. 바람이 두 사람의 이마를 때리며 태양의 뜨거운 열기를 식혀주었다.
루나가 입을 열었다.
“이렇게 뒤에서 안아주니까 기분이 좋네요. 그냥 이 걸 타고 계속 달리면 좋겠어요.”
“그런 얘기는 일단 이걸 제대로 몰 수 있게 된 다음에 하는 건 어때?”
준은 약간 긴장한 얼굴로 입을 열었다. 그도 그럴것이 스쿠터는 바닥의 요철을 만날때마다 이리저리 휘청거리며 금방이라도 넘어질 듯 위태롭게 움직이고 있었다.
“이래봬도 무사고 운전자라고요.”
“애초에 운전한 적이 없으니까.”
“쳇. 그래도 우주선을 조종한 경험이 있으니까 금방 익숙해질거에요.”
“전혀 상관없잖아.”
두 사람은 그렇게 서로 티격대면서 천천히 앞으로 나아갔다. 준은 문득 생각난다는 듯 입을 열었다.
“그러고보니 내가 펠로우쉽의 스킬을 배울 수 있다는 걸 알고 있지 않았어? 루나의 기술을 내가 익힌 적도 있고.”
“알고는 있었죠. 있었는데... 설마 그걸 다 배울 수 있을거라고 누가 생각해요? 일단 상식을 벗어났다고요. 기술들의 종류만 해도 300개가 넘는데.”
“뭐, 그렇긴 하군.”
쿵.
바닥의 요철을 밟으며 살짝 떠오른 스쿠터가 바닥에 착지했다. 준은 루나의 허리를 바짝 당겨 잡으며 입을 열었다. 손에 느껴지는 감각이 말랑말랑한 것이 꽤나 기분이 좋았다.
“의외로 뱃살이... 으아아!”
갑자기 스쿠터가 급격히 비틀거리며 당장이라도 넘어질 것처럼 휘청이기 시작했다.
“무, 무, 무, 무슨 소리를 하는 거에요! 사고날 뻔 했잖아요!”
“아니 그렇게 당황할 줄은 몰랐지. 뱃살이 좀 있다... 으앗!”
또 다시 스쿠터가 비틀거리기 시작하자 준은 루나의 허리를 꽉잡았다. 하지만 그게 오히려 역효과다 된 것인지 루나의 몸이 더욱 경직되었다.
끼익.
거의 언덕으로 올라갈 뻔한 스쿠터가 뒤집어 지기 직전에 가까스로 멈추었다. 루나는 완전히 붉어진 얼굴을 하고 숨을 가쁘게 쉬고 있었다. 운전대를 잡으랴 자신의 배를 부여잡고 있는 준을 신경쓰느라 심력이 많이 소모된 것이다.
“바꿔요.”
“응? 아, 알았어.”
준은 루나대신 스쿠터의 앞으로 옮겨탔다. 그러자 조용히 루나가 준의 등뒤에 앉고서는 그의 등에 어깨를 기대었다.
다시 스쿠터가 출발하자 루나가 입을 열었다.
“저기... 그렇게 배가 많이 나왔어요?”
“아니. 귀여운데.”
“그러니까 배가 나왔냐고요.”
“그런 걸 뭐하러 신경써. 루나는 충분히 예쁘잖아. 그깟 배 약간 나와도 충분히 귀엽다고.”
“정말... 아무것도 모르고...”
루나는 준의 가슴을 꼭 끌어안았다. 준은 등뒤에서 느껴지는 부드러운 감촉을 느끼며 핸들을 당겼다. 왜 그런 걸로 신경쓰는지는 모르겠지만, 더 이상 물어보는 것도 눈치가 없는 것 같아 더 이상은 묻지 않았다.
바다다당-
스쿠터가 속도를 내며 빠른 속도로 달렸고, 루나가 더욱 준의 가슴을 끌어안았다.
“이제 거의 다 와간다. 저기만 지나면 다시 험비를 꺼낼 수 있을거야.”
“이대로 가는 것도 좋은데...”
