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프로젝트 델타-196화 (196/540)

0196 ----------------------------------------------

제로 그라비티

*

*

*

키키킹---

이카루스호의 외장이 착륙장의 격벽에 긁히며 소음을 내었다. 루나는 황급히 조종간을 움직여 함선의 자세를 바로잡았다.

“후우.”

식은땀이 흘렀다. 루나는 이마를 훔치며 집중했다. 이윽고 1차 격벽을 빠져나오고, 격벽이 플랫폼과 차단되었다.

기잉- 철컹-

후아아-

이윽고 2차 격벽이 열리며 내부의 공기가 모두 빠져나가자 기압수치가 0으로 떨어졌다. 아직 착륙장 내부라고는 하지면 이곳은 실질적으로 우주공간이나 다름없는 지역이었다.

그녀는 조심스럽게 함선을 움직여 착륙장의 2차 격벽을 향해 움직였다.

[잘하고 있습니다. 이대로 자세를 유지하시면 됩니다.]

제임스의 목소리가 들려왔지만 그녀는 그가 무슨 말을 하는지조차 신경쓰지 못할 만큼 집중하고 있었다.

-------!

이윽고 이카루스호가 소리도 없이 플랫폼에서 빠져나왔다. 짧은 적막감과 함께, 현시창을 통해 들어오는 강렬한 빛에 현기증이 일었다.

타닥타탁.

그녀는 조종간을 자동으로 설정한 후, 컴퓨터를 조작하여 궤도왕복선의 예측경로로 함선을 움직였다. 왕복선이 실제로 폭발 할 것인지 확신할 수는 없지만, 최악의 사태를 가정한다면 가능한 한 플랫폼에서 멀리 떨어져야 했다.

‘결정도 10을 기준으로 했을 때 개별 폭탄의 위력은 그리 높지 않아. 하지만 그것이 연쇄작용을 일으킬 가능성을 생각하면 적어도 소형 핵무기 정도의 위력은 가지고 있다고 봐야겠지.’

일전에 준이 건네준 결정체폭탄을 분석한 결과를 떠올렸다. 폭발력으로만 보자면 그것은 본래 지닌 에너지에 비해 위력이 처참한 수준으로 낮은 편이었다. 준 역시 비슷한 어조로 말한 적이 있었다. 가격대비 효율로 따지자면 극악이라고 했던 것이 과장이 아니었던 것이다.

‘하지만 여럿을 묶어서 사용하면 다르지.’

폭발에 사용되는 엑조틱에너지의 양은 본래 지닌 에너지의 1퍼센트 미만. 나머지는 폭발과정에서 점화되지 못하고 허공으로 사라진다. 그녀는 그 과정에서 연쇄폭발의 가능성을 발견했다. 만약 여러 개의 결정체폭탄이 일정구간안에 밀집되어 폭발할 경우, 낭비되는 엑조틱 에너지의 상당수가 폭발력으로 환산될 수도 있다는 것이 그 가설의 요지였다.

즉, 결정체 폭탄은 다수를 한꺼번에 터뜨릴수록 그 위력이 커진다. 하나의 결정체 폭탄은 차량 한대를 날릴 정도의 위력이지만, 열개가 모이면 전차를 날려버릴 수 있고, 백 개가 모이면 작은 마을 하나를 초토화 시킬 수 있었다.

왕복선 안에 들어있을 결정체폭탄이 몇 개인지는 모르겠지만, 그 화력이 플랫폼을 날려버리기에 부족하지는 않을 것이다.

[지상의 영상을 보내드리겠습니다. 통신채널을 유지해주세요.]

[네. 알겠습니다.]

제임스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무선통신망을 통해 위성영상이 디스플레이에 전송되기 시작했다.

“흠... 잘 안보이네.”

뿌연 먼지처럼 보이는 것들이 화면을 가득 채우고 있었다. 곧 그녀는 그것이 영상의 문제가 아니라, 실제 먼지로 인한 현상이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먼지가 가라앉으며 영상이 서서히 또렷해지자 그녀는 엉망으로 부서지고 망가진 발사대 내부의 상황을 확인할 수 있었다.

[이게 어떻게 된거죠?]

그녀는 놀라며 입을 열었다. 곧 제임스로 부터 통신이 들어왔다.

[클라이드 소장에 의해 재차 실행 된 궤도폭격의 여파입니다. 우리가 움직이는 동안 신나게 쏴댄  모양입니다.]

[다행히 그는 무사한 것 같아요.]

흐릿하게 전송되는 영상속에는 멀쩡한 모습으로 서 있는 준 알스버그의 모습이 있었다. 검은 머리칼이 뜨거운 열기로 인해 생성된 바람에 세차게 휘날렸다.

그의 시선이 자신을 향했다. 아니, 하늘을 향했다. 그리고 그것이 의미하는 바를 그녀는 재빨리 깨달았다.

[왕복선이 발사된 것 같아요.]

[착륙관제소에서는 궤도를 계산할 만한 장비가 없습니다. 통제실이라면 모를까...]

[궤도계산이라면 여기서도 할 수 있으니 걱정마세요.]

