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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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멀리서 그 모습을 보았는지 막스가 다가왔다.
“뭐하는 거야? 왜 멀쩡한 전차에 색을 다시 칠하는 거야?”
“그렇게 보이는 건가?”
준은 웃으며 간단히 강화에 대해서 설명했다. 막스가 고개를 끄덕이며 입을 열었다.
“확실히... 자가수복이 된다면 수리비가 들어가지 않아서 이득이긴 하겠군. 아니. 사실 우리쪽에선 이걸 수리할 수 있는 사람이 없었지.”
“사실 고장나면 버리고 새로 만들 생각이었으니까.”
“그건 너무 낭비잖아. 네가 아무리 경험치가 많아도 그건 무리야.”
막스의 말에 준은 어깨를 추겨세웠다.
“그렇게 오래 쓸 생각도 없는데 뭐. 이번 싸움이 끝나면 다시 사용할 일도 없을걸.”
“그러면야 좋겠지만...”
막스도 이런 대규모 전투를 경험해 본 것은 저번 세파트 점령전이 처음이었다. 사람이 죽는 것에 무감각해 질 정도로 알카트뢰즈에 익숙해져 있는 그였지만, 찰나간에 십수명씩 죽어가는 상황은 그로서도 견디기 힘들 정도였다.
전투원이 모이는 동안 준은 초비연을 불러 그에게 정찰을 시켰다. 그 사이 준은 병사들이 혹여나 쓸데없이 결투를 벌이지 않도록 펠로우쉽 간에 데미지를 입힐 수 없도록 재 조정 했다. 저번 전투때 그걸 바꾸지 않아 시미의 음파공격에 피해를 입은 이들이 있었다.
준의 실수였고, 이번에는 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기 위해 전투 전에 미리 바꾸어 놓은 것이다. 밴디트들로 부터 노획한 소총은 탄환의 부족으로 사용할 수 없었다. 그것들은 현재 준의 인벤토리 안에 잠자고 있는 상태였다.
수송기가 몇차례 왕복하고, 모든 병사가 막사에 도착했을 무렵 초비연이 정찰을 마치고 돌아왔다.
“적들은 조용합니다. 방어상태로 보아, 우리의 움직임을 전혀 예상하지 못하고 있는 듯 합니다.”
“야쿠츠 소장도 모르고 있겠지.”
준이 입을 열었다.
“공격 시작 전에 미리 언급을 해야하지 않을까?”
막스의 말에 준이 고개를 끄덕였다. 설령 합의 하지 못한 작전이기는 하지만 아군에게 오인사격을 하는 일은 피해야 했다.
인근 지형은 상당히 복잡했다. 초비연의 보고에 따르면 동부군은 작정하고 시간을 끌 생각이었던지, 계곡 깊숙한 곳에 자리를 잡고 불릿타임이 포격을 하면 굴속으로 숨어버리는 방식으로 대응을 하고 있다고 했다. 그렇다고 병력을 이끌고 안으로 들어가면 소수 대 소수 교전에서는 이기기 힘들었다. 변이외도의 존재 때문이었다.
“전차의 돌입은 어렵겠군.”
어지간한 지형은 모두 다닐 수 있는 무한궤도 전차가 움직일 수 없는 곳이라면 어지간한 육상병기는 움직일 수 없다고 보는 게 맞았다.
그 때문에 불릿타임에서도 공격용 드론을 적극적으로 활용하고 있는 상황이었다. 하지만 그 수가 적고, 또 생각보다 드론의 살상력은 그다지 높은 편이 아니었다. 소음이 멀리서도 알 수 있을 만큼 큰데다가 장탄량이 많지 않기 때문이었다.
그나마 할 수 있는 것은 곡사포를 이용한 포격이었다. 지금도 멀리서 쾅쾅 소리가 들릴 만큼 많은 포탄을 때려 붓고 있었다. 그나마 현 상태에서 유효한 피해를 주고 있는 유일한 것이었다. 야쿠츠 소장이 승리를 장담하는 이유이기도 했다. 하지만 그런 식으로는 밴디트들의 사기를 떨어뜨릴 수는 있지만 실질적으로 녀석들을 궤멸시키기에는 어려웠다.
밴디트 들 측에서도 당하고만 있지는 않았다. 해가 지기 전이 불릿타임의 턴이라고 한다면, 해가 진 이후에는 밴디트들의 시간이었다. 그들은 야간시력이 뛰어난 변이외도를 앞세워서 집요하게 공격을 가했고, 그에 따른 피해도 상당히 누적되어 있었다.
“일단 공격은 분대단위로 움직이면서 적들을 소탕하는 걸로 한다. 지형때문에 놈들도 한 곳에 모여있기는 힘드니 수적으로 불리하지는 않을거야.”