“뭐, 그것도 나쁘지 않겠지만, 곧 모래바람이 불거라고. 이걸 타고 가다가는 저걸 다 뒤집어 써야... 음?”
준은 말을 멈췄다. 언덕이 끝나가는 지점에서 무언가 이상한 느낌이 든 것이다. 준은 그것이 미래예지를 통한 감각이라는 것을 느끼고는 스쿠터를 세웠다.
끼익-
“잠깐만.”
준은 스쿠터에서 내려 천천히 앞으로 걸어갔다. 준은 고개를 들어 양쪽 언덕을 바라보았다.
후두둑-
오른쪽 언덕위에서 돌부스러기 같은 것이 떨어져 내렸다. 준은 가볍게 한숨을 쉬었다.
“설마하니 이런 곳에 사람이 있을 줄이야...”
혼잣말 치고는 꽤나 큰 소리였다. 그의 말이 떨어지자 마자 양쪽 언덕위에서 수십 명의 사람들이 우르르 뛰어내려오기 시작했다.
“호롤로로로로!”
“우아아아아!”
“죽여라아아아아!”
저마다 눈에 불을 켜고 달려내려오는 이들은 다름아닌 밴디트였다. 이미 만여명에 가까운 밴디트가 준과 펠로우쉽에 의해서 처리되긴 했지만, 이 행성은 넓었고, 밴디트들은 곳곳에 숨어 살고 있었다. 하지만 도시에서 2000킬로미터나 떨어져 있는 곳에서까지 만나게 될 거라고는 생각지도 못한 상황이었다.
“델타폰도 없을테고... 야만인을 넘어 거의 짐승수준이겠군.”
준은 귀찬다는 표정으로 자신을 향해 뛰어내려오는 밴디트들을 향해 손을 휘저었다. 그러자 순식간에 바닥의 흙이 퍼올려지며 밴디트들의 시야를 완전히 가렸다.
“으엇?”
“뭐, 뭐야! 함정인가?”
“바보녀석아! 함정은 우리가 판거잖아!”
“젠장. 그럼 모래폭풍인가?”
“닥치고 뛰어!”
당황스런 상황속에서도 녀석들은 시야를 자욱하게 가린 흙먼지를 뚫고 준의 앞으로 뛰어내렸다. 하지만 흙먼지를 뚫고 도착한 장소에서 그들은 자신들의 눈을 의심해야만 하는 상황에 맞닥뜨려야 했다.
“어...?”
그들은 허공에 떠있는 수십개의 니들건을 보며 얼빠진 얼굴을 할수밖에 없었다. 거의 짐승수준의 생활을 하고 있다고는 하지만, 어쨌든 그들도 한때는 문명인이었던 이들이다. 허공에 떠 있는 저 물건이 총기라는 것을 모를리가 없었다.
“씨발... 웬일로 운이 좋더라니...”
“이런 곳에 여자가 있을때는 이유가 있을거라고 했잖아. 이 개자식아.”
“멀리서 얼굴만 보고도 거시기를 주물럭대던 새끼가...!”
그들은 내려올때의 기세와는 정반대로 완전히 주눅이 들어 준의 앞에서 멈춰있었다. 일단 염동력에, 총기까지 지니고 있는 이상 수가 몇명이든 이길 수 없다는 것은 자명한 일이었다. 그들 중에중급헌터라도 하나 있으면 어떻게 비벼볼만 했지만 다들 별볼일 없는 실력들이었던 것이다.
준은 차가운 눈빛으로 그들을 돌아보았다. 양쪽 언덕에서 내려온 밴디트의 숫자는 총 34명. 준은 그들을 하나도 살려보낼 생각이 없었다.
꿀꺽.
밴디트들 사이에서 침을 삼키는 소리가 들렸다. 그들역시 준의 표정이 심상치 않음을 느끼고 있었다. 여차하면 도망칠 심산으로 다들 다리에 힘을 모으고 있던 찰나였다.
“준.”
스쿠터에 기대어 이쪽을 바라보고 있던 루나가 입을 열었다. 그러자 한순간에 긴장이 팽배했던 분위기에 잠시의 여유가 생겼다.