그녀는 재빨리 오퍼레이터 콘솔을 만지며 레이더를 이용, 궤도로 진입하는 왕복선의 움직임을 계산했다. 처음 만져보는 기기임에도 불구하고 기본 구조는 크게 다르지 않았다. 그녀는 별다른 어려움 없이 계산을 마치고 그 결과를 디스플레이 창에 띄웠다.

“10분이라... 커피를 내려도 될 시간이네.”

그녀는 왕복선의 궤적을 컴퓨터에 입력하고 화물선으로 하여금 그 이동경로로 향하도록 설정했다.

삑-

대형 디스플레이에 카운트다운이 시작되었다. 10:00:00으로 시작된 카운트는 빠르게 숫자를 바꿔가며 그 크기를 줄여나갔다.

이제는 가만히 내버려 두기만 해도 화물선은 왕복선과 충돌하여 우주의 먼지로 사라지게 될 것이다. 그녀는 콧노래를 흥얼거리며 이동경로에 대한 최종수정까지 마쳤다. 이제 남은 것은 탈출용 셔틀을 이용해서 화물선을 빠져나가는 것이었다.

그녀는 함교를 떠나기 전 디스플레이에 비춰지고 있는 준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그의 눈동자가 가늘게 떨리고 있었다.

그녀의 입가에 살포시 미소가 떠올랐다. 지금껏 자신의 앞에서는 항상 흔들림없는 모습을 보였던 그가, 잠깐이지만 저렇게 당황하는 모습을 보는 것도 나쁘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화를 내려나...?”

아마 사건의 전말을 알게 되면 그는 화를 낼지도 모른다. 어째서 자신에게 맡기지 않고 무리하게 위험한 일에 뛰어들었냐며 소리를 칠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그 모든 것이 루나에게는 새로운 경험이었다. 약간은 두려워하면서, 약간은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그녀는 천천히 함교를 빠져나왔다.

삐삐삐-

“뭐지?”

그녀가 함교에서 막 나선 순간, 갑자기 카운트다운이 멈추며 긴급신호를 울리기 시작했다. 루나는 황급히 함교 안으로 뛰어들어갔다. 양자컴퓨터의 3차원영상을 살펴보던 그녀의 얼굴빛이 새하얗게 변했다.

“궤도가... 흔들리고 있어...”

타타탁!

루나는 떨리는 손으로 빠르게 타이핑을 해나갔다. 왕복선의 수정된 궤도에 맞추어 다시 화물선의 움직임을 수정했다. 하지만 그보다도 빠르게, 다시한번 왕복선의 움직임이 변했다.

“이게 대체 어떻게 된거지?”

그녀는 화물선에 탑재된 카메라를 이용해 대기권에서 떠오르고 있는 왕복선을 비추었다. 화면에 드러난 궤도왕복선은 보기에도 불안정한 모습으로 이리저리 흔들리고 있었다.

“궤도폭격의 충격때문에 로켓엔진에 이상이 생긴거야?”

과거, 그러니까 인간이 달로 로켓을 보낸지 얼마되지 않은 시점이라면 이정도의 엔진이상이 생기면 로켓은 궤도를 이탈한 채 목적지에 도달하지 못한다. 하지만 이런저런 안전장치를 덕지덕지 탑재하고 있는 현세대의 로켓은, 약간의 궤도수정이 있을지언정 문제없이 목적지에 도달한다. 그것이 오히려 루나에게는 치명적으로 작용했다.

즉, 그 왕복선과 랑데뷰 해야하는 화물선의 입장에서도 그때그때 궤도수정을 해주지 않으면 안되었고, 결국 왕복선과 화물선을 충돌시키기 위해서 누군가는 함선내부에 남아 계속해서 오차수정을 해야했고 그것은 화물선에 타고 있는 그녀가 아니면 누구도 할 수 없는 일이었다.

“50퍼센트...의 확률이었나.”

루나는 떨리는 눈동자로 왕복선의 모습을 바라보았다.

준은 시어도어 대령의 말에서 무언가 느껴지는 바가 있었다. 그는 떨리는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설마... 저 왕복선 안에 들어있는 것이...”

“이제야 눈치 챈 것인가... 꽤나 상상력이 부족한 녀석이로군. 그래. 저 안에는 엄청난 양의 결정체 폭탄이 담겨있다. 이대로 왕복선이 플랫폼에 충돌하게 되면 모든 것은 순리대로 흘러가겠지.”

“다, 당장 멈춰!”

“이미 늦었다고 하지 않았나. 로켓은 발사되었다. 이제는 누구도 저녀석을 막을 수 없어.”

“방법이 있을거야!”

“미련이 많은 녀석이군. 큭. 쿨럭.”

준이 멱살을 강하게 쥐자 시어도어 대령은 거칠게 기침을 하며 피를 토했다. 실드가 박살나며 준에게 입은 피해로 인해 그의 온몸은 이미 산산조각이 나 있는 상태였다.

준은 그의 목을 더욱 조이며 위협했다.

뿌드득.

“죽여버리기 전에 말해.”

“웃기는 녀석이군. 그럼 살려둘 생각이었나?”

