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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멸
완전 변이를 마친 적 외도들이 준을 향해 서서히 다가오고 있었다. 준에게 있는 것은 D2전차 한 대와 그의 앞주머니에서 상황을 지켜보고 있는 시미 뿐. 과연 그 정도의 전력으로 눈앞에 보이는 외도들을 전부 물리치고 대령에게 다가갈 수 있을까?
아니, 그전에 시어도어 대령의 힘이 어느정도인지부터 가늠을 할 수 없었다. 준은 파란색 외도를 만난 적이 있다. 무한의 뱀, 우로보로스를 던전에서 마주친 적이 있었던 것이다.
녀석은 알을 낳고 난 직후에 극단적으로 약해져 있던 상태였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골렘들과 합심해서 겨우 물리쳤다. 지금이 당시보다 훨씬 더 성장한 상태라고 하더라도 과연 그를 상대로 이길 수 있을 까 하는 생각이 드는 것은 사실이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이대로 물러설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쾅!
준은 자신을 향해 공격을 해오는 외도들을 피해 뒤로 물러났다.
황급히 전차에 올라탄 준은 전력으로 뒤로 물러섰다. 준의 공격력으로는 초록색 외도의 체력에 큰 데미지를 입히기 어려웠다. 믿을 것은 D2전차의 포격 뿐이다. 하지만 최대속력이 50km정도 밖에 되지 않는 전차의 속도로는 외도를 떨어뜨리는 것은 불가능했다.
콰앙!
준은 움직이며 기동사격을 가했다. 가장 앞에서 접근하던 인간형 외도 하나가 포격에 노출되며 머리가 날아갔다. 하지만 아직 남은 외도의 수는 많았고, 전차의 주포는 6초마다 한발씩 쓸 수 있었다.
“젠장. 더럽게 느리군!”
“쟤들 너무 빨라요. 더 이상 도망치기 어려운데요?”
“나도 알아!”
쿠웅!
결국 전차의 위에 메뚜기를 닮은 변이 외도 하나가 올라탔다. 녀석은 갈고리를 닮은 날카로운 앞발로 전차의 해치를 내리찍었다.
쿠웅!
“일격에 EX필드가 전부 날아가다니...”
전차의 EX필드의 수치는 모두 합해 1000. 그것이 외도의 일격에 허무하게 찢겨져 나갔다. 그리고 두 번째 공격에 전차의 해치가 종잇장처럼 찢겨나갔다.
콰드득!
“크윽.”
푸슈슈슛!
상체가 완전히 노출된 준은 머리위에서 타액을 흘리며 자신을 노려보는 외도를 향해 가지고 있던 니들건을 난사했다. 다행히도 아주 효과가 없진 않았던지 녀석은 니들건을 피해 전차에서 훌쩍 뛰어내렸다. 하지만 그다지 큰 타격을 입은 모양은 아니었다.
그 사이 6초가 지나고 준은 두 번째 포격을 날렸다.
쾅!
일단 쏘면 맞았다. 하지만 두 번째 탄을 맞은 녀석은 엄청는 포효를 내지르며 그대로 전차로 돌격했다. 방어에 특화된 개체인 듯, 곰을 닮은 녀석은 그대로 전차의 주포를 쥐고는 힘을 주었다.
키이이잉-
“큭.”
따다다당!
포신이 엿가락처럼 휘는 것을 본 준이 황급히 동축기관총을 난사했다. 하지만 녀석은 온몸을 파고도는 기관총탄의 고통조차도 아랑곳 하지 않은 채 포신을 완전히 구부러뜨리고는 그대로 전차의 앞부분을 내리찍었다.
콰앙!
“꺄악!”
“시미!”
하필이면 그 부분이 시미의 운전석과 맞닿은 부분이었다. 순식간에 찌그러진 운전석에 끼어있는 시미를 보며 준이 외쳤다. 일부분은 압축프레셔에 짓눌린 것 같은 모양새였다. 하반신 쪽이 완전시 끼어 엉망이 되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헉? 너 괜찮냐?”
“아. 네. 그럭저럭.”
그녀는 잠시 몸을 움직이더니 미간을 찌푸리며 입을 열었다.
“몸이 안움직여요.”
“그거야 끼였으니까 그렇지. 아프지는 않고?”
“별로요. 헌데 어떻게 하죠? 저 이제 평생 여기서 못빠져 나가는 건가요?”
시미가 난감한 얼굴로 입을 열었다.
“일단 다시 작아지면 될거야. 그보다는 전차는 더 이상 못쓸거 같은데.”
준은 기관총을 쏘며 곰같이 생긴 외도를 떨어뜨리고는 입을 열었다. 더 이상 도망칠 여지는 없었다.
“아. 됐다.”
시미가 손가락 크기 정도로 작아지더니 폴짝 뛰어서 준의 앞주머니로 들어갔다. 체력상태도 양호했고, 몸에도 그다지 상처가 없는 것으로 보아 큰 데미지를 입은 모습은 아니었다.