“튀어!”
다다다다다!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밴디트들이 필사적으로 도망치기 시작했다. 준은 그들을 가만히 보다가 고개를 젓고는 천천히 루나에게 다가갔다.
뭐랄까, 저렇게까지 필사적으로 도망치는 녀석들을 보니 뭔가 맥이 빠져버린 느낌이었다. 게다가 루나도 그들을 죽이고 싶어하지 않는 눈치였다.
“무슨 일이야?”
“그냥... 오늘은 누군가를 죽이지 않았으면 하는 생각이 들어서요.”
“오늘 무슨 날인건가? 기념일 같은 건 아닌 거 같은데... 설마 만난지 100일이라던가.”
“요즘 누가 그런 걸 신경써요. 저도 준을 언제 만났는지 가물가물한데.”
“실망이야. 그정도는 기억해야지.”
“그건 중요한게 아니잖아요. 준도 모르죠?”
“끙... 지능이 높아봐야 소용이 없군.”
하지만 그건 준의 잘못이 아니었다. 애초에 알카트뢰즈에서 달력을 볼일이 많지 않기 때문이었다. 퇴소날이 얼마 남지 않은 수감자들이야 하루하루 꼽으면서 나갈날을 기다리지만 대부분의 수형자들은 달력이 있는지도 모르는 이들이 부지기수였다.
“그럼 출발해요. 저기 보이는 언덕만 넘어가면 노천광산이 보일거에요.”
“얼렁뚱땅 넘어갈 생각하지 말라고. 내가 눈치가 없긴 하지만, 바보는 아니라고.”
“흠... 그게... 말이죠... 날씨가 좀 더운데... 차에 들어가서 이야기 하면 안될까요?”
“흠.”
준은 눈을 가늘게 뜨고는 그녀를 쳐다보았지만, 루나는 덥다며 손부채질을 하며 준을 종용할 뿐이었다. 그는 하는 수 없이 인벤토리에 스쿠터를 넣고는 다시 험비를 꺼내었다. 두 사람이 차량에 탑승하고 천천히 차량이 출발하자, 루나가 먼저 입을 열었다.
“저기 준...”
“응. 말해.”
“아니에요.”
루나는 고개를 푹 숙이고는 다시 입을 다물었다.
“뭐야. 그러니까 더 의심스럽잖아. 하고 싶은 말이 있으면 하라고. 내가 뭐 그렇게 어려운 사람은 아니잖아.”
“준은 충분히 어려운 사람인데요.”
“무슨 소리야? 나처럼 만만한 인간이 어디있다고. 막스가 뒤에서 맨날 나보고 호구라고 놀리는 것도 알고 있다고.”
“풋. 그거야 그냥 농담으로 하는 얘기죠. 준이 정말 호구라면 그가 준의 말을 들을리가 없잖아요.”
“그야 떨어지는게 있으니까 그렇겠지. 그 양반은 자기몫을 안챙겨주면 당장이라도 전부 때려칠 인간이니까.”
“그야 당연한 거죠. 노동의 댓가인데.”
“그런 것 치곤 많이 받아가잖아.”
“따지고 보면 막스가 제일 수익이 낮을걸요? 사실 밥이나 마스터에 비해서 막스가 가져가는 경험치는 거의 없다시피 하잖아요.”
“그, 그런가...”
준은 곰곰이 따져보았다. 그러고보니 연장자 3인방 중에서 가장 수익이 적은 것이 막스였다. 밥은 장사를 통해서 경험치와 돈을 엄청나게 벌어들이고 있었고, 마스터도 배달요리를 통해 엄청난 수익을 벌어들였다.
하지만 목숨을 걸고 전투에 참여한 막스는 거의 손에 떨어지는 것이 없었던 것이다.
“심지어 그는 딸린 식구도 셋이나 있는데요.”
“...그러네, 그 녀석 생각보다 좋은 녀석이었잖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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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요일 아침입니다. 역시 일요일엔 짜파게티죠. 전 먹으러 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