“제기랄!”

쿵.

그는 시어도어 대령을 바닥으로 내팽개쳤다.

준은 고개를 들어 하늘을 바라보았다. 저것은 틀림없이 플랫폼으로 향해 갈 것이다. 그리고 그곳에는 수많은 사람들과 함께, 또 한 사람이 타고 있었다.

“루나.”

그 이름을 입 밖으로 내 뱉는 순간, 목덜미를 스치는 오한에 그는 몸을 떨었다. 그녀가 그곳에 있다.

-루나. 지금 당장 그곳에서 빠져나와!

준은 황급히 메시지를 보냈다.

-네?

-당장 플랫폼에서 나와. 지금 그곳으로 향해서 폭탄을 잔뜩 싣고 있는 왕복선이 날아가고 있다고. 지금이라면 수송선을 타던 뭘 타던 빠져나올 수 있어!

-준도 알잖아요. 플랫폼이 파괴되면 알카트뢰즈도 무사하지 못해요.

-그건 나중 문제야. 일단 살아나면 어떻게든 방법을 찾을 수 있어.

-그게... 곤란한 일이 좀 생겨서요.

-곤란하다니... 그게 무슨 소리야?

준은 빠르게 그녀의 위치를 탐색했다. 당연히 플랫폼에 있어야 할 그녀의 신호가 이상하게도 플랫폼에서 150킬로미터 떨어진 곳에서 반짝이고 있었다.

‘버그인가? 그럴리가.’

적어도 지금까지 자신이 본 델타의 시스템은 이런류의 문제를 일으킨 적이 없었고, 그것이 이제와서 갑자기 나타날리도 없었다.

-왜 플랫폼 바깥에 나와있는 거야? 혹시 벌써 탈출한거야?

-어떻게 말해야 좋을지 모르겠지만... 왕복선을 막기 위해서 화물선 한척을 이끌고 나와있는 중이에요.

-막다니. 설마 내가 생각하는 그건 아니겠지?

-아마 맞을걸요.

-탈출대책은?

-현재로선 없어요.

준은 순간 숨이 턱 막혔다.

‘이 여자가 지금 대체 무슨 소리를 하는거야?’

당연히 대책이 있을 거라고 생각하고 던진 질문에 돌아 온 것은 절망적인 대답이었다. 준은 자신이 잘못들은 것은 아닐까 하고 재차 질문했지만 역시 같은 답변을 받을 수밖에 없었다.

-미안해요. 저도 일이 이렇게 될 거라고는 생각지 못했어요.

-미안하다니. 지금 그런말을 할 때가 아니잖아! 어떻게든 방법을 찾아보라고!

-궤도왕복선의 움직임에 맞추기 위해서는 제가 이 화물선을 움직이는 수밖에 없어요. 최대 오차를 생각하면 충돌 10초전 까지는 계속해서 궤도수정이 필요한 상황이에요.

-대체 무슨 소리를...

준은 이 상황이 당최 이해가 되지 않았다. 아니, 사실은 이해하려 하지 않는 것이었다. 그녀가 지금 예정된 죽음을 향해 달려가고 있다는 사실을, 그는 도저히 인정할 수 없는 것이다.

-그냥 나와! 다른 사람들 때문에 네가 죽을 필요는 없어!

-다른 사람들 때문이 아니에요.

-나를 위해서라면 더 부탁할게. 그게 최선은 아닐거야. 분명 다른 방법이 있을거라고.

-지금 저를 설득시킬 수 있는 방법 하나만 말해주세요. 그러면 당장 빠져나갈게요.

루나의 말에 준은 말문이 막혔다. 시간은 촉박했고, 당장 저 왕복선을 막기 위한 방법은 없었다. 플랫폼에 제대로 된 무장이 갖춰져 있을리도 만무했다. 애초에 플랫폼은 일종의 관공서나 항구 같은 것이니까. 무역연합의 후방에 위치한 알카트뢰즈 행성에 무장플랫폼을 설치할 이유따위는 어디에도 없었다.

-그건... 뭐라도 다른 방법이 있을거야.

-준. 지금 남은 시간은 8분이에요. 이 시간안에 다른 무언가를 한다는 것은 불가능해요.

-왜 안된다고만 하는거야! 왜 벌써부터 포기하려고 하는건데!

-준. 나 아무것도 포기하지 않았어요. 지금 이 순간에도 모든 가능성을 체크하면서 방법을 찾고 있어요. 그러니 제발... 말해줘요. 내가 여기서 나갈 수 있는 방법을.

그녀의 메시지를 본 순간 준은 정신이 번쩍 들었다. 포기한 것은 그녀가 아니라 바로 자신이었다.

============================ 작품 후기 ============================

스팀 여름 세일이 시작했습니다.

카스 글옵이랑 매트로 리덕스 핫라인 마이애미 질렀네요... 내일은 뭘 지르게 될지 벌써 두려워 집니다.

스팀 때문에 늦은 건 아니구요. 요 부분 장면 만드는게 생각보다 시간이 많이 드네요. 한 편 더 올릴 생각이긴 한데 몇시에 올라갈지는...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