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195 ----------------------------------------------
파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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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임스는 입을 벙긋거리기만 할뿐 아무런 말도 하지 못했다. 그것은 생각지도 못한 일이었다. 아니 상상할 수조차 없는 일이었다. 제임스는 말도 안되는 소리라며 일축하려 했다. 하지만 그 이야기를 듣는 순간 그는 그것이 사실이리라는 강렬한 예감이 들었다.
플랫폼을 파괴한다. 그것이 미치는 여파가 어떨지 그는 상상조차 할 수 없었다.
“마, 만약... 미스틸테인양의 말이 맞다고 치면... 어떻게 되는 거죠?”
“글쎄요. 만약이지만, 우리가 그걸 막지 못한다면... 플랫폼은 대폭발에 휩쓸리게 되겠죠. 일부는 분해된 채 궤도를 돌테고, 일부는 궤도 바깥으로 튕겨나갈지도 모르겠네요. 하지만 상당부분은 알카트뢰즈의 중력에 이끌려 추락하게 되겠죠. 그러면 모두가 파멸하는 거에요.”
“그럴수가...”
제임스는 루나의 예측이 초래하는 끔찍한 결과를 쉽사리 상상해 낼 수 없었다. 수 킬로미터에 달하는 플랫폼의 일부만이라도 저 행성에 떨어지게 된다면 그 여파는 상상을 초월할 것이다. 대기권 돌입 과정중에 상당수는 불타 없어지겠지만, 그럼에도 플랫폼의 덩치는 너무나도 거대했다. 그것이 어디에 떨어지든 간에, 텅스텐 바 몇 개쯤 떨어지는 것과는 비교할 수도 없는 엄청난 대파괴가 일어날 것이다.
“그, 그럼 대체 어떻게 해야하는 겁니까?”
“그래서 제가 착륙장을 열어달라고 하는 거에요. 제가 어떻게든 막을거에요.”
“설마...”
제임스는 두눈을 크게 뜨며 루나를 바라보았다. 그는 자신이 떠오른 것이 사실이 아님을 기도하며 천천히 입을 열었다.
“저 화물선으로 왕복선을 들이받겠다는 말입니까?”
“그렇게 되겠죠.”
“그, 그건 안됩니다. 왜 당신이 희생을 해야하는 겁니까?”
제임스는 벌떡 일어나며 루나의 양 어깨를 쥐었다. 어깨로부터 전해오는 고통에 그녀는 살짝 미간을 찌푸리며 제임스의 눈을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그러면 다른 방법이 있나요?”
“어, 어떻게든... 그래요. 왕복선이 출발하기 전에 준에게 그것을 폭파시키라고 하면 됩니다.”
“그건 안돼요.”
“왜 안된다는 겁니까? 굳이 그렇게 자신을 희생하지 않아도 되는 방법이 있는데.”
“시어도어 대령이 왕복선을 지키고 있는 상황입니다. 자세한 사정은 모르지만, 그가 순순히 그것이 폭파되도록 내버려 두지는 않을 거에요. 궤도폭격으로도 왕복선이 파괴되지 않은 것을 보면 외부의 공격을 막을 수 있는 어떤 장치 같은 것이 되어있겠죠.”
“항력을 말씀하시는 겁니까?”
“네. 아마 십중팔구는 항력을 이용한 방어일거에요. 어쩌면 더 한 무언가일 수도 있겠죠. 어쨌든 어지간한 무기로는 그 왕복선에 흠집을 낼 수 없을거에요. 그리고 준이 만약 그 사실을 알게 된다면, 직접 그 왕복선을 폭파시키려 할 거고요. 아무리 그라도, 근거리에서 결정체 폭탄이 가득 들어있는 왕복선이 폭발하게 되면 살아남기 힘들겁니다.”
“당신도 위험하긴 마찬가지에요.”
“전 살아나갈 방법이 있어요.”
루나는 자신있게 입을 열었다.
“무슨 방법 말입니까? 날아오는 왕복선에 부딪히는 것만해도 어려운 작업입니다. 그 상황에서 소형셔틀을 이용해서 빠져나간다 해도, 제시간에 위험반경에서 벗어날 수 있을 거라는 보장은 없어요.”
“하지만 그게 가장 확률이 높아요. 이미 시뮬레이션을 돌려봤습니다. 생존확률은 약 50퍼센트에요.”
“50퍼센트라니... 절반 밖에 되지 않지 않습니까.”
제임스는 거의 절망적인 어조로 입을 열었다.
“달라요. 지금 상황에서는 50퍼센트 씩이나 되는 거에요. 게다가 설사 실패하더라도 최소한 행성은 구할 수 있어요. 이정도면 충분히 남는 장사라고 생각되는데요?”
“남는 장사라니... 죽고나면 그런 건...”