하지만 복잡한 지형이 외려 펠로우쉽에게는 좋은 조건이 되어주었다. 소수 대 소수의 교전에서 펠로우쉽의 전투력은 밴디트들에 비해 훨씬 뛰어났다. 총탄에 직격해도 살아남을 수 있는 방어력과 체력을 보유하고 있었고, 근거리 교전에서는 니들건이 소총을 뛰어넘는 화력을 보이기 때문이었다.
“문제는 불릿타임의 포격입니다. 낮에는 그쪽에서 계속해서 포격을 가하기 때문에 우리측에서도 피해가 올 수 있습니다.”
“그건 내가 직접 해결하지.”
준은 그것을 마지막으로 전술회의를 마쳤다.
준은 야쿠츠 소장의 델타폰으로 현재 펠로우쉽의 위치를 전송했다. 어차피 대화가 통하지 않는 상대이기 때문에 구구절절 설명을 할 필요는 없었다.
아니나 다를까, 곧바로 야쿠츠 소장에게서 전화가 왔다.
[뭐하자는 거지? 명령을 거부하다니, 제정신인건가?]
[내일 아침 8시를 기점으로 우리는 녀석들의 뒤를 칠거야. 내가 할 말은 그것뿐이야. 그 이후에 어떻게 할지는 그쪽의 재량에 달려있겠지.]
[그 숫자로 녀석들의 근거지 한가운데로 들어가겠다고?]
[승산은 있다. 전황을 소수교전으로 이끌고 가되, 후방에서 전차를 이용해 포격을 가할거야.]
[정말 할 모양이군.]
야쿠츠 소장은 기가차다는 듯 한 말투였다.
[싸우기 싫으면 가만히 지켜보기만 해도 돼. 그쪽으로 도망쳐 오는 녀석들을 쓸어 담기만 하라고.]
[대체 왜 이렇게 까지 하는 거지? 오르트 탄약고를 공격할 자신이 없다면 수도에라도 가만히 지키고 앉아 있어도 되는 일 아닌가.]
[그 쪽이 너무 느긋한 거겠지.]
[흠... 그래서 원하는 것은 지원인가? 아니면 그냥 두고보라는 건가.]
야쿠츠 소장도 준과 길게 대화를 하고 싶지는 않은 듯, 곧 바로 본론으로 들어갔다. 어차피 서로의 입장이 다른 만큼 대화는 평행선을 달릴수밖에 없었다.
[원하는 건 하나다. 곡사포의 포격을 중지하는 것. 우리 편이 피해를 입을 수 있으니까.]
[좋다. 상황을 봐서 참전할지 말지를 결정하도록 하지.]
[그건 마음대로 하고.]
준은 그렇게 말하고 통신을 끊었다. 불릿타임이 함께 공격을 해준다면 이쪽의 피해를 줄일 수 있다. 하지만 이쪽에서 사정한다고 되는 문제가 아니었기 때문에 준은 거기서 대화를 마쳤다.
어차피 전황이 기울어지면 알아서 참전할 것이다. 그 전에 준은 최대한 녀석들의 목을 가져갈 생각이었다.
다음날 아침. 펠로우쉽 군단이 전진을 시작했다. 적들은 지형을 방패삼아 몸을 숨기고 있었지만 펠로우쉽은 불릿타임과 달랐다. 준은 5레벨에 오른 이들을 앞세워 분대단위로 적들을 소탕하기 시작했다. 평소처럼 곡사포에서 몸을 숨기고 있던 동부군은 갑작스레 나타난 펠로우쉽 부대에 놀라 우왕좌왕 할 수밖에 없었다.
쾅! 콰앙!
거기다가 열대에 이르는 전차가 후방에서 지원사격을 가했다. 같은 펠로우쉽에게는 피해를 주지 않는 공격불가 옵션 덕에 펠로우쉽이 피해없이 접근하는 것에 비해, 밴디트들은 폭발속에서 혼비백산하며 진영을 무너뜨릴 수밖에 없었다.
파파파!
니들건에서 쏘아진 탄자가 땅을 거칠게 파고들며 참호를 파고 숨어있던 밴디트들의 급소에 틀어박혔다.
“아악!”
“커헉?”
“대체 뭐야! 이놈들 죽지도 않는건가?”
콰앙! 쾅!
사방에서 비처럼 쏟아지는 쇠못들 사이 계속해서 고폭탄이 터져나갔다. 폭발을 무시하고 니들건을 쏘며 돌격하는 펠로우쉽 군단의 위용은 밴디트들에게 불사의 전사처럼 보일 지경이었다.
쾅!
“큭!”
펠로우쉽이라고 완전히 그 폭발을 무시하는 것은 아니었다. 바로 발 옆에서 폭발이 일자, 펠로우쉽 병사 하나가 폭발에 휘말려 허공으로 떠올랐다.
쿵!
그는 수미터를 날아 근처의 돌벽에 머리를 부딪혔다. 순간적으로 뇌진탕이 일 정도의 강한 충격이었다. 하지만 그는 곁에서 부축을 하는 동료의 손을 잡고 다시 자리에서 일어나 니들건을 고쳐쥐고 달렸다. 체력바를 보니 10퍼센트 정도가 줄어들었다. 폭발에 의한 데미지는 무시했지만, 그로인한 충격으로 벽에 들이받은 간접데미지는 무시할 수 없었던 것이다.
