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프로젝트 델타-200화 (200/5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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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로 그라비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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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입.’

고오오-

준의 몸이 순식간에 일그러지기 시작했다. 외부의 관찰자인, 위성영상을 바라보던 사람들에게는 준이 마치 구형의 유리구슬 뒤쪽에 있는 것처럼 보였을 것이다.

하지만 준에게는 공간이 급격한 속도로 자신에게로 다가오는 것처럼 여겨졌다. 도저히 닿을 수 없을 것 같았던 궤도왕복선을 지나쳐, 화물선 이카루스의 내부로 돌입했다. 워프드라이브를 통해 4차원 왜곡점을 통과한 준은 화물선의 외벽을 부수지 않고서 그 안으로 들어설 수 있었다. 그의 눈에 현시창을 통해 알카트뢰즈를 바라보고 있는 루나 미스틸테인의 모습이 들어왔다.

혹시라도 죽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을 때, 가장 먼저 떠오른 것은 준의 얼굴이었다. 원래는 아무말도 남기지 않으려 했다. 굳이 메시지를 남겨봐야, 남은 사람만 더 슬퍼하게 될테니까.

‘날 위해 슬퍼해줄까?’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당연한 대답이지만 그는 슬퍼할 것이다. 어쩌면 자신이 생각했던 것 보다도 더 그녀를 애도해 줄 것이다. 그리고 당연하게도, 언젠가는 자신을 잊고 살아가게 될 것이다.

얄미웠다. 어쩐지 손해를 보는 느낌이었다.

‘날 잊지 않았으면 좋겠어.’

이기적이긴 하다. 그래도 죽기 전에 이 정도 욕심을 부리는 것 정도는 나쁘지 않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녀는 준에게 마지막 메시지를 남겼다. 기다리겠다고, 어쩌면 남은 평생동안 기억에 남을 문장을 찾아낸 그녀는 스스로의 천재성에 감탄하며 미소를 지었다.

‘고생 좀 하라지. 뭐.’

현시창을 가득 메우는 궤도왕복선의 모습이 보였다. 두 우주선이 충돌하기 직전, 그녀는 조용히 눈을 감았다. 너무 아프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미안. 조금 늦었지?”

그 순간 그녀의 귓가에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녀가 깜작 놀라며 뒤를 돌아보려는 순간, 엄청난 폭발이 뒤따랐다. 궤도왕복선과 화물선이 충돌한 것이다.

번쩍!

시야가 명멸하고, 고막은 엄청난 굉음으로 인해 제 기능을 상실했다. 엄청난 화염과, 잔해들이 비산하는 가운데, 루나는 자신을 단단히 감싸고 있는 준의 팔을 느꼈다.

‘어떻게...?’

그가 자신을 구하러 와주었다는 것 보다 먼저, 대체 그가 어떻게 이곳에 왔는가 하는 의문이 먼저 들었다. 준이 제시간에 자신을 구하러 올 수 있는 가능성은 ‘0’퍼센트였다. 그 어떤 가능성을 제시한다고 해도 그녀는 모두 불가능하다며 고개를 저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는 이 자리에 도달해 있었고, 그녀가 생각할 수 있는 그 모든 가능성을 뛰어넘어 그녀를 폭발속에서 지켜주고 있었다.

대체 어떻게 한 걸까? 그녀의 머리속에 수많은 가능성들이 교차했고, 그녀는 이내 한 가지 사실을 깨달았다.

‘바보. 나중에 물어보면 되잖아.’

그 생각이 들자, 일순간 긴장이 풀리며 정신이 아득해져왔다. 이 우주공간, 생존에 필요한 그 어떤 조건도 존재하지 않는 극한의 환경 속에서, 세포와 DNA를 파괴하는 치명적인 방사능이 쏟아지는 곳에서, 그녀는 그 어느때보다도 안전하다는 느낌이 들었다.

하늘에 태양이 또 하나 생긴 것 같았던 폭발 이후, 준은 빠른 속도로 움직이고 있었다. 폭발의 반작용으로 빠르게 궤도를 이탈하여 움직이고 있었던 것이다.

“성공인가...”

준은 루나를 품에 안고서 전력으로 EX필드를 전개했다. 그의 육체 주변에는 육각형 모양으로 촘촘하게 얽혀 있는 푸른색의 실드가 펼쳐져 있었다. 그것은 다름아닌 시어도어 대령이 사용했던 항력의 전개를 흉내낸 것이다.

그것이 가능하리라고 생각한 적도 없었다. 그저 전력을 다해 루나가 있는 곳까지 도달했고, 폭발의 중심에서 루나를 지키기 위해서는 무엇이라도 하려고 했던 것뿐이다. 헌데 자연스럽게 사용이 가능했고, 그것이 현재 준과 루나를 우주공간의 극한환경속에서 지켜주고 있었다.

준은 프로필을 열어 자신의 상태를 확인했다.

