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197 ----------------------------------------------
제로 그라비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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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나...
준은 식은땀을 흘리며 두려움과 맞서싸우고 있을 그녀의 모습을 떠올렸다. 자신이라면 당장이라도 뛰쳐나왔을 것이다. 하지만 그녀는 준과 달랐다. 그것이 정의감의 발로인지 자기희생이라는 숭고한 목적을 바탕으로 한 것인지는 모른다. 하지만 하나는 확실했다. 해야 하는 일이라는 생각이 들었을 때, 목숨을 걸고서라도 완수해내고자 하는 의지가 그녀에게 있다는 것.
준은 스스로에게 반문했다.
자신은 그럴 각오가 되어있었던 것일까?
그러한 각오를 다진 적이 단 한번이라도 있었을까?
마치 게임처럼, 언제든지 다시 시작할 수 있는 이야기처럼 이 싸움을 바라보고 있었던 것은 아닐까?
그는 그 질문에 선뜻 대답할 수 없었다. 하지만 지금 이 순간, 그가 해야 할 일은 명백했다.
-기다려. 내가 무슨 수를 써서라도 방법을 찾아볼게.
-7분 남았어요. 준.
-기다리고 있어.
준은 통신을 마치자마자 곁에서 가쁜 숨을 몰아쉬고 있는 시어도어 대령을 돌아보았다. 그는 허공을 바라보고 있었다. 이제는 눈으로 보이지 않는 왕복선의 궤적을 쫓고 있는 지도 모른다. 하지만 준은 그런 감상을 지켜볼 이유도, 여유도 없었다.
그는 발치에 굴러다니고 있는 니들리스 스패너 하나를 들어 시어도어 대령의 머리를 내리찍었다.
퍽, 하는 소리와 함께 시어도어 대령의 머리가 터졌다.
준은 피가 흐르는 그의 육체를 자동분류했다. 그의 시체가 서서히 사라지자, 준은 검게 물들다 못해 푸른빛마저 감도는 던전핵의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준은 가만히 그것을 들여다보았다. 조금의 빛도 반사하지 않는 그것은 마치 모든 것을 빨아들이는 블랙홀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시미.”
“응?”
“만약 내가 이상해지면, 당장 도망치도록 해.”
“왜요?”
“싫으면 말고.”
준은 괜한 소릴 했다 싶은지 웃음을 흘렸다. 이 녀석이라면 무슨일이 있더라도 자신의 곁에 있어줄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건 신뢰이전의 문제였다. 그녀를 흙속에서 끄집어 낸 순간, 그녀와 자신은 뗄레야 뗄 수 없는 관계가 된 것이다.
“윽.”
지금껏 경험하지 못한 어마어마한 사기가 준의 팔을 타고 침범해 오기 시작했다. 그의 머리가 울릴 정도로 시스템메시지가 비명을 질러댔다.
-승인되지 않은 신호가 사용자의 신체를 통해 침투합니다. 위험요소로 판단되어 강제차단합니다.
-승인되지 않은 신호가 사용자의 신체를 통해 침투합니다. 위험요소로 판단되어 강제차단합니다.
-승인되지 않은 신호가 사용자의 신체를 통해 침투합니다. 위험요소로 판단되어 강제차단합니다.
같은 메시지가 중첩되어 반복되었다.
“사실 궁금하긴 했어. 이걸 먹으면 어떻게 될지.”
준은 생각했다. 델타는 엑조틱 에너지를 마나로 변환하는 리제너레이터의 역할을 한다. 반면, 던전핵은 정제되지 않은, 불순물이 가득한 엑조틱에너지를 끊임없이 생산하는 제너레이터의 역할을 하여 인간의 육체와 정신을 끔찍하리만치 오염시킨다.
그렇다면 두 개를 합치면 어떻게 될까? 던전핵에서 생산되는 엑조틱에너지를 델타가 재생산하여 그에게 마나를 공급하지 않을까?
문제는 던전핵의 힘과 델타의 힘이 충돌할 경우 생기는 부작용이었다. 그 부작용은 그대로 준의 육체에 부담으로 작용하게 될 것이다.
생각은 길었고 행동은 짧았다. 그는 들고 있던 검은색 결정체를 주저없이 입안에 털어넣었다.
던전핵이 입안에서 순식간에 녹아들었다. 준은 그것이 결정체를 삼킬 때 느꼈던 감각과 비슷하다는 생각을 했다. 곁에서 지켜보던 시미가 깜짝 놀라며 준을 바라보았다.