“더 이상 논쟁은 그만해요. 여기서 시간을 끌면 끌수록 생존확률이 더 낮아 지기만 할 뿐이니까요.”
그녀는 단호한 태도로 제임스의 두 팔을 뿌리치고는 화물선을 향해 걸어갔다.
그러다 그녀는 문득 자리에서 멈추고 제임스를 향해 고개를 돌리고는 약간 빨개진 얼굴로 입을 열었다.
“이거... 어떻게 들어가는 거죠?”
“...제가 도와드리겠습니다.”
제임스가 화물선을 향해 다가갔다. 대형 화물선이긴 하지만 어지간한 조작은 모두 자동으로 가능했기에 한 사람만으로도 충분히 움직일 수 있었다.
“혹시 조종은 할 줄 아십니까?”
“네. 학생시절에 몇 번 시뮬레이션 해봤어요.”
“실전은 시뮬레이션과 다릅니다.”
“괜찮아요. 조작법은 머리속에 다 있으니까.”
“후우... 차라리 실패하기를 바라는 마음이 드는 군요.”
“농담이라도 그런말 하지 마세요. 이건 무조건 성공시켜야 하는 미션이라고요.”
“그렇긴 합니다만...”
제임스는 고개를 저으며 화물선의 바깥에 있는 해치를 열었다.
치익- 덜컹.
화물선의 문이 열렸다. 겨우 사람 하나가 겨우 들어갈 정도 크기였다. 제임스는 피식 웃으며 입을 열었다.
“이거 멋대로 사용했다가 나중에 피해보상금 날아오면 미스틸테인 양이 책임지셔야 합니다.”
“이런 말 하면 어떻게 보일지 모르겠지만, 제 남자친구가 돈이 좀 많아요.”
“끙. 그거 부러운 이야기군요. 저도 돈을 많이 벌면 미스틸테인양 처럼 아름다운 여성을 만날 수 있을까요?”
“불가능해요.”
“그런!”
“왜냐하면 저보다 아름다운 여자는 없으니까요.”
“그렇군요. 왠지 납득이 되는 말입니다.”
제임스의 진지한 대답에 루나가 얼굴을 찡그렸다.
“농담이잖아요. 좀 웃어요.”
“차라리 제가 나서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아직도 그 생각하고 있었던 거에요? 우주선 조종해 본 적 있어요?”
“...없습니다.”
제임스는 한숨을 쉬며 고개를 저었다. 그는 어디까지나 행정관료였지 우주선 파일럿은 아니었다.
“지금이라도 다른 조종사를 구한다면 어떨까요?”
“그만해요. 이런 임무를 누가 나서서 맡으려고 하겠어요.”
“후... 정말 어쩔 수 없는 거군요.”
“저 역시 이런 위험한 일 하고 싶지 않아요. 하지만 누군가는 꼭 해야하고, 재수없게 제가 하게 됐을 뿐인거에요. 그 자리에 제가 있어야 한다면, 그리고 그 자리가 반드시 필요한 자리라면 위험을 무릅쓰고서라도 해야하는 거라고요."
“알겠습니다. 더 이상 그 문제로 왈가왈부 하지 않겠습니다. 그럼 부디 살아돌아오십시오.”
“걱정마세요. 전 운이 좋은 편이니까요.”
치익- 덜컹.
그녀가 우주선 안으로 들어가자, 제임스는 해치를 닫았다. 마치 이 거대한 우주선이 하나의 관처럼 느껴졌다. 그는 루나를 죽음으로 밀어넣고 있다는 생각에 괴로웠지만, 그렇다고 풀죽어 있을 수는 없었다.
그는 황급히 착륙장 관제소를 향해 달렸다.
“후우...”
그녀는 문에 기대어 긴 한숨을 내쉬었다. 말은 그럴듯하게 했지만, 두렵지 않을리 없었다. 어지간히 위험한 장소는 안가본적이 없을 정도로 강단이 있는 그녀였지만, 그때는 항상 그녀를 지켜주는 누군가가 곁에 있었다.
“나 혼자서도 할 수 있을까?”
그녀는 황급히 고개를 젓고는 재차 입을 열었다.
“할 수 있어. 난 할 수 있어.”
이곳까지 오면서 그녀는 여러가지 가능성을 생각해봤다. 자신이 생각이 맞다는 가정하에, 가장 확실한 방법을 찾기 위해서였다.
준의 레일건은 통하지 않을 확률이 높다. 그렇다면 두 번째로 생각해 볼 수 있는 것은 전차의 포격을 이용해 왕복선을 파괴하는 것이다. 그녀가 통제실을 빠져나올때만 해도 준은 전차에 탑승한 채였다. 하지만 동시에 그의 앞에 수십의 외도가 도열해 있는 상황이기도 했다.