EX필드 5255/100000

체력 31241/65535 마나 785/65535(*20%)

힘 255(+16)  민첩성 255(+14)  지능 255(+16)  정신력 255(+15)

마나는 겨우 1퍼센트를 넘을 정도로 완전히 고갈 된 상태였다. 하지만 그보다 중요한 수치는 다름아닌 EX필드였다. 현재 5천을 찍고 있는 EX필드는 10만이라는 수치에서 거의 바닥까지 떨어진 상태였다.

그나마 그 정도로 피해를 줄일 수 있었던 것도, 준이 도착한 지점에서 뒤쪽으로 워프드라이브의 후폭풍이 일었고, 그로인해 폭발의 충격을 어느정도 상쇄해주었기 때문이었다. 결정체폭발이 단순 물리력이 아니라 엑조틱에너지에 의한것이라고 생각해보면 EX필드가 버텨준 것은 기적과도 같은 일이었다.

물론 단순히 EX필드만을 믿었던 것은 아니다. 준은 남아있는 모든 마나를 끌어내 관성제어를 펼쳤고, 엑조틱에너지의 관성력을 최대한 반대로 밀었다. 그것이 완벽하지는 않지만 어느정도는 피해를 줄이는데 일조했고, 거기에 EX필드의 방어까지 더해져 겨우 버텨낼 수 있었던 것이다.

슈우우-

준의 몸은 빠르게 무중력 공간을 움직였다. 현재 그는 여전히 EX필드를 펼친 상태로 움직이고 있었다. 완전히 유형화 된 필드의 내부는 인간의 육체가 충분히 버틸 수 있을 정도의 환경을 제공하고 있었다. 문제가 하나 있다면 중력이 없다는 것과, 숨을 쉴 수 있는 산소가 없다는 것이다.

당장 문제가 되는 것은 산소부족 문제였다. 현재 루나의 의식이 없는 것도 뇌에 제대로 산소가 공급되지 않기 때문일 확률이 높았다. 이미 인간의 신체를 뛰어넘은 준조차도 의식이 흐려지고 있는 상황인데 평범한 인간에 불과한 루나가 버틸 수 있을리 없었다.

그녀의 체력바가 실시간으로 점점 줄어들고 있었다. 이대로는 기껏 구한 목숨을 잃게 될 확률도 있었다.

하지만 곧 그런 고민을 할필요가 없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시스템이 메시지를 보내왔기 때문이었다.

-생명유지시스템을 가동합니다. 이 기능은 사용자가 극한환경에 노출되었을 경우에 일시적으로 개방됩니다.

치이익-

시스템메시지가 들려오자, 준이 펼쳐낸 필드안에 적당한 농도의 공기가 생성되기 시작했다. 델타의 물질재조합 장치를 이용해 생명유지에 필요한 혼합공기를 만드는 것이다.

“위급시에만 사용... 이라는 건가? 고마운 기능이로군.”

준은 처음으로 우주공간에서 입을 열었다. 목소리가 제대로 나오는 것을 보니 확실히 공기와 거의 비슷한 농도와 밀도로 만들어짐을 확인할 수 있었다.

“으음...”

그리고 EX필드안에 공기가 가득차자 루나의 의식이 조금씩 돌아오는 모양이었다. 어쩌면 뇌신경에 손상이 있을지도 몰라, 준은 걱정스러운 눈으로 그녀가 정신을 차릴때까지 기다렸다.

루나는 천천히 눈을 떴다. 처음 눈에 들어온 것은 걱정스러운 눈빛으로 자신을 바라보는 준의 얼굴이었다. 그녀는 천천히 준의 얼굴을 향해 손을 뻗었다.

“진짜네...”

“그럼 뭐라고 생각한거야?”

“아아... 그냥 죽기 전에 본 꿈같은 거라고 생각했어요. 아니, 어쩌면 지금 정말로 죽은 건지도 모르겠네요.”

루나는 멍한 눈빛으로 준을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준이 피식 웃으며 말했다.

“걱정마. 우리는 살아있으니까.”

“그러면 정말 좋겠....아?”

그제서야 주변을 둘러볼 여유가 생긴 루나가 고개를 돌리다가 오른쪽에 있는 거대한 알카트뢰즈 행성을 보고는 낮은 탄식을 흘렸다.

“여, 여기가 어디에요?”

“보시다시피, 위성궤도지.”

“어떻게 우리가 여기에 있는 거에요? 정말 죽어서 영혼이 된건가요?”

“글... 영혼인지 아닌지는 확인해 보면 알겠지.”

“무슨... 읍?”

준은 그녀에게 다가가 조용히 입을 맞추었다. 처음에는 당황하던 루나였지만, 이내 준의 움직임에 맞추어 호응하기 시작했다. 두 사람의 혀가 뜨겁게 얽혔고, 그녀는 지금 상황이 꿈이 아니라는 것을 확실하게 느낄 수 있었다.

“이제 알겠지?”

“하... 짓궂은 사람 같으니... 그냥 말로 해도 되잖아요.”

“그래서 싫어?”

“싫은 건 아니지만...”

루나는 붉어진 얼굴을 감추기 위해 고개를 푹 숙여 준의 가슴에 얼굴을 묻었다. 그제서야 그녀는 준의 몸이 이상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준... 몸이...”