“먹었어요? 그거 먹으면 안되잖아요?”
그는 그런 시미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입을 열었다.
“그래. 이런 건 애들은 먹으면 안 돼.”
쿠웅!
갑자기 엄청난 충격에 후두부를 강타하는 느낌이 들었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머리를 시작으로 그의 온몸을 거대한 주먹이 사정없이 내리치는 것 같은 느낌이었다.
“큭!”
준은 자신도 모르게 무릎을 꿇으며 주저앉았다. 갑작스레 찾아온 둔통에 그는 정신을 차릴 수 없었다.
-불특정한 정보가 침투합니다. 방화벽이 무력화 됩니다. ㅅ사용자의 시스템에 12#@알 수 없sms는 정보가 업로드 됩...니...뚫qnpfq?
이윽고 시스템이 오류를 뿜어내기 시작했다. 보통의 던전핵이라면 설령 준이 던전핵을 먹었더라도 그리 어렵지 않게 차단하여 경험치로 환산했을 수도 있다. 하지만 이것은 파란색 변이외도인 시어도어 대령의 던전핵이었다.
아무리 시스템의 방어가 공고하더라도 이정도로 높은 출력을 가진 던전핵을 막아내기에는 역부족인 듯 했다.
두근. 두근.
이윽고, 던전핵에서 뿜어져 나온 에너지가 준의 주요 장기에 침투하기 시작했다. 폐, 간, 신장, 그리고 심장에 파고드는 던전핵의 기운은 그를 점점 인간이 아닌, 그 무언가로 변이시키기 시작했다. 의식이 흐려지며 눈앞의 세계가 청적색으로 반전했다. 고통이 희열로 바뀌었다가 곧 이어 더 큰 고통으로 변했다. 심장이 분당 300회가 넘는 속도로 뛰었다.
두근. 두근. 두근. 두근. 두근.
고통은 장기를 넘어 근육과 뼈, 이윽고 온몸의 혈관을 따라 퍼졌다. 전신을 바늘로 찌르는 듯한 고통. 강렬한 애무를 받는 듯한 희열. 얇은 칼로 저미는 듯 한 고통. 온몸의 구멍에서 사정을 하는 듯한 감각. 극단적인 고통과 오르가즘이 반복되며 그의 정신은 점점 황폐해졌다. 그 시간은 몇 초 되지도 않을 정도로 찰나와 같았지만, 그의 심상에서는 몇 년, 몇십 년처럼 길게 느껴졌다.
뿌직!
준의 어깨뼈가 부서지며 끔찍한 소리를 내뱉었다. 비명을 내지를 사이도 없이 대퇴골이 박살났다. 뒤이어 척추가 부서지고, 온몸의 뼈가 산산조각 나기 시작했다. 그나마 두개골이 부서지지 않는 것은 델타가 필사적으로 방어하고 있기 때문인 듯 했다.
그렇게 온몸의 뼈가 부서졌다가 다시 재생하기 시작했다. 과도한 힘에 의해 부서졌다가 델타의 힘에 의해 다시 수복되는 것이다. 이 과정에 빠른 속도로 계속 반복되었다.
“끄으으...”
“아파요?”
그런 준의 앞에 쪼그려 앉은 시미가 조심스럽게 그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거의 의식을 잃어가던 준은 순간이나마 머리가 맑아지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그는 힘겹게 입을 열었다.
“계속...해.”
그녀는 걱정스러운 태도로 부드럽게 준의 머리를 감싸고는 조용히 끌어안았다. 코를 통해 전해진 청량한 향기가 조금씩 그의 폐부로 파고들었다.
그러자 흐릿해지려는 의식이 조금씩 되돌아오기 시작했다. 준은 천천히 고개를 움직여 자신의 몸을 바라보았다. 그의 몸은 절반가량이 인간이라고 할 수 없는 형태로 변이한 상태였다. 검은털로 뒤덮인 근육질의 몸과, 이마에 돋아난 두 개의 뿔. 그리고 등뒤에 펼쳐져 있는 7개의 뼈날개는 마치 악마의 형상을 나타내는 듯 했다.
“윽.”