그런 상황에서 준에게 왕복선을 파괴해달라고 요청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었다. 오히려 거기에 신경쓰다가 전투에 방해가 되면 그를 위험에 빠뜨릴 수도 있었다.
적어도 자신은 50퍼센트의 생존확률이 있으니까. 자신이 제대로 우주선만 움직일 수 있다면 그 확률은 훨씬 더 올라갈 것이라고 확신했다.
‘그렇게 위험한 임무는 아니야.’
그것이 그녀가 직접 나서게 된 이유였다. 그녀는 황급히 함교로 향했다. 70미터 크기의 함선 내부는 미로처럼 복잡했지만, 곳곳에 표시판이 있었기 때문에 그리 어렵지 않게 함교에 도착할 수 있었다.
‘임펄스 엔진이 어디에 있더라...’
이런류의 우주공간만을 전문적으로 다니는 화물선의 경우 로켓엔진은 어디까지나 긴급시에만 사용하도록 되어 있었다. 부득이한 사태로 인해 행성에 불시착하게 될 경우에 사용하는 것이다. 그외에 일반적인 우주공간에서는 임펄스 엔진을 이용해 추진하고, 워프시에만 하이젠베르크 드라이브를 사용하는 식이었다.
“찾았다.”
그녀는 심호흡을 하고는 스위치를 올렸다. 그러자 엔진이 구동하며 가볍게 함선이 진동했다.
‘다음은 자세제어 장치.’
딸깍. 딸깍. 딸깍.
하나둘 씩 우주선을 움직이기 위한 스위치를 올리자 함교에 파란 불빛이 들어오며 천천히 허공으로 떠오리기 시작했다. 엔진정비가 제대로 되어 있지 않은지 떨림이 비교적 심한 편이었지만 그정도는 큰 문제가 되지 않았다.
그때 관제소에서 통신이 들어왔다. 제임스였다.
[미스틸테인양. 이쪽에서 우주선의 기동은 확인했습니다. 통신채널은 앞으로 이것을 유지합니다. 함선번호 L-1013991. 함선명 이카루스호. 지금 출항하시겠습니까?]
“아... 통신채널이 어디에있지?”
그녀는 허둥지둥 하며 통신채널을 찾아 움직였다. 함교는 수십명이 들어갈 수 있을 정도로 넓었고, 그중에서 통신채널은 통신장교가 앉는 자리에서 조작할 수 있었다.
[미스틸테인양?]
“잠시만 기다려요!”
그녀는 반사적으로 외치고는 기억을 더듬어 통신채널의 스위치를 찾아헤맸다.
“아. 여기있다.”
딸깍.
[찾았어요!]
[네? 뭘 찾았다는...]
[아. 아니에요. 함선 이카루스호. 지금 출항하려고 합니다. 승인 부탁드려요.]
[뭐... 생각해보니 어차피 불법출항이군요. 지금 문을 열어드릴테니 조심해서 움직이시길 바랍니다. 유도 케이블은 현재 사용할 수 없는거 알고 계시죠?]
[네. 걱정마세요.]
여러 함선들이 드나드는 플랫폼에서는 다른 함선들끼리 부딪히지 않도록 내부에 설치 된 유도케이블을 통해 착륙장 바깥으로 인도된다. 하지만 지금은 완전히 폐쇄되어 있는 상태였기 때문에 케이블을 수동으로 걸어 줄 현장 인부가 없는 상태였다. 하지만 그녀는 그다지 개의치 않았다. 애초에 부딪힐 다른 함선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기이이이--
완전히 폐쇄되어 있던 착륙장의 문이 서서히 열리기 시작했다. 그녀는 우주선의 자세를 제어하기 위한 핸들을 꽉 쥐고서 천천히 심호흡을 했다. 학창시절에 시뮬레이션을 해봤다고 큰 소리쳤지만, 그녀가 몰았던 가상현실의 우주선은 항상 다른 함선과 부딪히며 폭발하기 일쑤였다. 그때야 깔깔대며 웃었지만 지금 만약 그랬다간 농담으로 끝나지 않는 것이다.
꿀꺽.
그녀는 마른 침을 삼켰다. 갑자기 두 어깨가 무거워졌다. 자신의 손에 십만명의 목숨이 달려있다는 생각이 불현듯 든 것이다.
“정신차리자. 실수하면 안 돼.”
우우웅- 텅!
착륙장의 문이 완전히 열리자 긴 통로가 눈에 들어왔다. 원래라면 여기서 유도 케이블을 이용해 자동으로 움직여서 1차 격벽을 통과하여 움직여야 했다.
콰아아-
그녀가 핸들을 당기자 임펄스 엔진이 점화되며 푸른색 빛을 내뿜었다.
============================ 작품 후기 ============================
휴. 다섯시 반이니 내림해서 다섯시인걸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