‘유연하긴 엄청나게 유연하구나.’
거의 하체 일부가 종잇장처럼 눌렸음에도 그녀는 별다른 이상이 없었다.
따다다당!
일단 그녀의 상태에 문제가 없다는 것을 확인한 준은 다시한번 기관총을 난사했다. 니들건에 비해 압도적인 화력을 뿜어내는 기관총이었지만, 초록색 외도들, 그 중에서도 방어에 특화된 것으로 보이는 녀석들을 저지하는데는 한계가 있었다.
결국 곰처럼 생긴 외도가 다시한번 전차를 후려쳤다.
기이잉!
수십톤 짜리 전차가 비스듬히 기울어지며 머리를 돌릴 정도로, 적 외도의 힘은 강력했다. 앞부분이 압착됨으로서 더이상 조종이 불가능하게 된데다가, 포신은 휘어있었고, 사용할 수 있는 것은 기관총 뿐이었다. 하지만 그것만으로는 적을 저지하는데 부족했다.
준은 눈앞이 캄캄해지기 시작했다.
“이건... 무리인가?”
판단이 약간 늦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쩌면 녀석들이 모여들자마자 뒤도 돌아보지 않고 도망쳤어야 했을 것인지도 모른다.
지금껏 아무리 강력한 적이라고 느꼈던 이들도 어떻게든 물리쳐왔기 때문에 이번에도 어떻게든 될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눈앞의 적들은 지금껏 준이 상대한 녀석들과는 차원이 달랐다.
‘정면대결로는 승산이 없어.’
준은 생각했다. 어차피 힘으로는 저 많은 수의 외도들을 전부 죽인다는 것은 불가능했다. 하지만 반대로 생각해보면 굳이 이 녀석들을 상대로 싸울 필요는 없었다. 준이 원하는 것은 시어도어 대령을 막는 것이다.
“꽉 잡아라.”
“네?”
준의 몸이 엄청난 속도로 떠오르기 시작했다. 중력제어를 통해 몸을 허공으로 띄운 것이다. 염동력을 이용해서도 어느정도는 허공에서 버틸 수 있지만, 그것으로는 이렇게 빠른 속도로 움직일 수 없었다.
“하늘을 날아요?”
“마나는 좀 많이 들지만.”
준은 중력가속도의 두 배에 이르는 속도로 허공으로 치솟은 다음, 곧바로 그 방향을 바꾸어 하나 남은 왕복선을 향해 직선으로 날았다. 그곳에는 시어도어 대령만이 남아 준을 지켜보고 있었다.
콰아아-
준은 그 상태 그대로 인베토리에 잠자고 있던 강철바를 꺼내들었다. 엄청난 크기와 무게를 지닌 그것은 순식간에 여러개로 분화하면서 수십개의 니들리스 스패너로 변화하기 시작했다.
촤라라락!
순식간에 강철바 하나가 니들리스 스패너 수십개로 분화되었고 준은 남은 마나를 각각의 스패너에 모두 담아 매크로어택을 걸었다.
“흠.”
대수롭지 않게 지켜보던 시어도어 대령의 입에서 나지막한 신음이 흘러나왔다. 그만큼 지금 준이 보여준 신위는 놀라운 것이었다. 단순히 화려하기만 한 것이 아니라, 그것 하나하나에 깃들어 있는 힘은 어지간한 외도들은 일격에 참살할 수 있는 위력을 담고 있었다.
-마나의 잔량이 5퍼센트 미만입니다. 더 이상 자세를 제어할 수 없습니다.
시스템의 경고음이 울려퍼졌다. 30퍼센트가 넘게 남아있던 마나가 순식간에 증발했다. 그만큼 중력제어는 마나를 많이 사용하는 기술.
준의 몸이 흔들리며 아래로 쳐지기 시작했다. 중력제어가 약해지며 스패너와 준의 무게를 버티지 못하고 떨어지기 시작한 것이다.
“으아아아!”
준은 남아있던 마나를 모두 끌어다 쓰며 자세를 유지하려 애썼다. 노력의 보람이 있었는지 준은 겨우겨우 시어도어 대령에게 까지 닿을 수 있었다.
“매크로 어택!”
콰아아아!
수십 개의 스패너가 시어도어 대령을 향해 날아들었고, 그대로 마나를 머금고 내리꽂혔다.
“음?”
헌데 당연하게 터져야할 충격파가 생성되지 않았다. 준은 허공에서 멈추어버린 니들리스 스패너를 보며 이를 악물었다. 염동력으로 내리친 스패너는 마나를 머금은 채 그대로 허공에 박제되어 있었다.
우웅-
‘이게 대체...?’
대령을 중심으로 반원형의 필드가 생성되어 있었다. 육각형으로 촘촘하게 엮인 그 필드는 항력조차도 뚫어버리는 니들리스 시리즈의 데미지를 완벽하게 막아내고 있었다.
“제법 놀랐다. 하지만 여기까지인 것 같군.”