준은 이를 악물었다. 고통과 쾌감이 동전의 양면처럼 반전하며 여전히 그의 감각을 괴롭히고 있었다. 하지만 차츰 익숙해지기 시작하자, 알 수 없는 힘이 그의 내부에서 솟아오르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그것은 마나와는 또 다른 느낌의 힘. 인간의 육체로는 견딜 수 없는, 날카롭고 혼돈으로 가득 찬 힘이었다.
‘이것이 엑조틱 에너지인가.’
준의 몸속에서는 여전히 던전핵이 뿜어내는 엑조틱에너지가 휘몰아치고 있었다. 하지만 몇차례 부서지며 수복되기를 반복한 그의 육체는 서서히 그에 적응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이윽고 던전핵에서 내뿜는 엑조틱 에너지가 델타에 의해 마나로 변환되기 시작했다.
-시스템 수복중... 10%...20%...70%...71%
시스템 메시지가 다시금 눈앞에 떠올랐다. 아직 완벽하지는 않지만, 육체도 회복되었고 시스템도 일부를 제외하면 정상작동하기 시작했다.
준은 자신의 두 손을 보았다. 그 안에 무한한 힘이 담겨있는 듯한 착각이 일었다.
준은 프로필을 열어 자신의 상태를 확인했다.
EX필드 100000/100000
체력 65535/65535 마나 65535/65535(*20%)
힘 255(+16) 민첩성 255(+14) 지능 255(+16) 정신력 255(+15)
“이게 대체...”
준은 자신의 눈을 의심했다. 정상적인 상태로는 도저히 나올 수 없는 스탯이 프로필에 찍혀 있었다. 이정도 스탯을 찍기 위해서는 레벨이 100이 되어도 불가능할 것이다.
“시스템오류인건가?”
실제로 스탯이 올라가게 되면 새로운 기술들이 열리게 되는데, 현재 그런 낌새가 없는 것으로 보아 던전핵을 먹는 바람에 생긴 오류인 것으로 추정되었다.
오류든 뭐든 그런 것은 중요하지 않았다. 지금은 힘이 필요했고, 그 힘이 자신의 손에 쥐어져 있다는 사실만이 중요했다.
준은 고개를 들어 하늘을 바라보았다. 시간이 너무 지났다. 이제는 천리안으로도 왕복선의 위치를 확인할 수 없었다.
쾅!
엄청난 소리와 함께, 준의 몸이 허공으로 솟구쳤다.
타탁. 탁. 타탁.
루나는 아무도 없는 함교내에서 디스플레이를 들여다보며 시시각각 전해오는 정보에 따라서 계속해서 궤도를 수정했다. 카운트다운은 멈추었다가 재시행되었고, 타이핑 속도는 빨라졌다 느려졌다를 반복했다. 그녀는 어느순간 준의 모습이 영상에서 사라졌음을 깨달았다.
“어디로 간거지?”
위성에서 송출하는 영상인 만큼 그녀가 조작할 수는 없었다. 그녀는 다른 한편으로 왕복선을 비추고 있는 영상을 확인했다. 거리는 서서히 좁혀지고 있었다.
카운트다운은 30초를 남겨두고 있었다.
“후.”
그녀는 크게 심호흡을 했다. 현시창의 바깥은 평온했다. 잠시 후 눈앞에 나타날 파멸의 사신을 맞이하기 위해 자리에서 일어난 그녀는 조용히 입을 열었다.
“마지막으로 얼굴정도는 보고 싶었는데.”
작별인사라도 할까 싶었지만, 이내 고개를 저었다. 괜히 그래봐야 남은 사람을 더욱 힘들게 할 뿐이다. 그녀는 담담한 눈으로 현시창의 바깥을 바라보았다. 아름답다고 할 수는 없는 알카트뢰즈의 풍경이지만, 그래도 그 장엄함은 썩 마음에 들었다.
10초가 남았을 무렵. 멀리 반짝이는 은색의 점이 보이기 시작했다.
그리고 정말 놀랍게도, 단 10초 만에 점으로 보였던 왕복선이 시야를 가득 메울 만큼 코앞에 다가왔다. 공포가 일 틈도 없었다. 두려움도 느끼지 않았다.
루나는 마지막 순간 한 마디 메시지를 남겼다.
-기다릴게요.
번쩍!
다음 순간, 궤도왕복선과 화물선 이카루스가 충돌하며 폭발을 일으켰다. 지상에서도 보일 정도의 거대한 폭발이었다.
============================ 작품 후기 ============================
짧아요. 짧습니다.
하지만 전 이만 자러가야 하므로 바이바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