콰앙! 쾅!
“대체 저 녀석들 무슨 생각인거지? 아군에게 포탄을 쏘아대고 있잖아?”
멀리서 그 모습을 지켜보고 있던 야쿠츠 소장은 신음같은 소리를 내뱉었다. 이 전투는 그의 상식을 완전히 벗어나고 있었다. 전차의 화력지원을 바탕으로 거침없이 밀고 들어가는 펠로우쉽 병사들의 위용은 수많은 전투를 경험한 야쿠츠 소장마저도 기가 질릴 정도였다.
“피해를 감수하고 적들을 물리치겠다는 속셈인가? 하지만 숫적으로도 부족한 녀석들이 그런 식으로 싸워서는...”
무언가 생각이 있겠지 하고 지켜보고 있긴 한데 지형지물과 폭발때문에 시야가 가려져 상황을 제대로 파악할 수가 없었다.
“공격을 해야할까요?”
부관이 입을 열었다. 야쿠츠 소장은 고개를 저었다. 정황을 알 수 없는 상황에서 무턱대고 들어갔다간 전멸할 수도 있었다. 지금은 준 알스버그라는 녀석이 무슨 생각이 있기를 바랄 뿐이었다.
그렇게 삼십 여분의 시간이 흘렀다.
야쿠츠 소장의 눈에 협곡을 빠져나와 흩어지고 있는 적들의 모습이 보였다.
이유는 알 수 없었지만 이런 좋은 기회를 놓칠 이유는 없었다. 야쿠츠 소장은 곧바로 병력의 진군을 명령했다. 양쪽에서 샌드위치를 싸듯 공격을 시도하자 그렇지 않아도 오합지졸인 밴디트들은 빠르게 사기를 잃고 무너져 갔다.
결론적으로 동부전선의 전투는 순식간에 끝났다. 준의 예상보다도 훨씬 수월한 싸움이었다. 변이외도들 마저도 열대의 전차가 쏘아대는 폭발에 휘말려 버티지 못하고 쓰러진 것이다. 준은 생각보다 펠로우쉽 군단의 위력이 강하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물론 이번 경우는 좁은 지형의 덕을 만이 본 것도 사실이었다. 포탄은 비교적 정밀하게 적들 사이에 떨어졌고, 특히 덩치가 큰 변이외도들은 그 폭발에 더 쉽게 휘말렸던 것이다.
하지만 준은 그 승리를 자축할 시간도 없이 빠르게 수도로 돌아갈 수밖에 없었다.
오르트 탄약고를 손에 넣은 북부군이 홀연 수도에서 30킬로미터 즈음에 모습을 드러낸 것이다.
그 쾌속의 전진은 준뿐만 아니라 수도에 있던 모든 이들의 놀라게 만들기 충분했다. 800킬로미터라는 거리를 단 사흘 만에 주파한 시어도어 대령은 수도를 30킬로미터 앞에 두고 주둔지를 꾸렸다.
그리고는 델타포럼을 통해 선전포고를 날렸다. 주요 내용은 다음날 오전 8시를 기해서 전면적으로 공격을 감행할 예정이니 전투에 참여하지 않는 이들은 모두 수도를 떠나라는 이야기였다.
[우리는 알카트뢰즈의 해방을 위해 싸우는 전사들이다. 우리의 적은 정부이며, 수형자들이 아니다. 이번 전쟁을 승리 하게 된다면 이곳의 모두는 자유를 찾을 수 있게 될 것이다. 그러니 우리와 싸우지 않을 자들은 모두 수도를 떠나라. 그리하면 승리 이후에 얻을 과실을 모두 함께 나누게 될 것이다.]
델타포럼에 시어도어 대령의 이름으로 올라온 이 글은 빠르게 확산되었다. 수도에 있던 수형자들은 반신반의 하는 태도였지만, 하나둘 사람들이 도시를 빠져나가기 시작하자 다들 그에 동참하는 분위기였다.
다행히도 펠로우쉽 군단에는 그리 큰 영향을 미치지 않고 있었다. 연이은 전투의 승리로 모두들 사기가 최고조에 이르러 있기 때문이었다. 시어도어 대령이 이끄는 밴디트 부대가 지금까지 중에서 가장 큰 규모라고 할지라도, 이쪽에는 동부전선에서 벗어난 불릿타임의 정예병이 함께 하고 있었다.
수와 수의 싸움이라고 한다면 이제는 이쪽도 밀리지 않았다. 그리고 변이외도를 물리칠 화력도 갖추고 있었다.
승리의 가능성은 비교적 높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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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편은 다섯시쯤 올라갑니다.
전편의 흙속성 강화 경험치 150-> 200으로 수정했습니다. 바로 윗줄에 200이라고 써놓고선ㅠㅠ