“아. 신경쓰지마. 부작용 같은거니까.”

“부작용이라니요?”

“약간 무리를 했어. 아마 시간이 지나면 다시 돌아오지 않을까 싶은데.”

“확실한거에요? 그러고 보니 등뒤에 날개는 또...”

“악취미지?”

“아무리봐도 외도화가 진행되고 있는 것 같은데요. 정말 괜챦은 건가요?”

“일단은 괜찮다고 생각하긴 하는데, 어느정도 안정화 되어 있는 상태고, 델타에서도 더 이상 경고가 없는 걸로 봐서는 이대로 고착화 되거나, 아니면 다시 원래대로 돌아오거나 둘 중 하나겠지. 하지만 아마 곧 원래대로 돌아갈 거라고 생각해.”

“어떻게 그렇게 확신하는 거에요?”

“그야... 내 몸에서 일어나는 일이니까. 명확히 설명하긴 힘들지만, 델타가 안정화 되면서 조금씩 힘이 약해지는 걸 느끼고 있거든.”

“그나마 다행이네요. 헌데 여기까지는 어떻게 온 거에요?”

“그냥 날아서.”

“농담하지 말고요.”

“흠... 정말인데. 하긴 맨몸으로 대기권 돌파라니, 내가 생각해도 좀 가당찮은 짓이긴 하군...”

“설마. 정말인가요?”

“지금 상황도 정상적인 상황은 아니잖아?”

준은 그녀와 함께 허공에서 한바퀴 빙글 돌았다. 루나는 깜짝 놀라 준을 더욱 끌어안았다.

“그, 그렇긴 한데... 그럼 우린 언제까지 이러고 있어야 하는 거죠?”

그녀는 아무래도 불안 한 듯 입을 열었다. 그도 그렇것이 아무런 안전장비 없이 위성궤도에서 둥둥 떠다닌다는 것은 어지간한 정신력으로 버틸 수 있을 만한 게 아니었다. 그렇지 않아도 적막한데다가 거대한 알카트뢰즈를 바라보고 있으면 정신이 아찔할 정도의 위압감을 받는다.

“글세. 몇시간이면 될거야. 소모한 마나를 어느정도 채우고 나면 돌아갈 수 있겠지. 아마도, 그때까지는 여기에서 쉬어야 할거야.”

“몇시간이면 되는 건가요. 그나마 다행이네요. 꼼짝없이 이곳에서 늙어죽을때까지 떠다녀야 하는 건 아닌가 걱정했거든요.”

“설마. 그 전에 굶어죽을걸.”

“농담은 농담으로 좀 받아들여요.”

“하하. 이제 좀 여유가 생겼나보지?”

준은 툴툴 거리는 루나를 보며 웃음을 터뜨렸다.

“참. 그러고 보니 플랫폼은 어떻게 됐어요?”

“이제야 궁금한거야?”

“솔직히 완전 잊고 있었어요.”

“사실 나도 그래. 잠깐 알아볼게 기다려.”

준이 플랫폼의 상황을 알아보기 위해, 인벤토리에서 델타폰을 하나 꺼내 전화를 걸었다. 신호음이 울리고, 곧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제임스 맥어보이 였다.

[누구...?]

[준 알스버그다.]

[헉? 정말 살아있는 건가?]

[어쩌다보니. 헌데 지금 플랫폼 상황은 어떻지?]

[우리는 괜찮아. 그보다 미스틸테인 양은?]

[이쪽도 괜찮아. 다만 좀 사정이 생겨서 당장 돌아갈 수는 없을 것 같아.]

[사정이라니 대체...]

제임스는 방금전까지 위성영상을 통해서 그의 모습을 확인한 상태였다. 하지만 돌연 영상이 일그러지더니 그의 모습이 사라졌다. 그의 모습을 찾기도 전에 왕복선과 화물선이 충돌해 엄청난 폭발을 일으킨 상황이었다.

지금 플랫폼의 통제실에서는 상황을 파악하느라 정신이 없었다. 그도 그럴 것이 통제실에서는 화물선과 왕복선이 충돌한다는 사실조차도 제대로 알고 있지 못했던 것이다. 그나마 델타폰을 가지고 있던 이 한 명이 겨우 지금 상황을 알아내고는 플랫폼의 피해상황과, 폭발의 여파 등에 의해서 조사하고 있던 중이었다.

물론 이미 해고당한 제임스는 거기에 끼어들 이유가 없었다.

============================ 작품 후기 ============================

먼저 이틀동안이나 말도 없이 휴재를 해서 죄송하다는 말씀 먼저 드립니다.

헬스클럽에 등록해서 운동을 한다는 것이 너무 무리를 했는지, 컨디션이 망가지면서 결국 이틀이나 글을 못썼습니다.

오늘도 겨우겨우 한 편 써서 올립니다. 어떻게든 빠른 시간에 다시 페이스를 끌어올리도록 하겠습낟. 이번 달 들어 말없는 휴재가 많은 점 다시한번 죄송하다는 말씀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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