시어도어 대령의 입이 떨어지자, 준과 함께 니들리스 스패너들이 후두둑 바닥으로 떨어졌다. 준의 마나가 다한 것이다.
-가용마나를 모두 소진하셨습니다. 긴급회복에 들어갑니다. 지금부터 30분간 마나를 사용하실수 없습니다.
“이럴수가...”
준은 바닥에 쓰러진 채 멍한 눈으로 시어도어 대령을 바라보았다. 모든 마나를 끌어다 쓴, 준이 할 수 있는 최대의 위력을 다한 공격이었다. 헌데 너무나도 허무하게 시어도어 대령의 손짓한번에 막혀버리고 만 것이다.
“인간의 몸으로 거기까지 할 수 있었던 것도 대단한 일이다. 너무 실망할 필요는 없어.”
하지만 준은 아무런 말을 할 수 없었다. 델타를 얻은 이후 지금껏 계속 승승장구 해왔다. 단 한번도 이렇게 무력하게 적의 앞에 무릎 꿇어 본 적이 없는 준으로선 이제 어떻게 해야할지 갈피를 잡을 수 없었다.
“이제... 어떻게 할 계획이지? 날 죽일 생각인가?”
“자신을 너무 과대평가 하는 경향이 있군. 제군의 운명까지 내가 결정할 필요는 없지. 어차피 이 일이 끝나면 모두 죽을테니까.”
“대체 무슨 소리를...?”
준은 가까스로 상체를 일으키고는 그를 향해 고개를 쳐들었다. 그때, 머리위에서 무언가 반짝이는 것이 눈에 들어왔다.
“저건?”
“궤도폭격인가?”
“어째서?”
준은 심장이 튀어나올 정도로 놀랐다. 처음 폭발이 있을때는 전차 안에 있었기 때문에 무사할 수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EX필드가 완전히 무력화 된 상황이었다. 저런걸 맨몸으로 맞으면 절대로 무사할 수 없을 것이었다.
“쯧. 쓸데없는 짓을.”
거의 절망적인 표정을 하고 있는 준과 달리 고개를 든 시어도어 대령은 혀를 차고는 두 손을 허공으로 들어올렸다.
그와 거의 동시에 불타는 하얀 빛이 왕복선을 향해 수직으로 내리꽂혔다.
콰아아아앙!
“크윽!”
궤도폭격을 머리위에서 맞은 준은 귀를 틀어막으며 땅에 머리를 처박았다. 엄청난 압박감이 온몸을 통해 전해졌다. 열기와 충격파, 그것들이 사방으로 퍼져나가며 이미 초토화된 주변지역을 다시 한번 깨끗하게 쓸어버렸다.
“아아. 말라버려요...”
준은 귓가에 들려오는 시미의 목소리에 정신을 되찾았다.
‘살아있는 건가...’
준은 눈을 뜨고 힘겹게 몸을 일으켰다. 폐를 통해 전해져 오는 뜨거운 공기는 숨을 쉬기 힘들게 만들었지만, 그렇다고 견디지 못할 정도는 아니었다. 이미 이 시점에서 준은 무슨 일이 일어났음을 깨달았다. 만약 제대로 궤도폭격이 이루어졌다면 준은 이미 원자단위로 조각나 사라져있었을테니까.
“대체...”
준은 눈 앞에서 두 팔을 허공으로 향한 채 이를 악물고 있는 시어도어 대령을 보았다. 그의 주위로 반경 백여미터나 되는 반구형태의 실드가 펼쳐져 있었다. 그것이 거의 완벽하게 궤도폭격의 피해를 막아주고 있는 것이다.
믿을 수 없는 광경에 현기증이 일 정도였다.
-시스템. 시어도어 대령의 능력에 대해서 알 수 있어?
-분석중입니다. 미래연구소의 정보를 취사분석한 결과, 시어도어 대령의 능력은 광범위한 지역을 아우르는 안티에너지필드의 생성으로 여겨집니다.
-그러니까 저게 일종의 항력이라는 건가?
-그렇습니다.
-그걸 의도적으로 발생시킨다는 게 가능해? 그보다 저것의 정체가 항력이라면 내가 왜 뚫을 수 없었던 거지? 니들리스 시리즈는 항력을 중화시키는 힘이 있다고.
-힘의 차이에서 비롯된 것으로 추측됩니다.
준은 기가 차다는 듯 고개를 저었다. 파란색 외도의 힘이라는 것이 대단하다는 것 정도는 이미 알고 있었다. 하지만 왕복선 전체를 감쌀 정도의 방대한 넓이를 항력으로 감싼다는 것은 상상도 해본적이 없는 일이다.
============================ 작품 후기 ============================
다음 편은 다섯시에 올리겠습니다. 자꾸 하루씩 빼먹어서 죄송합니다. 가능한한 매일 연재를 하고 싶은데, 비축분 없이 글쓰는 일이 쉽지 않네요.
어제 못쓴만큼 오늘은 최선을 다해서 달려보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